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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Hanyangdoseong...
백성의 한(恨)으로 한 단 한 단 쌓여졌을
한양 성곽인 한성(漢城)
신라 때부터 그저 '한양'이라 불렸던 땅에
성곽이 서며 한성이 되었습니다.
피눈물이며 땀방울 깃들지 않은 성곽의 돌이
단 하나라도 있었기는 했는지...
수도권지부의 클럽 산행으로 한양도성길이 올라왔고
국토종주하며 한강변 따라 암행하듯
어둠을 틈타 지나가며
내사산과 외사산이 감싸고 있는
조선의 수도 한양(한성)의 모습이 자못 궁금했었습니다.
기다리니 때는 이렇게 오고...
그럼 가봐야죠. 가보면 뭔가 알아지고
궁금한 것이 또 생겨나겠죠^^
그런데 다녀와서 후기 쓰려고 하니
이것저것 놓친 것들이 있더라고요.
사실 10일(토) 클럽 산행,
그리고 지인들과도 바로 그 다음주 한양도성길로 만나기로 선약.
한번 더 다녀오면 아쉬웠던 부분이 채워지겠구나 싶어
후기 쓰는 것 조금 미뤄뒀었습니다.
클럽산행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
후에 지인들과 산행은 시계 방향으로.
이른 새벽부터 기차 타고 서울역에 당도.
역사 내 식당, 소고기국밥으로다가
한 그릇 뚝딱 말아 먹고.
시계탑 앞에서들 만나 얼굴 인사합니다.
저 시계탑의 시간을 600여년 전 한양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런 능력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콜리님이 준비한 대전 유명빵집의 소보로빵이며
안산님이 준비해온 훈훈 구운 달걀 나눔.
수도권 송림지부장님 인사 및 안내 짧게 마치고
인근의 숭례문(남대문)으로 쪼매 도보 이동 후,
조선 선비님네들도 즐겼다는 그 한양 도성길
순성(巡城) 봄나들이~
그룹별로 몇 명씩 짝지어 시작해 봅니다.
한양에는 내사산과 외사산이 있는데...
그 중 우리가 이번에 걷게 될 구간은 바로
안쪽의 내사산 되시겠습니다.
한양도성의 성곽은
이성계의 오른팔이었던 정도전에 의해
내사산인...
백악산(북악산)-낙타(낙산)-목멱산(남산)-인왕산 능선을 따라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빙~둘러 계획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
잠시 생각해보며.
서울 사람이 아니라서...
어느 산이 어디 있었는줄도 잘 몰랐던 터라
내사산, 외사산 맨날 헷갈렸었는데...
이것도 이번에 제대로 머릿속에 그림이 잡혔네요.
궁의 정문인 숭례문에서 시작,
남산 향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고고고^^
숭례문(남대문)-남산-광희문(남소문)-이간, 오간수문(청계천)-
흥인지문(동대문)-낙산-혜화문(동소문)-
숙정문(북대문)-북악산 청운대-창의문(북소문)-인왕산-
돈의문 터(서대문)-소의문 터(서소문)-원점 숭례문(남대문)
21km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도성은 동서남북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의 산줄기 능선을 따라
그리고 사대문과 사소문으로 연결.
평균 높이 약5~8m, 전체 길이 18.6km
사대문은...
북-숙정문(肅靖門)
서-돈의문(敦義門) 동-흥인지문(興仁之門)
남-숭례문(崇禮門)
(중앙-보신각(普信閣, 종각)까지)
북쪽의 숙정문은 이름이 예외적
숙지문이 아닌, 숙정문 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며
현재는 숙정문으로 자연스레 굳어져 바뀌었다고 합니다.
짠~ 숭례문(남대문)입니다.
동서남북의 사대문 이름 기억하는 거
전에는 생각하기도 귀찮았는데...
순성 다녀왔더니 이젠 하나도 귀찮거나 어렵지 않아요.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유교 시대를 열었던 조선이니... 유교의 5대 덕목 두둥~
이 숭례문을 통과하면, 한성 입성~
문턱 없는 숭례문 들락날락~한 번 해주시고 가실께요^^
일제의 침탈, 서울의 4대문 철거가 계획되고
돈의문(서대문)과 숙정문(북대문)이 헐어져 버렸습니다.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는데
그 이유가 참 어이상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군대가
제일 먼저 한양에 진입한 문이 이곳 숭례문(남대문)
그리고 고니시 군대는 조심스레 다음 흥인지문(동대문)으로 진입
그걸 기념하고자~ 허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을 조선총독부에서는
각각 보물 제1, 2호로 지정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오호통재라...
어쨌거나 허물지 않아서 좋기야 하지만
그런 치욕을 겪으면서까지도 살아남았었는데
2008년 한 노인에 의해 불타버렸었고
지금의 숭례문 건물은 복구된 것.
