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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의 마을축제 유감
그 다리 이후 까미노는 매우 짧은 로마시대의 길(R. da Ponte Romana)을 따라 국도(N1)에 이른다.
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위험한 횡단이다.
안내판 뻬다상이스(Pedaçães)가 가리키고 파란 화살표(arrow)가 확인해 주는 길(Estr. da Costa)
은 유칼립투스 숲을 뚫고 오르는 시멘트 포장의 고갯길이다.
'V' 자로 급하게 올라 다시 N1(IC2) 국도까지 1.8km쯤 구간(R. Espanha~Estr. Pedaçães)은 마을
(Pedaçães)이 형성되기 전에는 산길이었을 것이다.
고갯길을 막 오르다가 그늘진 대형 유칼립투스 나무에 등 대고 앉아서 잠시 눈을 감았다.
뽀르뚜게스는 2번째지만, 초행인 '뽀르뚜~리스보아'에서는 최초인 로마시대 다리 걷기를 마친 후다.
특별한 것 없고, 길지도 않으나 18개 세기의 모진 풍파를 감수한 다리라는 역사성에 매료되었는가.
이 다리를 걷기 위해 고개를 넘어 왔고 걸은 후에 다시(다른) 고개를 넘어가고 있으니.
한여름의 한낮, 무더위 속의 찰나적 좌수(坐睡)지만 한결 가뿐한 듯하여 걷기를 재개했는데 요란한
소리(음악)가 들려왔다.
변변한 집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이재민들이 모여든 우리의 옛 산동네를 연상하게 하며 빈(貧) 티를
느끼게 한 마을쪽에서.
당도한 음악의 진원지가 낡고 을씨년스러운 콘셋 건물인 데다 생음악이 아니라 더 그랬을까.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각에 식사와 음주, 노래와 춤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아 마을 축제장인 듯.
취락이 잘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인 주민 수가 많지 않은데도 아기자기하기는커녕 엉성하고
산만하게 보여서 지나치려는 내 앞에 나타난 장골남 스타일의 노녀.
막무가내로 끌어들이듯 하여 자기의 원탁에 앉게 했다.
연배처럼 보였으나 12년의 차가 있다(69세)며 나를 '이 르망'(irmão/오빠)이라 부른 넉살스런 여인.
내 신상을 대강 알게 된 그녀는 좌중을 향하여 '술 꼬레아누 뻬레그리누'(Sul Coreano Peregrino/
남한의 순례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박수로 환영하던 좌중은 나이가 '오히뗀따 이 웅'(oitenta e um/81세)이라는 말에 열광적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영어로 말한 행사 진행(進行) 남.
뻬다상이스는 소 교구 마을 라마스 두 보가의 4개 루가리스(lugares/작은 마을:같은 이름인 Lamas
do Vouga, Pedaçães, Vila Verde, Vouga) 중 하나다.
소교구 전체 인구가 729명(2011년 기준)에 불과하며 65세 이상자는 132명이다.(그가 준 자료)
자료에는 없으나 70세 이상은 그(132명) 번(半)에도 미치지 못하며 80세 이상은 겨우 1자리 수를 면
했는데(11명) 2명뿐인 이 마을의 최고령자는 모두 와병 중이라 불참했다는 것.
내게 열광적인 이유를 알만하며 장수 조건을 갖춘 산간 마을인데 왜 단명 마을인가.
축제장에 참여하기는 예외 없이 반 강요로 이뤄졌지만, 까미노에서 마을 축제에 참석할 때마다 거의
같은 장면이라 새삼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른 점이라면 우악스러운(?) 이미지의 노녀가 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여러 메뉴를 주문한 것이다.
메뉴가 다양하지 못하고 질도 낮은 편인데.
그녀는 함께 춤 추기를 바랐지만 그럴 의향이 전혀 없었다.
스테이지(stage)는 꾸며 있으나 고르지 못한 맨바닥이 텅 비어 무료하다는 느낌인 데다 흘러나오는
카세트 음악으로는 흥이 나지 않는지 시들한 분위기인데 나가고 싶겠는가.
