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마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7)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3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39).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성장하고 성숙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선한 열매를 맺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한 열매를 맺는 좋은 사람입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환경입니까? 복음(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씨가 없습니까? 아니면, 밭의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에서 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진리와 복음에 부합하는 삶입니까? 그렇다면, 밭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문제입니까?
길바닥 같은 완고하고 단단한 마음입니까? 그렇다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시다. 돌밭 같은 마음입니까? 그렇다면 돌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가시밭 같이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러하다면 복음의 기운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기운이 막혀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땀 흘려 묵은 땅을 기경하는 농부와 같이 부지런히 말씀보고 무시로 기도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선한 열매가 가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3장입니다. 우리가 마23장을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반복되는 구절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13,15,16,23,25,27,29)”라는 구절인데 일곱 번이나 반복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누가 이렇게 화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유대민중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경건하다는 무리들이고, 서기관은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는 성경학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마태복음은 말씀합니다. 또, 마태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마음을 찢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을 향해 마태복음은 “화 있을진저...”라고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을 행해 “뱀” 혹은 “독사의 새끼”라고 명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뱀은 사단이고 독사의 새끼라 함은 사단의 종이라는 뜻일 겁니다.
문제는 이 경고가 2천 년 전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서도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일까요? 이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했듯이 우리들도 말씀을 듣고 설교도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이것이 외식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반복되는 경고가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 있을지저 외식하는 최요한이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동체인 교회에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공동체-교회-에 자신을 알려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파송한 종(사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사장(死藏)시켜 버렸다는 겁니다.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이,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수차례 당신의 공동체를 부르고 모르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이들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황폐한 땅에서 버려진 느낌으로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그 메신저를 무시하고 그 말씀을 사장시켰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거나 말씀을 외치고만 있다면 우리도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가 같은 마음을 한 우리에게도, 돌밭과 가시밭 같은 마음을 한 우리에게도 부지런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마치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이 우리를 품었지만 우리는 그 품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황폐한 땅에서 버려진 느낌으로 하나님의 부재 속에 고통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도 하지만 황폐한 땅에서 버려진 느낌으로 하나님의 부재 속에 살아가는 원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다시 오시는 예수)”가 오시면 황폐한 땅에서 우리는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말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포기하지 말고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선을 심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2:6-8)”
말씀마치겠습니다.
지난 주간에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땅이 되게 하소서,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면, 오는 주간에는 “외식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듣고 외칠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기도했으면 합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견뎌야 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이 오시면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1)”
첫댓글 목사님 쉬는동안
저는 부지런히 밭을 갈아야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