★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 제 2 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10.
현재의 순간은 하느님의 현존과 능력을 드러낸다. 》
우리 삶의 매순간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자(使者)와도 같으며
우리의 마음은 늘 그런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우리 영혼은
멈추지 않고 바람에 밀려 굳건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흐름과 기교는
무한자에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행을 신뢰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이러한 목적으로 일하고 있고
예외없이 거룩함에로 나가는 데 우리를 돕고 있다.
우리는 현재 이 순간에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찾아 낼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 중에 있을 것인가
은수처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삶들과 함께 섞여 살 것인가
독서를 할 것인가 아니면 글을 쓸 것인가
묵상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비워두고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영상 서적들을 손에서 뗄 것인가 아니면 찾을 것인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적어도 가난과 부, 질병과 건강,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매순간 하느님의 뜻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피조물에 대한 모든 욕망을 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우리 자신이 순종할 수 있으며,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우리의 유일한 만족은 현 순간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
이어야 한다.
마치 그것은
현재 이 순간을 떠나서는 기대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과도 동일하다.
하느님께 위탁된 영혼 안에 생겨나는 것이
그 영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라면,
분명코 그 영혼에게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기에
조금도 불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에 신앙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성의 빛과 감각의 명증성에 의해 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성이나 감각은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은총의 풍요성을 결코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의 이름을 빛낸다는 것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들처럼
생겨나는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 이름을 사랑하며 경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매순간 창조하는 것은
하나의 사물로 표현되는 신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사물들 모두는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알게끔 하는
여러 가지 이름들이며 말씀들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개별적이며 개체적이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고 또 표현될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이름은 결과들 안에서는 무한할 만큼 다양하다.
다시 말해서 그 결과는 하느님의 뜻이 나타내는 이름만큼 많다.
하느님의 이름을 빛낸다는 것은
그 이름을 담고 있는 존재,
즉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알고 경배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매순간 그분의 경배하올 뜻을
알고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이며,
일어나는 모든 것을 수많은 장막과 그림자와 이름 아래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언제나 활동하시고 계심을 보면서
하느님의 뜻이 행하는 바를 알고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모든 것 안에서 거룩하고,
그것이 말하는 모든 것 안에서 거룩하며,
매번 드러날 때마다 거룩하고
그것이 품고 있는 이름들 속에서 거룩하다.
그래서 욥은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했던 것이다.
이 거룩한 사람은 자기에게 덮친 지독한 비참함을 찬미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활짝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파멸을 하느님의 이름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그것을 찬미하면서
제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드러나든,
어떤 이름과 형상 아래 드러나든
그 이름은 언제나 거룩한 것이라고 선호하고 있었다.
다윗도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찬미하였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신다는 것,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
그분이 우리를 계속적으로 양육하신다는 것,
이 모든 것 안에서 밝게 드러나고 계시됨과 같이
그분의 뜻에 대한 계속적인 깨달음에 의한 것이다.
그분 뜻에 자기를 위탁한다는 이 충만하고도 완전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뛰어난 기도 안에서
잘 이해될 수 있다.
하느님과 교회의 명에 따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기도를 바친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우리가 기꺼이 고통을 참아 받고 그분의 경배하올 뜻을 따른다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해서 이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다.
우리 입으로 이 기도를 계속 소리내어 드릴 때
- 그것은 시간이 걸림 -
우리 마음은 즉각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단순한 영혼들은 그 심부로부터 하느님을 부르며 찬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없다고
큰 불만을 터뜨린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들이 그러한 부요함을 모방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베푸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적 지혜의 비밀스런 작용은
감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이끌어 가는 사이에
마음 속에 보화를 쏟아부어 주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감각은 메마르고 비어지는 가운데 보화는 철철 흘러 넘치게 된다.
매순간 사건들에는 하느님의 뜻이 새겨져 있다.
오,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여!
그 이름을 찬양하고,
그 이름이 만나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어떤 것으로서
그것을 대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합당한 일인지.
무한한 사랑으로 드러내 보여 주지 않고
이 이름이 뜻하는 것을 우리가 과연 볼 수 있을까?
그분의 이름은 하늘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따스함이며
또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은총을 더해 준다.
그것은 영혼을 꿰뚫는 하늘 나라이다.
그것은 천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도 먹고 있는 천사들의 빵이다.
현재의 매순간이 천사들이 먹는 이 빵과 거룩함의 왕국을 감쌀 때,
하찮게 보낼 수 있는 순간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오, 주님!
내 마음을 다스리시고 기르시며 깨끗이 하시고 거룩하게 해 주소서.
또한 모든 적들을 쳐부수게 하여 주소서.
지극히 보배로운 순간이시여!
제 육신의 눈앞에서 그것은 참으로 미소하오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크도다!
그것을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그토록 위대하게 여기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나이까?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참으로 탁월하고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 * *
<댓글>
지도사제 13.06.14. 00:17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모든> 흐름과 기교는~~~
<모든 것>은 이러한 목적으로~~~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다.