갈길이 많이 남아있는 늙은 뻬레그리노라는 이유로 양해를 부탁하는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내가 먹고
마신 음식의 빌(Bill)이었다.
아구아(agua/물)를 포함하여 4.10€ 짜리 계산서.
물 소비가 적은 체질인 데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 물을 산 적 없는 내게는 가볍기는 해도 충격이었다.
늙은이라는 이유에선지 볼런티어들이 주는 물도 남아서 나눠주는데 왜 사겠는가.
음식점에서 자주 먹는 메뉴들이라 식당의 빌과 대조하면 비싼 것이 아니지만 축제장의 음식으로는?
축제장에서 빌 받은 적이 없으므로 대조는 못하나 다른 축제장보다 비쌀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했다.
여러 루트의 까미노에서 축제장들과 주말의 공동행사장에서 갖게 된 경험의 결론이었다.
연중행사인 마을의 축제와 수호성인의 날(마을을 수호하는 성인이 마을마다있다) 행사(축제) 외에도
주말(土요일) 저녁마다 전 주민이 한데 모여 공동으로 식사하는 마을도 있다.
이용료 지불이 없는 마을회관, 마을 주민 모두 참여하는 윤번 볼런티어(volunteer), 중간 상인 없는
직구입 염가 물자 등 삼박자가 만드는 최저가 음식으로 성황을 이루는 마을행사다.
이 날 저녁에는 외래객도 연고 주민과 함께 공동행사에 참석하여 즐겁게 식사하고 음주도 하며 상담
(相談과商談)도 하는 것이 불문율이란다.
조용한 미팅을 위해서 파티션(partition) 홀이 따로 있는 회관도 있다.
이 날에는 마을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활용되고.
이같이 단란하고 아기자기한 행사의 과실은 마을의 공동이익을 위해 알차게 사용되고 있다.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특히 선거철에는 표를 빌미로 협박성 흥정
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마을들과는 극명하게 다른 차원의 마을들이다.
나는 마음껏 축하하며 더불어 즐겁고 뿌듯한 시간 가지기를 자주 했으며 귀국하여 이런 마을을 홍보
하고 벤치마킹(bench-marking)하라고 권고도 했다.
지근에 예배당(Capela de São Lourenço)도 있으나 미사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일요일인데도 썰렁한 느낌이 들어 괴이쩍게 생각되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사라진 기억을 살려내는 최고의 약은 사진인데 그 명약을 모두 도둑맞았기 때문에 뻬다상이스의 기
억을 살려보려고 구글의 위성사진을 뒤지다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길가의 음수대와 우람한 소나무 외에는 바야흐로 상전벽해 중인 뻬다상이스다.
산동네, 빈티마을 운운한 것은 매우 모멸적인 결례였다.
발전에 가속이 붙는다면 이 시대의 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지만)
대장쟁이의 비극과 까미노에 불어오는 산업화 바람
축제장 이후의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뻬다상이스 길(Estr. Pedaçães)을 따라서 남남동진하기 1.3km
지점, 신호등 교차로에서 국도(N1, IC2/Campelinho마을)를 건넌다.
이어서 정남길(R. 25 de Abril~R. Liberdade)로 소교구 뜨로파(União das Freguesias de Trofa,
Segadães e Lamas do Vouga)의 마을 모리스까 두 보가(Mourisca do Vouga)를 통과한다.
9c에 이미 정착촌이 형성되었고 1834년 이래 지방행정기관이었으며 1985년부터 공식적으로 도시의
지위를 유지해 오고 있다는 지자체 아게다의 마을이다.
주택과 상가로 리모델링된, 2.1km의 길 양편에 선 건물들이 이를 수긍하게 한다.
교회(Igreja de Mourisca do Vouga)가 바라다보이는 삼거리(R. Carvalho가 합치는) 중앙(Largo
Sebastião Saraiva Lima)에 자리하여 뻬레그리노스의 눈을 끌어가는 급수대.
뽀르뚜갈 타일로 장식한 그림을 이해할 수는 없으나 반가웠는데 물도, 어떤 안내표지도 없으니.
