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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와 아빈냐(sati - abhiññ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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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근은 다르지만 문맥에 따라 '기억하다'('잊지 않는다.')로 번역하면 어색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sarati(sati), dhāreti(dhāraṇa-dhāta [dhata] - dharati), abhijānāti(abhiññ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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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는 기본적인 의미가 '기억'이고,
dhāraṇatā(dhārita)는 흔히 受持로 번역하는데 dhamma(法)와 어근이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bhiññā는 '앎'의 의미에 '잘-'이라는 접두어 붙어서 '잘 앎'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앎' 보다는 특별하고 수승한 앎인 것 같습니다.
<受持: 사전-
처음에 신력(信力)으로 받아들여 마음에 두는 것을 수(受)라하고,
끝에가서는 염력(念力)으로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을 지(持)라 함.
① 받아 지님. ②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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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21
"‘아난다여,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든다.’라고 세존의 앞에서 직접 듣고 세존의 앞에서 직접 배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올바로 듣고 올바로 파악하고 올바로 정신을 기울여 올바로 기억한 것입니까?”
Tattha me, bhante, bhagavato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
‘suññatāvihārenāhaṃ, ānanda, etarahi bahulaṃ viharāmī’ti.
Kacci metaṃ, bhante, sussutaṃ suggahitaṃ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nti?
"세존이시여, 거기서 저는 '아난다여,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라고
이렇게 세존으로부터 직접들었고 직접 배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것을
바르게 듣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고 바르게 기억하는 것입니까?"
S22:2 Paṇḍitā hāvuso, manussā vīmaṃsakā –
‘kiṃvādī panāyasmantānaṃ [kiṃvādāyasmantānaṃ (pī. ka.)] satthā kimakkhāyīti,
kacci vo āyasmantānaṃ dhammā sussutā suggahitā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yathā byākaramānā āyasmanto vuttavādino ceva bhagavato assatha,
na ca bhagavantaṃ abhūtena abbhācikkheyyātha, dhammassa cānudhammaṃ byākareyyātha,
na ca koci sahadhammiko vādānuvādo [vādānupāto (aṭṭhakathāyaṃ pāṭhantaraṃ)]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eyyā’’’ti?
A5:169 ‘‘Idhāvuso sāriputta, bhikkhu
atthakusalo ca hoti, dhammakusalo ca, byañjanakusalo ca, niruttikusalo ca, pubbāparakusalo ca.
Ettāvatā kho, āvuso sāriputta, bhikkhu khippanisanti ca hoti kusalesu dhammesu,
suggahitaggāhī ca, bahuñca gaṇhāti, gahitañcassa nappamussatī’’ti.
................이러한 비구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즉 기억합니다. = 正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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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서와 주석에서 sati의 의미를 설명할 때 정형적으로 나타나는 표현-
sati anussati paṭissati
sati saraṇatā dhāraṇatā apilāpanatā asammussanatā
sati satindriyaṃ satibalaṃ sammāsati
"마음챙김, 계속해서 마음챙김[隨念], 거듭해서 마음챙김,
마음챙김, 챙겨있음, 간직함, 떠나지 않음, 잊어버리지 않음,
마음챙김, 마음챙김의 기능, 마음챙김의 힘, 바른 마음챙김[正念]" <*초불 역> -에서 보듯이
sati와 dhāraṇatā는 동의어로도 볼 수 있으나 범주는 다른 것 같습니다.
<*apilāpana의 의미는 列擧(羅列). 본문 끝 부분 Miln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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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와 abhiññā는 직접 연결이 쉽지 않지만, 이 두 단어가 같이 나오는 경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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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M36
Na kho panāh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adhigacchām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그러나 나는 이 극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능가하는 성자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지와 견을 증득하지 못했다.
Siyā nu kho añño maggo bodhāyā" ti.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없을까?'라고."
Tassa mayhaṃ, aggivessana, etadahosi –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31. "악기웨사나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님이 삭까족의 [농경제의] 의식을 거행하실 때
시원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렀던 것을 기억한다. <*對面하여 앎. 아래 D34참조 - 아빈냐해야 할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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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yā nu kho eso maggo bodhāyā’ti?
그런데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 될까?'라고.
Tassa mayhaṃ, aggivessan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eseva maggo bodhāyā’ti.
악기웨사나여, 그런 나에게 그 기억을 따라서 이런 알음알이가 생겨났다. '이것은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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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65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adhigato kho myāyaṃ maggo bodhāya yadidaṃ –
5. "그때 수행승들이여,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깨달음의 길을 성취했다.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saḷ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pe…
명색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한다.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고,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며,
접촉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며,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i.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해서 소멸한다.
‘Nirodho, nirodho’ti kho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6. 그러자 수행승들이여, 소멸에 이은 소멸이라고 하는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앎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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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M36에서는 識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S12:65에서는 5果(眼, 智, 慧, 明, 光)에 대한 표현이 나타남.
識 ↔ 名色 互緣으로부터 苦蘊의 '集', 혹은 '滅'이라고 하는
예전에 他人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有學의 직접 경험한 앎 - 아빈냐abhiññ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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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M100참조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1) 연기(緣起)의 12支/10支- 집(集)-멸(滅) *S12:65, S12:4 ~ S12:10
2) 느낌(受)- 집(集)-멸(滅)-도(道)-味-患-離 *S36:25
3) 사념처(四念處)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S47:31
4) 사여의족(四如意足)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S51:9
5) 사성제(四聖諦)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S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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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pacchāpuresaññā suggahitā hoti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samādhi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kaṇhasukkasappatibhāgesu 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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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人에게서 들은 聞法
A4:22 bahussuto hoti sutadharo sutasannicayo,
ye te dhammā ādikalyāṇā majjhekalyāṇā pariyosānakalyāṇā
sātthaṃ sabyañjanaṃ [sātthā sabyañjanā (sī. pī.)] kevalaparipuṇṇaṃ [kevalaparipuṇṇā (sī.)]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abhivadanti,
tathārūpāssa dhammā bahussutā honti dhātā [dhatā (sī. syā. kaṃ. pī.)]
vacasā paricitā manasānupekkhitā,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
그는 많이 배우고[多聞] 배운 것을 바르게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나니,
이러한 법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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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聞法 dhammā sussutā suggahitā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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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옛적의 정등각자들이 다닌던 옛 길과 옛 도로를 보았다.
Evameva khvāhaṃ, bhikkhave, addasaṃ purāṇaṃ maggaṃ purāṇañjasaṃ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aṃ.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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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amo ca so, bhikkhave, purāṇamaggo purāṇañjaso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8.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전생에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생활,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Ayaṃ kho so, bhikkhave, purāṇamaggo purāṇañjaso pubbakehi sammāsambuddhehi anuyāto,
tamanugacchiṃ;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이다.
<*S56:11 전법륜경 참고>
tamanugacchanto jarāmaraṇ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nirodh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1)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따라가서 나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아빈냐> 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곧바로 알았다.
....
Tamanugacchiṃ; tamanugacchanto saṅkhāre abbhaññāsiṃ; saṅkhār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saṅkhāranirodhaṃ abbhaññāsi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11)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따라가서 나는
형성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형성의 발생<*무명>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형성의 소멸로 이끄는 길<*팔정도>에 대해 곧바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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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대표적인 아빈냐 S12:33
無明-行-~-生-老死(12) 老死란?, 老死의 集은? <生의 集>, 老死의 滅은? <生의 滅>, 滅道는? <8정도>.
.............................(11) 行이란?, 行의 集은? <無明의 集>, 行의 滅은? <無明의 滅>, 滅道는? <8정도>.
