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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운동
1. 류광수는 누구인가?
매월 발간하는 '다락방 전도 신문'에는 류광수 목사의 메시지가 실려 있다. 보통 2면에 실려 있는 데 , 여기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짤막한 그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옮기면, 고신대 졸업, 고신대학원 수료, 총신대학원 졸업, 현 다락방 전도 훈련원장, 현 다락방 전도학교 대표, 부산선교 협의회 실행위원, 현 동삼제일교회 담임목사이다.
다락방 전도 훈련원을 개설한 류광수 목사의 신상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고 또 알리려 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자기 저서의 작가란과 1995년 6월 7일 서울 파레스 호텔 라일락 룸에서 자청으로 행한 기자회견의 내용, 그리고 기독신보 (1991.12.21일자, 94.115-6일자, 21일자, 95.1.7일자,6.17일자 ) 등을 종합해 보면 고신대를 졸업하고, 고신대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또 총신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합동 측 부산노회에서 안수를 받았고,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 동삼제일교회를 개척하여 그 담임목사로 있고, 90년에 이르러 다락방 전도훈련원을 개설하여 함께 경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1991년 합동 측 부산노회로부터 도덕성의 문제와 이단성 문제로 인하여 정죄를 받아 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도덕성 문제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가 붙잡혀 수감된 일이라 하며, 이단성의 문제는 그의 강론과 행위 속에 김기동 등이 주장하는 귀신론을 동조한 색채가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 후에 예수교 장로회 고신 측 남부 노회에 가입하였으나, 교회의 위치와 소속 노회의 지역이 다르다는 문제로 말썽이 생겨 스스로 탈퇴하였다고 자변하고 있다.
2. 다락방 운동의 목표
류광수 목사는 그의 저서 '사도행전'이라는 책자의 서두에 다락방 전도회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락방 전도란 초대교회의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한 말씀 운동이다. 구원받을 자에게 필요한 메세지를 언제든지 준비해 놓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하는 운동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많은 성도들을 훈련시켜 핵심 요원이라는 이름을 주어 그들의 조직 속에 소속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미리 마련한 '전도 메세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데 먼저 교회와 교우들을 상대로 '다락방'이라는 전도의 거점을 확보한다는 것이 조직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락방 훈련원'의 목표는 광의로는 세계 복음화이며, 협의로는 한국 복음화라고 한다. 그런데 광의와 협의의 복음화 작업은 전도 요원 양성이라는 목표로 이어진다. 그들은 세계를 복음화시키려면 1천만 명의 전도요원과,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50만 명의 전도요원(일반성도 40만, 대학생 10만) 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95년 9월 10일자 '다락방 전도 신문'을 보면 1억 2천만 명의 일본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120만 명의 요원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3. 다락방 운동의 훈련 과정
- 다락방 운동의 전도 훈련은 4단계의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제 1단계는 전도 합숙 훈련. 제 2단계는 팀 사역자 합숙 훈련. 제 3단계는 전도 신학원 훈련. 제 4단계는 70인 요원 합숙훈련으로 되어 있다.
1단계와 2단계는 지역 전도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 3단계와 4단계는 부산 본부에서 행하여진다. 4단계 훈련을 수료하고 70인의 요원이 되면 류광수 목사의 도장이 찍힌 일련 번호를 부여받아 영원한 조직원이 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류광수 목사의 사상과 메세지를 어디서나 그대로 표출하는 자가 되며, 외부적으로 이 세상에 뱀처럼 지혜롭게 파고들어, 다락방이라는 거점을 확보하고 그것을 누룩으로 삼아 빵 반죽처럼 부풀리어 크게 확산시킨다는 전략을 실행케 하고 있다.
이 훈련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산하 훈련 기관의 모든 교재는 모두 류광수 목사가 작성한 책자와 강의 테이프만을 사용한다. 어린이 다락방, 중. 고 다락방, 대. 청 다락방 메세지는 한 달 분을 미리 작성하여 다락방 전도 신문에 발표한다. 일반이나 학교를 막론하고 사역자들은 이것을 기준하여 가르쳐야 하게 되어있다.
이 부분에서 이 단체가 갖고 있는 신학의 한계성과 그 조직의 한계성을 엿볼 수 있으며, 류광수 1인을 우상시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경향을 띠고 있으며, 특히 전도에 관한 한은 류광수 목사의 이 다락방 훈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류광수 목사가 작성한 훈련 교재들은 자체에서 만든 '도서출판 예수생명'에서 책자화하여 각급 기구를 통해 보급하는데 ,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어린이 훈련교재, 중. 고등부 훈련교재, 대학생. 청년 훈련 교재, 기초 훈련 교재, 제1단계 훈련 교재가 있는가 하면, 목회자 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 메세지라는 것도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책자들이 여러 가지 이름을 달고 출판되고 있으며, 그 판매부수는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4. 다락방 운동의 조직 형태와 규모
이 단체의 원명은 '다락방 훈련원'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쇼핑센터 403호실에 서울 본부를 두고, 부산 영도구 동삼 1동 666-2번지 동삼제일교회 내에 부산본부를 두어 전체를 통제한다. 모든 업무의 기획과 통제는 부산 본부에서 하고, 서울 본부에서는 주로 영업에 준하는 실천적 업무를 관장한다. 그리고 부산 본부에는 비서실이 있고, 서울에는 사무국장이 있는데, 비서실에는 현직 목사로서 보임된 비서실장과 개인 비서, 그리고 간사 1인과 상당수의 비서들이 있다.
이 다락방 훈련원은 주로 세 가지 형태의 교육 기구를 운영하는데, 그 기초가 전도학교이며, 그 둘째가 신학원이며, 그 마지막은 70인 요원훈련인데 이 세 단계의 학교는 모두 합숙훈련을 하는 것이 특징이며, 유료로 운영된다. 대개 1주일 분의 합숙비는 20만원 정도이다. 그리고 세계 선교국을 두어 해외에서 활약할 선교사들을 특별히 훈련시킨다. 각 기관에는 담당 교역자를 두어 그 업무를 전담하는 것으로 말하나 실재적으로는 비서실에서 총괄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에는 서울의 18개 지역과 경기의 15개 지역 등 33개 지역이 있고, 영동권(강원도) 4개 지역, 중부권 (대전과 충청도) 10개 지역 ,호남권 9개 지역, 영남권 24개 지역, 해외권 (일본, 미국, 대만) 에는 일본에 4개 지역, 미국에 2개 지역, 대만에 1개 지역 등 7개 지역이 국내외를 합하여 10개 지역이 있다. 도합 94개의 지역조직이 형성되어 있다. ( 1995년 9월 현재) 그리고 이것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각 지역에는 지부장과 총무가 있으며, 지역 전도학교를 개설하여 거기에 교장을 따로 두고 운영하게 한다. 그리고 전국의 대학생들을 상대하여 별도의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데, 서울, 안산, 용인, 안성, 성남, 안양, 인천, 수원, 천안, 군산, 전북, 대전, 충주, 청주, 부산, 전남, 경북, 강원, 광주, 마산, 창원, 진주 등을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 주로 목사 등 교역자로 보임한 리더 사역자를 세워두고, 그 밑의 각 학교에는 1명 이상의 팀 사역자를 두어 활동시키고 있다. 리더급 사역자가 전국에 33명이 있으며, 일반 사역자는 318명이 활약하고 있다.
5. 신학적 경향과 특성
1995년 5월 15일에서 18일간 미국 시카코에 있는 성민장로교회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집회를 인도하러 간 류광수 목사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신학교에 특강 강사로 초청되어 강의한 것을 '다락방 전도 신문'은 1면 톱기사로 실어 소개하면서, 트리니티 복음신학교에서 강의한 것을 주요 내용으로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서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를 소개하였는데, 이 신학교의 소개 속에 그들이 갖고 있는 신학적 경향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신문은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를 소개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하게 반대하며,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학교로서 100년 역사를 가진 미국 제일의 신학교라고 소개하였다. 이로 보면 류광수 목사의 출신 교단인 고신, 합동 신학의 근본주의적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신문은 일본 연합 집회를 소개하는 기사를 싣고 있는데, 여기에 그의 강의 개요가 나와 있다. 그의 강의는 대부분 4강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서도 4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강은 히스기야왕이 기도할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하루 밤에 시체로 변하게 하셨으며,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게 되며, 사단이 결박되고 천사가 동원되며, 기적이 일어난다.
제2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체험하며, 누릴 때 증거의 역사는 시작되고,
제3강은 언약 기도를 할 때 증거가 오며, 정시 기도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고, 무시기도를 할 때 시간, 사람, 장소, 모든 것이 전도와 연관되며, 집중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제4강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전도(선교) 전략에 관한 강의를 하며, 일본을 살리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을 얻어야 하며, 현재 일본의 문제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일본에 있는 성도들이 제일 먼저 영권 회복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싣고 있다.
다락방 전도 신문을 통해 소개된 그의 강의 개요는 대부분 이 틀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특징이 사단의 결박에 관한 점이 일단 주목된다. 이 신문에서 소개되는 간증들을 보면, 그 전도의 시작이 먼저 그 영혼을 누르고 있는 사단의 세력을 결박하고 난 후 전도하였다는 데, 아마 마음속으로 먼저 보이지 않는 사단을 향해 주님의 이름으로 결박 명령을 끊임없이 하면서, 피전도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사단의 농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단의 결박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유사함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박진규 목사는 '류광수씨의 다락방 교리와 김기동 귀신론과의 유관성'이라는 제목 하에 이 문제를 살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귀를 통하여 예수를 상대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이론 전개의 방법이 유사하다.
둘째, 마귀를 알아야 복음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마귀 복음론
세째, 귀신의 정체를 저승 못간 불신자의 사후 존재로 인식케 하는 잔령화귀론
네째, 인간이 천사를 부려 먹을 수 있다는 인간 용영론 등이 김기동의 것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류광수 목사의 메세지의 내용은 근본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이 혼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그의 독특한 신학적 발견인지, 또는 비판된 것처럼 김기동의 귀신론을 접목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사단의 세력에 대한 결박과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접목시켜서, 여러 가지 전도에 대한 분명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이나 악한 일들을 영적 결핍으로 이해하고 있고, 성경 해석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결론은 모두 전도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며, 여러 구체적인 방법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점도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이 합숙 훈련을 통해 체질화, 세뇌화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훈련은 거의 류광수 목사의 주입식 강의로 이루어져 있고, 비판적 토의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주 강력한 인상과 함께 나도 전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전도 훈련 방법론은 이미 여러 대학 선교기관이 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합숙 훈련 프로그램과 단계적인 훈련을 그 나름대로 수정하고 변화시킨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류광수 목사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는 데, 그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모든 전도 훈련 프로그램을 해보았고,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며, 다락방 전도 훈련의 우수성을 역설하였다. 이로 보건데 그의 훈련 내용은 이들 선교회의 훈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고, 특히 C.C.C나 네비게이토 같은 근본주의 계통의 훈련내용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또 차별화되는 것은 이들이 대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이들 훈련의 한계는 대학생 중심의 활동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고, 훈련 교재 또한 대학생 용이라는 한계가 있어 일반 교회에서 그 교재로 활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 다락방 훈련 메세지나 교육 내용은 아주 간결하고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극단성을 띠고 있어 그 말하는 논지가 분명하다. 이는 그 대상층이 아주 포괄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의외로 대학 교수 같은 이도 신앙에 있어서는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신앙, 경험적인 것에 쉽게 동화되며, 또한 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학력이 낮은 이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행동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함으로 이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 데 , 그것은 그들의 전도관이다. 이는 칼빈의 예정론을 그 신학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그들에게는 전도의 절대적 수동성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복음을 던지는 것이 전도이며, 예수 이름을 듣고 그 택함을 입기로 이미 작정한 자는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에 있어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또는 복잡한 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택함 받은 자들에게 먼저 사단의 권세부터 꺾고 예수의 이름을 듣게 하면, 그가 택함 받은 사람이면 영접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접 기도를 전도의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는 전도행위를 요구한다. 즉 마귀가 굴복할 때까지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한다는 역이론도 성립하게 된다. 또한 실제로 여기서 훈련받은 목회자가 개척목회를 할 때 사람이 모이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분의 말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 있으면, 그 말씀에 이끌리는 자들이 분명히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도 행위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으로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성령의 임재와 그 역사를 강조하는 현재의 성령운동과 그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 또한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6. 교회에 미친 영향과 교계의 태도 / 비판
1995년 9월 22일 국민일보 광고란에는 5단 크기로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을 경계함'이란 성명서가 게제되었다. 이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고려)에서 발표한 성명서인데, 그 교단의 신학부에서 이에 대해 연구한 사항을 통해 이의 이단성을 규정하며, 이를 한국 교회에 알려 경계하고자 한 목적이라고 밝힘으로 실제 다락방훈련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그의 전도 훈련을 받지 않은 자는 사탄이 무리라고 호도함으로 신앙 선배들의 복음에 대한 모든 노력을 무시하는 경향과 함께 기성교회에 대한 불신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둘째 신학적인 오류를 지적함에 있어, 먼저 여러 이단의 교리를 혼합하여 주장하고 있고, 특히 기독론에서 사탄배상설을 주장하며, 구원론에 있어 그들이 주장하는 축귀론은 중생과 성화의 과정 그리고 구원의 궁극적 개념을 오해한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고,
셋째 결과적으로 류광수씨는 부산노회가 명령한 치리에 불복종하였으며, 또한 다락방을 접한 평신도들이 교회의 불화를 조성하고 그 피해가 심각함으로 이를 경계한다고 밝히고 있다.