그림이 괴상하여 어렵사리 알아낸 것은 예전에 이 마을이 대장간 마을이었다는 것.
1290년에 설립, 뽀르뚜갈 최초의 대학인 꼬임브라대학교(UC/Universidade de Coimbra)의 북부
지방 학생들이 왕래하는 통로라 대장간업이 번성했단다.
N1국도가 없었고, 비포장 도로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동물(주로 마소)이었는데 편자(horseshoe)를
만들고 신기는 곳이 대장간이라 모리스까 두 보가는 대학생들이 거쳐가야 하는 곳이었으니까.
이 일 종사자의 직명은 장제사(裝蹄師)다.
이 고상한 표현을 두고도 '대장쟁이'라고 부른 것은 얕잡아 봤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어 블랙스미스(blacksmith)도, 뽀르뚜갈어의 페헤이루(ferreiro)도 고상한 표현은 아니니까.
그래서 꼬임브라대학생들이 자기네(ferreiro)의 주 고객임에도 우월적인 그들(대학생)과 페헤이루는
긴장과 갈등 관계였는데 어느 날 폭발한 것이 죽이고 죽는 살육의 대 참사였단다.
이후, 마을에 남은 자취는 분수대의 그림뿐이게 되었다나.
이 시대에는 대학 출신이 지천이며(과잉생산으로) 걸리적거리는 신세로 전락되었지만 당시(중세)의
대학생은 희귀한 특수층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대학생들이 오죽이나 우쭐댔으면 자기네의 절대적 밥줄인데도 참지 못하고 자멸할 것
이 뻔한 싸움을 했을까.
"참을 인(忍) 자 셋이면(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멸한다"는데.
애석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길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그림 앞에 멍청히 서있었다.
해맑은 페인트와 뽀르뚜갈 특유의 타일로 산뜻하게 새 단장을 하였으나 세기(世紀)를 몇 개씩 품고
있는 일부 건물들은 여전히 중후하고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뻬다상이스가 급격한 변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새 마을로 탈바꿈하는 것 외에는 연륜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가 지역 민속 박물관'(Museu Etnográfico da Região do Vouga)이 이름대로 대표적이다.
N1 국도에 다시 합류하는 로터리까지 남남동 길 0.7km를 걷는 동안에 아게다에 진입했다.
지자체와 동명인 소교구 마을이며, 인근이 산업단지로 큰 변혁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변혁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도 뻬다상이스와 달리 부티가 난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다른 점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마을의 부(富) 티와 빈(貧) 티를 와가(瓦家)와 초가(草家)로 구분했다.
기와집이 많은 마을이 당연히 부자 마을이었는데 이즘에는 비닐하우스로 평가한다.
비닐하우스는 4계절 전천후 수익을 올리는 농가의 여의주니까.
뿐만 아니라 농한기의 농민들에게 치명적인 잡기(도박과 주색 등 풍속범죄)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수문장이 비닐하우스다.
역시 '비닐'(vinyl)이라는 2차 산업의 위력이며 혜택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까미노 지역들에도 산업화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대소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지역 상권이 훈풍을 타게 됨을 의미한다.
가동하는 공장의 생동감은 그 지역 주민들에게로 이어져 모두 생동적이다.
그러나, '생동적'은 좋은 뜻만 가지고 있는 표현이 아니다.
만물과 만사는 야누스적(Janus)이니까.
곧 치명적 공해를 안아야 하고 이웃사촌이라는 정답고 따스한 인심은 인색하고 흉흉해질 것이다.
그런 현상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불확실한 내일의 일이고 확실한 것은 오늘이며 현재일 뿐인가.
"내일 일은 내일에"라는 기독교 성경에 따라서?
그렇다면,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과 이웃을 사촌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장 가엽고 우매할 것이다.
아무튼 이 지역(Agueda)에서도 부티와 빈티를 가르는 기준이 산업화 여부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대라면 이웃 마을에서 애석하기 짝이 없는 사건(대장쟁이의 비극)이 터지지도 았았을 것이고.
3.5km쯤 남은 아게다의 다운타운.