.............................(11) X 4 = 44智<아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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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iminā dhammena diṭṭhena viditena akālikena pattena pariyogāḷhena atītānāgatena yaṃ neti.
그가 보고[*見法=現法=自證 ←기억(사띠)] 분명하게 알고 시간이 걸리지 않게 얻고 간파한
이러한 법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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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ame ca, bhikkhave, saṅkhārā?
Tayome, bhikkhave, saṅkhārā – kāyasaṅkhāro, vacīsaṅkhāro, cittasaṅkhāroti.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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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jjā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avijjānirodhā saṅkhār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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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2:56 Yāvakīvañcāhaṃ, bhikkhave, ime pañcupādānakkhandhe catuparivaṭṭaṃ yathābhūtaṃ nābbhaññāsiṃ,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
katame ca, bhikkhave, saṅkhārā?
chayime, bhikkhave, cetanākāyā —
rūpasañcetanā, saddasañcetanā, gandhasañcetanā, rasasañcetanā, phoṭṭhabbasañcetanā, dhammasañcetanā.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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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ssa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phassanirodhā saṅkhār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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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取蘊) X 4(支, 集, 滅, 道) = 20아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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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2:79 <saṅkhāre .saṅkhārattāya .saṅkhatam abhisaṅkharonti ti
, , tasmā ‘ saṅkhārā ’ ti vuccati.
'상카라(行)' 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한다.
" '상카라(行)'를 '상카라(行)'이게끔
'상카라(行)'한(/된) 것을 잘(/또 다시) '상카라(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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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 라는 것은
5蘊(色~行)識을 5蘊(色~行)識이게끔
'상카라'한(/된) 것을 잘(/또 다시) '상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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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to kho, bhikkhave, ariyasāvakassa imāni dve ñāṇāni parisuddhāni honti pariyodātāni –
dhamme ñāṇañca anvaye ñāṇ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법에 대한 지혜와 수반하는 지혜라는
이러한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두 가지 지혜가 있다.
Ayaṃ vuccati, bhikkhave, ariyasāvako diṭṭhisampanno itipi, dassanasampanno itipi,
āgato imaṃ saddhammaṃ itipi, passati imaṃ saddhammaṃ itipi, sekkhena ñāṇena samannāgato itipi,
sekkhāya vijjāya samannāgato itipi, dhammasotaṃ samāpanno itipi, ariyo nibbedhikapañño itipi,
amatadvāraṃ āhacca tiṭṭhati itipīti.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견해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봄[見]을 구족했다고도 하고,
정법에 도달했다고도 하고, 정법을 보았다고도 하고, 유학의 지혜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유학의 명지를 구족했다고도 하고, 법의 흐름을 얻었다고도 하고,
성스러운 꿰뚫는 통찰지를 얻었다고도 하고, 불사(不死)의 문에 도달하여 머문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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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M71 ‘‘Atthi pana, bho gotama, koci ājīvako kāyassa bhedā saggūpago’’ti?
‘‘Ito kho so, vaccha, ekanavuto kappo [ito ko vaccha ekanavute kappe (ka.)] yamahaṃ anussarāmi,
nābhijānāmi kañci ājīvakaṃ saggūpagaṃ aññatra ekena; sopāsi kammavādī kiriyavādī’’ti.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아지와까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자가 있습니까?"
"왓차여, 내가 지금부터 구십한 겁을 회상해 보더라도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지와까로서 몸이 무너진 뒤에 천상에 태어난 것을 기억하지못한다.
그는 업의 교설을 따르고 [도덕적] 행위의 교설을 따르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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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7:28 ‘‘katamesaṃ, āvuso anuruddha, dhamm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ahābhiññataṃ [mahābhiññātaṃ (pī.)] patto’’ti? ....
‘‘Catunnaṃ, āvuso,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ahābhiññataṃ patto’’.
Imesañca kho pan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sahassaṃ lokaṃ abhijānāmī"ti.
"도반이여, 저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공부] 지었기 때문에
千의 세상을 神通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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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4念처의 사띠가 (마하)아빈냐로 전개됨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구문이 S52:6에도 나타나고 또한 S52:11에서는
‘‘Katamesaṃ āyasmā anuruddho dhamm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ahābhiññataṃ patto’’ti? ....
‘‘Catunnaṃ khvāhaṃ, āvuso,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ahābhiññataṃ patto.
imesaṃ khv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mahābhiññataṃ patto.
Imesañca pan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kappasahassaṃ anussarāmī’’ti.
四念處를 많이 修習해서 千劫을 隨念(나열하여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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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동일한 질문에 세계(loka)와 겁(kappa)이 다를 뿐
abhijānāmi와 anussarāmi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유사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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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念處에서 세계(loka)와 겁(kappa)에 대한 隨念의 전개,
또한 아래 M119에서
身至念kāyagatāsati에서 <(第)4禪에 이은> 6신통abhiññā의 전개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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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많이 알려진(abhiññātā abhiññātā) 숙주명(宿住明/宿命通)도
Pubbenivāso, bhikkhave, satiyā sacchikaraṇīyo.
사띠<* =아빈냐>로 실현<*증득>되는 법으로 나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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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숙명통을 포함한 6가지 아빈냐(cha abhiññā)를 6신통이라고 하는데
이 6아빈냐(chaḷabhiññā)도 아빈냐에 의해서 실현 즉 증득된다고 합니다.
D34 Cha abhiññā – Ime cha dhammā sacchikātabbā.
"여섯 가지 초월지(신통지, 六神通) - 이 여섯 가지 법을 실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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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아빈냐해야 할 법들과 II.아빈냐로 할 수 있는 법들에 대한 내용은 D34에 많이 나타나며,
아빈냐를 위한 과정이 正念[4念處, 身至念]수행이고 그 과정의 중심은 正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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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8支聖道. <→ 8위빳사나智(의 마지막 6→), 6神通(의 마지막 3→), 3明>
혹은 A5:68 ussoḷhiññeva pañcamiṃ분발을 다섯 번째로 하는 4(욕,정진.심,검증)여의족iddhipāda → 6신통
S51:20 擇法-
vīmaṃsā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
‘iti me vīmaṃsā na ca atilīnā bhavissati, na ca atippaggahitā bhavissati,
na ca ajjhattaṃ saṃkhittā bhavissati, na ca bahiddhā vikkhittā bhavissati’.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cf. pubbāparakusalo>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그는 '나의 탐구는 너무 나태하지도 앟고, 너무 성급하지도 않을 것이며,
안으로 침체되지도 않고, 밖으로 산란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탐구의 집중에 기반한 노력의 형성을 갖춘 신통의 기초를 닦는다.
그는 앞과 같이 뒤를, 뒤와 같이 앞을, 앞과 뒤를 한결같이 지각하고,
아래와 같이 위를, 위와 같이 아래를 한결 같이 관찰하고,
낮과 같이 밤을, 밤과 같이 낮을 한결같이 닦는다.
이와 같이 열린 마음으로 개방된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어 머무는 것이다.
Idha, bhikkhave, bhikkhuno
pacchāpuresaññā suggahitā hoti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수행승들이여, [278] 세상에 수행승은
앞과 같이 뒤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잘 파악하고, 잘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잘 조사하고, 지혜로 꿰뚫는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앞과 같이 뒤를, 뒤와 같이 앞을, 앞과 뒤를 한결같이 지각한다."
S52:3 Imesañca pan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hīnaṃ dhammaṃ hīnato abbhaññāsiṃ, majjhimaṃ dhammaṃ majjhimato abbhaññāsiṃ,
paṇītaṃ dhammaṃ paṇītato abbhaññāsi’’nti.