끝으로 전도는 류씨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의 운동은 비개혁주의 ,비복음주의 신학이며, 균형잃은 신학이고, 또한 감정신학, 축사신학이며, 교회사에 흔히 나타난 유사 기독교 운동 내지 사이비 기독교 운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다락방 운동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현재 장로회 신학교 안에서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을 정도이다. 극단적인 찬반 논의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은 이의 이단성 여부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고 보아지며, 여기서 필자는 이 운동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그들이 갖고 있는 선교목표에서 찾아지는 문제이다. 그들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 1천만의 요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 복음화를 위해 50만의 요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숫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이 세상의 선교를 자신만이 담당하고 있고, 기성교회의 전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또한 70인 훈련에서 드러나듯이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사탄의 종이라는 극단적인 비판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살펴볼 때 , 자신의 유일성만을 고집하는 폐쇄적 집단 종교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위에서 지적한 위험성은 기성교회에서 이 운동이 일어날 때 쉽게 교회분열로 이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대개의 교회의 사례를 두고 볼 때, 이 운동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목회의 방향으로 삼지 않는 한, 먼저 한 교회에서 다락방 훈련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의 차별성이 이루어지며, 두 세력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며, 교회의 분열로 치닫게 되는 것이 현재 보여지는 일반적인 사항이다. 다락방이 이러한 점을 깊이 자성하고, 그 폐쇄적 집단 종교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성교회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세째, 앞서 지적하였는데, 이 운동은 그 참여자가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주 큰 약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류광수 한 사람에 의해 의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단순화되고, 반복적인 메세지만이 전도의 메세지로서 유용하다는 미신을 갖게 하고 있는데, 이는 다락방 전도신문에 난 간증 기사를 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말씀 연구를 하지 않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류광수 목사의 메세지에 복음의 진수가 있고, 전도하는 데는 이로써 충분하다고 말하며, 설교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집단이 한 개인에게 의존되어 있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을 때, 그 집중된 개인은 신흥 종교의 교주가 될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는 점이다.
네째, 윤리적인 문제이다. 동삼제일교회의 부지가 원래는 종교 부지로 허가가 난 곳이 아니며, 이것이 허가가 나게 된 것은 불법적인 방법에 의해서였다는 것이 그 교회 주위에 있는 어떤 목회자의 증언이다. 그리고 이 대지를 구입하면서 매월 1억 이상의 빚을 계속해서 갚아야 하는데, 그들은 이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증언이다. 이럴 수 있는 이유(그들의 자금력)는 헌금도 그 몫을 차지하겠지만, 류광수 개인에 의해 집중되어진 교육, 행정, 조직 체제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긍정적인 평가도 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보다는 신흥 종교 재벌로 성장하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7. 맺 음 말
이상한 것은 실제 이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기도 한데, 이 훈련 프로그램을 받은 사람은 전혀 예수를 접하지 않은 비신앙인을 전도하기보다, 전에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가 회의를 느껴 교회 출석을 포기한 사람, 교회는 출석하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전도는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기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집단으로 이끄는데 더 큰 비중을 갖고 있어, 기성교회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으며, 특히 이 전도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교인 끌어들이기, 옆 교회 교인 빼앗기 등의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운동이 여타 다른 성령운동과 같이 교회의 유익을 가져오는 운동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이에 있다면, 그들은 앞서 지적한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재고하며, 자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기성교회도 이들에 대해 이단으로 정죄하여 또 하나의 신흥 이단집단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향하고 있는 장점들을 검토하여, 그들의 운동이 건전한 방향으로 자리 잡도록 인도하며, 또한 그들의 운동을 통해 이 시대에 성령의 도전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부록...
< 다락방운동의 신학적 오류>
먼저 류광수씨의 이단성을 밝히는 자료로 그의 테이프를 사용하였으므로 글로 기록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말이 되도록 만들었고 필요에 따라 설명을 붙였는데, 그것은 괄호 속에 넣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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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론에 나타난 문제점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는 말 중에서)∼∼' 영접한 다는 말은 또 잘 모르고 있는데요 전도를 할려면 영접이라는 말을 잘 알아야 됩니다. '목사님! 저 사람 영접했는데 구원을 확실히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이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접을 시켰는데 분명히 그 다음 보니 아니더라고(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 진리(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몽땅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영접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안 받아 들였다는 데 영접해도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겠지요? 뭔 말인가 알겠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진리를 자기 속에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영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가운데 이 부분('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의미함)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EBS 양육 테이프 2A(015)] 또한 류광수씨는 다락방 개요 「수용로」8B(492)에서는 "첫째,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① 아는 단계---(사53:5,요삼1:2)---그 다음에 ② 믿는 단계, 세 번째가 ---③ 영접하는 단계(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는 다르다는 말이다.
☞ 그러나 그랜드 종합주석에서 요한복음 1:12의 주해를 찾아보면, '영접하는 자' 라는 말은 구원은 개인적인 영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믿는다.' 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삶 속에서 인정하는 강력한 신앙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나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라는 용어는 동격이며, 중복성이나 반복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류광수씨는 영접하는 것은 요한일서 3장8절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 이란 내용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말도 결국 귀신파의 영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원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느냐?' 이게 또 중요하거든(요). 이런 것을 우리 머리 속에 언제든지 넣어 있으라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일으켜 세워야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셨으면 영접한 생활을 지속하라는 뜻이지 예수 영접을 중복하거나 반복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류광수씨의 말처럼 구원받은 사람도 예수를 영접하면 축복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재영접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음과 영접은 같은 것으로, 류광씨의 주장은 성경적으로도, 정통 신학적으로도 지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 교회와 신앙 참조 -
2. 류광수씨의 도덕성문제
① 음주문제 요즘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지도자의 "인격"이다. 그런데 류씨는 음주운전과 그것으로 인한 인사사고(본인시인) 및 마산 모교회의 세미나강사로 참석 시 음주 문제로 인해(A목사 증인)성직자로서의 도덕성을 상실한 적이 있다.
② 신임성 문제 그는 그 후 K교단 B노회에 가입하면 K교단 법에 따라 모든 것을 순종하겠다고 자백했지만 마산 음주 사건이 터지고 나자 이 사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1994년 3월 26일 S교회당에서 모임을 계획하였으나 참석하지 않고 대신 K교단 가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했는지 한 번도 공식적인 사과 없이 부목사 K씨와 장로 B씨를 보내 K교단 가입을 일방적으로 퇴진하겠다고 통보를 하여 (B노회 수습위원회 보고)목회자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결점을 드러내 놓았다. 지금까지의 류씨 행동을 볼 때 상당히 기회주의자적인 면이 다분히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③ 기성교회에 대한 비난 "지금 한국교회는 파선했다. 한국교회 98%이상이 마귀에게 사로잡혔고 한국교회90%이상은 싸우고 갈라져서 세운 교회이다.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에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의 말을 듣고 항해를 계속했다가 파선당한 사건과 같이 선장이 잘못해서 파선했다. 한국교회를 구원할 사람은 여러분(청중을 지칭) 뿐임을 믿으라. 깡패 같은 교회에는 깡패 같은 목사가 들어 가야하고 깡패 같은 교회에는 깡패 같은 장로들이 있어야 어울리고 우리같이 은혜로운 교회는 나 같은 목사가 있어야 하고 ---. 교회는 전도만 하면 되지, 당회고 제직회고 노회고 총회고 그게 무슨 필요인가?" 등등 기성교회의 교역자나 제도 등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그의 자료들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다. (H교단에서 K교단 B노회에 전달한 문서)
3. 기독론에 나타난 문제
1)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에 대한 오해 류광수씨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마저도 요한일서 3장8절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이 말씀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인용하느냐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복음편지" 테이프, Vol. 3B(300)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하나님께서)누구를 보냈느냐? 예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요한일서3:8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완전히 끝내버렸습니다. --- 여러분들이 이 영적인 부분을 모르면요? 인생에 대해서 절반은 모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 전체를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 보통 말이 아닙니다. 예수 영접한다 는 말이요---". 그리고 "EBS 양육" 테이프 Vol. 2A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강단에서는 언제든지 이기('이것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를 의미함)선포되어야 됩니다. 성경 66권이 전부 이것(귀신추방, 사단축출)을 선포하도록 다각적으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요."
☞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무엇일까? 디슨 (셩경학자)의 말로 우리의 입장을 삼아보자 성경은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일곱 가지로 나누었는데 즉 ①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기 위하여(롬 15:8-9), ②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하여(요1:18,14:9), ③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기 위하여(히5:1-2,4-5),④ 죄를 없애기 위하여(히 9:26,막10:45), ⑤ 마귀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하여(요일3:8), ⑥ 우리에게 거룩한 삶의 모범을 주시기 위하여(마11:29,요일2:6,벧전2:21), ⑦ 재림에 대비하기 위하여(히9:28)라고 했다. 이 7가지의 성육신의 목적을 성경 한 구절로 요약한다면 요한복음3:16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구절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위의 7가지 목적 중 "마귀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하여"(요일 3:8)오신 예수님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구원받은 사람도 예수님을 다시 영접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성경66권 전체를 요한일서 3:8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귀신론'의 영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속죄론에 나타난 오류 류광수씨의 "평신도 기초전도이론" 테이프 Vol 6A(296)에서 "하나님의 아들 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3:8). 이 말씀이 이해 되야 그때부터 창세기 3:1-6,16-20이 무엇 때문에 고난당하는가 알게 돼 요. --- 이것을 이해해야만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왜 졌는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로마서5:8, 요한복음14:6). 마가복음10:45 대속물로 오셨던 ---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리의 실패(죄)의 대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논 평 그가 말 한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오신 요한일서 3:8의 예수를 이해해야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알게 된다는 말과 김기동씨의 말인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르고(마귀론, 상, p24) 귀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사람에게 접근하는 영,p.193)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갚았다고 말하는 류광수씨의 주장은 사단 보상설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단 보상설이 무엇인가?
사단 보상설이란 "사단에게 우리의 실패(죄)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론으로서 특히 오리겐(교부)이 주장한 것인데 랴보드 박사(신학자)는 "사단이 정복의 권세로 택자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배상으로 사단에게 속전을 헌납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 그러나 사단은 죄인에 대한 법적 청구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의 해방을 위하여 보상받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단에게 배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요한은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12:31)고 했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5) 고 하였다. 그런고로 사단에게는 속죄의 청구권이 없으므로 죄인의 보상을 위하여 사단이 보상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사단에게 보상한 것으로 언급한 류광수씨의 주장은 사단 보상설로서 이 또한 김기동씨의 귀신론의 영향인 것이다. - 교회와 신앙참조 -
3. 천사론/ 마귀론에 관한 오류
1) 천사론에 관한 오류
류광수씨는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면 '천사 동원권'의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 천사 동원권이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에 천사를 동원하여 돕는다는 것이다. 즉 천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종이라는 것이다. 류광수씨의 말을 들어보자. ― 네번째 천사 동원권을 주셨다. 우리는 복음 전하러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주위를 천사들이 늘 지켜 주고 있음을 믿으라(전도기초 훈련45면) ― 두 가지 권세를 주셨다. 1) 사단을 결박하는 권세를 주셨다. 2) 천사를 움직이는 권세를 주셨다. (사명자 가이드 13면)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천사들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기도로 천사들을 사용할 권세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사는 종이기 때문이다. (현장 복음 메시지 제 41과)
☞ 천사동원권에 관한 류광수씨의 진술들은 김기동씨의 진술과 흡사한 면이 있다. 천사의 동원에 관한 김기동씨의 언급은, 류광수씨의 '천사동원권'과 김기동씨의 천사론이 모종의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김기동씨는 그의 저서 마귀론에서 '이기는 방법은 천사를 동원하여 능력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믿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128면에서는 이런 진술을 한다.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나온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철문을 뚫고 그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천사가 동원된 것은 곧 합심기도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천사가 성도를 돕는다는 사상은 성경적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은 사건에 대해 성경은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행12:6이 하) 히브리서 기자도 천사가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히1:14)그러나 천사는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는 주님이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필요시에 천사를 보내셔서 주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천사 동원권을 우리가 행사한다고 주장하는 류광수씨의 진술은 모든 것을 영들의 일로 보는 김기동의 마귀론에서나 나올 수 있는 논리이다.
2) 마귀론에 관한 오류
개혁주의 신학은 신론에서 타락한 천사로서 사단은 취급하나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류광수씨의 생각은 대부분 사단에 관련되어 있다. 류광수씨의 말을 들어보자. '마귀 얘기만 나오면 겁을 내는 사람이 있어요.---성경에 분명히 있어요. 아담, 하와를 꺽은 마귀는 감히 누구에게 도전하느냐? 예수님께 도전했고 이 사단은---지금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교회마다 시험이 일어나는 거 보면 똑 같습니다.---교회마다 들고 일어나는 중직자들 보면은 똑 같습니다.--- 뭐 전도가 뭐 어떻다 전부 핑계입니다. 원래 사단이 그래요'(94 전 국 전도 신학원 집회) '인생의 모든 문제는---죄도 아닙니다. 죄가 사단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단이 죄를 가지고 인류를 넘어뜨리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우리에게는 응답의 큰 문이 열릴 것입니다.'(다락방 파급단계2)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하고 사단하고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아니란 말이요. 보통 지금 말하는 사람은---'(EBS양육) 논평 죄와 사단의 일체를 주장하는 류광수씨의 인죄론은 개혁주의 신학과 거리가 멀다. 죄는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 즉 행위 언약을 어긴 것이다. 사단의 개입에 의한 인간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인 것인데 류씨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는 마귀문제의 해결에 복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사단과 마귀로서 구원뿐 아니라 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이는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이상수,1905-)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위트니스 리의 이단사상은 죄를 사단과 동일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위트니스 리가 죄를 사단으로 만들며 의인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단을 죄로 만들며 비인격화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죄와 사단을 동일시하는 것은 크게 성경을 벗어났다. 류광수씨의 죄와 사단을 구분할 수 없다는 일체사상은 성경을 억지로 해석한 결과이며 잘못된 사상의 영향으로 이러한 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죽어서 성령됩니까? 살아 있을 때 성령---그러니까 구원에 대해서 잘 알면 그런 실수 안할 건데 불신자 살아 있을 때 악령이 따라 다닙니다. 그 사람 죽어버리면 영혼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은 후손을 괴롭히잖아요'(복음편지 테이프)라고 설교하였다.