혹시 사진 속 숭례문에서 특이한 것 발견하셨나요?
현판이 세로로 쓰였죠?
남쪽의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라고 해요.
중간의 한강 물줄기가 그 기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불꽃이 위로 타오르는 모양인 崇(숭)과
음양오행으로 보았을 때 불 화(火)의 禮(례)
두 불을 세로로 써서 불에는 불로써...
'맞불'을 놓았다고.
광화문의 해태상 또한 불 잡아먹는 동물이고요.
근데 결국 경복궁 뿐만 아니라 정문인 숭례문까지도 불에 삼켜졌으니...
관악산의 불기운이 그렇게 쎘~단~말인가?
진정 그 불길을 막을 수는 없었단 말인가?! ㅠㅠ
남산입니다.
저는 남산타워도 아직 못가본 논산 시골 처자~
우와~ 남산이닷. ㅋㅋ
태조 이성계는 1392년
개경(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뒤,
수도 물망(계룡, 무악 등)에 오른 곳들 중
태조3년(1394년)에 개경에서 최종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며
천도(遷都)를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경복궁을
그리고 좌우측으로 종묘와 사직까지 마무리 한 뒤,
다음해인 1395년 한양성곽을 위한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여 준비.
1396년 음력 1월부터 2월(49일), 8월부터 9월(49일)
98일간 전국의 약 20만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고
세종(1422년) 때 약 32만 백성을 다시 동원하여 개축공사 진행
무임금으로 전국 각지에서 50만 명의 백성들이
한양길에 올랐다 하니...
추위와 더위에 어찌 이 공사를 속전속결로 했을까... 싶습니다.
생각만해도 동상 걸릴 거 같고, 땀띠 날거 같아유~
공사하며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만 872명
하루에 거의 비공식까지 합하면
십여 명 이상씩 죽었을 것을 생각하니
길게 늘어선 성곽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서울 오가듯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고
보따리 걸머지고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갔을텐데...
성벽이 무너지면 다시 올라와 쌓게 했다고 하니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푹푹~
나라에서 해주는 게 대체 뭐가 있다고
이런 개념없는 노동력 착취까지 감당해야 했을까요.
제가 그 시대에 살았었더라면
아마 저는 872명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지...
아휴 천만다행이다.
추운거 진짜 싫어요. 으으으~
성곽 복원이 안된 곳은 이렇게 바닥의 표시로
성곽이 여기 있었구나~ 알 수 있었구요.
저는 이날 처음 뵌 산수동님께서
같이 걸음하시며 이것저것 친절하게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후기 쓰는 사람인거 아셨던 게지요.
산수동님 한양도성 해설사 같아요. 참 유쾌한 분^^
얼매나 유쾌하시면 셀카까지 요래~찍었을까요^^
여기는 또 어떤 곳인고??
성벽에 대한 이모저모~를 만나볼 수 있었어요.
'흰동그라미'는 무슨 표시?
시대별로 성벽의 돌 모양과 크기 차이
태조 때는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면 모두 가져와
성돌을 쌓아 올렸던 것 같구요.
세종 때는 아랫돌은 크고 넓은 것으로
윗돌은 옥수수알처럼 작은 것들로.
숙종 때부터는 규격화 되었으며 좀 제대로 개보수
순조 때는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큰 정사각형 가깝게.
각각의 시대 특징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성곽 옆으로 걸음하면서 어느 시대일지
찾아보고 맞춰보는 재미도 느껴봐야네요.
바닥의 흰 동그라미.
성벽을 쌓을 때 지렛대 역할을 한 나무 기둥을 박았던 흔적이래요.
어떻게 그 큰 돌을 쌓아 올렸을까 했는데.
아아~ 그 시대에 이렇게 쌓았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산자락의 비탈진 곳 성벽은 이렇게 쌓았대요.
성벽이라는 거 그냥 돌만 쌓아서 만들어지는게 아니었네요.
이런 설명 보고들 가셔야죵~
저는 그래서 늘 꼴찌를 면하질 못해요.
라일락 향기에 취해 걷는 남산 오름길.
킁킁 거리느라 발걸음이 엉금엉금 거북이 모드가 되고.
우리 이쁜~말로는 수수꽃다리~
빛고운 이쁜 녀석이 향도 너무너무~ 좋아요~
백악산(북악산) 앞쪽으로 도성 안 중앙부
예나 지금이나 번화가이며
나랏님들 많이 계신 곳.
남산의 옛이름... 목멱산(木覓山)
왜 하필 남산을 이렇게 불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좀 어려운 설명~ 어쩌구저쩌구~
木의 중국 발음이 ‘무’,
우리는 ‘마’를 이두문자로 ‘木’이라 썼고 ‘뫼’는 ‘覓‘
‘木覓‘ 마뫼라 읽다가 목멱산으로 불렸다고.