4. “도반들이여, 그리고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 지었기 때문에
저열한 법은 저열하다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중간의 법은 중간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수승한 법은 수승하다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擇法(빠린냐)을 아빈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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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묵 스님 주> S52:15~S52:24까지 如來十力으로 잘 알려진 내용을 담고 있다.]
S52:16 ‘‘Imesañca pan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 yathābhūtaṃ pajānāmī’’ti.
“도반들이여, 그리고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행한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과 함께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S52:17 ‘‘Imesañca panāhaṃ, āvuso, 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 bhāvitattā bahulīkatattā
sabbatthagāminippaṭipadaṃ yathābhūtaṃ pajānāmī’’ti.
“도반들이여, 그리고 나는 이러한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모든 행처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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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49 ‘‘Tassa evaṃ imaṃ ariyaṃ aṭṭhaṅgikaṃ maggaṃ bhāvayato
cattāropi satipaṭṭhānā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cattāropi sammappadhānā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cattāropi iddhipādā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pañcapi indriyāni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pañcapi balāni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sattapi bojjhaṅgā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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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두 가지 법, 즉 멈춤과 통찰이 함께 수반한다.
‘Tassime dve dhammā yuganandhā [yuganaddhā (sī. syā. kaṃ.)] vattanti –
samatho ca vipassanā ca.
그에게 사마타와 위빳사나라는 이 두 가지 법이 조화롭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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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ye dhammā abhiññā pariññeyyā te dhamme abhiññā parijānāti.
Ye dhammā abhiññā pahātabbā te dhamme abhiññā pajahati.
Ye dhammā abhiññā bhāvetabbā te dhamme abhiññā bhāveti.
Ye dhammā abhiññā sacchikātabbā te dhamme abhiññā sacchikaroti.
이른바 아빈냐에 의한 빠린냐(智-斷-修-證)
<*5蘊-65法 abhijānaṃ parijānaṃ virājayaṃ pajahaṃ bhabbo dukkhakkhay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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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57/A4:232 ‘‘Cattārimāni, puṇṇa, kammāni may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itāni. Katamāni cattāri?
"뿐나여, 나는 이들 네 가지 업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아 실현하여 드러낸다. 무엇이 넷인가?
Atthi, puṇṇa, kammaṃ kaṇhaṃ kaṇhavipākaṃ;
atthi, puṇṇa, kammaṃ sukkaṃ sukkavipākaṃ;
atthi, puṇṇa, kammaṃ kaṇhasukkaṃ kaṇhasukkavipākaṃ;
atthi, puṇṇa, kammaṃ akaṇhaṃ asukkaṃ akaṇhaasukkavipākaṃ,
kammakkhayāya saṃvattati.
뿐나여, 어두운 과보를 가져오는 어두운 업이 있다.
뿐나여,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밝은 업이 있다.
뿐나여, 어둡고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어둡고 밝은 업이 있다.
뿐나여, 어두운 과보도 밝은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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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mi
내가 "직접 경험한 앎에 근거하여 (보고서) 말한다." - 이 문장이 나오면 이후의 내용은
話者가 과거-刹那 前이라도-에 경험했던 것을 (기억<正念>이 나서) 말하는 것으로 經驗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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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표현은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아래 참조)
* Taṃ kho panāhaṃ bhikkhave nāññassa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sutvā vadāmi.
수행승들이여, 나는 다른 수행자나 바라문으로부터 그것에 대하여 들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Api ca bhikkhave yadev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āhaṃ vadāmi.
수행승들이여,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인지한 것을 나는 말하는 것이다.
다만 범부들의 일상적인 경험담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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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danuttara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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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 ca panāyasmanto sāmaññatthañca brahmaññatth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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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 imañca lokaṃ parañca lo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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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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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evamāha – ‘ethāyaṃ maggo ay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o
ahaṃ anuttaraṃ brahmacariyogadh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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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185
‘모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그는 생명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위해서 도를 닦는다.
‘모든 감각적 욕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 -그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 -그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그는 존재들을 염오하고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다.”
‘nāhaṃ kvacani [kvacana (sī. syā.)] kassaci kiñcanatasmiṃ na ca mama kvacani katthaci kiñcanatatthī’ti.
Iti vadaṃ brāhmaṇo saccaṃ āha, no musā.
So tena na samaṇoti maññati, na brāhmaṇoti maññati,
na seyyohamasmīti maññati, na sadisohamasmīti maññati, na hīnohamasmīti maññati.
Api ca yadeva tattha saccaṃ tadabhiññāya ākiñcaññaṃyeva paṭipadaṃ paṭipanno hoti.
‘나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결코 속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 있어서든 내 것은 결코 없다.’
...그러한 진리를 최상의 지혜로 안 뒤 그는 무소유의 도를 닦는다.
Imāni kho, paribbājakā, cattāri brāhmaṇasaccāni may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itānī’’ti.
유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바라문의 진리를 나는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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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빈냐로 가는 과정으로서 <~제4禪-種種界-止觀>, 法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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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7: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들 여섯 가지 경우에 대한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면 그의 마음은 출리(出離)로 기울고,
출리를 철저히 닦은 마음은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해야 하는 법들에 적합하게 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에서 마음의 오염을 버리면, 그의 마음은 여읨을 향한다.
마음의 여읨으로 무장되면 곧바른 앎으로 깨달아야 할 것들에 관해 다루기 쉽게 된다."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imesu chasu ṭhānesu cetaso upakkileso pahīno hoti,
nekkhammaninnañcassa cittaṃ hoti.
Nekkhammaparibhāvitaṃ cittaṃ kammaniyaṃ khāyati, abhiññā sacchikaraṇīyesu dhammesū’’ti. 에서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러한 6666666665ṭhānesu]에 대한
心에 수반하는 오염<欲貪(chanda-rāga)>이 제거 되어가면
心은 出離로 향하고 기울고, 그렇게 반복학습하다 보면
아빈냐로 증득할 법들에 적합한 心상태가 된다.
[6666666665ṭhānesu = 본 경에 나오는 여러 항목들(法들= 內入~5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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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5:80 ‘‘Idha, bhikkhu, bhikkhuno sutaṃ hoti – ‘sabbe dhammā nālaṃ abhinivesāyā’ti.
Evañcetaṃ, bhikkhu, bhikkhuno sutaṃ hoti – ‘sabbe dhammā nālaṃ abhinivesāyā’ti.
So sabbaṃ dhammaṃ abhijānāti, sabbaṃ dhammaṃ abhiññāya sabbaṃ dhammaṃ parijānāti,
sabbaṃ dhammaṃ pariññāya sabbanimittāni aññato pass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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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ṃ aññato passati, dhamme… manoviññāṇaṃ… manosamphassaṃ…
yampidaṃ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aññato passati.
<* 聞法(他人으로 부터 들은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
자신이 對面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앎(아빈냐- 1.법의 특징, 2.그 원인과 3.그 결과에 대한 앎)
이에 따른 그 모든 법들에 대한 擇法(수승/저열, 흑/백)하는 빠린냐(앎).
그 결과
6 X 5 법들의 니밋따들을 (이전과) 달리 본다. 혹은 他(para - 非我, 外~)로 본다. (혹은 法으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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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5:87/M144 Cakkhusmiṃ, āvuso sāriputta, cakkhuviññāṇe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눈이나 눈의 알음알이나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에 대해
nirodhaṃ disvā nirodhaṃ abhiññāya
소멸을 보고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cakkhuṃ cakkhu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āmi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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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득하는 과정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이 止觀, 'cittaṃ abhininnāmeti' 혹은 'sati satiāyat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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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5-15 1119. Viññāṇaṭṭhitiyo sabbā (posālo ti bhagavā)
Abhijānaṃ tathāgato
Tiṭṭhantamenaṃ jānāti vimuttaṃ tapparāyaṇaṃ. <*adhimuttaṃ tapparāyaṇaṃ.>
3. “뽀살라여, 모든 의식이 머무는 곳을 잘 아시는 이렇게 오신 님은,
그러한 님이 존재하는 것도 잘 알고,
해탈된 것도, 그렇게 정해진 것도 잘 압니다.