논평: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존재로 보는 것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같은 생각이다. 김기동은 그의 귀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라고 할 때 불신자의 영이 귀신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신자의 영을 귀신으로 취급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는 회개하지 않고 살았을 때 귀신 노릇한 것이고 죽었을 때는 귀신인 것입니다. '류광수씨의 말처럼 불신자의 영혼이 죽어 후손을 괴롭힌다는 말은 불신자의 사후 영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그는 필시 성령은 아니므로 악령이라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 된다'는 김기동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3)기 타
류광수씨는 육신의 질병에 관하여도 비성경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인생문제 가운데 육신의 문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육신의 문제가 왜 왔느냐? 그 영이 잘못됐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온갖 육신의 병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제 1장 기본메시지 P15)
논평 인간의 삶에 나타난 여러 고난 가운데 특별히 육체적인 질병은 정말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류광수씨는 이 육신이 병들고 아픈 것의 원인을 죄 때문으로 보고 영적인 밸런스(균형)가 깨뜨려졌기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새생명 강의록 P.102) 그러면서 우리가 자주 아픈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하였다. (3편 p.28) 그의 이러한 사고는 히브리 사람들의 견해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인들은 질병의 원인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다. 본인이든 부모의 죄든 죄의 결과로부터 질병이 발생하였음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육신이 병들고 아픈 것의 원인을 되의 결과로만 볼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이유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성경은 실로암 사건을 통해서(요9:1)질병의 원인이 반드시 죄의 결과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셨다. 류광수씨의 견해대로라면 신앙의 사람 바울과 디모데의 질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또 종교개혁자 칼빈이나 루터는 영적인 삶이 없었기 때문에 질병이 많이 있었는가? 믿는 자가 암이나 기타 질병으로 고생을 하거나 세상을 떠난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인가? - 교회와 신앙, 총신학보9.10 참조 - 4.
교회론에 나타난 오류 류광수씨의 기성교회관은 심각하다. "한국교회 98%가 지금 시험에 들었습니다. --- 한국교회 90%가 싸움에서 쪼개져 생겼대요. 그것도 내가 낸 통계가 아니고 --- 책에 나왔습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 국교회 98%가 마귀한테 잡혔어요. --- 인기, 명예 따라 움직이면서 복음하나도 안전하고 복음 전하는 것 다 막고 --- 너무 한국교회가 컬컬해요"(다락방 개요 - 수영로 11) "영의 세계를 똑바로 모르는 교역자는 무당보다 못해요(다락방 개요-수영로 8)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집사가 되도 변화 안됩니다. 마귀 손에 붙잡힌 사람은 장로가 되도 변화 안 됩니다"(다락방 개요 - 수영로 8) "마귀가 이것을(다락방) 막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지면 안돼요. --- 다락방을 마귀가 막습니다. --- 저는 15년을 해왔는데 제게 훈련받은 교역자들이 많아요. 음으로 양으로 하다가 그만둬요. 주로 그런 사람 보면 잡탕교인 만들어요."(다락방개요 - 수영로 9) "나는 여태까지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싸움하는 것만 보았거든 --- 여가 천국이지. 싸움하는 곳이 보수 신학인가? --- "(다락방 개요 수영로 7) 논 평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류광수씨는 기성교회는 사단이 역사하는 종교로 간주하고 교회의 중직자에 대하여 상당한 혐오감을 노출하여 왔다.
자신들은 진정한 복음운동을 하고 자신 은 전도를 위한 특별한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고 가르치나 그의 교회관은 어릴 때의 잘못된 시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하겠다. 자신의 인장이 찍힌 일련번호가 부여된 핵심요원만이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경과는 전혀 관계없는 주장이다. 이는 여타 이단 종파의 교주들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인간 누구누구가 주장하는 모임이 참 교회가 될 수는 없다. 또한 교회의 일꾼도 하나님이 세우시며 보내는 것이 지 특정한 사람에 의해 훈련받은 그가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베드로로서 하나님께 쓰여 졌고 바울은 바울로서 하나님께 쓰여 졌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만들어 놓은 과정을 거쳐야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기성 교회를 무시하고 자신의 운동만 부각시키면서 '균형'과 '합력'하여 주의 나라를 이뤄야하는 덕목은 팽개쳐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부정 하고 혼란시키는 과오를 범하였다.
5. 기타 류광수씨의 성경해석과 강의는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을 뿐 아니라 보편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류광수씨의 강의를 듣는 사람은 기존 교회의 목회나 제도, 그리고 방법 등에 혼돈을 일으켜 갈등에 빠질 우려가 많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기존 교회의 사역에 부적응하게 만드는 오류를 낳고 있다. 그의 자료나 강의록(현장복음메시지 1.2.3 및 새 생명 강의록)을 보면 극단적인 확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극단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류광수씨의 강의록을 읽는 사람들은 때론 자신(류광수씨)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처럼 느끼게도 하고 때로는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어렵게 만드는 사람 손, 발, 입, 산업 싹 다 묶어버 립니다. 확실합니다. --- " (현장복음 메시지 2편 p.12) "(자기에게 강의를 받았던 청년 하나가 따로 다락방 운동본부를 내서 자기의 다락방 모임 에 피해를 주었더니) 하나님이 조용하게 이 친구를 녹여버려요. 요새 중성자탄 있지요? 쏘면 조용하게 없어지는 것입니다." (현장복음메시지 3편 p.34) "앞으로 예언 합니다만 모슬렘 119개 나라 밥 굶어 죽습니다. 모슬렘 119개 국가가 밥 굶어 죽고 지진으로 망하고 맙니다."(현장복음 메시지 1편p.47) "저는 설교준비를 안합니다. 설교연구도 안합니다. 할 것도 없고 또 해지지도 않고 항상 누구 얘기만 하느냐? 예수님 얘기, 전도만 얘기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하되 다락방 전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은 기본원리를 빠뜨린 채 해왔기 때문에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류광수씨의 강의는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면서 기도를 통한 '체험'이 전도의 원동력임을 거의 모든 강의에서 주장하고 있다(현장복음메시지 2편 p.107, 134, 136, 새 생명 강의록 p.74, 77, 83, 88) 그리고 체험적 기도 응답이 없다는 것은 곧 예수를 진짜로 영접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도 응답이 없는 사람은 엄격하게 말해서 구원 받은 성도가 아니라는 표현인가? 이는 구원의 관점을 하나님 편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단정 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3일 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저는 3일을 넘긴 일이 없습니다."(현장복음메시지 2 편 p.12)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을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 해서 그래요."(현장복음메시지 2편 p.11) 류광수씨는 기도응답에 대해 성도는 그가 간구한 내용에 따른 체험적인 응답이 있어야 함 과 즉각적인 응답이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간구의 내용을 들어 주지 않겠다는 응답이나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응답도 있는데 그의 주장대로 한다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예 고후 12:8) 지극히도 성경적인 오류를 드러내 놓고 있다. 평생에 걸쳐 이루어질 기도의 응답인데 즉각적인 응답이 없다고 그것을 응답받지 못했다 속단할 수 있는가? 뮬러는 그가 죽은 후에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않았던가? -교회와 신앙참고-
4.결론
지금까지 류광수씨의 다락방 운동에 관하여 다루었다.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나타난 다락방 운동은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류광수씨의 다락방 운동은 정통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는 세 부류의 영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첫째는 윗트니스 리의 영향이요, 둘째는 귀신파(김기동 또는 한만영)의 영향이요, 셋째는 구원파의 영향이다. 근래에 와서 류광수 씨는 다락방 전도 운동을 이야기하며 요한 웨슬레와 무디도 고난을 받았고 일제치하의 신사참배도 노회가 가결했다고 하며 복음을 전하므로 고난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로마 카톨릭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다락방 운동을 칼빈과 루터의 종교개혁과 맞먹는 운동으로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분명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 카톨릭 만큼의 큰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범하고 있지 않다. 물론 한국교회 내에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국교회 내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개혁 당시처럼 기존의 것을 모두 무너뜨리고 거의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할 만큼 타락했거나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되지 못하고 있거나 복음이 곡해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혹 이러한 문제들이 그들에게 더 많이, 더 크게 보여 졌다면 지금처럼 교회를 무시하고 다락방만을 고집하여 교회를 분열시킬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가슴을 찢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개혁(수선과 보수)을 위 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을 크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 이 아닐까?
그리고 류광수씨는 다락방 운동에 대한 한국 교회의 입장을 지나치다고 하며 자신을 단지 전도자로만 보아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과연 선교현장은 이단의 분별이 불필요한 곳인가? 아니다. 선교현장은 오히려 이단의 분별이 더욱 필요한 곳이다. 이단의 교리가 선교현장 에 마구잡이로 뿌려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된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정통교단에 분명히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선교 현장에서 이러한 이단의 분별은 성경 안에서 시급히 그리고 정확히 이루어져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또 다락방측은 전도가 잘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전도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신학이 건전하다고는 말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람이 많다고 신리가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전도한다고 해서 이단이 정통이 되 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김기동씨도 10여 년 동안에 10만 명이 넘는 신도 수를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김기동씨의 귀신론을 정설로 받아 들여야 하는 가 라는 문제이다.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도 16년 만에 7만 명이 넘는 회심자를 얻었고 700 개가 넘는 지역 모임을 구성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 지방교회도 1966년에 시작되어서 전국에 60개 정도의 집회소를 확장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도 나름대로의 교세가 형성되어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류광수 씨는 '국내·외 교회에 올리는 글'이란 주제 하에 자신의 이단성 문제를 '말의 실수', '오해'라 고 설명하며 한국교회가 자신의 작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주지 못함을 오히려 못마땅해 하며 언론을 통해 글로 표현된 자신의 비판에 대해서는 '지나친 해석', '부분적 해석', '목적을 둔 해석'등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류광수씨의 이러한 주장은 변명에 지나 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자료만 보더라도 말의 실수나 오해라는 가벼운 변명으로 넘길 수 있는 단어 선택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류광수씨의 신학적 사상이 물씬 묻어나는 설교 흐름 전체의 문제인 것 같다.
끝으로 다락방은 현재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에서 이단으로 판정받은 상태이다. 신학과 관련된 깊이 있는 병적인 요소는 우리 스스로는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한국교회 내에는 하나님 앞에서, 성경 앞에서 이단을 전문적으로 진찰하는 의사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단이노라고 사이비성이 짙노라고 진단을 내렸다면 암이라는 병이 어떻게 발생하고 세포가 어떻게 증식을 하고 또 어떻게 사람이 죽어 가는지 우리 스스로가 모든 것을 알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의사의 판단에 조심스럽게 따르듯이 우리고 한국교회의 진단에 따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혹 순간의 실수로 다락방에 집착하는 자가 있다면 고집을 그만 부 리고 속히 돌아옴이 마땅하지 않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 다락방 전도가 옳고 기 성교회의 99%가 잘못되었다면 다락방 전도에 대한 오해는 구원에 집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면 한국교회의 잘못에 의한 교회 내 성도들의 잘못은 교회지도자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짚어보았으면 하는 것은 기성교회 내에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는가? 또 더 이상 전도를 할 수 없는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교회의 분열을 야기 시키면서까지 다락방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내에서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그 말씀에 사로잡힌 채 자신 속에 끊고 있는 열심으로 전도에도 힘쓰고 생활가운 데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면 될텐데---. 그 말씀이 생각난다.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열매로 알게 될 것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양적 성장이 꼭 열매는 아닌 듯하다. 필자의 생각으로 지금현재 다락방이 한국교회 내에 일으키고 있는 여러 가지 피해들이 오히려 열매의 한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하여튼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또 읽는 자들에게 조그마한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맑은 겨울하늘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조아린다.
류광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연구보고서
서론
류광수씨(이하 류씨라 칭함)는 195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고신대 신학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합동측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87 년에 부산 영도의 동삼제일교회에 부임하여 오늘날까지 그 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그가 세 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여 전도를 강조하면서 전국에 '지 회'를 설립하고, 여러 집회와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도방법'을 소개하고 홍보하면 서부터이다. 처음에는 건전한 기성 교회의 목사들과 성도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가 주장하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배우거나 응용하여 도입하려고 하였다. 전도에 대한 강조와 새로운 전도방법에 대한 소개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류씨가 주장하는 가르침과 실제 행하는 방법에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회에 혼란과 분쟁이 생기고, 심지어는 분열의 아픔까지 맛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 교단 에서는 1995년 광주은광교회에서 개최된 제 45회 총회에서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에 대한 '유사종교연구위원회'의 보고와 제언을 받고 "지금까지 관련된 교단 내의 인사에 대하 여는 불문에 부치되 다락방과 계속 관련하는 인사에 대하여는 적절한 권징을 하도록 가결" 하였다. 1996년 9월 합동측 총회는 류씨의 다락방운동을 이단집단으로 규정하였으며, 이어서 개혁측, 통합측,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교단 등에서도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계하거나 교단차원에서의 대책을 세우게 되었다. 본 교단에서는 지난 1997년 제 47회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한 결과 류씨의 다락방 운동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연구 보고토록 하였다. 이에 본 교수회는 그 동 안의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해서 현재까지 여러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판들이 나왔 고, 이에 대해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측은 반박성명서와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래서 본 연구서는 여태까지 진행된 비평과 반박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양측의 주장 을 비교하여 〈부록〉에 소개하였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존의 비평에만 의존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부정적인 선 입관과 편견에 치우치기 쉬우며, 다수의 견해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공신력을 얻으려는 유 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아무리 이단성이 있는 견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의 가르침에는 비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표현상의 오류와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극단적 성경 해석과 표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류씨를 옹호하는 이들은 설교자의 말이나 실수를 가지고 이단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적 행위 와 같은 것이며, "대한민국 어느 목사이든지 사람을 잡으려고 이렇게 단어 문맥 하나하나 따지면 이단 안 될 목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류씨는 또한 자신이 정통 교회에 서 성장하였고 정통 신학의 노선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상의 오류로 비판을 받을 만한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면 얼마든지 고쳐서 전도만 열심히 하겠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는 분명히 심각한 문 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며, 류씨의 입장 표명에는 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류씨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문제가 공적으로 제기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시 정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 그 는 구체적으로 비판받고 지적 받은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확실한 시인을 하기보다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부분이 저도 모르게 있었다고 하면 고치겠다."는 모호한 태 도를 취하곤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류씨가 진정한 개혁이나 수정의지는 없이 불리한 상황 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표면적으로는 수정의사를 표명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자신의 주장들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단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힘든 불건전한 운동이 오히려 교회에 더 치명 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류씨는 정통 신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정통신학으로 분명하게 정죄될 수 있는 이단의 입장을 공공연히 표방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그 는 정통 신학을 알기에 정통 신학이 이단을 규정하는 교리적인 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아주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사이비적인 가르침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와 다락방전도 운동은 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태까지 진행된 기존의 비판들을 참 고하면서, 우리는 문제를 새로이 파악하고 비판하려고 한다.