순우리말 옛이름 ‘마뫼’의 ‘마’는 ‘앞’을 뜻하고 ‘뫼’는 '산'
암튼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앞산’이라는 뜻
어쩐지 앞산이라고 하니
그 옛날 옛날부터 사랑 많이 받았을 거 같고
친근하니 더 좋습니다^^
해피맨님~ 오리와 다정하게 커플샷~
이렇게나 등력 좋으신 선수님들이랑
제가 언제 또 이렇게 걸음해보겠습니까!
이런 클럽 산행이 아니면...택도 없지요.
수도권지부~ 감사합니데이^^
전국 지역의 소식이 집결됐다는 목멱산 봉수대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하였고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다섯 줄기의 연기가 피어오르니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부산~충주~한양까지 단 18일 만에 한성이 함락
아니 그렇게 힘들여서 튼튼하게 성곽까지 쌓았건만
왜 제대로 단 한번을 막아 분전하지도 못했을꼬.
분하도다~ 애통하도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 자료를 참고로
남산의 제1봉수대~제5봉수대까지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네요.
문이 열려 있으니 들어가보라는 소리 맞죠!~
느림보 팽달이 이제 도착했습니다.
다들 뭐 보고 계시나?
인왕산, 북악산과 그 뒤로 조산인 북한산(외사산 중 북쪽)
아~ 산이 품어주는 도심의 모습
세상 천지 이런 궁합을 가진 도시가 또 있을까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데 이 묘~한 아름다움이라니~
여기는 성 안쪽이구요.
한성이라 하면 성 안쪽만 이야기할 거 같은데
한성부는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하여
성외 도성으로부터 10리(4km) 이내 지역을 말했답니다.
외사산의 서쪽을 담당하고 있는 아차산이 조망되어지며.
북악산 계곡에서부터 흘러온 물줄기는
청계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가, 중랑천으로 하나 되고
한강으로 들며 서해 바다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관악산의 형세
불이야~ 진짜 불이네요.
불이 활활~타오르는 것처럼 보여요.
아~ 신통~하네요.
근데 저 불을 잠재울 묘수가 진정 없었단 말인가!!
태조 때의 석성이 그대로 이어졌고,
중간 부분이 무너졌었나 봅니다.
숙종 때 석성 개보수.
허물어졌던 부분을 각 맞춰 채웠네요.
옥개석 부위며 상단쪽은 최근에 얹어진듯 하고요.
돌의 상태, 쌓인 모습만 보고도
대충 어느 시대에 쌓였을지 짐작이 되어지니
어라~ 도성길 따라 걷는 거 더 신나네요.
각자성석이라는 말 전에는 들어본적 없었는데...
성벽 하단쪽 돌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설명에 보니 각자성석은
14C - 천자문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
1,2,3,4 순번을 매기듯, 반시계방향으로
성 둘레 5만9500척(尺)을 천자문의 天은 1구간 600척, 地는 2구간 600척....
天地玄黃宇宙洪荒(천지현황우주홍황)... 97구간까지.
15C - 축성을 담당한 지명 이름을 새김
18C 이후 -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까지 새겨짐
설명에 책임자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18C 이후 숙종 때 쌓은 성돌. ok~
먹다 만 껌 붙여 놓은 거 같은데... 뭐꼬??
산수동님 앞서 가다가 이거 알려주실라꼬 멈추셨네용.
도성이 기우는지, 주저앉지는 않는지..
체크 하는 거래요.
가만 보니... 금이 간 곳을 경계로 두 개를 붙여서
사이가 벌어지는지 추적 관찰하는 것 같아요.
성벽 맨 위의 뚜껑 같은 돌을 옥개석이라고 한대요.
전쟁나면 이 돌 밀어서 무기로 사용,
기어 올라오는 사람을 향해 떨어뜨렸다고 해요.
근디... 제가 들었을 때는 꿈쩍도 안하더니...
밤도깨비님은 한방에 번쩍~ 우왕~ 진짜 들려요.
상평통보(조선 엽전) 모양의 도성 골목길 대문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녹과 함께 피어나며...
이런 것 하나도 예사로 지나지 않게 되고.
남소문인 광희문(光熙門)은 도성의 동남 방향 관문
남산 일대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서 가까워 '수구문(水口門)'
인근에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이 있어요~
도성 안의 시체를 내보냈기에
서소문인 소의문과 함께 '시구문(屍口門)'이라 불렸습니다.
저곳을 통해 시신이 달구지에 실려서
나오는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드라마에 보면 많이 나오는데...