<*뽀살라여, 모든 識住를 (기억이 나서 아는 =) 아빈냐하는 如來는
(식)住-경향(信解: 界에 대한adhimutta)이 어떻게 전개(parāyaṇa)되는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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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處)도 생겨난 것임을 알고서, 환희가 결박임을.
이와 같이 아빈냐에 의하여 그것을 위빳사나한다면 ....
**정확한 번역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흔히들 사띠를 '위빳사나'로 알고 계시는 분들 혹은 '알아차림'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은
아마 사띠(반야의 도움을 받은 '기억') - 아빈냐 - (止)觀의 흐름을, 사띠-위빳사나로 바로 연결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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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Ākiñcaññā sambhavaṃ ñatvā
nandi saṃyojanaṃ iti,
Evametaṃ abhiññāya
tato tattha vipassati:
Etaṃ ñāṇaṃ tathaṃ tassa brāhmaṇassa vusimatoti.
4.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경지가 생겨나는 것을 알고 나서,
‘그것에 대한 환희는 속박이다.’라고
이와 같이 그것을 곧바로 알아서,
그것을 뛰어넘어 통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완성에 도달한 거룩한 님의 참다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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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3참조 [유학의 智와 明 - 止觀(-종종界) - 6신통]
M119
“수행승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새김을 닦고 익히고
그 때 곧바른 앎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상태를 곧바로 알아 깨닫기 위해 마음을 기울이면,
그 때마다 각각의 감각영역에서 깨달음을 증험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Yassa kassaci, bhikkhave, kāyagatāsati bhāvitā bahulīkatā,
so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 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ta tatre]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한 사람은>
신통지로 실현시킬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신통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우리면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 → 6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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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적인 표현은
Yassa yassa ca abhiññā 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 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念處가 있으면 혹은 處에 대한 念이 있으면 아빈냐로 실현할 수 있다.
念處satiāyatane가 있을 때s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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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
samāhite - āneñjappatte 대표적인 경우가 捨念淸淨의 제4禪 상태에서 ~로 心을 기우리면)
M54 anuttar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āgamma <*→ 3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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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정형구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活潑潑)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러한 삼매상태에서>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vipassanāñāṇ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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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54.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
‘‘So sace ākaṅkhati –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ti.
.
M6 ‘‘Ākaṅkheyya ce, bhikkhave, bhikkhu –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sīlesvevassa paripūrakārī ajjhattaṃ cetosamathamanuyutto
anirākatajjhāno vipassanāya samannāgato brūhetā suññāgārānaṃ.
1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기를[漏盡通].'하고 원한다면,
그는 계를 원만히 하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전념하며
선(禪)을 경시하지 않고 위빳사나[觀]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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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處에 대한 念(sati āyatane)이 있어도(sati) 아빈냐로 증득을 실현할 수 없는 경우
열반 경(A4:179) 9. Nibbānasuttaṃ
179.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āyasmā sāriputt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tā sāriputtena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āyasmantaṃ sāriputtaṃ etadavoca –
1. 그때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리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ko nu kho, āvuso sāriputta,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diṭṭheva dhamme na parinibbāyantī’’ti?
“도반 사리뿟따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하지 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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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hāvuso ānanda, sattā
imā hān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imā ṭhiti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imā vises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imā nibbedh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도반 아난다여, 중생들은
‘이것은 퇴보에 빠진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정체에 빠진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수승함에 동참하는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꿰뚫음에 동참하는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Ayaṃ kho, āvuso ānanda,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diṭṭheva dhamme na parinibbāyantī’’ti.
도반 아난다여, 이러한 이유와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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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panāvuso sāriputta,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antī’’ti?
2. “도반 사리뿟따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합니까?”
‘‘Idhāvuso ānanda, sattā
imā hān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imā ṭhiti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imā vises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imā nibbedhabhāgiy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pajānanti.
“도반 아난다여, 중생들은
‘이것은 퇴보에 빠진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은 정체에 빠진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은 수승함에 동참하는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은 꿰뚫음에 동참하는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kho, āvuso ānanda,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antī’’ti.
도반 아난다여, 이러한 이유와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합니다.”
Navam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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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63 ‘‘Yato kho, bhikkhave, ariyasāvako evaṃ dukkhaṃ pajānāti,
evaṃ dukkhassa nidānasambhavaṃ pajānāti,
evaṃ dukkhassa vemattataṃ pajānāti,
evaṃ dukkhassa vipākaṃ pajānāti,
evaṃ dukkhanirodhaṃ pajānāti,
evaṃ dukkh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pajānāti,
so imaṃ nibbedhikaṃ brahmacariyaṃ pajānāti dukkhanirodhaṃ.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괴로움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원인과 근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차이점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과보를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그들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 때
그는 이 꿰뚫는 청정범행이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꿰뚫어 안다.
.........
‘‘Ayaṃ kho so, bhikkhave, nibbedhikapariyāyo dhammapariyāyo’’ti.
비구들이여, 이것이 꿰뚫음의 방법에 대한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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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하는 능력 경(A6:71) 7. Sakkhibhabbasuttaṃ
71. ‘‘Ch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abhabbo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ituṃ
sati sati āyatane.
Katamehi chahi?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그런 원인이 있을 때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지 못한다. <*處에 대한 念이 있더라도 증득할 수 없다.>
무엇이 여섯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ime hān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ime ṭhiti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ime vises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ime nibbedh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sakkaccakārī ca hoti,
asappāyakārī ca.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퇴보에 빠진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정체에 빠진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수승함에 동참하는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꿰뚫음에 동참하는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지 못해서 하고,
부적절하게 한다.
Imehi kho, bhikkhave, ch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abhabbo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ituṃ sati sati āyatane.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그런 원인이 있을 때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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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bhabbo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ituṃ
sati sati āyatane. Katamehi chahi?
3.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그런 원인이 있을 때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處에 대한 念이 있으면 증득할 수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Idha, bhikkhave, bhikkhu
‘ime hān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me ṭhiti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me vises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me nibbedhabhāgiyā dhamm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sakkaccakārī ca hoti,
sappāyakārī ca.
4.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퇴보에 빠진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 *비여리작의- 등은 퇴보에 기여하는 법>
‘이것은 정체에 빠진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 *현상유지. 퇴보/수승 기여 법들 D34참고>
‘이것은 수승함에 동참하는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여리작의- 등은 수승함에 기여하는 법>
‘이것은 꿰뚫음에 동참하는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정성을 다해서 하고,
적절하게 한다.
Imehi kho, bhikkhave, ch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bhabbo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ituṃ sati sati āyatane’’ti.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Sattam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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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경험(수집된 정보)한 기억은 정확하더라도
제한적이거나 꿰뚫음이 동참하지 못하면 삿된 견해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위 경문들에서 나타나듯이 빠린냐(= 검증, 택법)하지 못하면 탐진치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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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ñcannaṃ indriy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5根(信.精進.念.定.慧)의 味患離- 아빈냐
<*사띠(기억)도 '위험함'이 있음을 직접 경험한 기억에 기반하여 알아야(아빈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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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 Tassa ce, bhikkhave, bhikkhuno tesampi vitakkānaṃ ādīnavaṃ upaparikkhato uppajjanteva
pāpakā akusalā vitakkā chandūpasaṃhitāpi dosūpasaṃhitāpi mohūpasaṃhitāp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ṃ vitakkānaṃ asatiamanasikāro āpajjitabbo.