1.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 주장의 문제점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복음 전파운동이 바로 다락방의 시작이며, 루터와 칼빈의 말씀운동이 또한 다락방운동"이라 하였 다. 류씨의 이런 주장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합법성을 탄탄한 기초 위에 세우고자 하는 의 도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바로 이점에서부터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문제가 발단한다. 왜 냐하면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운동과 칼빈, 루터의 개혁운동은 전통적인 개신교가 주장하는 정통성의 성경적 근거요 역사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류씨가 정통 교회와 똑같은 성 경적 근거와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전도를 소홀 히 하는 기존 교회와 참된 복음전도에 힘쓰는 다락방전도운동이라는 두 세력을 대립시킨다. 여기에 이미 분열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정통 교회와 똑같은 근거 위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류씨의 오만한 구 상은 그 운동이 전개되면서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표면화되었다. 그는 다락방전도운동을 전 개하면서 기성 교회는 전도를 잘 안 하는 교회요 참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저버린 교회로 평 가절하하며, 다락방전도운동이야말로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양자간에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였다. 이처럼 다락방전도운동이 정통 교회의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양자가 서 로 대립하며 충돌하는 현상들이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류씨는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교회나 교단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그러 나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이 진행되면서 점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교단, 기성 교회와 구별 되는 소위 '참된 복음전도운동'을 한다고 하는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해 가더니, 결국 1997 년 9월 20일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도총회'라는 교단을 만들고 말았다. 그는 기성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도핵 심요원을 만들어내는 조직, 새신자를 훈련하는 프로그램, 전도학교, 전도신학교를 비롯하여 다락방전도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기성 교단이 가지고 있는 조직과 버금가는 대조직을 정비하였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돕는 측면 운동을 하겠다던 자 신의 거듭된 공언과는 다른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새로운 교회, 전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프로그램을 갖춘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함으로써 한국 교회 전체에 큰 혼란과 문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의 불씨가 이 미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에 대한 잘못된 주장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2. 류씨의 '전도운동'의 문제
류씨는 젊어서부터 '오직 전도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일, 결혼, 회갑, 여행 등, 심지어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산 영도에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고 전국 곳곳에 '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수위 세계복음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 다. 물론 이처럼 전도를 위해 헌신하고 전도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님 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막 16:15)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역시 "너희 는 거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마 28:19). 따라서 류씨가 '전도'를 강조 하고 이를 위해 있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운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 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1) 류씨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류씨는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너무 협소하다. 그는 종종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또는 "예 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만 말면 다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도는 쉬운 것이 다."라고 하며 "전도는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A"저 는 설교 준비를 안 합니다. 할 것도 없고 또 해지지도 않고 항상 누구 얘기만 하느냐? 예수 님 얘기, 전도만 얘기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것이 복음의 핵 심이고 요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사도들도 그렇게 전하였고, 우리도 또한 그렇게 전한 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전해야 하는 복음의 내용을 항상 그런 것으로만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 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1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분부는 그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다 포함되는 것이 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 곧 복음서에 있는 말씀이 다 우리가 전해 주고 가르쳐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전도의 내용'을 너무나 협의로 이해해서 불신자에게 처음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것이 전도의 거의 전부인 양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기성 교회는 전도를 하지 않는다 고 비방하면서 자기들만 전도하는 참 교회인 양 주장한다. 물론 류씨 자신도 전도를 좁은 의미로만 보면 안 되고 넓은 의미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전도란 '복음을 전파한 뿐 아니라 새신자를 양육하여 일꾼으로 성장시키고 다 시 그들을 삶의 현장으로 보내어 그 곳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의 '일꾼 양육'을 위한 교재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는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게 하는 '일차적인 전도'를 위한 훈련 및 사단 결박, 기도의 능력, 병 치료 등에 거의 치우치고 있음을 보게 된 다. 그러다 보니 류씨가 전하는 복음은 매우 치우치고 편협한 것이 되고 말았으며, 그리스도 인의 성화와 생활에 대한 강조가 매우 약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류씨는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이고 광의적인 복음을 축소하고 왜곡하여, 지극히 협소하고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또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성도의 올바 른 윤리와 이 세상에서의 건전한 삶이 등한시되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 를 소홀히 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이 주장하던 전도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경우 그 둥안 기성 교회에 불만을 느끼고 잘 적응하지 못하던 일부 교역자와 성도들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여기에 류씨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류씨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유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성경적 근거를 사도행전 2장 13∼14절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 렇게 말한다. "다락방 전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중심으로 미가 요한의 다락방(the Mark's Room)에서 시작하신 순수 복음 운동이었고 기도모임이었습니다(행 1:13∼14). 이것 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여한 운동이었으며, 유대교의 율법과 바리새인들의 사상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모든 교육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근거로 제시하는 사도행전 1장 13∼14절은 류씨가 주장하듯이 '다락방 전도' 를 위한 구절이 아니라, 그도 부분적으로 인정하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분부하신 바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기도회' 모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 120명쯤 되는 성 도들이 모여 기도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오늘날 우리가 꼭 그대로 모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기도회 모임'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역 사적 특수 상황 가운데 있었으며, 그들만의 독특성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류씨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이 곧 참된 복음전도운 동이요, 그것이 곧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 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복음과는 차이가 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좁은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 성도의 모든 삶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복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들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했지만 (행 9:20, 17:18, 고 전 1:23, 2:2등), 그 전파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치우치고 축소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그런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 원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과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날마다 하나님을 본받아 경건 하게 살 것을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와 벨릭스 총독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소망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하였으며(행 23:6, 24:15), 또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전할 때에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행 24:25). 이처럼 사 도들이 전한 복음은 포괄적이요 전체적인 복음이었다. 물론 사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을 증거하고, 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촉구하였다(행 2:38, 4:12, 26:31 등).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고전 1:21) 따라서 사도 바 울은 '유대인의 표적'이나 '헬라인의 지혜'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 했으며(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 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한다(고전 2:2). 이처럼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일차적인 전도'에 치중할 수 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도들은 류씨가 하듯이 '중요한 핵심부분을 반복교육'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가르쳤다. 오순절 나에 회심한 3천명의 무리들에게 사도 들은 날마다 그들을 '가르쳤으며', 거기에는 또한 '교제'와 '기도'와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사 랑'이 있었다(행 2:42∼47).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였는데, 그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 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 다."(행 20:20)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4∼5) 여기서 우리는 바울 이 전한 '복음 진리의 말씀'은 곧 '믿음'과 '사랑'과 '소망'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일차적인 전도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그리스 도인의 윤리와 인격, 성화와 생활, 나아가서 유익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이며 성경이 말하는 바 총체적인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 서에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빌 1:27), 또한 "그러므로 너 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하였다(골 2:6∼7).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에는 '교리 부분'과 그에 따른 '윤리 부분'이 있지만, 류씨가 전하는 다락방 북음에는 이 '윤리부분'이거의 없거나 무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하는 '교리 부분' 도 아주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내용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사단과의 대결구도로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류씨가 주장하는 다락방전도운동은 사도들의 전도운동과는 다른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3) 류씨는 종교개혁자들의 말씀운동을 잘못 이해라고 있다.
사도들의 복음전파와 가르침의 바탕 위에 세워진 역사적인 정통 교회들은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인 복음전파사역을 지향해 왔다. 류씨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다락방전도운동과 동 일한 것으로 주장하나,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씨와 같이 전도만 강조한 운동이 아니라 중세 카톨릭 교회에 의해 변질된 복음을 다시 회복하고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함으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확장해 가는 총체적 복음운동이었다. 곧 칼빈의 개혁운동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바로 세워 그 말씀을 온전히 기키고 따르는 데 역점을 기울인 운동이었으며, 칭의와 성화의 교리를 재정립하며, 교회를 성경적인 모습으로 갱신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려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시의 다락방전도운동과는 그 의미나 강조점, 목적과 성경이 아주 다른 것이다. 기성 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주님의 명령과 사 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교회를 주 안에서 바로 성장시키기 위해 직분자를 세우고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며 목회에 힘쓰고 있다. 이 모든 목회사역이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복음의 빛을 맑히 비추 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한 복음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다. 그 러므로 기성 교회가하는 모든 목회사역은 복음전파의 필수적인 요소요, 그 자체가 복음전파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복음전파운동의 포괄적인 의미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동안 복음전파 사역에 힘쓰고 있는 기성 교회를 전도 안 하는 교회로 비난하고 있다. 그 는 교회의 복음전파운에서 중요한 요소인 성화와 양육, 나아가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과 프 로그램 및 목회사역을 간과한 채, 일차적인 전도만 하는 것이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한 다. 이것은 교회에서 주어진 총체적인 복음전파사역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비성경적인 주장 이다.
4) 다락방전도 방법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은 아니다.
류씨는 다락방전도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인 듯이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도하되 다락방 전도하여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은 기본 원리를 빠뜨린 채 해 왔기 때문에 전 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류씨가 주장하듯이 꼭 자기들 방식대로 전도해야만 올바른 전도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전도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 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전도하셨을 뿐 아니라 열 두 명의 제자들 에게 조용히 가르치기도 하셨다. 또한 회당에서나 집에서나 산이나 들에서 가르치기도 하셨 고, 길 가면서도 가르치시고 식사하면서도 가르치셨다. 또 열 두 제자를 내어 보내면서 복음 을 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70명을 둘씩 둘씩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도 하셨다.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도들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설교 함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회개하고 믿은 자들에게는 사도들이 날마다 가르쳤다. 바울은 회 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길거리서나 시장에서나 어디서든지 기회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복음 전파의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꼭 어느 한 방법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류씨가 다른 전도방법을 비판하고 자신의 전도방법만이 전도되는 방 법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류씨는 복음전파의 궁극적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복음전파 사역의 한 단면만을 거의 전부인 양 부각시킨 나머지 다른 중요한 면들 을 백안시하는 오류을 범하고 있다. 그는 전도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전도의 궁극적 목적 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에 의하여 전도의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에 의하면 전도의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사탄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영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라 한다. 그는 전도의 목적을 인간이 누리는 혜택의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전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바로 강조 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전도의 목적을 주로 죄와 사탄과 비참으로부터 구원(liberated from)이 라는 것을 강조하나, 그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구원(liberated)이라는 점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전도만이 능력 있는 참된 전도로 생 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아처럼 120년 동안 전도했으나 아무 열매가 없어도 복음의 빛을 바로 밝힌 전도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전도이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목 적만 갖는 것이 아니고 끝내 복음을 거부하는 세상에 분명한 증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 들로 핑계할 것이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신자들의 성결한 삶을 통해 교회를 비 방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의 빛을 비치는 것도 전도의 일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전도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빛 과 소금된 삶을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마 5:16).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예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 8:29). 우리가 주의형상으로 변해갈 때, 곧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인격의 소유자로 새로워질 때 하나님 게서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이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 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다(요 15:8). 우리가 이 땅 위에 예수의 증인으로 남겨두신 이 유는 첫 사람 아담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두 번째 사람인 그리스도의형상을 입은 새사람의 모습이 어떤 r서인가. 이런 새 사람이 모임 참된 인간의 공동체의 모습과 삶이 어떠한 것인 가를 보여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곧 예수의 증인되는 삶이요, 세상에 빛을 비춘다는 의미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하 는 전도이다. 모든 교회와 신자들은 계속 주님을 입으로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입술의 전도는 전인적인 전도가 뒷받침되고 병행될 때 참된 복음 증거가 되는 것이다. 류씨의 가르 침에는 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제시되지 못함으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화와 회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6) 현재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락방전도운동이 아니다. 류씨는 침체하는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류씨 의 말은 교회성장의 돌파구를 찾아 보려고 고심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상당한 유혹으로 다가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일 수는 있어 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는 류씨가 강조하는 일차 적 전도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개인 신자들의 바른 양육과 성화, 교회 차원의 개혁도 또 한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이런 점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신뢰 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열심있는 복음전파와 함 께, 잃어버린 거룩과 신앙의 순결을 회복하는 철저한 회개운동이다. 교회가 교회의 참 모습 을 회복하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공동체가 될 때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진행될 것이 다. 한국 교회는 여태까지 전도에 힘쓴 교회로 알려져 왔다. 개신교 역사 백년이라는 짧은 기 간에 세계 교회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한국 교회가 그 동 안 전도에 열심히 매진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류 씨가 기존 교회는 전도를 안 하는 교회처럼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지금도 대다수 교회 들이 전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증인의 사명을 열심히 수 행하며 살고 있다. 이런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은 다락방전도운동처럼 거창하고 떠들썩 하게 진행되지는 않기에 류씨의 눈에 잘 감지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류씨는 기성 교회 의 전도는 '안 되는 전도'이고 다락방전도는 '되는 전도'라고 말하며 다락방전도의 성과를 크 게 과시하고 있으나, 백 년 전만 해도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지금은 천만에 이르는 교 인이 생긴 것은 바로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의 열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다락방전도운동으로 인해 교인이 늘고 목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례들을 들면서 이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듯이 보이는 사례 가 꼭 그 운동이 성경적이고 건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는 휘어진 막대기도 사용하신다.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 안에 잔재되 어 있는 산발적인 복음적 요소를 통해서 선을 이류시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이런 열매들은 다락방운동의 오류와 불건전성에도 '불구하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많은 문제점과 개혁해야 할 것들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요, 그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곧 나의 치부를 들추어 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눈물의 기도를 배경으로 한 건설적인 비판이 여야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사랑과 눈물의 기도가 결핍된 채 교회의 약점을 비판하 는 데 열을 올리는 것 같은 자세는 과거에 있어 온 이단의 전형적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우 리는 류씨가 그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교회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된 복음운 동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그의 오만한 태도 속에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어렵다. 성령의 사역자는 화평케 하는 자이며, 성령의 운동은 항상 화평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셨다(약 3:18). 그러나 류 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는 이 성령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색이 결여되었고, 오히려 교회의 하 나됨을 파괴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도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류씨의 메시지는 아주 복음적인 것 같으나 아주 교묘하게 비성 경적이다. 복음을 열심히 전해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하고 온갖 우상과 죄악과 어두움의 영 에 사로잡힌 이 민족을 구원하자는 류씨의 외침과 호소에 공감하며 '아멘'을 보내지 않을 목 사와 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기성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는 류씨의 비판에 도전을 받으 며 자신의 전도의 열심히 부족함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는 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대의명분 앞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이비운동이 전도라는 미명 아래 비판과 반론의 화살을 최대 한 피하면서,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교리적인 문제
1) '천사 동원권'과 '기도 응답'주장
류씨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이에게 일곱 가지 권세를 주셨는데 그 중에 '천사 동원권'이 있다고 한다. 류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사 동원,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주의 사자들 이 가(서) 기도하는 곳마다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가(보내서) 불말, 불병거를 동원시키 는데, 성경에 중요할 때마다 나오는데 왜 성경을 부인합니까? 성경에 있어요, 그리고 이 응 답을 우리는 지금도 받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순복음 ○○교회 주위에 우리 K 목사님 과 주의 종의 배후에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착 동원시키십니다. 이걸 보는 눈이 없거든, 이런 눈이, 성경 안 믿으니까 뭐! 그러니까 뭐! 왜 류 목사님은 천사 이야기를. 왜 못합니 까? 성경에 있는 거를. 하나님께 함(한번) 물어 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천사 동원권'에 대한 류씨의 이같은 언급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그는 신자가 직접 천사 를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는 성경 적 가르침의 한계를 벗어난 요소가 많다. 류씨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시고, 또 전도하러 가면 천사를 동원하신다면서,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주의 천사가 그를 구출 한 예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이 전도 사역에 천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듯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천사의 도움을 받기보다 는 오히려 버림을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하였던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내 가 수고를 넘처나도록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 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다(고후 11:23∼27). 또 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 말에 두셨으며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며 친히 손 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1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 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9, 11∼13)고 하였다. 류씨는 성경에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를 보편적인 것처럼 강조하므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 리고 있다. 또한 류씨는 참된 신자는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고 하면서 기도 응답을 다락 방전도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그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들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해서 그래요." 라고 하였고, 자신의 기도 응답이 3일을 넘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논외에 부친다 하더라도, 그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신자의 삶 속에 있는 부정적인 고난의 측면을 백안시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텔베르크 교리문답서 등 개혁 교회의 신조들은 성경의가르 침을 따라 신자의 불완전성을 강조한다. 신자는 아무리 높은 거룩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 라도 불완전하여 육신의 뜻을 따라 구하는 성향이 남아 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 지 아니하고 자기 육심에 이끌려 구한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다(약 4:3). 또한 비록 바르게 구했다 할지라도 그 응답이 오래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구한 그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참되 기도응답일 수도 있다. 예를들어 사도 바울은 선한 목적을 가지 고 하나님께 세 번 간절히 기도 드렸으나, 그 기도가 구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만 이 경우 그의 기도는 응답받은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고후 12:7∼9).