현재의 광희문은 6.25 전쟁 때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도로를 개통하며 원래 위치보다
약간 남쪽으로 옮겨져 지어졌다고 합니다.
사소문인 광희문과 사대문인 숭례문의 차이 느껴지시나요?
일단 규모면에서 차이가 현격하고
광희문은 1층, 숭례문(남대문)은 2층 누각
동대문플라자 옆의 역사문화공원을 지나며
이간수문을 만나보고~
청계6가교차로 다리 위에서 청계천을 내려다보니 옆으로
오간수문이 보입니다.
이 문으로 의적 임꺽정이 달아났다고도 하니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비밀문, 뒷문이었던가 봅니다.
물이 빠져나가는 문이었던 수문.
남쪽의 숭례문과 함께 임금님이 다녔던 사대성문 중 하나인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숭례문과 같이 2층 누각으로
평지에 세워진 탓에
유일하게 성문 보호용 옹성(甕城)이 있습니다.
한양의 내사산 중 낙산이 가장 낮아 동쪽의 기운이 역부족~
산줄기를 뜻하는 지(之)자를 이름에 넣어
땅의 기운을 북돋아 '흥인지문'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도성의 성벽길이 예전에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었겠지요.
보현봉에서 백운대 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앞으로 가야할 북악산, 뒤로 북악 팔각정까지 보입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역명들도 재밌어요.
지금 보이는 건물들 있는 곳은 성의 북쪽에 있어서 성북구~
성 안쪽 궁 주위로는 종로구.
종로(鐘路)는 조선시대 도성 역할을 위해 계획된 도시로
광화문 일대부터 동대문 일대
저녁10시, 종루에 있는 종이 울리면 통행금지
새벽 4시, 종이 울리면 통행금지 해제
종루는 동서대로와 남북대로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뒤
종루십자가, 종로네거리, 종로
이 종루를 중심으로 상업이 번창하였고,
육의전(정부로부터 특권이 부여된 시전 중 6개의 큰시전)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진다는 ‘운종가(雲從街)’
종로 이름은 처음 이렇게 시작되었네요.
낙산공원 조망터에서 바라본
'불수사도북'으로 더 우리에게 친근한
수락산과 불암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낙산(駱山)은 낙타산(駱駝山)이라고 했는데
산 모양이 낙타 등처럼 볼록 솟아서 그리 불렀대요.
산이 낮아서 가족단위, 연인들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구나~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멋진 공원과 산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마스크 빼고 걷고 싶어요.
서로의 방긋 웃는 얼굴들 오며가며 마주보고 싶어요.
무너지고 복구하고,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서~ 있었을
돌 하나하나가 모두 대견합니다.
꽃보다 더 눈에 먼저 들어와요^^
15C 세종 때 재정비하며 쌓은 돌 같네요^^
역사 학자도 아닌데 보이는 거 같아요~ 시대가.
성벽에 고이 내려앉은 세월의 묵직함.
그러고보면 돌 하나까지도 나이들지 않는 것은 없었네요.
얼마나 아름답고 곱게 나이 드느냐...
누구 앞에서고 부끄럼없이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여기 각자성석은 영동분이 와서 작업하신 거네요^^
이 각자성석은 충청도 음성현(충북 음성군)에서 온 백성이 공사 담당
세종 때는 성벽을 쌓은 지방의 이름을 새겨 두었다가
성벽이 무너지면 서울로 다시 올라와 쌓게 했다고 ㅠㅠ
각자성석이란 거...
어쩐지 족쇄 같은 느낌??이었네요.
충청도 지명이 보이니 반가워서 두 눈이 반짝반짝.
근처에 어디 논산, 은진현?? 글씨는 없나??
사소문 중 하나인 동소문(동북쪽) 혜화문(惠化門)
처음엔 '홍화문(弘化門)'으로 불리다가
창경궁 동쪽 문과 이름이 같아서
중종 때 '혜화문'으로 이름 바꿨대요.
한성에서 북쪽 지역이었던
의정부나 포천으로 가는 통로였던 작은 문.
도성길 중 혜화문~경신중고 약 700m 구간은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오랜세월 담장으로 가려져 텃밭으로 사용되었었대요.
도성을 쌓았던 돌이 지금은
어느 학교의 담벼락이 되어 있기도 하고.
이런 모습으로 서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의외의 모습들도 이렇게 마주하며 걸어갑니다.
성북동...
성북동하면 '성북동 비둘기'만 생각나는데...
덕분에 시 한번 찾아 읽어보니 새롭네요.
성북동에서 그룹별로 돈까스 모이 먹고 가실께요.
멀리 지방에서 손님들 왔다고 수도권지부에서 몽땅~ 계산~
거덜나겠어유~ 괜찮으려나?