하느님께 위탁된 영혼 안에 생겨나는 것이
그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이라면~~~
생겨나는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것이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수많은 그림자와 이름 아래~~~
하느님의 뜻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모든 것> 안에서 거룩하고~~~
그것이 말하는 <모든 것> 안에서 거룩하고~~~
다윗도~~~ 이 <모든 것> 안에서 밝게 드러나고 계시됨과~~~
매순간 사건들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이 만나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참으로 탁월하고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
위의 글 한 페이지에서
<모든 것>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도 많이 나왔습니다.
<모든 것>이라는 단어가 왜 그리도 중요한 것인지요?
<모든 것>과 <매 순간>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 어떤 연관은 없겠는지요?
"<모든> = <매>" 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 어떨는지요?
<것> = <순간> 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것 = 공간, 순간 = 시간>이 아닐는지요?
공간과 시간, 시간과 공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잠시 던져진(하이덱거)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모든 것은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하나가 제외됨도 없이,,,, 반드시 말입니다, 반드시!
만에 하나,
모든 것에서 하나라도 제외되면 그 모든 것은 <모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이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지도사제 13.06.14 07:12
< 감사합니다, 신부님!
하느님 아버지께 내맡기고 나니
<매 순간>, <모든 것>이 참으로 단순해집니다.
불순물이 빠져나가 하루 하루 투명해지는 느낌입니다.
내맡긴 영혼은 공간과 시간이 자유로운(상관 없는) 투명인간이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 (무심13.06.14 06:58)
그 <불순물>까지도 제외됨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라면 말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라면,
그 불순물마저 <순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시고, 위대하시고,
놀라우시고, 오묘하시고 신기하시고, 희안하시고, 웃기시고>
신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 * * * * *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마처예함)
제4장 10. 시간이 갖는 문제점, 그리고 수 (數)
김리다리따테바61 19.04.21 23:23
10. 시간이 갖는 문제점, 그리고 수 (數)
빛깔들을 보듯이 내 눈으로 하느님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세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현세의 것들은 시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최하의 가치를 갖는다.
현재는 본래 시간이며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 수와 양을 가지고 있는 동안
인간은 마땅히 되어야 할 바대로 되어 있지도 봇하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하느님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의 것이 되지 않으신다.
(p. 209)
고대 철학자는
영혼이 하나와 둘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영원성으로 언제나 홀로 있고 변화가 없는 것이다.
반면 둘은 시간이며 변화하고 여럿이 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은
그 상위 능력에서는 영원성, 곧 하느님께 접하고
하위 능력에서는 시간에 접하고 있어서
변화에 종속되고
영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물질적인 것들을 향한다는 점이다.
(p. 134)
시간과 공간만큼 영혼이 하느님을 아는 데 방해되는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은 분열된 것이지만 하느님은 완전하시다.
그러므로 영혼인 하느님을 알려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그분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수도 없이 다양한 사물들처럼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한 분이시다.
(p. 172)
이 영(spirit)은 시간도 수도 알지 못한다.
수는 시간이라는 문제점만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뿌리는 영원 안에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하나라는 숫자밖에 없다.
이 영은 수를 초월하여 다수성 안으로 뚫고 들어가고
하느님께서 이 영을 꿰뚫으신다.
하느님께서 나를 꿰뚫으신다는 바로 그 사실때문에
나도 또한 그분을 꿰뚫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 영을 사막으로, 당신 자신의 고독으로 이끄시고
거기에서 영은 단순히 하나로서 그 자체 안에서 솟아나온다.
이 영은 원인이 없다.
영에게 원인이 있다면
일치(하나 됨)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은 일치와 자유 안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 함은
그 원인을 안다는 뜻이다.
어떤 것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참으로 아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생명이,
생명을 참 존재가 되게 하는 그 원천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결코 완성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원천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철학자가 말하듯이 이 시간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세적이고 사멸할 것에만 영향을 미친다.
철학자는 천상의 과정이 영원하다고 말한다.
영혼의 행로는 영원하고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혼은 추상적 존재들의 볍칙을 따른다.
(p. 207)
'언제'라는 말은 시간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빛이 우리에게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하느님께는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이 없다.
여기서 시간의 의미는
단순히 시간뿐만 아니라 현세의 덧없는 것도,
사물뿐만 아니라 애착도,
애착뿐만 아니라 시간의 흔적과 향기까지도 뜻한다.
사과가 있던 곳에 사과 냄새가 남아 있듯이
시간과 접한 것도 시간의 흔적과 냄새가 남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 권위자들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해와 별들은 시간과 약간 접하고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시간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내가 이 말을 인용하는 이유는
하늘보다 높이 솟아 있는 영혼의 정점은
시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p. 237)
하느님께서 시간 안에서,
그리고 여기에서 영혼에게 당신 자신을 주신다면,
그 영혼은 난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영원 안에서,
영원한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며
당신을 영혼에게 주신다.
(p.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