"위험하다고 성찰했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진.치와 연결되는 나쁘고 불선한 사유가 일어나면..."
A5:161 Yasmiṃ, bhikkhave, puggale āghāto jāyetha, asatiamanasikāro tasmiṃ puggale āpajjitabbo;
evaṃ tasmiṃ puggale āghāto paṭivinetabbo.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챙기지 않음과 주의를 기우리지 않음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S10:4 Satīmato sadā bhaddaṃ, satimā sukhamedhati;
Satīmato suve seyyo, verā na parimuccati.
"마음챙기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하고, 마음챙기는 자는 행복을 얻도다.
마음챙기는 자는 더욱 더 나아지나, 결코 증오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도다."
.
기억은 정확하더라도 제한적(정체-현상유지)이거나 반야의 도움을 받지 못해 私見으로 전개되는 경우.
D11
께왓다여, 그러자 그 비구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천상으로 인도하는 길이 드러나는 그런 삼매에 들었다."
488.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tathārūpaṃ samādhiṃ samāpajji,
yathāsamāhite citte devayāniyo maggo pāturahosi.
께밧따여, 그런데 그 수행승은, 마음이 안정되자
하늘의 길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바로 그러한 삼매에 들었습니다.
68. "께왓다여, 그러자 그 비구는 사대왕천이 속하는 신들(*~대범천神- 결국 세존)에게로 갔다.
가서는 사대왕천에 속하는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Atha kho so, kevaṭṭa, bhikkhu yena cātumahārājikā de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cātumahārājike deve etadavoca –
께밧따여, 그리고 그 수행승은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 신들을 찾아 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의 신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도대체 어디서 이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는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kattha nu kho, āvuso, ime cattāro mahābhūtā aparisesā nirujjhanti,
seyyathidaṃ –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수행승] ‘벗들이여, 도대체 어디서 이 네 가지 광대한 존재 곧,
땅의 세계, 물의 세계, 불의 세계, 불의 세계, 바람의 세계가 남김없이 소멸합니까?’
께왓다여, 이렇게 말하자 사대왕천의 신들(*~대범천神)은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도대체 어디서 이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즉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는
남김없이 소멸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M136
14. 그런데 아난다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는
열중에 의하고, 노력에 의하고, 수행에 의하고, 방일하지 않음에 의하고,
올바로 정신활동을 기울임에 의하여,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를 경험한다.
즉 이와 같은 마음의 삼매 속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301. ‘‘Idhānanda,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amuṃ puggalaṃ passati –
9.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몰입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여 이러한<*그것에 걸맞은> 마음의 삼매에 도달한다. 즉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at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ṃ.
So evamāha – ‘natthi kira, bho, pāpakāni kammāni, natthi duccaritassa vipāko.
Amāhaṃ puggalaṃ addasaṃ – idha pāṇātipātiṃ adinnādāyiṃ…pe… micchādiṭṭhi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passāmi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nna’nti.
So evamāha – ‘yo kira, bho, pāṇātipātī adinnādāyī…pe… micchādiṭṭhi,
sabbo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ti.
Ye evaṃ jānanti te sammā jānanti; ye aññathā jānanti, micchā tesaṃ ñāṇa’nti.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ti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 …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참으로 악행은 없다. 참으로 그릇된 행위의 과보도 없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 … 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 완고하게 고집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
이와 같이 그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경험하여,
이 때 그것만을 완고하게 탐착하고 집착하여
‘단지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한다.
Iti so yadeva tass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attha thāmasā parāmāsā [parāmassa (sī. pī.)] abhinivissa voharati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 완고하게 고집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sāmaṃ ñātaṃ cf. 아빈냐>
M130 (지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세존께서 직접 목격하시고 설하신 내용-)
44. 수행승들이여, 나는 다른 수행자나 성직자로부터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알고, 실제로 보고, 실제로 발견한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Taṃ kho panāhaṃ, bhikkhave, nāññassa samaṇassa vā brāhmaṇassa vā sutvā vadāmi,
api ca yadeva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āhaṃ vadāmī’’ti.
29. "비구들이여, 나는 이것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으로부터 듣고 그대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발견한 것을 그대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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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어떤 뭇삶은 그 무리에서 죽어서 이 세상에 오는 경우가 있다.
이 세상에 와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정근하고 수행하고 방일을 여의고
올바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서 마음의 삼매를 경험하여
바로 전생의 삶의 형태를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44. ‘‘Ṭhānaṃ kho panetaṃ, bhikkhave, vijjati, yaṃ aññataro satto tamhā kāyā cavitvā itthattaṃ āgacchati.
Itthattaṃ āgato s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samāno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tato paraṃ nānussarati.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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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9
"하느님이여,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가 있습니다.
그대는 그곳에서 사라져서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대는 여기서 오래 동안 살았기 때문에 그 기억은 잊혀져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것을 알고 또한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또한 봅니다.
Atthi kho, brahme, ābhassarā nāma kāyo yato tvaṃ cuto idhūpapanno.
Tassa te aticiranivāsena sā sati pamuṭṭhā,
tena t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ṃ jānāmi passāmi.
범천이여, 광음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그대는 그곳에서 떨어져 이곳에 태어났다.
그대가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기억을 잊어버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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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여, 이와 같이 곧바로 아는 것에 관한 한, 그대와 동일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합니까.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훌륭합니다.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범천이여, 이와 같이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여기서 기억(사띠)에 의한 앎과 봄을 아빈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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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hi kho, brahme, subhakiṇho nāma kāyo, vehapphalo nāma kāyo, abhibhū nāma kāyo,
taṃ tvaṃ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ṃ jānāmi passāmi.
Evampi kho ahaṃ, brahme, neva te samasamo abhiññāya, kuto nīceyyaṃ?
Atha kho ahameva tayā bhiyyo.
범천이여, 변정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
광과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것으로도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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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여, 나는 땅을 땅으로 곧바로 알고
땅이 땅이라는 것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
Pathaviṃ kho ahaṃ, brahme, pathavito abhiññāya
yāvatā pathaviyā pathavattena ananubhūtaṃ tadabhiññāya
"범천이여, 나는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고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는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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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여기서 ‘땅은 땅이라는 것으로 경험되지 않는 것이며’라는 것은
땅은 땅의 실체가 없으므로 오로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경험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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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1.pathaviṃ pathavito sañjānāti; ....Taṃ kissa hetu? ‘A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 범부
2.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Taṃ kissa hetu? ‘Pariññeyyaṃ tassā’ti vadāmi.: 有學
3.pathaviṃ pathavito abhijānāti; ...Taṃ kissa hetu? ‘Pariññātaṃ tassā’ti vadāmi. : 無學
.
S47:4 4念處에 의한 신참비구의 목표는 如實智 → 아빈냐한 有學의 목표는 빠린냐(탐진치 소멸)
지향(意)이 깨끗(人間法을 구족-법을 如實智見) → 지향(意)의 완성(심해탈-혜해탈의 증득)
kāyassa yathābhūtaṃ ñāṇāya, ........ dhammānaṃ pariññ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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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9.
[우다인]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이 현재의 존재 안에서 경험하는 것의
하나하나의 특징들과 그 상세한 양상들을 기억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존께서 하시듯,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하여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기억하되,
이와 같이 제가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Ahañhi, bhante, yāvatakampi me iminā attabhāvena paccanubhūtaṃ
tampi nappahomi sākāraṃ sauddesaṃ anussarituṃ,
kuto panāh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pe…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āpi bhagavā?