뽀르뚜게스를 포함하여 까미노 전체 루트에서 하루거리로는 가장 짧은(20km 미만) 몇 개의 구간 중
하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짧은 거리지만, 어쩌면 짧기 때문에 찬찬하게 보고 많이 생각하며 걸었다 할까.
거리에 비해서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낀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마지막 직선로에 들어섰다.
N1국도에 합류하기까지 700여 m에 이르는 도로 양편이 내 기억과는 많이 달라졌다.
2021년의 위성사진(Google)으로 확인된 것은 너른 초원에 산단(工團) 건물들이 들어선 것.
내가 걸어갔던 때(2015년 6월 21일), 도로변의 그 초원에서 대소 집단들이 구기를 비롯해 각종 친선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의 활기차고 화기 넘치는 그 정경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장소들이 산업화 바람을 맞았기(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게다의 시립 알따 빌라 공원과 강북구의 솔밭 공원
로터리에서 N1국도와 합류한 후에도 상당 거리(R. Drº Barbas dos Anjos ~ R. Misericórdia de
Águeda)는 그 현상이 이어졌다.
확실하게 보존되고 있는 곳은 알따 빌라 공원(Parque Municipal de Alta Vila)뿐이고.
31,400m²의 면적으로 아게다의 가장 중요한 레저 지역이란다.
널따란 잔디밭과 많은 나무, 사냥관(hunting pavilion/사격장), 비둘기집, 예배당, 온실, 소 동물원,
인공 호수가 있는 시영(市營/市立) 공원이다.
명칭으로는 서울의 구립(區立) 공원 급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53년째(2021년 현재) 붙박이로 살고 있는 집 마을(서울 강북구 우이동) 공원(솔밭
근린공원)과 같은 규모(면적)의 공원이라 더욱 세심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솔밭공원(31.369m²) 보다 9평 남짓(31m²) 넓은데도 엄청 넓게 느껴지는 공원이다.
공원의 면적은 같아도 강북구와 지자체 아게다(Agueda)를 대조하여 보면 23.60km² 대 335.27km²
의 면적에 인구는 308.000명대 47.700명으로 인구밀도가 km²당 13.050명대 142명이다.
북적거리니까 좁게 느껴지고 워낙 한가로우니까 넓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나, 인구밀도와 무관한
공원의 본질과 존재 이유 및 시설과 공간 활용도 등 비교가 가능한 분야를 살펴보았다.
공원은 무엇이며 우리의 일상적 근린에 그것이 왜 필요한가.
"공중의 보건, 교화, 휴양, 유락 등을 위하여 시설된 동산"이 한글학회의 큰 사전이 내린 정의다.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공중의 보건, 휴양, 놀이 따위를 위해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을 의미하며 이 정의 안에 답이 나타나 있다.
아게다의 알따 빌라 시립공원은 시민이 바라는 시설 보다 시민을 위한 시설을 우선으로 했다.
분명하게 확인되는 점은 보건과 체육을 혼동하지 않았다는 것.
육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과 사회 건강을 함께, 균형 있게 배려한 시설이다.
체육시설은 운동장 또는 체육공원과 체육관에 있어야 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기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린이공원이다.
비좁고 소란스럽다고 느껴지면 이미 공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맘에 쏘옥 드는 이름 '솔밭'이지만 애초에는 장대한 솔숲(松林)이었다.
화계사 입구에서 현재의 솔밭공원을 지나 종점 한하고 북한산 자락은 모두 솔숲이었다.
특히 한신대학이 북한산록에 들어설 때 현 수유 4거리 한하고 전 지역이 울창한 솔숲이었다
밤새 눈 덮인 솔숲을 새벽에 걸으려면 가슴이 쓰려서 주저할 때가 무수했으며 막상 걸으면 뿌드득 눈
밟히는 소리에 흥분되던 시절이 1950년대였다.
솔밭공원의 남과 북, 북한산 자락도 장대한 송림지대였다.
대부분은 주택에 희생되고 일부는 도로에 찢기고 손바닥만큼 남았을 뿐인데도 감지덕지하고 있다
숲을 지킨 주민의 힘이라고?