조선 시대 순성 놀이 즐기시던 양반님네들도
이쯤에서는 탁배기 한 잔씩 걸치고 갔을 듯 합니다.
식사도 했겠다~
이제 부지런히 북악산으로 올라봐야겠죠.
꽃피는 봄 성곽길 걷는 것은 그저 축복이네요.
북악팔각정과 성북동 지역~
흰구름 둥둥 파란 하늘
서울 하늘이 이렇게나 맑은날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진짜 날 잘 잡아서 왔습니다.
아니, 우리가 와서 날이 이렇게 좋은 걸까요?
성곽을 쌓고 성벽 안팎으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길도 만들었었대요.
성 안으로 산보 갈꺼나~ 성 밖으로 순성 갈꺼나~
우와~ 세상에 돌을 어찌 이리 작은틈까지
다듬어서 맞췄을까요.
이거 만들어 끼운 사람 대단한 장인일 듯.
19C 순조 때에 와서야 이런 정교한 기술이 성벽에서 보여지고.
제비가 오는 시기와 꽃의 개화 시기가 비슷해서 제비꽃이라 했을까
제비꽃이 성곽 아래 요로코롬 이쁘게~
성곽 아래층에는 백성들을 닮은 듯한 들꽃이며 풀들이~
성곽 저 윗층에는 참새가 날아 들더니
구멍이 있었나봐요. 쏘옥~ 들어가버리고는 안나와요.
조선의 성곽을 사랑하는 것이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네요.
아~ 간간히 느껴지는 이 공기, 바람.
사람 없을 때는 마스크도 살짝살짝 벗어가며
잠시씩 호흡하며 누리는 거지만... 그것도 얼마나 좋은지...
조망터 잠시 내려서서 조망도 즐기고.
지금은 나무 계단이 잘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지...
도성 안이구요.
현대식 건물 사이로 숨은 건물, 보물 찾듯 찾아봅니다.
아~ 저 수많은 건물들,
참 빼곡하기도 한 게 숲과 어쩐지 닮아있습니다.
빌딩숲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
대문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소문 느낌이 더 나네요.
사람들이 출입하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에 하나씩 두는 4대문의 형식상 지어진 것으로
평소에는 닫아두고 잘 사용하지 않았고, 비상시에 개방~
그래도 사대문 중 하나인데 통과는 해봐야겠죠.
이곳에는 문턱도 있네요.
원래 인의예지신~
북쪽문 '지(智)'를 기르는 ‘숙지문’으로 정하기로 했지만
지혜를 뜻하는 ‘지(智)’ 자 대신 ‘정(靖)’ 자를 쓰고
‘꾀하다’라 하여, 지혜 대신 살짝 비틀어 지었다고도 하고
숙지문으로 하면 백성이 똑똑해져서 다스리기 힘들기 때문에
지레짐작으로 숙청문, 숙정문이라 하였다고 전하네요.
이게 진짜였다면 나랏님들 진짜 어이없음ㅠㅠ
저 멋진 나무를 살린다고는 했는데....
ㅠㅠ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를 피해서 건물을 지었어야 했을 듯.
이 구간이 저 나무로 훤히 밝혀질 수 있었거늘~
아름다움이 가려져 반토막 나버렸네요.
북악산 조망터에서 북한산 조망도 좀 해 보고...
청운대에서 잘생긴 소나무와도 잠깐 인사~
1.21사태로 통제 되었었다던 구간
이 나무는 총을 저렇게 많이 맞고도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
북한군의 공중 위협으로부터 청와대를 방호하기 위해
1979.10.15.일부터 북악통제대 및 발칸진지를 설치 운용한 자리로
2000년 9월 9일 다른 곳으로 이전. 옛 모습으로 복원~
평지에 성터 구축하는 거야 할만 할 거 같은데
이렇게 급경사 산 위 비탈에까지
그 큰 돌덩이를 어찌 날랐으며
작업하러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릴거 같은데.
우리같이 순성 즐기는 사람들이야
주위 풍경들도 눈에 들어오고 그러겠지만
일하러 왔던 백성들은 그저 생지옥 고생길로만 보였겠지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래 평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엄청 부러웠을 듯.
산수동님, 페가소스 언니 따라 쫄쫄쫄쫄 내려가다가는...
잠시 멈춰서서 우리 클럽 분들 내려오시는 모습 담아봅니다.
음~ 좋아요.
이렇게 한~이쁨하는 하늘 구름
지방에서도 만나보기 힘들어요!~
봄의 전령이 서울 성벽 곁에서 조화를 제대로 부리네요.
그저 신이 날 수 밖에 없는 발걸음~
이 성곽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침탈은 막아내지 못했지만
코로나는 막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하나 가져보며.
표찰 반납 후 나오며...