2) 십자가가 결여된 영광의 신학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이 개인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물론 죄의 근본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죄의 구습을 처리하는 문제나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자유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 있으며, 성격적 결함이나 질병, 또는 가정의 문제는 그대로 계속되기도 한다. 또 그런 문제들이 점진적이고 부분적으로만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류씨는 또한 전도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반복해서 말하지 만,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무리한 주장이다. 주님께서 가라지와 알곡을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그대로 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전도를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부분 적으로 해결될 수는 있으나 그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이상적 사회나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우리의 소망이요 기도 제목이기는 하나, 현세에서 실 현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자는 이 땅 위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신음하 고 고통하면서, 종말의 완전한 해결과 구원을 소망하며 인내로써 살아간다. 성령의 능력과 풍성한 은혜는 신자를 이 종말론적인 고난과 약함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며 십자가의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의 삶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도 있지만 동시에 신음과 슬픔과 고난도 공존하 는 것이다(롬 8:8∼25)). 정통 교회는 신자의 삶의 이러한 측면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대처하 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왔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한 '번영신학' 또는 '영광의 신학'을 비성경적이며 때로는 이단적 가르침으로 정죄해 왔다. 그의 가르침에는 십 자가의신학의 자취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에는 현재 '실현된 측 면'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류씨는 이를 균형있게 강조치 못하고 실현된 부 분에 치우침으로 신자의 삶이 지닌 종말론적인 요소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문제점을 안 고 있다. 류씨의 이런 치우친 주장은 광야의 여정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신자들에게는 시원한 안식 처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기존 복음이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시하는 참된 복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킴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한 때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번영신학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당긴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류씨의 이런 균형을 잃은 복음이 또 다른 형태의 번 영신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류씨의 전도운동은 참된 복 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쪽 진리만을 전하는 것이요, 성경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과장 된 약속과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순진한 영혼들을 교묘히 속이는, 진실하지 못한 전도 메시 지이다.
3)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의문제
류씨는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賠償設)과 관련하여서도 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기도 했다. 곧, 자신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아는 바도 없다거나, 또는 잘못이 있으면 이를 지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더 이 상 사탄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셨다."는 발언으로 야기된 사탄 배상설에 대해서는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변명은 그의 이런 변명은 그의 신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탄 배상설 에 관하여는 수영로교회 집회시에 설교하던 중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하지만, 그는 이와 유 사한 언급을 '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에서도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45 절, 대속물로 오셨던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 리의 실패(죄)의 댓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 니다. 뭔 말인가 아시겠지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락방측은 신학자가 아닌 한 설교자로서 한 말에 대하여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한다고 반박하지만, 이런 여러 정황을 보건 대 류씨의 신실성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하였다. " 그 사람 죽어버리면 영혼 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이 후손을 괴롭히잖아요." 류씨는 또한 마귀(귀신)가 가져다 주는 병의 특징으로 '병명 불분명, 이유 없는 두통, 머리에서 소리가 남, 치유되지 않 으면서 순간적 변동'등을 언급한다. 또 미혹의 영은 평생 따라다닌다거나 계속 증가되며 결 국 육체를 멸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류씨 자신은 김기동과의 어떤한 관련도 부인하고 있지 만 위와 같은 그의 발언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교회윤리적 문제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의 교회를 비방, 매도하고 분열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심각한 폐해를 야기하고 있다. 그 운동의 성격을 관찰해 보면 이미 그 속에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잘못된 영적 우월주의
류씨의 가르침은 주조적으로 교회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자를 예수를 '미든 사람'과 '영접한 사람'으로 양분한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만이 성령이 내주하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고한다. 그런 가르침에 회유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예 수를 믿었으나 영접하지 못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를 불신하고 다락방에 더욱 심취하게된 다. 또한 류씨는 기성 교회의 98%는 시험에 들어 있고 마귀에 사로잡혀있다고 함으로써 교 회에 대한 부당한 반감과 비판의식을 조장한다.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성 교 회 안에서 하나되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류씨는 부인할지 몰라도 그의 주장 자체 가 교회의 연합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요소들을 배태하고 있다. 결국 다락방전도운 동은 자신들만이 참된 전도운동을 하고 있다는 영적 우월주의 내지는 영적 엘리트 의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잘못된 우월주의는 그들의 폐쇄적인 교육이나 그것에 준하는 삶의 태도로 인해 더욱 고착된다. 류씨가 운영하는 핵심요원훈련, 팀사역훈련, 미션홈, 전도신학원, 선교사훈련원, 70 인요원훈련 등과 같은 많은 훈련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단순히 전도 훈련만을 위한다면 무 슨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것은 교회 일반적 전통의 토대 위에다 자신들만의 상층구조를 세우고자 하는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게재되어 있다. 그들이 현장을 강조하고 '미 션 홈'(Mission Home)을 주창하는 것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이 의도하 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교회사에 나타나는 '비밀회집소'(Conventicle)의 전철을 밟는 다.
2) 맹신적 추종자를 양산함
류씨의 많은 프로그램 중 특히 주일 밤마다 가지는 핵심요원훈련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 지지 않을 수가 없다. 목회자들을 저 멀리 경기, 충청, 강원도에서 영도 한 모퉁이까지 달려 오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루 종일 예배를 인도하여 피곤한 목회자들이 어떻게 달려올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무슨 목회가 제대로 되겠는가? 류씨가 정말 사심이 없다면 달려오는 목사들을 오히려 막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전도 방 법론을 다 가르쳤으면 그것으로 본 교회 목회를 잘 하도록 격려하고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류씨에게 배우기는 했으나 그의 집단에는 가담하지 않은 분들의 얘기가 그것이 다. 방법론만 배웠으면 됐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류 씨는 핵심요원훈련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영적으로 예속시키고 있다. 그 훈 령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가야만 은혜가 되고 힘이 생기고 다른 메시지는 생명이 없 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점점 다락방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영적 노예 로 전락하고 만다. 류씨는 자신의 운동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다 락방에 예속된 영적 어린아이만을 양산하고 있다. 강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다락방 전도운동일 따름이다. 이렇게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류씨의 맹신적인 추종자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이런 특정인의 추종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교회의 연합에 치명적인 해 악을 끼친다. 또한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정서적으로 굉장한 동 지의식을 가지고 있다. 기성 교회들이 다락방전도운동을 비판함으로 그들의 동지의식은 더 욱 고조되고 있다. 소위 진리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식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계기에 부딪 치면 일시에 결집하고, 편당을 지어 교회에 어려움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 생한 교회들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마침내 교회 분열이라는 아픈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이 에 대한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락방전도운동이 이렇게 교회를 분열시키는 운동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결코 성령의 사역 은 아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신다. 거룩하신 성령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참으시며 우리 안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신다. 성도간의 상호권면도 성화의 한 방편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내를 힘입어서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개혁해 나 가는데 적극적으로 헌신하기보다는, 전도의 열심을 빙자하여 교회를 정죄하고 분열시키는 행위는 결코 성령의 사역으로 볼 수 없다. 전술한 대로 다락방전도운동은 그 가르침이나 조직의 극단성 때문에 사실은 자신들이 표 방하는 전도운동에도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 다락방전도 운동에 열심히 가담했던 우리 교단의 어떤 목사에 의하여 자신의 교회에서 다락방훈련을 받 은 12명의 성도들을 인도자로 세워 보았지만 아무런 성장이 없었다고 한다. 전도란 말과 행 실에 모범이 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통할 대 효과가 있는 것이지, 교회안에서의 영향력 증대나 꾀하는 왜곡된 인격으로서는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별무성과일 것은 자명하 다. 이런 결과는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계에 도달한 목회의 돌파구로 다 락방을 찾는 목사들은 아무리 다락방에서 배운 것을 사용해도 별로 결실이 없음이 나타나고 있다. 전도란 참으로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열정에서 이루어져야지, 단지 교회의 수적 성장 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목회 사역에 별다른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해 야지, 그렇지 않고 다락방전도운동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비법인 것 같이 사용해 보아야 별 성과가 없을 것은 당연하다. 대구의 K 목사와 같이 간혹 다락방에 참여한 후로 교회가 성장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석한 바로는 그런 목회자는 다락방이 아니더라도 교회를 일으킬 수 있는 목회적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분들이다. 그런 경우 다락방이 방법론적으로 조금의 도움이 되었을 수 는 있다. 그러나 그것하나만으로 다락방전도운동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상쇄할 수 는 없다.
결론
류씨의 가르침에는 표현상의 오류와 극단성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위에서 살 펴본 바와 같이 많은 면에서 비성경적이고 불건전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위화감과 대립, 분쟁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배태하고 있다. 전도 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다분히 편향적이다. 그는 오로지 전도라는 하나의 각도에서만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도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복음이 성도들에게 주는 더 많은 은혜와 유익들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 수님과 사도들이 제시하고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복음운동은 단지 '일차적 전도'로만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총체적인 복음운동'이 다. 이에는 일차적인 전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성화, 이 세상에서의 '빛과 소 금'으로서의 삶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는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이 마치 전통 교회가 계속해온 총체적인 복음운동을 대체하는 운동인 양 주장함으로써 큰 혼란과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태도 는 지난 100년 이상 한국 교회를 인도하신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는 처사이다. 또한 그의 '천사 동원권'이나 '사탄 결박권', 그리고 '귀신론'등은 상당히 치우치고 편중된 가르침 으소서, 매우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류씨의 다락방운동은 가는 곳 마다 성령의 열매인 화평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반목과 질시를 초래하며, 교회에 덕을 세 우기보다는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이단적 성격을 띤 불건 전한 운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 교단에 소속된 a고사와 교인들이 류씨의 다 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일절 금하고, 성경이 제시하고 기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 해 온 총체적인 복음전파운동에 더 한층 매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성경적 복 음전파에 대한 바른 교육을 교단 차원에서 강화함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에 대한 연구 보고서
1.질의 요지
서울북노회장 문장식 씨가 제출한 '류광수 씨(다락방 전도훈련원)에 대한 질의 요지'는 아래와 같다.
#제목:'류광수 씨의 다락방 전도운동 이단성 여부 질의의 건'(서북노 제25-4호,1995.11.9)
#질의 요지:1991.11.26 예장(합동)부산노회 제133회 제1차 임시노회에서 목사 면직당한 바 있고,1995.9 예장(고신) 제45차 총회에서 류광수 씨의 이단성을 지적한 바 있으나, 본 총회 사이비.이단 대책위원회의 어떠한 언급이 없으므로 본 노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지도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실정이므로 이단성 여부를 질의하오니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대구남노회 소속 교인 길호덕 씨 외 103명이 제출한 진정서(예장총 제80-715호, 1996.7.15)
2.연구결과
(1)다락방 전도운동의 개요
*류광수 씨
다락방 전도 훈련원의 창시자요,원장인 류광수 씨는 (부산 동삼제일교회)예장 합동측 부산노회 소속 목사였으나, 1991년 11월에, 류씨가 베뢰아 귀신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1987년에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것 등의 이유로 그 교단으로부터 면직된 자이다.
*다락방 전도운동이란?