광대하고 울창한 숲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린 장본인들(행정당국자)이 솔밭공원을 살려냈다고 뽐내는
꼴이야말로 참으로 역겹고 분통이 터지려 하게 한다.
그나마라도(솔밭공원) 잘 간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시대의 솔밭 공원이라면 이름에 합당한 시설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
단지 솔숲이라는 이유 만으로 솔밭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
이미 쓰러졌거나 그러기 직전의 키다리 고송(古松)이 대부분이라면 관리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으며,
난잡스러운 시설들로 장마당을 이루고 있다면 더욱 부당하고 실격처리되어야 할 이름이다.
솔밭공원에 가면 솔(소나무)에 관해서는 통달하게 될 만큼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통적 공간개념은 진즉 무너졌고 말살 직전의 공간이라면 지금은 지구촌이라는 단일마을 시대다
우리 고유의 소나무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소나무가 한 곳에서 자라도록 하여 이 소나무들의 비교
를 통한 실물 학습장이 되어야 비로소 명실 공히 솔밭공원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아무 시설이 없어도 솔밭 공원은 120%의 가치와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솔밭의 곳곳에 고가의 비단(공작) 단풍나무를 심었다.
혈세로 순도 높은 경관을 해친 짓이며 사족(蛇足)에 다름 아니다.
동일한 면적이라도 시각적으로 여유롭거나 협소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수 있다.
감각적으로 호 불호와 미추도 느낄 수 있다.
설계와 시설의 선택 및 배치의 문제다.
수평과 수직 및 고저의 조화, 입체적 교차, 각종 시설의 규모와 형태, 효율적 배치에서 시각과 미각
(美覺), 실용성과 합리성 등이 판별되므로.
슬픔이 극에 달하면 되레 웃음이 나온다던가.
하도 충격적이고 어이없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기가 지나쳐서 포복절도할 일은 '연대별 블록 변천사''라는 해괴한 시설이다.
공원 바닥에 각기 다른 형의 블록을 10년 단위로 깔아놓고 거창한 제목을 붙여 놓았다.
도대체, 솔밭 또는 공원과 무슨 관련이 있는 블록들인가?
솔밭의 이전 주인 K건설업체를 기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담당자와 관계인들이 구민의 혈세로 먹고사는 자들이라면 그 구에 사는 것이 얼마나 자괴할 일인가.
어느 아파트에서는 단지 내에 설치했던 개 전용 배변봉지함을 철거했단다.
소액이기는 해도 지극히 일부인 애견가만을 위해 공금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는데 이에 비교할 수 없는 거액을 들여서 개 전용로를 만든 것이야 말로 문제다.
공정, 공평하지 못하거니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청결한 공원관리를 위한다는 것이 이유였으나 밤이 깊어갈수록 대부분의 개가 전용로를 이탈, 공원
전체가 개똥밭이 되니까.
애완동물의 체력 운동이라는 미명과 달리 개똥 처리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솔밭공원 내에도 개똥수거용 비닐봉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데, 그 함 안을 빼곡히 채운 것은 수거용 비빌봉지가 아니고 개똥이 가득 담긴 봉지들이었다.
"반려동물 위생봉지함', '한 장씩만 사용하세요'
콩글리시(konglish) 일 망정 영어도 곁들였다.
'Sanitary bag for pets', 'Only use one paper bag please!'
위의 글들을 모르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겠는가.
보는 눈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수거는 했으나 수거하지 않으니만 못한 짓을 한 것은 소위 애견가들의
기본 인성의 문제다.
악취를 풍기기 해를 거듭해도 콩고물 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인가 코가 마비되었는가.
관련 공무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항의하거나 비판하는 구민은 없고,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었다.
다과 불문, 구민의 혈세를 쓰는 일에는 혈안이 되지만 사후관리는 모르쇠 하는 공무원들, 떡고물론을
다시 들먹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공무원의 전형이다.
오호통재로다 솔밭공원
이제는 체념 상태가 되었지만 어떤 공사를 한다고 알릴 때마다 더럭 겁이 나기를 반복했다.
건건사사 개선의 반대인 개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원을 오픈할 때는 거리가 짧기는 해도 발바닥의 지압효과를 내는 길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돈 들여
만든 길을 다시 돈 들여서 해체해 버렸다.