시원한 얼음 동동 음료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주절주절~
아~ 먹고 싶다~ 원츄~~
제 말이 초고속으로 들렸던 걸까요? 어라??
저 검정봉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수도권지부 따봉~엄지 척. 수도권!!
아~ 설레임~
아이스크림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요.
다들 완전 두 눈 속에 하트 뿅뿅~ 신났습니다.
손님 접대 너무 딱 맞춤으로 하는
우리 골짝총무님 사랑합니다^^
한땀한땀 직접 만든 발토시 선물도 오며가며 이쁘게 잘 쓸께요.
북소문인 창의문(彰義門)은 도성의 서북 방향 관문
현재 서울 도성의 4소문 가운데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문으로,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불립니다.
'자하'라는 이름 너무 이쁘죠?
왜 자하일까 궁금했었는데... 찾고 또 찾아보니.
백운동이라 불렸던 이 지역
이곳이 골이 깊고 아름다워서 선경에 비유되어지며
"개성의 자하동 같구나~"
개성에서 온 어느 문객의 입을 통해 처음 그렇게 불렸었겠지요.
개성(松京)의 북쪽 성문 아래 동네에
'자하동'이라고 있었대요.
북문 성문 아랫 마을~
개성의 자하동이-->한양의 자하동으로^^
'자하'라는 이름이 예쁘니
좀 딱딱한 듯한 이름의 창의문 보다
자연스레 자핫골 자하동 자하문이라고
어쩌면 더 많이 불렸을 듯 싶어요.
저도 자하문이라 부르고 싶으니... '자하' 좋아요.
북악산이 든든하게 북쪽의 병풍이 되어 자리하고~
이번에는 뭘 보느라 이리 계실꼬!!
해태상이며, 문인상 무인상 등
전통적인 돌로 다듬어 세워둔 예술품들~
야외의 작은 박물관같아요. 멋지네요.
나무 사이로 경복궁 궁궐의 모습이 보이며...
조선의 5대궁으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경운궁)
언젠가 궁 순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집니다.
종묘와 사직까지 넣어서~ 재밌겠다^^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져
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부부소나무인 연리지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하여
살아나도록 도와준다고 해요. 놀랍지요.
토닥토닥
서로 사랑하며 지켜주며
백년만년 오래도록 해로하렴~
크고 높은 으리으리한 빌딩 숲
앞쪽에 건물이 비교적 없는 공간 보이시죠?
조선의 경복궁이 자리한 곳.
근데 제 눈에는 왜 저 큰 건물들이 낮고 작은 궁을 향해
예를 갖추고 서서 절하려는 듯 보일까요?
마땅히 그리해야 할 거 같아요.
기차바위 능선과 뒤로
족두리봉, 비봉, 우뚝 솟은 보현봉 능선~
J3 사람들과 일반 등객들 구분하는 방법~
정상석에서 줄서서 절대 기다리며 찍는 법 없어요.
언제 기다리노~~~
요리조리 알아서 잽싸게~
줄 안선~ 클럽분들 세 분 보이네요. ㅎㅎㅎ
산수동님 저 오는 거 보더니...부처님 찾아보래요.
처음 봤을 때 저는
부처님 한 분 누워계시는 듯 그렇게만 보이더라고요.
다음 주에 다시 가서 보니 앉아 계신 부처님 한 분.
보입니다. 이제는 아주 잘~~
^^
수도권지부 소속 우리 세이님께서 두 손 무겁게
클럽분들께 간식 드릴라꼬 달려오셨어요.
사람들 열심히 먹고 마시는 동안 저는 잠시 외도~
바로 옆의 홍난파 가옥 둘러보고 옵니다.
첫솜씨로 만든 이 적은 노래책을
조선의 어린이들께 드리나이다
"고향의 봄" 하면
지난번 마창진 천주산~
창원이 고향이라던 이원수님의 작사에
홍난파 작곡...
목멱산(남산)이 내집 앞 산이요.
한강이 내집 앞 물인데
이집 이산 이강을 떠메고 가지 못할바엔
나는 서울서 화토(化土)하고 말겠다던 ~
홍난파님
널따란 나무데크에 제각각 멀찍이 흩어져 앉아서
순서대로 한명씩 나와 자기소개하기~
오늘 처음 뵙는 분들도 있으니 이런 자리 좋아요~
시골서 온 사람들 사대문 도장 모두 받으면 배지 준다는 말에
열심히 도성길 걸었네요.
배지 받은 기념 인증 잠시 합니다.
얼렐레?? 근디 사진 속에는 어째
시골분들은 다들 도망가고
수도권지부 분들이 더 많은겨??
정동네거리에서 돈의문 어플 실행하면...
가상 현실 세계로 순간 이동~ 짠.