"세존이시여, 저는
현재의 이 몸으로 경험한 것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상세하게 기억해내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제가 세존께서 하시는 것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여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겠습니까?"
.
舊業에 의한 현재 自身이 겪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 對面할 내용을 기억하는 과정
<*= ? 4念處
‘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Pīti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ukh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
Atha kho bhagavā bodhirukkhamūle sattāhaṃ ekapallaṅkena nisīdi vimuttisukha[ṃ] paṭisaṃvedī.>.
.
달콤함을 달콤함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벗어남을 벗어남으로 여실하게 알게 되는 과정.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lokassa assādañca assādato ādīnavañca ādīnavato nissaraṇañca nissaraṇato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kho,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samaṇesu vā
samaṇasammatā brāhmaṇesu vā brāhmaṇasammatā,
te ca panāyasmanto sāmaññatthañca brahmaññatth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ti [viharissanti (sī. pī.)].
.
D34 Pañca vimuttāyatanāni – Ime pañca dhammā abhiññeyyā.
"다섯 가지 해탈의 장소 - 이 다섯 가지 법이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對面해야 할 법)
‘'Puna caparaṃ, āvuso, bhikkhuno
na heva kho satthā dhammaṃ deseti, aññataro vā garuṭṭhāniyo sabrahmacārī,
nāpi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vitthārena paresaṃ deseti,
nāpi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vitthārena sajjhāyaṃ karoti,
nāpi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cetasā anuvitakketi anuvicāreti manasānupekkhati;
⑤ "다시 도반들이여, 여기 스승이나 어떤 존중할 만한 동료 수행자가 비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고,
그가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하지도 않으며,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하지도 않으며,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보지도 않습니다.
.
<*가르쳐 주는 스승이나, 듣고 배운 내용이 없을 때 (보살시절 세존의 경우처럼)>
api ca khvassa aññataraṃ samādhi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그러나 그는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습니다.
Yathā yathā, āvuso, bhikkhuno aññataraṃ samādhi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tathā tathā so tasmiṃ dhamme atthappaṭisaṃvedī ca hoti dhammappaṭisaṃvedī ca.
Tassa atthappaṭisaṃvedino dhammappaṭisaṃvedin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Idaṃ pañcamaṃ vimuttāyatanaṃ.
비구가 어떤 한 가지 삼매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을 때
그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합니다. <*의미(이익/결과)를 경험하고 담마를 경험>
그가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할 때 환희가 생깁니다. <*因果를 경험하면 환희가>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몸은 경안하며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듭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의 장소입니다."
.
S35:70 puna caparaṃ, upavāṇa, bhikkhu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dhammappaṭisaṃvedī ca hoti dhammarāgappaṭisaṃvedī ca.
santañca ajjhattaṃ dhammesu rāgaṃ ‘atthi me ajjhattaṃ dhammesu rāgo’ti pajānāti.
"다시 우빠와나여, 마노로 법을 알고 나서 법을 경험하고 법에 대한 탐욕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법들에 대한 탐욕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puna caparaṃ, upavāṇa, bhikkhu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dhammappaṭisaṃvedī hi kho hoti, no ca dhammarāgappaṭisaṃvedī.
asantañca ajjhattaṃ dhammesu rāgaṃ ‘natthi me ajjhattaṃ dhammesu rāgo’ti pajānāti.
다시 우빠와나여, 마노로 법을 알고 나서
법을 경험하지만 법에 대한 탐욕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법들에 대한 탐욕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법들에 대한 탐욕이 없음을 꿰뚫어 안다.
Evampi kho, upavā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i,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정형구: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탐(rāga)은 각자 아빈냐하여야 할 법, 빠린냐하여 할 법, .... 본문 끝부분 참조.
M38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Nanu, bhikkhave, yadeva tumhākaṃ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umhe vadethā’’ti.
‘‘Evaṃ, bhante’’.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옳은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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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비구들이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이 법으로써 나는 그대들을 잘 인도하였다.
내가 '비구들이여, 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설한 것이다."
‘‘Sādhu, bhikkhave, upanītā kho me tumhe, bhikkhave,
iminā sandiṭṭhikena dhammena akālikena ehipassikena opaneyyikena paccattaṃ veditabbena viññūhi.
Sandiṭṭhiko ayaṃ, bhikkhave, dhamm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 –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nti.
57. [세존] “수행승들이여, 훌륭하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현세에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며, 승화시키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이 하나 하나에게 알려지는 가르침으로 이끌어왔다.
왜냐하면, 현세에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며,
승화시키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이 하나 하나에게 알려지는 가르침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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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9:4 ‘‘Puna caparaṃ, āvuso, bhikkhu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Yathā yathā, āvuso, bhikkhu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pe… brahmacariyaṃ pakāseti,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나니,
이러한 법들은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고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자주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tathā tathā so tasmiṃ dhamme atthappaṭisaṃvedī ca hoti dhammappaṭisaṃvedī ca.
Ayaṃ, āvuso, dutiyo ānisaṃso kālena dhammassavane kālena dhammasākacchāya.
그는 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체득하고 법을 체득합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두번째 이익입니다."
.
‘‘Puna caparaṃ, āvuso, bhikkhu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Yathā yathā, āvuso, bhikkhu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pe… brahmacariyaṃ pakāseti,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비구들에게 법을 설합니다.
법들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나니,
이러한 법들은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고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며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그가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여 …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자주자주 확실하게 드러낼수록,
tathā tathā so tasmiṃ dhamme gambhīraṃ atthapadaṃ paññāya ativijjha passati.
Ayaṃ, āvuso, tatiyo ānisaṃso kālena dhammassavane kālena dhammasākacchāya.
그는 그 법에 대해서 심오한 뜻의 경지를 통찰지로 꿰뚫고 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법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법을 담론함으로써 얻는
세번째 이익입니다."
.
A5:28 Seyyathāpi, bhikkhave, aññova aññaṃ
[añño vā aññaṃ vā (sī.), añño vā aññaṃ (syā. kaṃ.), añño aññaṃ (?)]
paccavekkheyya, ṭhito vā nisinnaṃ paccavekkheyya, nisinno vā nipannaṃ paccavekkheyya.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그는 서서 앉아 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누워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한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반조의 표상을 잘 취하고 <*삼매相에 대한 반조를 잘捕捉catch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作意> 잘 호지<*擔持>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Ariyassa, bhikkhave, pañcaṅgikassa sammāsamādhissa ayaṃ pañcamā [pañcamī (sī.)] bhāvanā.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 수행 가운데 다섯 번째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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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ṃ bhāvite kho, bhikkhave, bhikkhu [evaṃ bhāvite kho bhikkhave (sī.)]
ariye pañcaṅgike sammāsamādhimhi evaṃ bahulīkate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대림 스님 譯에는 빠진 부분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를 수행하고 많이 닦을 때,
최상의 지혜로 실현시킬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최상의 지혜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가 마음을 기울이면,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
A7:37 ‘‘Satt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catasso paṭisambhid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Katamehi sattahi?