선하심후하심인가.
수많은 나이 든 이들이 장기바둑 등으로 무료를 달래고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 공원 안에 있다.
한적하고 맑은 공기의 위치에 조성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이전 공사로 법석거렸다.
한데, 옮겨진 곳은 차량들의 매연과 소음 공해가 최악인 대로(大路) 지근이다.
왜 옮겼으며 누구를 위한 이전인가.
인근 주민들의 진정 때문에 옮겼다는 답변이다.
진정을 하면 다 들어주는가.
소란스러우니까 공원을 옮기라고 진정하면 공원도 이전할 것인가.
지자체 아게다처럼, 당국자의 임무는 구민들의 요구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필요불
가결한 것을 우선순위로 해결해 주는 일임을 알기는 한가?.
서울의 강북 쪽에 고령자가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까닭이 어떠하던 맑고 깨끗한 공기 마시고 더 장수할까 겁이 난 것이냐.
설마, 구민의 혈세를 구내의 고령자들을 위한 배려 아닌, 고령화 인구 증가의 억제를 위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할 텐가.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전전긍긍하는 중인데 솔밭근린공원 환경정비사업을 하겠다고요?
거두절미하고, 천하가 초상집 형국인 지금 그 일을 해야 합니까?
당장에는 아니라 해도 각각으로 죄어오는 코로나-19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가 당사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 시기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는 누구처럼 지구의 멸망 자체도 신의
초시간적 내재성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지구의 멸망이 끝이 아니므로 자기 일에 충실할 뿐이며, 그래서 새 봄을 맞아 당연히 할 일이다?
공원 안의 임의적 모임의 공간(바둑 장기 등)마저 폐쇄하면서 그 지역에서 요란한 공사를 한다는 것
이 모순 아닙니까?
'공원환경 정비사업 현수막'이 걸린 후 항간에 회자되고 있는 '담당자들이 용돈이 되게 궁한가'라는
말을 새겨 들어야 할 것입니다.>
부언/
두려운 것은 코로나-19 보다도 거액을 쏟아붓는 공사 때마다 더욱 망가져 가는 공원입니다.
수유(우이) 지역의 광대한 송림이 무참히 사라지고 겨우 남은 이 적은 장송들이 날로 더 기형화 되고
구제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당국자들의 대처는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유럽 어느 시골길(이베리아 반도)을 걷다가 만난 정원사의 말을 소개합니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우리 고래의 訓言인데, 그는 "나무를 아끼면 나무를 버린다"
(Ahorre árbol, hundir árbol)
작년(2020) 봄에, 솔밭공원 환경 정비사업을 하겠다며 구민의 의견을 보내달라는 플래카드의 e-메일
주소에 보낸(2020년 3월 24일) 내 의견이다.
한데, 메일은 열어보지도 않았으며 공사는 요란하게 진행되었고 결과는 염려한 대로 숨이 막힐 정도
로 답답한, 빈민가(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로 이해된다면 유감이다)의 놀이터로 진일보(?)했다.
머리 구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공원 담당자들(공무원).
앞으로, 그들은 어떤 몰골의 공원을 만들어 놓을까.
오호통재로다.
나는 '공원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침묵할 만큼 소심하지 않으며, 우리의 삶이 곤고했던 때
"이렇게 좋은 자연 혜택에 이렇게 못 사는 것도 기적"이라시던 내 은사의 말씀을 수시로 음미해 본다.
천혜의 자연을 사리사욕의 제물로 만들지 말고, 문화적 쇄국과 척화로 낙후되거나 불구와 기형아로
전락되게 하지도 말고, 식견과 능력이 모자라면 과감한 벤치마킹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다가 잠들게 될 것이다.
착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기 바라며 이 공원(Parque Municipal de Alta Vila)의 풀밭에 펑퍼짐하게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벌렁 드러눕고 싶도록 온몸이 나른해 가며 감기려는 눈을 말똥 하게 돌려놓은 것은 대형 ' i '자였다.