서대문인 돈의문(敦義門)
일제가 1915년 도로를 확장한다며 헐어버렸네요.
4대문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가상으로 만나봅니다.
휴대폰 화면에 사대문인 돈의문과 성이 나오니
어플 실행 될 걸 알면서도 진짜 신기했어요.
나중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어플 받아서 꼭 해보세요.
오늘 한양도성길의 최후의 만찬 되시겠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얼굴 뵌 것만으로도
너무 귀하고 좋은 시간이었구요.
후기에 종종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닉네임은
조금 익숙하니 한 번 더 고개들어 보아지게 되더라고요.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송림 지부장님과 골짝 총무님 그외 수도권 지부 분들
오늘 하루 봉사라면 봉사,
정말 종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살림 거덜나면 연락하이소~
제 작으마한 봉투도 그땐 열어 보태보겠습니다.
^^ 그 어여쁜 마음들 고이 담아 갑니다.
돈 한 푼 아니 쓰고~
귀족 순성 놀이 잘~ 즐기다 가요.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걷자던 산수동님은
어델 가고 아니 보이시고.
홍길동처럼 보였다 안보였다 막~~ 그러셨네요.
워낙 잽싼 분이시라.
소의문 터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고 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작은 설명과 함께 있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사소문 중 하나인데...
이곳도 동남쪽의 광희문과 같이 시체가 나가던 문이였대요.
여긴 서남쪽 서소문, 소의문이라 불린 문.
터만 쓸쓸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소문 밖으로 참형터도 있었다고 하니 시구문에 참형터라~
이 문으로 다닐때는 움찔 하기도 했을 듯.
처음 시작지인 숭례문으로 향하는
높은 빌딩의 얕은 담벼락에서도
그 옛날의 파편인 성곽 돌을 마주하네요.
순탄하게 이번 여정은 마무리 되어지고.
한양도성길처럼 어떤 역사적 장소에 가려면
정보 없이는 볼 수 있는 것들도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하나를 알면 하나를 보고
둘을 알면 둘을 볼 수 있겠지요.
첫 걸음에서는 그래서 부족함을 느꼈었고
두 번째 걸음을 하면서는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처음보다 많아졌더라고요.
목소리 흥분 격앙되어 설명도 해주면서...
처음의 시작은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한양도성길이었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그 길이
너무도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저 하늘에서 순성 즐기는
이런 우리들 모습 보고 있다면
이 성벽이 비록 적들을 막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구나
고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알아주길 바랍니다.
도성길 중간에 만났던
윤동주님의 시 한편 다시 만나보며 후기 마무리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서시, 尹東柱_
물 흐르듯 외워지는 윤동주님의 시
어쩐지 만나보진 못했지만
심성이 고울 것 같은 분.
힘든 시대에 태어나 다들 죽어라~죽어라~
애 많이들 쓰셨다~
고생 많으셨다~ 감사하다~
빈 하늘에 편지 한통 미소와 함께 날려봅니다.
♡ I love Hanyangdoseong so much ♡
아래 자료는 참고하시라고 첨부해 봅니다.
|
첫댓글 복습까지하시면서 열정적으로배우려는자세가 보기좋았습니다
여러번을 걸어도 몰랐던 것들도 새롭게 배우고갑니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이번에 처음 뵌 분들 중 아론님~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클럽 회원분들을 위한 먹거리 배낭에 걸머지고~
덕분에 웃음꽃 가득 머물던 순성길~
저는 너무 늦는 바람에 ㅠㅠ
먹거리 다 정리된 뒤였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따뜻하게 전해졌답니다.
아론님 늘 후기 댓글 달아주셔서 언젠가 한 번 뵙겠지 했었는데...
그래서 더욱 반가웠었습니다.
손님 접대 잘 해주셔서 감사했어용^^
이번 강남16산하면서 산수동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그 불기운을 막고자 세운 해태상이 광화문과 석수역 가는길에 하나해서 2개가 세워졌다 하던데 완전히 불기운을 막긴 어렵나 보네요
그날은 그냥 걷기만 했고
공부는 깽이님 후기로 하게 되네요~~^^
^^ 골짝님은 어쩜 그렇게 늘 뵈도
얼굴에 미소가 머물러 있을까 싶어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업~ 되는 골짝총무님.
수도권지부의 보물이십니다.
^^ 국공길 가신다니~ 응원 드립니다.
늘 당당하고 올곧은 그 모습~ 멋지세요. 짱짱~ 골짝님 포에버~
새롭게 국사공부 잘했습니다
하나의 후기를 작성하기위해 많은 노고가
필요한 깽샘의 후기 오늘도
감명깊게 잘보았습니다
날이 더워지네요
늘 건강하시고 담 후기
기다려 봅니다
애쓰셨어요 ^^
동이님 안녕하세요.