Idha, bhikkhave, bhikkhu
‘idaṃ me cetaso līna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jjhattaṃ saṃkhittaṃ vā cittaṃ ‘ajjhattaṃ me saṃ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bahiddhā vikkhittaṃ vā cittaṃ ‘bahiddhā me vik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a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 心 태만, 내로 위축, 외로 산란-에 대한 반냐
受想尋 起住還이 확연(vid = 삼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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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pāyāsappāyesu kho panassa dhammesu hīnappaṇītesu kaṇhasukkasappatibhāgesu
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도움/되지 않은, 저열/수승, 흑/백으로 대비되는 법들의 표相을 잘 捕捉하고
잘 作意하고 잘 擔持하여 반냐로 잘paṭividdha꿰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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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7법을 잘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4-paṭisambhidā무애해를 자신의 아빈냐로 실현>
Imehi kho, bhikkhave, satt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catasso paṭisambhid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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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pāyāsappāyesu kho panassa dhammesu hīnappaṇītesu kaṇhasukkasappatibhāgesu와
아래의 idaṃ kusalaṃ idaṃ akusalaṃ idaṃ sāvajjaṃ idaṃ anavajjaṃ
idaṃ kaṇhaṃ idaṃ sukkaṃ idaṃ sevitabbaṃ idaṃ na sevitabbaṃ의 내용이
택법(각지)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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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법각지의 정형구
Atthi, bhikkhave, kusalākusalā dhammā, sāvajjānavajjā dhammā, hīnapaṇītā dhammā,
kaṇhasukkasappaṭibhāgā dhammā.
Tattha yonisomanasikārabahulīkāro –
ayamāhāro anuppannassa vā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uppādāya,
uppannassa vā dhammavicayasambojjhaṅgassa bhāvanāya pāripūriy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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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ti.[PTS20]
a) Tattha katamā abhiññā?
Yaṃ dhammānaṃ salakkhaṇe-ñāṇaṃ dhammapaṭisambhidā atthapaṭisambhidā ca, ayaṃ abhiññā.
"그 중에서 뛰어난 앎이란 무엇인가?
법이 가진 특징에 관한 앎, 법에 대한 분석적 이해, 의미에 관한 분석적 이해, 이것이 뛰어난 앎이다."
<*예를 들어 아빈냐라는 법의 특징 - 위 내용이고,
(사)념처가 아빈냐의 가까운 원인이다. - 법무애해(因)
아빈냐의 가까운 결과는 빠린냐이다. - 의무애해(果).
혹은 법무애해와 의무애해를 바뀌어 설명할 수도 -
아빈냐는 어떤 법의 因이 되는가?, 어떤 법의 果가 아빈냐인가?
즉 (대표적인 아빈냐는 12연기 支의 行지분 ~ 老死지분까지의 44智)
I.무엇을 行이라 하는가? 身行, 口行, 心行. (이것이 apilāpanatā나열/열거/사띠)
II.行은 어떤 법의 원인이 되는가? 識 - 行이 있으면 識이 있고, 行이 없으면 識도 없다.
III.어떤 법의 果가 行인가? 無明 - 無明이 있으면 行이 있고, 無明이 없으면 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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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방법을 논서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띠에 대해서.
단어에 대한 설명, 그 특징, 작용, 결과, 원인 등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청정도론 XIV. 141]:
Saranti tāya, sayaṃ vā sarati, saraṇamattameva vā esāti sati.
"이것 때문에 기억(saranti), 혹은 이것은 그 스스로 기억하고,
혹은 단지 기억하기 때문에 마음챙김이라 한다. <*단지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이라 한다.>
Sā apilāpana lakkhaṇā,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apilāpana)을 특징으로 한다. <*羅列/列擧>
asammoharasā,
잊지 않는 것(asammosa)을 역할로 한다.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abhimukhabhāva paccupaṭṭhānā vā,
보호하는 것(ārakkha)으로 나타난다. <*가까운 결과>
혹은 대상과 직면함(visayabhimukhabhāva)으로 나타난다. <* abhimukha = 아빈냐>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 vā,
강한 인식(thirasaññā)이 가까운 원인이다. <*가까운 원인>
혹은 몸 등에 대해서 마음챙김을 확립함[念處, satipaṭṭhā]이 가까운 원인이다.
ārammaṇe daḷha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
이것은 기둥처럼 대상에 든든하게 서 있기 때문에(patiṭṭhitattā),
혹은 눈 등의 문을 지키기 때문에(rakkhaṇato) 문지기처럼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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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Tattha katamā pariññā? Evaṃ abhijānitvā yā parijānanā :
idaṃ kusalaṃ idaṃ akusalaṃ idaṃ sāvajjaṃ idaṃ anavajjaṃ
idaṃ kaṇhaṃ idaṃ sukkaṃ idaṃ sevitabbaṃ idaṃ na sevitabbaṃ,
"그 중에서 무엇이 두루한 앎인가? 이와 같이 뛰어나게 알고 난 후
‘이것은 옳음(善)이다, 이것은 옳지 않음(不善)이다, 이것은 허물을 가졌다, 이것은 허물 없다,
이것은 어두움이다, 이것은 밝음이다, 이것은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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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 dhammā evaṃ gahitā idaṃ phalaṃ nibbattayanti,
teasṃ evaṃ gahitānaṃ ayaṃ attho ti, ayaṃ pariññā.
Evaṃ parijānitvā tayo dhammā avasiṭṭhā bhavanti: pahatabbā bhāvetabbā sacchikātabbā ca.
이와 같이 지닌 이 법들은74) 이러한 결과75)를 발생시킨다,
그 [법들을] 이와 같이 지닐 때 이러한 이익이 있다.’라고 두루 아는 것, 이것이 두루한 앎이다.
이렇게 두루 알고 난 후 세 법이 남는다. 즉 없애야 할 법, 닦아야 할 법, 실현해야 할 법이다."
경전이해의 길 86~87쪽 하단 주)
74) 주석서(257쪽)에 따르면, 수지(受持)하거나 생겨난 옳은 법과 옳지 않은 법을 가리킨다.
75) 주석서(257쪽)에 따르면, 내키는 과보와 내키지 않은 과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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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의 용례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의 내용으로 사띠-念覺支-아빈냐의 전개, 검증-擇法覺支-빠린냐,
精進覺支-[斷-修]의 배대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빈냐-빠린냐(智)-斷-修-證이 엄격한 순서대로 일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5법이 서로 맞물려 나아가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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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文 마지막에 자주 나오는 정형적 표현은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abbhaññāsi.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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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듯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아빈냐의 최종적인 의미는
수승한 앎(abhi勝智: 잘 앎)의 뜻도 되지만, 사띠와 반야의 도움을 받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앎'도 포함하는
'대면한 앎(abhi-mukkha對面智)'의 의미인 '직접 경험이 실현된 앎(自證)'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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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띠[記憶]와 아빈냐[對面智]의 범주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Miln 11. Abhijānantasatipañho 6장11, 기억(念)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11. Rājā āha ‘‘bhante nāgasena, sabbā sati
abhijānantī uppajjati, udāhu kaṭumikāva satī’’ti?
‘‘Abhijānantīpi, mahārāja, kaṭumikāpi satī’’ti.
‘‘Evañhi kho, bhante nāgasena, sabbā sati
abhijānantī, natthi kaṭumikā satī’’ti?
‘‘Yadi natthi, mahārāja, kaṭumikā sati,
natthi kiñci sippikānaṃ kammāyatanehi vā sippāyatanehi vā vijjāṭṭhānehi vā karaṇīyaṃ, niratthakā ācariyā,
yasmā ca kho, mahārāja, atthi kaṭumikā sati,
tasmā atthi kammāyatanehi vā sippāyatanehi vā vijjāṭṭhānehi vā karaṇīyaṃ, attho ca ācariyehī’’ti.
‘‘Kallosi, bhante nāgasenā’’ti.
"왕은 물었다.
『존자여, 기억은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자각적으로 일어납니까.
