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술 많이 먹지 마라” 하시던 아부지
1학년 가을 소풍에서 술맛을 본 후 이래 저래 술마실 기회가 종종 있었다.
1976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당시는 1973말 1974년 초에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막대한 석유대금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국내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불황과 실업으로 이어졌다. 국제수지가 악화되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 큰 경제적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당시 기숙하던 큰형집에는 주말마다 불황의 여파로 실업자가 되었거나 일용직으로 일거리가 없는 큰형이나 형수의 친인척을 비롯해 이런 저런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먹는 것 만큼은 인심이 너무도 후했던 부잣집 외동딸 출신의 큰 형수는 비록 보리와 콩이 잔뜩 섞인 잡곡밥이었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렸다. 뿐만 아니라 큰형은 재경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서 일요일이면 늘 삼겹살 구이에 소주를 대접하고 함께 즐겨 마시곤 했다. 큰형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애주가에 마시는 양도 두주불사였으며 또한 술에 관한 한 매우 관대한 편이었다. 소위 술은 어른 앞에서 배우는 것이라 하면서 한두잔 따라주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아주 서서히 맷집을 키워갔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자 나는 시골로 내려갔다. 지난 여름방학에 신작로에서 우리 동네에 이르는 길에는 전봇대를 세우고 집안에는 계량기와 전등이며 콘센트를 설치해놓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집안에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전기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밤을 환하게 밝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우선 TV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신작로길 하나를 두고 5년이나 먼저 전기가 들어온 아랫동네에는 남녀친구들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노는(?) 것에 대하여 그다지 뭐라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여전히 남녀칠세부동석의 사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아랫동네 여자애들은 옷입는 것도 나름 세련됐고 깔끔했지만 우리동네는 좀 꼬지지하다. 선입견? 절대 아니다. TV가 미치는 영향은 문화적 격차를 낳고, 문화적 격차는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지배한다. 전화가 가설되어 우체국가지 가지 않아도 격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그냥 피부로 느꼈던 경험으로부터 깨달은 내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다,
방학이 되자 전주나 익산(당시는 이리라고 했다) 등의 도회지로 진학한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전화가 왔다. 아랫동네로 와서 친구들과 놀자고 한다. 저녁을 드시고 작은방에 건너가 계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부지, 아랫말 양지뜸에 범수가 부르는디 댕기 올께요”
아버지는 기침을 한번 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오냐~~. 조심해서 댕기와라. 술 많이 먹지 말고”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버지는 분명 ‘술 마시지 마라’가 아닌 ‘술 많이 먹지 말고’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술은 좀 마실 수 있겠지만 많이 먹고 실수하거나 취하지는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내 나이 열입곱에 불과했지만 그 나이에는 술도 마실줄 알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애(예)~, 댕기올께요”
나는 깜깜한 겨울 밤길을 걷는 동안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겼다. 겨울방학내내 일주일에 두세번정도 이동네 저동네 돌아다니며 친구도 만나고 그후로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생활, 그리고 군대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술에 대하여는 남들에게는 매우 관대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내 친구들에게, 부하병사들에게, 후배들에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조차도 술에 관대한 편이었다. 누군가가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 주사부리고 다음 날 아침에 찾아와서 사과라도 할라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안심시켰다.
“야 이시캬~~ 술먹고 안그러면 언제 그러냐? 너 맨정신으로 그랬으면 나한테 맞아 죽었어 임마”
그리고 웃고 만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하여 많이 취하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나는 술에 취한 상태로 말이든 주먹이든 누구하고도 싸워 본적이 없다. 오히려 다투는 놈들 말리고, 집에 보내고 뒤치다거리를 도맡아 하다 시피 했다. 특히 아버지 앞에서는 술마신 티조차 내지 않았다.
적어도 젊은 날에는 그랬었다.
첫댓글 우리 어릴적 모습을 생생하게 잘 그려내고 있네.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지는 내겐 부러운 모습... 난 입사해서 술 못한다고 구박을 무척 많이 받았지요. '술 잘해야 일도 잘한다..!!'
때론 저도 술 못마시는 분이 많이 부럽습니다.
글맛이 납니다
술에 관한 글이라 더욱 그런가
학창시절 홍성기랑 강촌에 놀러 갔다가 젊은이들이 서로 패싸움을 하던 장면을 목격하고 싸움을 말리다가 한편이 순순히 따르지 않아서 혼을 내준 기억이 나네요
형님은 수틀리면 완력이 뒷받침 해주니까 가능하시겠습니다.
술마시고 쌈질하는 사람들 보면 참 추해보여요. 그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싸우다니.........
@harrison 지당지언 입니다
오늘 1편부터 여기까지 완독.
글 실력과 술 실력 으뜸.
그러니 술맛이 더 나네.
글 실력은 형님이 더 훌륭하십니다.
독자 한분 더 늘어 감사합니다. 최소 한 열명은 돼야 하는데 전에 열혈독자 장혜 선배님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