언젠가 동이님 만나 뵈어도 무지 반가울 거 같아요.
후기 댓글로 자주 만나다 보니 이미 잘 아는 사람인 듯도 하고요.
이번주 또 어딘가 다녀와서 후기 남깁니당^^
가고 싶고 보고 싶었던 산길^^
주말 잘 보내세용. 동이님~
보고 읽고나면 뭔가 남는 산행후기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후기에 대한 개념이 전과 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그냥 별 생각없이
제 멋대로 다녀온 후기 썼었는데...
뭔가 남아서... 후에도 누군가 찾아주는 그런 후기~
그런 글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요.
그냥 어디 갔다 온 거, 한 번 쓱~ 읽고 말~
그런 후기보다는 좀 더 쓸모 있는 글로...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감사합니다. 오케이님
역사책을 보고 갑니다.ㅎ
^^ 넵. 하이츠님~ ㅎ
가까이 살면서도 모르던걸 후기보고 배우네요 후기로만 보다가 직접보니 더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멋진걸음에 후기까지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상 참 좋으셨던 화성인님..
조용한 듯... 그렇지만 존재감 기억에 남는...
^^
많은 분들 얼굴 뵙고 꽤나 즐거운 하루였었네요.
담에 또 기회되면 뵈어요.
가고싶다는 생각이 막 듭니다!
잘보고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영스님.. 진짜 막~ 가고 싶고 그러십니까?
우리 영스님...
늘 감사드리구요.
조만간 산에서 보입시데이. 영차영차~
걸으며 듣고 보고 또 찾아보고 수고 하셨어요
역사공부도하고 회원분들도 뵙고 의미 깊었던 하루가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논산 가면 삐삐 칠게요ㅋ
평상시에는 대전 출퇴근하니.. 논산에는 없고요^^
논산 오신다면 삐삐 항시 대기하겠습니당.
ㅋㅋ
랑탕님 일 있으셔서 뵙지는 못했지만 본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하며...
또 좋은 날에 뵐 기회 오겠지요.
목소리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많이 많이 감사했구요.
놓친 부분을 채우러 다시 방문하는 그 열정은
아무나 못하는 행동이지요.
암튼 대단해요~ ㅎㅎ
그 덕분에 알찬 내용 공유해서 감사해요~
함께한 하루 즐거웠구요.
정성스런 후기 잘보고 갑니다.
놓친 부분을 채우러 다시 방문한건 아니구요...
원래 두 주 연속으로 한양도성길이 잡혔었어요.
지인들이 한 주 늦게 일정을 잡으셔서...
그러면 또 가면 되지요 하며 쫄래쫄래~ 붙어서 간 거 였거든요.
덕분에 한 주 한 주 양방향으로 도성길 걸어서 좋았습니다.
두건님 저도 모두모두 함께해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당^^
@Jiri-깽이(신은경) 아~ 그런거였군요~ㅎ
좋은 곳은 자주가도 좋죠~
지리산 처럼 ~ㅎㅎ
@두건(頭巾) 5월엔 지리 가야죠~~ 너무 오래 못가서...
문학소녀같은 깽이님~^^
요날 첨만남에 반가웠고~
예쁜게 산행하시는모습 짱입니다
담에 산행때 만나면
산행해 필요한 운동역학을 말씀드릴게요 ~^^
늘 ~
행산하시어요~**
유쾌하고 친절하신 산수동님
^^ 저도 만나뵈어서 엄청 반가웠구요.
또 만날 기회 기약하며...
즐겁게 가볍게 산행하시는 모습 보기 좋았습니당.
산수동님도 늘상~ 건강하게 행행행~산 하세용^^
똘똘한 깽님
한양 도성길 재미있으셨죠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반면에 조선 초기에 성 쌓는다고
지방에서 불려와 생고생 하셨던 민초들의 삶이 어땟는지 생각납니다
뭘 지키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
정작 지켜야 할때는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셨던 군왕들
정성들인 글 잘 보고 가요
띨띨한 깽님 아니구요?
방장님께 칭찬 들으니 으쌰으쌰~ 신납니당^^
늘상 지도편달~ 감사드려요.
한양 도성길 큰 걸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즐겁고 재밌었구요.
바쁘다보니 이런 저런 걸음도 함께 하지을 못하고 잠시잠시 짬내서 홀산만 하게 되내요
잘보고 갑니다
수고했어요
우리 맥가이버님~ 좋은 날 기해 곧 만나뵙게 되겠지요.
다들 코로나 땜시... 만나기도 어렵고...
맥가이버님 늘 건강하시고요. 안산 즐산~ 행산~
감사해요 맥가이버님~~ㅎㅎㅎ^^ 방긋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