류광수 씨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정의하기를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는 줄 믿고, 전도의 지역에 침투해 들어가서 전도활동을 펴기 위한 성경공부활동"이라고 한다([평신도가 읽을 전도 훈련 교재-전도훈련교재1] p.11)즉 부산에 있는 류씨의 교회(동삼제일교회)에 본부를 둔 '다락방 전도훈련원'에서 합숙 훈련을 받은 요원이 전도 지역에 들어가서(학교,직장,기관 등 포함)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전도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락방 전도 훈련원은 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역에 전도학교,전도신학원 등을 두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천만 요원과 국내 40만 요원을 양성하고 '10만 대학 요원'과'10만 중고 요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다락방 전도신문,도서출판 예수 생명, 다락방 방송센타(영상 다락방) 등의 기관들을 통해서 류광수 씨의 '다락방 메시지'등을 담은 교재와 녹음(녹화)테이프를 공급함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2)다락방 전도운동의 문제점
*류광수 씨의 핵심사상은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는 잘못된 마귀론에서 비롯되었다.
류씨는 김기동(베뢰아 아카데미) 마귀론의 기본 사상과 유사한 구도 속에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결박하라'(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 교재-전도훈련교재1 p.15, 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현장메시지4 p.12, 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 메시지-현장메세지3 제44과)고 하며,'성도에게는 기도하면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천사동원권이 있다'(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현장메시지4 p.31, 새생명 p.13, 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 전도전략 p.122)고 주장한다. 또한 자율신경이 약해지면 병이 든다고 하면서도, 모든 영적,정신적, 육체적인 병은 마음을 타고 들어오며, 마음의 병은 악령의 활동이며 특히 정신병,영혼의 병은 사탄(마귀)과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 때문이라거나, 재난 불화 실패같은 것이 연속되는 것은 전부 영적인 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미혹의 영이 평생 따라다니고 계속 증가되어 결국 육체를 멸하게 한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 메시지-현장메세지3 제8,9,10,49과)고 주장하여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고 있다.
류씨의 위와 같은 가르침이 비록 김기동의 마귀론과 온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류씨의 변명에 의하면 자신도 김씨의 마귀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고 하며(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 전도전략 p.120) 단지 역술인과 무당들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예수가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는 류씨의 주장은 김기동의 마귀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한다.
류씨는 '다락방 전도훈련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전도 훈련을 시키는 것보다 '다락방 전도 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전도 운동을 목적으로 다락방식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통교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다락방 사상들을 주입시킴으로 교인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의 전도방법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전도의 유일한 방법인양, 강조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다락방을 우월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난다.
구원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류씨는, 예수 믿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영접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한다(다락방 전도전략 p.37-38, EBS 양육 테이프 2A, 복음편지 테이프 1A, 복음편지 테이프2A). 또한 믿음에는 '첫째는 예수를 아는 단계(사53:5,요삼1:2)가 있고, 둘째는 믿는 단계가 있고, 셋째는 영접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다(테이프).
즉 "정확한 복음을 빨리 전해야 돼요...전도지를 들고 나가기 전에 성도들로 하여금 이걸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올바른 구원을 몰라 지금 너무 너무 확신없이 방황하거든요. 신자 가운데 수많은 신자들이 지금 이것이 안돼 가지고 방황하고 있습니다."(복음편지 테이프1A)라고 하고, '교인들의 80%가 믿지 않는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 메시지-현장메세지3, 제28과)고 가르쳐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 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구원론에까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류씨는 자신의 다락방에 대하여 문제들이 제기되자 수차에 걸쳐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나 방법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히거나, 구체적으로 시정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없다.
3.연구 결론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은 비록 전도운동이라 주장하지만 그 가르침 가운데 마귀론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는 등 사이비성이 있으므로 제81회 총회 이후로는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며,본 교단에서 운용하고 있는 총회 전도학교를 적극 활용토록 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
가. 다락방 전도운동의 개요
1) 류광수씨
다락방전도훈련원의 창시자요 원장인 류광수씨는(부산 동삼제일교회) 예장합동측 부산노회 소속 목사였으나 1991년 11월에 류씨가 베뢰아 귀신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1987년에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으로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것 등의 이유로 그 교단으로부터 면직된 자이다.
2) 다락방 전도운동이란?
류광수씨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정의하기를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는 줄 믿고 전도의 지역에 침투해 들어가서 전도 활동을 펴기 위한 성경공부 활동"이라고 한다. (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 전도훈련교재 1, 11쪽) 즉 부산에 있는 류씨의 교회(동삼제일교회)에 본부를 둔 "다락방전도훈련원"에서 합숙훈련을 받은 요원이 전도 지역에 들어가서(학교 직장 기관 등 포함)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전도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은 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역에 전도학교 전도신학원 등을 두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천만 요원과 국내 40만 요원을 양성하고 '10만 대학요원'과 '10만 중고요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다락방전도신문, 도서출판 예수생명, 다락방방송센터(영상다락방)등의 기관들을 통해서 류광수씨의 '다락방 메시지' 등을 담은 교재와 녹음 (녹화)테이프를 공급함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나. 다락방 전도운동의 문제점
1) 류광수씨의 핵심사상은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는 잘못된 마귀론에서 비롯되었다.
류씨는 김기동(베뢰아 아카데미) 마귀론의 기본 사상과 유사한 구도 속에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결박하라'(평신도가 읽을 전도훈련교재-전도훈련교재 1, 15쪽, 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현장메시지 4, 12쪽, 목회자, 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 메시지 - 현장메세지 제 44과)고 하며, '성도에게는 기도하면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천사동원권이 있다(전도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현장메세지 4, 31쪽, 새생명 13쪽 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122쪽)고 주장한다.
또한 자율신경이 약해지면 병이 든다고 하면서도, 모든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병은 마음을 타고 들어오며, 마음의 병은 악령의 활동이며 특히 정신병 영혼의 병은 사단(마귀)과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 때문이라거나, 재난 불화 실패같은 것이 연속되는 것은 전부 영적인 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미혹의 영이 평생 따라다니고 계속 증가되어 결국 육체를 멸하게 한다(목회자, 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현장메세지 3 제8, 9, 10, 49과)고 주장하여 구속사를 마귀와의 대결로 보고 있다.
류씨의 위와 같이 가르침이 비록 김기동의 마귀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류씨의 변명에 의하면 자신도 김씨의 마귀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고 하며(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 120쪽) 단지 역술인과 무당들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예수가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는 류씨의 주장은 김기동의 마귀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한다.
류씨는 '다락방전도훈련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전도 훈련을 시키는 것보다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중심으로한 전도운동을 목적으로 다락방식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통교회에서 수용할 수 없는 다락방 사상들을 주입시킴으로 교인들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나의 전도의 방법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 전도의 유일한 방법인양 강조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성교회보다 다락방을 우월시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3)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난다.
구원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류씨는, 예수 믿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영접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복음이라고 한다.(다락방전도전략, 37-38쪽, EBS양육테이프 2A, 복음편지 테이프 1A, 복음편지 테이프 2A). 또한 믿음에는 '첫째는 예수를 아는 단계(사53:5, 요삼1:2)가 있고, 둘째는 믿는 단계가 있고, 세 번째는 영접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다(테이프).
즉 "정확한 복음을 빨리 전해야 돼요. … 전도지를 들고 나가기 전에 성도들로 하여금 이걸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올바른 구원(을 몰라) 지금 너무 너무 확신이 없이 방황하건든요. 신자 가운데 수많은 신자들이 지금 이것이 안돼 가지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복음편지 테이프 1A)라고 하고, '교인들의 80%가 믿지 않는다(목회자,전도자를 위한 현장복음메세지 - 현장메세지 3, 제28과)고 가르쳐 다락방 전도운동 과정에서 기성교인들에게조차 다락방식으로 영접을 시키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구원론에까지 심각로 문제로 여겨진다.
류씨는 자신의 다락방에 대하여 문제들이 제기되자 수차에 걸쳐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나 방법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히거나, 구체적으로 시정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만한 일이 없다.
3. 맺는 말
류광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은 비록 전도운동이라 주장하지만 그 가르침 가운데 마귀론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는 등 사이비성이 있으므로 제 81회 총회 이후로는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며, 본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총회전도학교를 적극 활용토록 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다락방집단으로 부터 피해입었다."
근 10년 전부터 조국 교회를 크게 어지럽혔던 다락방 운동'은 한국 12개 교단으로부터 이단, 이단성, 사이비 집단으로 지목이 된 이후 한국 교회에서 설 땅이 없으니까 이민 교회와 1.5세 교회, 2세 교회, 그리고 Campus 전도에 큰 영역을 차지할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복음 편지 (다락방 전도, 공부 교재) 영문판(The Gospel Letter)은 교리에 희박한 2세들, 1.5세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Poison Book으로서 1세들이 바른 진리에 서서 지도해 줌이 없이는 앞으로의 2세 교육에 대한 많은 수고는 헛 것이 될 것이고, 1세들의 신앙과의 이질감 속에서 교회 분쟁이라는 큰 싸움도 멀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본인은 P.C.A 산하 한인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실제적으로 다락방 집단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 이 악한 영향은 지교회가 성장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1. 다락방의 현주소 류광수 씨는 91년 말 부산 노회 (합동측)에서 면직된 자로 더 이상 목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목사님들 중에 류광수씨가 최근에는 순복음만 전한다'며 류씨의 최근 설교 테이프를 들어보라'고 다른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권하는 것은 여전히 이단 다락방 운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처사다.
더더욱 기가 찬 것은 김기동적 귀신론과 다락방 운동에 빠졌던 목사님들이 회개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돌아 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무서운 사탄의 옷을 입고 어진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은 몇몇 P.C.A 목사님들이 현재 한국 교회를 어지럽히는 가계 저주론에 사상을 가지고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은혜로 끊으라는 설교를 신앙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맘대로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자료는 요구에 의하여 제공할 수 있음.)
2. 오늘날 잘못된 다락방 운동 이단의 속임수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는 사자처럼 무서운 모습으로도 가장하여 나타난다 (벧전 5:8). 즉, 이단은 전도운동, 복음운동, 성경운동, 성령운동, 기도 운동, 다락방 운동, 연합운동, 부흥운동 등의 간판을 걸고 나타나고 많은 성도들은 이 거창한 간판만 보고 따라가다가 미혹을 받아 부끄러움과 멸망을 초래한다.
이단에 미혹을 받는 자들은 스스로 무엇을 안다고 하나 실제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자들이며 대다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버리고,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여 새로운 방법, 새로운 자리 그리고 새로운 목회를 추구하다가 올무에 걸린자들이다.
3. 다락방 운동의 교리적 비판
1) 성경관 성경은 분명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하지 못한다 (마 5:18)'고 하였다. 그러나 다락방 집단, 전도운동의 교리는 여러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보태는데 많은 수고를 하였다.
(1) 십자가 신학의 결여 류씨의 교리에는 십자가 신학'에 대한 자취를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자의 특권과 구원 받은 자의 축복을 강조하므로 자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에 대한 진리는 결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6가지 저주, 7가지 축복권은 성경에 위배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끼어 맞추다 보면 많은 오류를 범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억지로 보태고 빼면 자동적으로 이중계시를 강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즉 이중 계시란, 기록된 성경 말씀 외에 억지로 다른 것을 첨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부분들을 마음대로 빼어 버리기를 식은 죽 먹듯 하지만, 이단들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에 없는 소리들을 슬그머니 보태기를 지능적으로 잘 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빼고 보태기를 잘해도, 계시록 22:19절에서는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할 것을 확실하게 계시하였다.
2) 신관 다락방 운동은 이단적 삼위일체론과 범신론적 성령론을 주장한다. 다락방 교회는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 것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는 것을 삼위일체라 하였다 (EBS 양육 테이프 vol. 2. A 163, 새생명).
3) 원죄론 다락방 운동은 만세 전의 예정 교리를 부인하는 잘못된 원죄론을 주장한다. 다락방 교회는 원죄란 인간이 마귀의 손에 딱 붙잡혀서 못 빠져 나오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전도란 이 마귀의 쇠사슬에서 건져내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원죄.....(계속)
'예장 합동'측의 말씀보존학회 '이단' 정죄에 대해서 (일부 개정)
그 동안 류광수의 '다락방' 운동처럼 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고들 하는 '말씀보존학회'가 예장 합동측으로 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결론적으로 '기존 교회는 모두 이단'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조심성 없는, 비성경적일 수 있는 발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존 교회에서는 과연 그 열매를 보더라도 이때까지 참으로 많은 비성경적인 오류들과 부작용을 수도 없이 잉태하고 출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누가복음 6:37을 섭불리 적용하자는 것은 더 큰 오류라고 판단된다. 예장 합동측은 말보회(이후로 '말씀보존학회'를 앞에서와 같이 말보회로 약칭함)를 정죄함으로써 자신들이 예장 통합과 합쳐지는 것을 합리화하고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예장 통합의
'눈의 가시(말보회)'를 손쉽게 제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예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진정한 성령의 열매가 없으며 결코 성경적으로 합리화 될 수 없는 움직임이다.
말보회측는 너무 용기만 앞서서 뱀처럼 지혜가 없었다(마태복음 10:16). 얼마전('98.10월?) 다락방측의 류광수 목사가 직접 앞장서서 자신들은 이단이 아님을 변론하는 공청회를 가졌다고 하지만 기존의 교단측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기성의 교단들의 뿌리 깊은 문제들은 결코 에큐메니칼 회의들을 해서 해결될 것은 아니다. 올바른 성경역본으로 먼저 돌아가는 출발점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이다.
말보회가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만든 것은 한국땅의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너무도 잘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매우 칭찬하시는 일이다.
최근에 TR(공인 원문)과 흠정역(KJV)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박창환'같은 사람들은 아예 TR의 실체를 규명하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언급을 하고 심지어는 성서침례교회의 권위있다는 '장두만' 박사는 이 흠정역(KJV)에 10가지 이상의 오류가 있다고 '두란노'의 '목회와 신학'에서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즉시 이송오 목사(말보회 대표)는 이에 응수하여 흠정역(KJV)에 전혀 오류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물론 그들의 잡지는 일반에 잘 없으므로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일반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필자는 최근(1999.3) 이 자료를 접하게 되었는데 명백한 장두만 박사의 오류였다. 흠정역은 오류가 없다!