또는 외부로부터의 시사(示唆)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주관적 의식(自證)으로부터도 일어나고, 외부로부터도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모든 기억은 근원적으로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이여, 만일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기억이 없다고 한다면,
공부하는 사람이 일이나 기술이나 학문에 관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스승도 소용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조성되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일이나 기술이나 학문에 관해서 해야 할 것이 있고 스승도 필요한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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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ṭumikā (f.) [from karoti; see Sk. kṛtrima &kuṭṭima; also kutta &kutti]
artificiality, outward help, suggestion, appld to sati Miln 78,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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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Satilakkhaṇapañho 14. 전념에 관하여
13. Rājā āha ‘‘bhante nāgasena, kiṃlakkhaṇā satī’’ti?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전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Apilāpanalakkhaṇā, mahārāja, sati, upaggaṇhanalakkhaṇā cā’’ti.
대왕이여, 열거(列擧)와 집지(執持)입니다.
‘‘Kathaṃ, bhante, apilāpanalakkhaṇā satī’’ti?
열거가 어떻게 전념의 특징이 됩니까.
‘‘Sati, mahārāja, uppajjamānā
kusalākusalasāvajjānavajjahīnappaṇītakaṇhasukkasappaṭibhāgadhamme apilāp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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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00
1)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전승을 따르는 자인데,
그들은 전승에 의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세 가지 베다를 신봉하는 바라문입니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anussavikā.
Te anussav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seyyathāpi brāhmaṇā tevijjā.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전통주의자라서
구전되어온 것으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나니 예를 들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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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단지 믿음의 기초 위에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이론가나 사상가입니다.
Santi pana,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kevalaṃ saddhāmattak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seyyathāpi takkī vīmaṃsī.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단지 믿음만으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나니 예를 들면 논리가와 탐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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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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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라드와자여,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진리 가운데 스스로 곧바로 알아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Tatra, bhāradvāja,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āhamasmi.
8. "바라드와자여, 이 중에서 나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는 그런 사문 ․ 바라문들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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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참고자료 A2:17:3 4. Rāgapeyyālaṃ 232-246.
<*對面을 위하여, 擇法智위하여, 불선법을 斷하기 위하여, 修해야 할 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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貪<rāga>을
아빈냐<abhiññā>하기 위하여, 빠린냐<pariññā>...
없애기<parikkhayā>... 버리기<pahānā>... 부수기<khayā>... 사그라지게<vayā>...
빛바래게<virāgā>... 소멸<nirodhā>... 포기<cāgā>... 놓아버리기<paṭinissaggā>...
.
성냄<dosa>, 어리석음<moha>, 분노<kodha>, 원한<upanāha>, 위선<makkha>, 앙심<paḷāsa>,
질투<issā>, 인색<macchariya>, 속임<māyā>, 사기<sāṭheyya>, 완고<thambha>, 성마름<sārambha>,
자만<māna>, 거만<atimāna>, 허영<mada>, 방일<pamāda>을
.
abhiññāya, pariññāya, parikkhayāya, pahānāya, khayāya, vayāya, virāgāya, nirodhāya, cāgāya,
paṭinissaggāya dve dhammā bhāvetabbā.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 철저히 알기 위해서,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버리기 위해서, 부수기 위해서,
사그라지게 하기 위해서, 빛바래기 하기 위해서, 소멸하기 위해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놓아버리기 위해서 두 가지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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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아야 한다.
Samatho ca vipassanā ca.
<空性삼매, 無相삼매, 無願삼매>을
Suññato samādhi, animitto samādhi, appaṇihito samādhi –
<4念處Satipaṭṭhāna, 4正勤Sammappadhāna, 4如意足Iddhipāda>을
<5根>을
6法들<140. Dassanānuttariyaṃ, savanānuttariyaṃ, lābhānuttariyaṃ, sikkhānuttariyaṃ,
pāricariyānuttariyaṃ, anussatānuttariyaṃ.
141. Buddhānussati, dhammānussati, saṅghānussati, sīlānussati, cāgānussati, devatānussati.
142. Aniccasaññā, anicce dukkhasaññā, dukkhe anattasaññā, pahānasaññā, virāgasaññā, nirodhasaññā.>
7[覺支]를
Aniccasaññā, anattasaññā, asubhasaññā, ādīnavasaññā, pahānasaññā, virāgasaññā, nirodhasaññā.
Asubhasaññā, maraṇasaññā, āhāre paṭikūlasaññā, sabbaloke anabhiratasaññā, aniccasaññā,
anicce dukkhasaññā, dukkhe anattasaññā.
8[解脫]을
9- Asubhasaññā, maraṇasaññā, āhāre paṭikūlasaññā, sabbaloke anabhiratasaññā, aniccasaññā,
anicce dukkhasaññā, dukkhe anattasaññā, pahānasaññā, virāgasaññā
9차제정- Paṭhamaṃ jhānaṃ,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ññāvedayitanirodho
<초선~상수멸 입정/출정>
‘‘Yato kho, bhikkhave, bhikkhu taṃ tadeva samāpattiṃ samāpajjatipi vuṭṭhātipi,
tassa mudu cittaṃ hoti kammaññaṃ.
Mudunā kammaññena cittena appamāṇo samādhi hoti subhāvito.
So appamāṇena samādhinā subhāvitena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Asubhasaññā, maraṇasaññā, āhāre paṭikūlasaññā, sabbaloke anabhiratasaññā, aniccasaññā,
anicce dukkhasaññā, dukkhe anattasaññā, pahānasaññā, virāgasaññā, nirodhasaññā
Aniccasaññā, anattasaññā, āhāre paṭikūlasaññā, sabbaloke anabhiratasaññā, aṭṭhikasaññā,
puḷavakasaññā [pulavakasaññā (sī.) puḷuvakasaññā (ka.)], vinīlakasaññā, vipubbakasaññā,
vicchiddakasaññā, uddhumātakasaññā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sammāñāṇaṃ, sammāvimutti
Paṭhamaṃ jhānaṃ,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mettācetovimutti, karuṇācetovimutti, muditācetovimutti, upekkhācetovimutti,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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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①탐욕[rāga/lobha]-성냄[dosa/byāpāda], ②분노[kodha]-원한/적의[upanāha],
③저주/모욕[makkha]-횡포/얕봄[paḷāsa], ④질투[issā]-인색[macchariya],
⑤환상/속임수[māyā]-광기/사기[sāṭheyya], ⑥고집/완고[thambha]-격분/뻔뻔스러움[sārambha],
⑦자만[māna]-오만/거만[atimāna], ⑧허영[mada]-태만/방일[pamāda].
pahānāya atthi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Katamā ca sā, āvuso, majjhimā paṭipad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버리기 위해 중도(中道)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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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경에는 어리석음<moha>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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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2:23 Katamā ca, bhikkhave, pariññ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달한 지혜인가?
Yo, bhikkhave,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Ayaṃ vuccati, bhikkhave, pariññā’’ti.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통달한 지혜라 한다.”
첫댓글 도반님들 모두 잘 지내셨습니까?
ㅎㅎ
사람의 고집이란 대책이 없는 것인지
또 한 번 고집부려 보았습니다.
문법을 모르니 문맥으로 이해한 것이라 헛점이 많을 겁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간단히 작성하려다 하다... 하다.. 보니 양만 많아졌습니다. _()_
무척 반갑습니다.
매화 향기와 함께 오셨습니다.
좋은 자료와 수승한 의견. 계속 부탁드립니다.^^
돌아오신 자료폭탄을....... 기쁘게 맞아봅니다.......^^
사띠뿐만아니라... 아빈냐의 경우들까지......... 정리를 올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경을 근거로 토론한다는 것이........ 중간중가ㄴ 개인적이 견해가 들어가더라도.......중요함을 다시 느끼면서......
그래야지만... 경을 보는 눈이 더 생겨나ㄹ 것이라는..........기대와 함께........
2017. 03.15. 17:00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다... 내용만 더 길어졌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