세계 공용 표지가 된 관광안내소(Tourist Information office)의 기호가 지근으로 다가온 것.
아침나절에 교차한 젊은 스웨꼬(스웨덴 청년)가 아게다에 좋은 알베르게가 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그가 간밤에 묵었다는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Santo António)로 숙박료가 12€다.
10€를 초과하여 진작에 포기한 숙소다.
이곳에는 내가 묵을 알베르게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아게다 강 다리밑을 점찍었는데 관광
안내소(Posto de Turismo de Águeda)의 위치가 그 다리 지근임을 의미한다.
아게다 강의 북쪽 뚝방가에 2013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주민이 5만 명도 되지 않는 지자체의 관광안내소로는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구조'(Com uma estru
tura moderna e atrativa)라고 자랑해도 될 만큼 보기 드물게 산뜻한 건물이다.
딱히 도움 받아야 할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외양(外樣) 만으로는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내부 구조도 살펴보려고.
심플(simple)하게, 그리고 클라이언트(client/방문객)가 안정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 위
주로 꾸며진 실내의 주인은 차분한 이미지의 중년녀.
지자체 아게다시의회의 직원(Funcionaria Camara Municipal de Agueda)인 마달레나 뻬레이라
(Madalena Pereira?/이름 적은 메모지를 도둑맞았기 때문에 확신이 없다)
관광안내소와 그 분야 종사자에게 일요일은 평일이다.
양의 동서나 문명의 선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평일 중에서도 피크(peak)다.
일요일은 특정 축일 외의, 정기적으로 손님(관광객)이 가장 많이 집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월요일과 화요일 양일 중 하루가 대체 휴일인데 이 지역은 월요일이란다.
방문 목적을 대충 말하고 텐트 설치에 도움이 될 안내를 받았다.
극동의 늙은 뻬레그리노가 지키려는 기본 수칙에 공감하는 듯 그녀는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안내한 장소는 아게다 강 다리가 코앞인 뚝방, 건물(Posto de Turismo de Águeda) 뒤쪽의
거대한 나무(느티나무?) 밑 잔디 공간이다.
비가 내릴 경우에 황급히 대피할 수 있는 처마 밑 공간(건물 밖에서 화장실에 출입하는 너른 통로)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으므로 천막 설치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금상첨화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음수대다.
아줄레주(Azulejo/뽀르뚜갈 특유의 도자기그림타일)로 장식했으며 주민들이 대소 용기에 담아 가는
아구아 뽀따벨(água potável/drinkable water)이 세차게 나오고 있는 샘.
업무의 종료시간인 오후 6시 안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그녀가 안내한 슈퍼마켓을 향했다.
관광안내직원의 외국어(영어) 실력이 수준급인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데 이 여인은 예외?
배치 조건 중 하나인 외국어의 구사력이 부족한 듯한데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일요일이라 중국인의 값 비싼 가게 외에는 거의 휴업임을 서로(그녀와 나) 잊었는가.
헛걸음을 반복하다가 한 볼런티어 여인의 도움(차량)을 받았으나 실패(휴일) 한 후 되돌아가 약도를
받아 들고 간신히 찾아냈다.
아게다 다운타운에서 유일하게 휴일 영업을 하나 마감 준비중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들어가지도 못
할 뻔 한 슈퍼마켓(Mercadana Agueda).
흔하디 흔한데도 흔치 않게(어렵사라)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바게트와 부대 먹거리.
이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먹기만이라도 편하기를 바랐을 만큼 유난하게 어수선한 하루였다.
어떤 탈이 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 때문에 더욱 그랬다.
다행히도 아게다 강 다리 옆 음수대가 분위기 좋은 야외식탁이 되었다.
특히 야간 조명으로 아게다 강 다리와 뚝방의 아름다운 정경이 내 기분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식사 후 뚝방 산책도 낮 시간들과 달리 안정감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비로소 정상을 회복해 귀가(천막)하게 되었고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가로등덕에) 천막 안 바닥에
엎드려 하루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고통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오카리나를 꺼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다가 잠들게 될 것이다.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맑고 깨씃한 물가로 인도하셨으니 이보다 더 다행인 일이 있는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