여기에는 반드시 필사본 문제가 언급되어야 함을 주지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필사본에 대한 것은 '말보회' 사이트와 다른 성경역본에 대한 사이트를 오가면서 잘 비교/대조할 필요가 있으므로 독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나는 왜 그렇게 잘된 성경을 수거해 가는 지 기존의 교회 서점들을 이해할 수 없다! (16세기 말엽의 엘리자베스 시대의 '쉬운' 영어로
되었지만 기존의 영한 사전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TR과의 면밀한 비교/대조 즉 Concordance를 통한 작업으로 완성하였으므로 무오한 흠정역을 영문판을 읽었을 때 영한 사전의 오류를 피할 수 있도록 한글화하였다고 함. 그리고 안티오크는 말보회를 TR주의자라고 오인하는데 TR주의자는성서침례교회의 장두만 박사같은 부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안티오크는 오판했다.)
모든 일은 매우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카톨릭의 매우 '간교한' 선교회 '예수회'의 뱀처럼 지혜로움을 잘 배우기를 원한다. 예수회의 사제들은 심지어는 마리아를 반대하는 곳에서도 적극적으로 위장하고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그 간교함은 때로는 과연 본받을 만하다.
말보회의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인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권위를 믿고 암암리에 읽어온 사람들이 잔잔하게 전파해 온 영향력들이 이번 일로 인해 상당히 타격을 입은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무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 편이라고 얘기하셨듯이 아웃사이더들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사서 보기가 정말 어려워졌으며 또한 이것으로 인해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순전한 번역본인 흠정역의 권위가 적지 않게 손상되었다! 또한 럭크만 주석서 구하기도 정말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빈야드 운동'과 '브라운스 빌' 그리고 '프라미스 키퍼스' 에 관한 책들은 구하기가 꽤 수월하다!?
이단 사역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지혜롭게 그러나 무척 정확하게 일도양단(!)의 날카로움과 온유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상당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말보회는 무척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다. 그리고 말보회는 이때까지 선지자 역할을 매우 잘했다. 세대주의를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는 입장에서 오히려 안티오크의 '다시보는 성경' 도서 보급에 있어서는 지혜로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매우 뱀과 같은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는 도무지 말해도 듣지 않는 완악하고 극단적인 유대인들을 피해 다니셨고 오히려 때가 이르렀을 때 담대하게 거부하지 않으시고 나아가셨다!
칼은 향방없이 쳐서는 안되며 매우 지혜롭고 정확하게 휘둘러야 한다. 럭크만 박사가 얘기한 것처럼 말씀 곧 6척의 칼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매우 단련된 훈련이 필요하며 일도양단의 정확성을 가지고 무장한 후 한번을 휘둘러도 정확히 휘둘러야 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왜 비에큐메니칼측인 예장 합동측이 말보회에 대해 이단 시비를 조사해 왔을까? 예장 통합측 등은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해 솔직히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에큐메니칼 운동의 뿌리는 굵어졌고 지금은 예전에 탈퇴했던 부류들도 서서히 다시 동조와 가담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참으로 성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 위험한 일들이다.
에큐메니칼 운동 특히 카톨릭과의 연합운동은 명백히 성경의 원칙들에 위배되며 당연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할 일이다!
어떻게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람들과 그리고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가? 차라리 구원파(유병언 계통)측 을 오히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다 아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임을 자부할 수 있을까? 그 징계의 일례로 이미 통합측은 적지 않게 초교파 선교회 등으로 청년들의 열정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그들의 성서 공회를 통한 심각한 잘못 즉 잘못되고 오류 투성이인 개역 한글판을 아직까지 성도들이 쓰게 만들고 있게 하고 있다는 것과 또한 TR에 대한 온전한 퇄니이 없었고 또한 지금은 아예 TR을 버리고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그의 근거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더 오래되었다고 하면서 그러한 말을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이니 TR의 원 사본들은 닳고 닳아서 없어졌지만 잘 보지도 않던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의 사본들은 버젓이 남아서 오늘날의 변개된 성경역본들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 변개된 사본들을 다루었던 사람들이 마리아 숭배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였고 또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에드가 굳스피드였고 또한 뉴에이저였던 네슬과 알란드였다. 이 사실을 그들은 알면서도 일부러 은닉한다.
변개된 사본을 사랑한 마리아 우상숭배한 자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구약전서의 '이스라엘 왕'들을 통해서 무척이나 많이 보아왔다. 오히려 자신들의 연합운동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아예 목회자들의 복식(복장)조차도 천주교식(로만 칼라)으로 바꾸어 마치 거룩한 제사장인 양 하는 것은 긴 옷을 즐겨입던 바리새인들의 제사장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사장이다.)
항상 성경대로 하지 않는다면 징계가 하나님께로부터 당연히 오기 마련이다.
말보회측이 근본주의 진영을 정죄한 것도 일 리가 있다. 신학서적에도 나와 있지만 현대신학 체계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근본주의가 두 진영즉 분리적 근본주의와 복음적 근본주의 진영으로 암암리에 갈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새는 복음적이라는 말이 '타협적'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분별한다고 하면서 쓰레기들(빈야드, 프라미스 키퍼스, 브라운스 빌 등등)을 무조건 다 수용하려고 한다! 특히 일할 젊은이들이 많은 초교파들도 그렇고 또한 기존의 교회들도 그렇고....! 참으로 안타깝다!
이 시대의 변증전도의 대가이며 진정한 복음주의자 중 한사람인 '라브리' 공동체의 창설자 '프란시스 쉐퍼'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음주의가 수자에 치우쳐 점점 거대해지나, 그 복음주의라는 것이 더 이상 복음적이 아니면 무슨 짝에 쓸 것인가?"
벌레들은 빛을 싫어한다. 그러나 '빛'은 필요한 것이다.
연합 운동(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전파와 구령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또한 더욱이나 그러한 신성한 행동에 대해서 부정한 사람들(프라미스 키퍼스, 빈야드, 브라운스 빌, 뜨레스 디아스 등등)을 가입시킨다면 정말 그 중요한 일들이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연합 운동하는 그들을 정말로 주안에서 사랑하거든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려야 할 것이다.
명확한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의 배후 조정자인 마귀의 소굴 곧
천주교의 영향력에서 벗어 나지 않으면
결단코 질투하시는 하나님앞에 정결하게 예비될 수 없으며
또한 심하면 잠시 안일함으로 죄에 빠져 선한 사람('우리야'장군)을 살인까지 하였던 다윗처럼
큰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도신경의 최종완성자는 결코 초기 기독교회의 로마의 교부들이 아니다. 독일 보덴제의 레이헤나우 수도원의 피르민(프리민;Pirmin, Primin)이라는 천주교 사제인 것이다. 또한 분명히 알 것은 사도신경을 아무리 천주교식대로 해석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빼고 해석한다고 해도 우리는 '성도와 교통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죽은 성도와도 교통한다'는 비성경적인 사상의 찌꺼기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새 옷'을 입어야 한다.
이 즈음에서 마귀주의자들은 싸우다 지친 자들에게 이제는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신세계질서(NWO)'로 같이 가자며 매우 매혹적인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음녀의 갈고리에 걸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은 자명하다.
완전하게 '아세라와 그 목상들을'을 파헤치고 쳐 없애 버리라!
요시야가 어떠했는가? 그리고 히스기야가 어떠했는가?
흔히 역대기를 보면 잘 나오는 말씀이 있다. 그 위대한 왕 '요시야'를 보자.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太陽像)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어떤 왕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으나 온전히 행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말보회가 기성교회에게 잘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광야의 외침이었던 요한과 같은 선한 일을 하였다. 물론 때로는 무척 기성 교회들은
귀에 따가웠을 것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남아 있는 우상들을 깨어 부수라고 강력히 촉구하였다!
큰음녀(창녀) 천주교의 영향력과 아직도 각종 남아있는 절기지키기(사순절, 오순절 등등) 그리고 각종 바리새인식의 권위 의식들......
더 온전한 목회자를 좀 까다롭다는 이유로 쫓아내는 모 교회의 장로님들...... 왜 이제는 아예 기독 잡지 머리 부분에 일부(!)
장로님들의 부끄러운 행위들이 개재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일까?
왜 아버지 하나님을 가슴아프게 하는 것일까?
도대체 성령님이 그들의 마음에 있어서 진정한 '주님'이 되어 있을까?
이쯤에서 찔림으로 노기충천한 사람들에게 또 한마디 하겠다.
잠언9:7-9이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간음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8:11 이하이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자백'의 진정한 의미는 확실한 회개를 수반함을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천주교식의 복식과 양식들 그리고 성모 숭배의 흔적들 그리고 천주교 우호적인 발언들을 끊어야 한다!
그들은 명백한 이단들이며 그들의 허울좋은 선행들은 사실 선행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옥으로 온순하게(!) 그리고 온유하게 이끄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개구리를 물에 담구어서 천천히 물을 데워서 기분좋게 죽이는 것과 같은 수법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막대한 권력과 돈으로 약간의 빵을 주면서 '예수 이름으로'라는 식으로 빙자하여 다른 복음(이단적 복음)을 전파하며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고 가고 있다. 나중에 같이 지옥가서 그들은 그들의 평신도들에게 이렇게 외칠 것이다.
"여기서 '연옥'입니다. 잠시만 참으시면 우리는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옥의 불로 연단하심을 참으세요!
참으세요!"
사실 그곳은 '지옥'일 것임은 자명하다!
개신교들의 제살 깍아먹기식의 시간낭비 때문에 적지않는 사람들이 다시 천주교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게다가 불교로 돌아간 자들까지 있다.
그렇다고 개신교들끼리 연합하자는 얘기는 죽어도 아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싸울 시간조차 너무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부디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5가지 상(5대 면류관) 중에서 한개 이상의 왕관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주고 말고는 아버지께서 평가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두가지의 양면성을 잘 이해하고 순결과 지혜를 십분 잘 활용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간절히 사모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통해 아버지께 중보함으로 아뢰는 바이다.
잊지 말 것이 있다! 매우 중요하다!
'디모데후서 2:3-6'이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규칙)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각자의 현장에서 자신의 전도한 곧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결과의 열매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다.
이 시간 우리가 연합하니 마니하고 싸우고 있을 때에
지금 또 한 영혼이 '복음 '과 '진리'를 못 들어 죽었고
또 죽어가고 있다!
<추신>
예장 합동측에게 :
하나님은 95% 보다도 100%를 더 좋아하십니다!
KJV를 왜 옹호하는지 근거를 잘 좀 보십시오.
말보회의 비판이 듣기에 태도면에서 어찌보면 좀 지나쳤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최근의 통합측과의 화해가 과연 에큐메니칼과의 대화와 타협이라면 유감입니다! 물론 말보회가 기성교회를 전적으로 정죄하는 다소 잘못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을 통해서 합동측에서도 무엇인가 긍정적으로 배운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인의 교과서인 성경 번역판에 대해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보셨었나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를 과연 알고 계십니까? 칼빈과 루터는 왜 카톨릭 성경을 거부했을까요?
그 당시 사람들이 결코 지금보다 지식으로 뒤졌을까요?
그들이 발견되지 않은 사본들 때문이어서 몰랐다는 얘기입니까?
마리아 숭배자들이며 뉴에이저들이었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지지한 사본들이 과연 지지할 만한 사본임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이(!) 그 당시 재침례교도들도 보던 사본과 같은 사본인 '루터 성경'과 '느샤뗄(올리베땅)', '제네바' 등을 버리고
이단자들인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와 네슬, 알란드가 지지하던 사본으로 새로 제작하여 보는 것입니까?
오늘날 보는 성경번역판 들이 과연 어떤 부류의 기원인지 들어서 아실 것인데.......! 성경의 진리에는 관심도 없는 로마 천주교에게 번역의 '일거리'를 주고(UBS) 그들의 성경을 옹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무식한 짓을 자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오히려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리혀 잘 타이르고
때로는 엄하게 꾸짖어서 올바른 성경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증거하는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말보회측에게 :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사탄에게 거꾸로 이용당합니다! 뱀처럼 지혜롭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개역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적게나마 그러나 상당히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부디 기억하십시오.
(그 불완전한 '개역'을 통해서도 참으로 엉청난(!) 수고의 역사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 마음도 쓰레기장 같으나 성령이 와 계십니다.
우리 마음이 다 쓰레기장이라고 다 마귀자식들입니까?
오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쓰레기장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이든 많이든 누구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빛 가운데 들어갈수록 오히려 사도중의 미약한 자에서
결국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다만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잘 판단하시고 굴함이 없이 지혜롭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세요!
두측 모두다 '영적 전쟁의 성경적인 원리'를 인지하시고 영적 전투에 매진하셔야 할 것입니다.
시시비비는 명확하게 가려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성경대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쟁은 속도전일 수도 있고 장기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반성할 것은 과감히 반성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기성 교회들이 정말 많이 잘못하고 있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두측 모두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진리를 기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사랑하심을 기억하십시오!
기억합시다! 지혜와 진리를...............적절히(고상하게) 그리고 때로는 마귀들의 진에 대해서는 매우 교활하게(!) 사용하기를.................
부디 저 뱀(사탄)이 역사하는 연합 운동(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벗어나라!
■연속기획 참고 자료
다락방 전도 운동에 대한 위험성
헌법 총론에 있는 선언문 제2항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교회정치, 권징조례 및 예배모범을 우리의 교의와 규례의 표준으로 삼는다'고 하였고, 사이비 이단 대책위원회 내규의 연구기준에는 '교리의 표준인 신구약 성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총회의 헌법 및 세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과 그 전통을 연구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역시 헌법 제4부 권징조례 제6장 제37조에 이단에 대한 정의가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단에 대한 판단의 기준과 입장을 밝히고 싶다.
다 음
1.신구약의 성경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의 입장을 가장 바른 해석으로 삼는다.
2.성경관은 물론이고 신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중 그 어느 하나에 있어서도 그 주장이 본질상으로 성경에 위배될 경우, 그 주장 자체에 한해서 이단이다.
3.본 총회가 이단의 침투를 교단적으로 막되, 이를 제도적으로 실시하는 기구인 사이비 이단 대책위원회는 본 총회에 속한 교회의 직원으로서 성경의 근본적 교리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거나 그 주장에 대한 지지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 사사로이 혹은 경솔히 취급할 것이 아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직원으로서 임직을 받을 때, 헌법으로 맹세하거나 헌법에 기초하여 임직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 헌법의 이단에 대한 규정을 넘어 '그들이 스스로 알도록 보여주신 대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박함에 따라 만들어지는 대로 상상하여' 믿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참된 종교의 특성은 종교적 열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나 영원한 규범에 일치해야하며 하나님 자신이 참으로 자신과 유사하게 남아 계시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섬겨야 한다. '어떤 사람의 기호에 따라 변질되는 상상이나 환상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Institute,Ⅰ,ⅳ,3). 부분에 있어서든 전체에 있어서든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규범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잘못하여 어긋난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어긋난 것을 언제든지 수정할 자세가 있으면 이단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단은 언제든지 은밀하고 아주 유사하게 가르치고 활동하기 때문에 참된 가르침과 가장 유사한 것이 사이비 이단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묘한 차이들도 간과할 수 없다.
상기의 기준과 입장에 따라서 '다락방 전도 운동'의 실태와 그 사이비 이단성에 대한 교리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힐 수 있다.
Ⅰ.다락방 전도 운동의 역사
그 운동 편에서 다락방 전도 운동의 역사를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단계로 류광수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시기이다. 류광수 목사는 고신대학 졸업 후 고신대학원을 수료만 하고 졸업은 총신대학원에서 했다. 류광수 목사는 1987년 8월 2일 영도 동삼동에 김기순 전도사와 함께 38명의 성도를 데리고 나경숙 집사 댁, 즉 '영도 남단 빈촌 가정주택'에서 기도회를 회집하면서 동삼제일교회를 개척했는데, 이 때를 '다락방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회고하고 있다. 그 후 예배 처소를 두 번 옮기면서 1987년 10월 7일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 부산노회의 조직교회로 허락을 받았다. 1987년 11월 10일에 평신도 전도훈련을, 12월 11일 다락방 운동의 전개를 위해서 조장교육을 실시함으로 다락방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다시 그 다음 해 1월 21일에 예배처소를 옮겼고 같은 해 10월 3일에 류광수 목사가 위임되었다. 평신도 전도학교가 개설된 것은 1990년 2월로 되어있다.
둘째 단계는 1991년 9월 7일 부산에서 다락방 전도 학교를 시작하면서 동역자들과 복음전도에 열정이 있는 자들에게 다락방 전도가 공개되기 시작된 시기이다. 이미 주위 교회로부터 소속된 노회(부산노회)에 상정되어, 이태화 목사 관련성과 전도활동 중단이 1991년 4월 12일경 노회로부터 결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락방 전도학교를 강행했던 것이다. 1991년 10월 14일 제133차 부산노회 본회에서 류씨 안건에 대해서 투표를 실시한 결과 당회장권 1년 박탈, 1년 근신, 1년간 대회 일체금지, 기 조직된 사조직 해체 등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에 순복하지 않고 전교인과 당회장 류씨가 10월 24일 교회탈퇴 성명서를 내었기 때문에 결국 1991년 11월 26일 부산노회가 소집한 임시노회는 그의 면직을 결정했다. 류광수 목사의 답변에 의하면 이태화 목사(부활의 교회) 관련성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다만 교회의 장로와 몇 사람이 조립식 건축을 참고하기 위해서 견학을 간 일밖에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 노회로부터 탈퇴 이후 이 다락방 전도학교가 부산의 테두리를 벗어나, 1993년 1월 14일 대구 동광교회에서 개교됨을 기점으로 급속히 전국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회고되고 있다.
셋째 단계는 전문 전도인 양성을 위해 1994년 3월에 전도신학원이 개교한 일이다. 이 전도신학원은 2년 4학기제로 시작하여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등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단순한 전도운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신학적 내용을 가진 전도운동으로서 조직과 집단화 현상이 그 신학적인 가르침에 구심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Ⅱ.다락방 전도운동의 신학적 내용
그들에게는 전도 자체가 신학이요, 교회운동이다. 즉 전도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된 하나님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것으로 강조한다. 그들은 '전도는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말씀운동'이며, 이렇게 정의된 다락방 전도가 성경적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그 말씀운동이 말씀들에 대한 독특한 해석에 근거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성격도 아주 특별하다는데 있다.
전도자가 전해야 할 말씀운동은 생명, 신분, 권세, 보장에 관한 것인데 이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이것들을 깨달은 후에 현장에 보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전도하도록 하는 것이요 전도자는 그런 가르침을 전도하는 파송자임에 틀림없다. 그들에 의하면 그렇게 전해야 할 말씀들의 내용들을 '중심으로 성경을 봐야 성경의 맥이 바로 선다'고 한다. 생명은 영접과 관계가 있고 신분은 엄청난 것이다. 성령의 내주와 관계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권세라는 말은 사단의 세력을 꺾는다는 아주 귀중한 축복이 내포되어 있다. 보장이라는 말은 구원받은 자를 향하여 약속된 축복이 보장된다는 어마어마한 말이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일인데, 그것은 사단이 결박되는 역사에 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릴 때마다 사단이 결박되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문제 해결의 열쇠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물론 보좌에 앉으시고 지금 역사하고 계시는 주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언약의 누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세기 3장 15절과 요한 일서 3장 8절에 의해서 열쇠를 풀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과 같이 그리스도가 사단을 결박하는 것으로 해석하되 세계의 모든 역사를 이 말씀에 의해서 해석해 버린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의 삼직을 이용하되 제사장으로서 죄로부터 해방의 역할을 하고, 왕으로서 사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사단을 결박시키는 것에 중심이 있다. 즉 왕직으로 일을 하면 저절로 제사장직까지 겸하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고, 선지자직으로서 역할은 그런 일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모든 역사를 통해서 싸우는 사단은 뱀(창 3:1-6), 사자(벧전 5:8), 속이는 천사(고후 11:4)로 보고 그 사단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고 이로 인하여 고통, 불안, 좌절, 거짓, 강포, 질병, 죽음, 심판, 지옥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죄의 배후 조종자가 사단
곧 마귀라는 것이다. "죄하고 사단하고 딱 붙어 다닙니다. 언제든지 분리가 되지 않아요." 따라서 병의 원인도 마귀라고 보고, 전도할 때 영적으로 영접하지 않는 상태를 거의 마귀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마귀가 존재하므로 핍박이 있다.… 복음을 막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친히 불러 가신다." 결국 그리스도는 그런 배후 조종자와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걸 누려야 한다." 그들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킬 뿐, 예수님의 성육신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만 왔다고 주장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강조하면서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상에서의 구원성취 사역의 시작인 성육신을 포함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류광수 목사는 원리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성육신이나 십자가의 죽음을 강조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핍박의 역사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이렇게 단순히 마귀를 결박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이요, 참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사탄에게 묶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사람은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 사단에게 묶인 자는 죄 가운데 빠져서 일평생 저주의 프로그램을 지키다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 그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눈에 안보이게 여러분들을 야금야금 쪼개 먹는 것입니다. 사단, 요것 꺾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말이 류광수 목사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깨달으며 그가 전하라고 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복음에 대한 이같은 정의 때문에 율법과 복음이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선포된다. "1.율법과 복음의 싸움 … (1)유대인은 원죄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죄인은 새생명을 얻어야 되는 저주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유대인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2)유대인은 사단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사단은(요 8:44)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였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손에서 해방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삼직에 대한 이같은 내용이 삼직을 가진 전도자들의 권세로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어렵게 만드는 사람의 손, 발, 입, 산업을 싹 다 묶어 버립니다. 확실합니다. … " "현장에서 역사하는 분위기가 되면은 손수건만 던져도 됩니다." "기도한단 말은 일곱 가지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가만 앉아서도 사단을 결박시키고 가만 앉아서도 천사들을 움직이고 … .", "반석 위에 - 복음전파, 예수 이름 부를 때 사단권세 결박, 죄 - 재앙에서 해방, 권세 - 사단결박(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가 가는 곳에는 사단이 결박당함. 마 10:4, 막 16장 - 권세를 주셨음. … 영접, 치유운동이 있는데 하나님은 깨달은 만큼 사용..." 이런 권세로 세계 정복의 꿈과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내용을 관찰해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나 삼직론은 핵심을 위장하는 장식들에 불과하고 두 원리의 싸움이 '복음과 구원 원리'의 내용이다. 이런 두 원리의 싸움은 옛 마니교 이단의 가르침에 흡사하다. 비록 마니교 가르침의 전 체계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근원적 사상이 일치하고 있다.
다락방 전도운동의 복음내용이 그리스도와 사단을 대립시키듯이 마니교도 서로 다른 대립적인 영원한 두 원리들이 있어 서로 싸운다고 가르친다. 이 원리들을 두 본성, 두 실체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나는 선한 실체이고 하나는 악한 실체이다. 구원은 곧 선이 악으로부터 순수화되는, 혹은 해방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되, 다락방 전도사상과 달리 성경의 뱀을 오히려 그리스도로 해석하여, 스스로를 인지의 눈을 열어 선악을 분별하도록 그로부터 조명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그리스도께서 새 시대에 육체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해방을 위해서 오셨다. 육체 안에는 참된 분이 없고 속이는 육체의 가현적 형태를 인간의 지각에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뿐만 아니라 참된 부활도 유사하게 날조되었다고 주장한다. 모세를 통하여 주시고 히브리 선지자들 가운데 있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어둠의 원리로부터 나온 자이다. 보혜사 성령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그들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초기 영지주의 이단사상들이 종합되어 있다. 택자들의 구원사상을 가졌어도 부활관에 있어서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아, 순수하게 된 자들은 결코 육체로 되돌아가지 않고 다만 그 외에 다른 영혼들만이 동물이나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든 것들로 되돌아간다는 불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몇 가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다락방 전도운동에서와 같이 원죄를 자유의지에게 돌리지 않고 대적하는 실체의 씨에게 돌리며, 다른 원리로서 하나님과 영원히 대립되어 있는 악령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 역시 두 정신(영혼)들이 한 인간 안에서 갈등하며 싸우되 우리 안에서 죄책 결함이 치료되거나 미래에도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그 악한 실체가 분리되어 세상의 끝(세상의 멸망) 이후에 영원히 감금되어 승리하게 된다는 것도 일치한다.
이런 영적인 이원론의 성격을 가진 다락방 전도운동에 대해서 문제되는 신학적 내용들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그들이 신구약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해도, 성경에 나타난 특별계시와 그 계시 방법들에 대한 종결성을 공식적으로 고백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오늘날도 성도가 꿈과 환상으로 인도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마귀의 계시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문제되는 것은 그 계시가 성경에도 있다는 점에 있지 않고, 지금도 그러한 마귀의 계시와 역사를 기성교회에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성경에 마귀의 말이 있다고 해서 성경에 마귀의 계시가 있다고 해서도 안된다.
②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되, 존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 상관없이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해야 한다. 모든 시대를 통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마귀와 싸우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옛 이단인 마니교처럼 두 원리들, 두 본성들, 두 실체들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Augustinus, de Haeresibus ⅩLⅤⅠ).
③ 마귀는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이는 파멸의 도구이기 때문에 마귀가 존재하는 이유와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의지 안에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의지밖에 독립적으로 혹은 다른 원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원의 내용과 보증도 만세 전에 정하신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뜻과 그것에 따라 성취된 역사 및 적용에 있다. 마귀론이 구원론에 특별한 원리로서 역할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구원과 복음의 핵심을 시종 그리스도와 우리가 마귀와 싸우는 그 '싸움'에 두는 것은 잘못이다. 언제든지 마귀의 근원과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안에서만 자신의 적당한 자리가 있고, 역시 하나님의 의지와 역사에서 종속적인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④ 마귀와 인간은 하나님의 서로 다른 피조물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죄의 원인은 인간에게도 있다. 성경은 이 점을 강조한다. 다만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에게 속하는 것이요(요일 3:8)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로서 그리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으로서 그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이다(히 2:14,15, 엡 2: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은 우리(택자)의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것이요(요일 3:5) 마귀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루신 일이 곧 마귀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났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마귀의 기원과 모든 활동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⑤ 이러므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구원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하여 구원의 성취와 적용의 원리를 파괴하였던 것처럼, 죄와 구원에 대한 문제를 마귀론에 의해서 모두 해결하는 것은 구원의 성취와 적용의 원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역사는 우선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유화와 화해의 원리에 의해서 설명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된 역사는 이미 성취된 구원이 적용되는 원리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한다(사 59:2, 53:4-11, 롬 3:23-26, 5:9-11, 골 1:21-22). 이런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 은혜의 역사를 구원의 원리에서 배제시키고, 다만 시종 사탄의 활동과 그것과의 싸움으로 구원의 원리를 해석하면 결국 아직도 구원의 성격이 불확실한 것으로 남게 되고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근본적으로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런 해석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다르면서 약간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
⑥ 그들의 해석 원리들은 구약을 파괴한다. 특별히 중생 이전과 이후에 경건하고 참되게 사는 규범으로서 역할하는 율법의 기능을 의미없게 만들어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성령의 특별한 열매들을 맺는데 있다.
⑦ 교회론에 있어서 다락방의 조직들이 문제되는 것은 사이비 이단사상들에 의해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마니교도 기존의 교회들과 똑같이 교사들, 주교들, 장로들, 집사들을 가졌으나 그 조직들이 사이비 이단사상에 기초한 택자사상에 의해 조직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교회론에 있어서도 정죄되었다(Augustinus, de Haeresibus XLVI)
⑧ 전도에 대한 열심은 존중할만하나 전도는 인간의 조직과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일은 만세전에 준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일이다.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유효하게 실패없이 이루신다. 따라서 회심의 방식에 관해서 도르트 회의 결정처럼 외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은총이 인간의 의지에 앞서서는 안된다(nec gratian ordine causalitais, efficientam voluntatis antecedere)고 생각해서는 안된다(Canones Synod Dorodrecgtanae Ⅲ-Ⅳ, reiectio errorum). 마귀는 전도만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거룩하게 사는 일도 같은 힘으로 방해한다.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