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환상으로 생생히 본 것을 기록한 간증이다
이 글은 헝가리 황제의 딸(엘리자베스)공주의
궁중생활 기록문서 중 개인소장품 중에서
후대 사람에게 남기는 글이 발견된 기록이다.(1207~1231년)
그는 어느 날 마지막으로 지병으로 임종을 앞두고
주님의 고난당하신 십자가 앞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묵상을 하다가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자기 자신을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뵙기를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가야바 대제사장의 뒤뜰에서 골고다언덕까지를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그때 나를 둘러선 빌라도의 군병은 150명이었고
그 중에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 까지 끌고 간 군병은 23명이었다.
나를 사형 집행 할 때 혹 민중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무장군병 83명을 추가로 배치하였다.
내 머리는 150번이나 주먹으로 크게 맞았고,
180번이나 발길질 당했으며, 양쪽 어깨에 채찍으로 80번 맞았으며,
내 머리칼은 끈처럼 꼬인 채로 개처럼 질질 끌려 다녔으며,
나는 24번이나 심문을 당하느라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침 세례를 받았고,
110번이나 채찍으로 머리를 맞았다. 나는 낮 12시에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머리가 찢어진 채 십자가에 달렸다.
특수 채찍으로 뼈가 부서질 듯이 100번을 맞았으며,
머리에 씌운 강철 같은 가시관은 7~8센티미터나 되었으며,
그 가시관은 너무 아파서 신포도주를 먹지 못하고 3시에 운명하였다.
가시관의 가시는 72개인데 머리에 박힌 상처는 110개인 이유는,
이 가시관을 한번 벗었다가 다시 씌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박은 못은 20센티미터로
그 중 하나가 산타클로치인 에루살렘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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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발또르다(maria valtorta)
1897년 이태리 가제르타에서 출생.
37세부터 죽기까지 27년간 침대에서 생활했다.
예수께서 나타나 영화처럼 보여주신 환상을
4년 동안 기록한 것이 15.000페이지를 넘는다고 한다.
그가 묵상 중에 받은 고난에 대한 환상 중 일부를 소개한다.
네 번째 집행인은 머리가 둥글고 팽팽한 10원짜리 동전 크기 만 한
기다란 못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며,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이 손목관절과 꼭 맞는지를 확인한다.
사나이는 쇠망치를 들어 올려
손목 끝에 세워놓은 못을 향해 일격을 가한다.
눈을 감고 있는 예수는
극심한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감아쥐고 눈물이 흥건한 눈을 뜬다.
이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못은 근육과 맥과 신경을 찢고 뼈를 부수고 관통한다.
이 모습을 보고 옆에 서있던 어머니 마리아는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린다.
예수님은 너무 아파 신음하다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그 아픔을 삼키시며 다시는 비명을 지르시지 않는다.
당시의 태형은 십자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미리 때리는 것으로
로마 군병이 때릴 때도 있지만,
가장 포악한 노예 6명을 선출하여 그들의 울분을 마음껏 채찍으로 풀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채찍에 맞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죽는 것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들 6명이 교대로 술을 마시며 지칠 때가지 때렸다.
두 명이 탄력있는 가죽 채찍으로 피범벅이 될 때까지 때리다 지치면,
다른 두 명이 끝에 뼈와 유리가루가 달려있는 딱딱한 파칠리우스 채찍으로 내리치는데,
맞을 때 살점이 뛰고 피가 뛰었다.
그들도 지치면 마지막 두 명이 채찍으로 때릴 때 옆구리, 등, 이마 등에 깊숙이 패여,
피 범벅이 되고 녹초가 되는데,
이때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지만,
십자가에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맞는 감각이 없을 때 까지 때리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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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검투사의 고백
나는 검투사(gladiator) 출신의 로마 시민입니다.
백부장 친구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한 이상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빌라도 총독 본부 브라이도리온 (Pretorium)에
들어왔을 때, 군인들에게 끌려온 한 사형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형수의 얼굴은 몹시 손상되어 있었고,
검투사 출신인 내가 한눈에 보아도,
그가 이미 수많은 구타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한 눈은 멍이 들었고, 다른 눈은 찢겨지고 부어올라 있었으며,
코피 흐른 흔적이 있고,
가래침처럼 보이는 액체들이 머리와 얼굴에 많이 묻어 있었으며,
윗입술과 아랫입술도 다 터지고 크게 부었는데,
도무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말이, 유대인들이 밤새 그를 재판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고 선지자 노릇을 시키며 노예를 시켜 수많이 때렸고.
마음껏 조롱하며 침을 뱉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눈을 뜨고 맞게 되면
몸에 날아오는 주먹이나 발길질을 무의식중에라도 피하기도 하는데,
눈을 가린 채로 맞으면 반사신경이 적절하게 작용할 수 없어서,
순간순간 보호 작용 할 수도 없고,
날아오는 주먹을 비켜가며 맞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충격은 거의 2~3배 정도 더 크게 됩니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들이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그가 누구인가 알고 보니 그 사형수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내 친구 백부장은 그에 관하여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이윽고 사형수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릭토(lictor)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릭토는 채찍질의 전문가입니다.
릭토 아닌 다른 사람이 채찍을 서툴게 휘두르면,
보통 그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히게 되며,
때로는 그 자리에서 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릭토가 아닌 일반 군인이 그를 채찍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검투사인 나는 그 채찍이 특별하게 만들어졌음을 보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리 공업으로 유명하였습니다.
로마의 황실과 귀족들은 예루살렘에서 생산된 유리잔에다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즐겨 하였습니다.
그래서 채찍에도 유리 조각을 집어넣습니다.
그 채찍은 'Cat-O'-Nine-Tails'(아홉 꼬리 고양이)입니다.
세 가닥을 한 줄로 엮어서 모두 아홉 가닥의 세 줄로 된 이 채찍은,
그 사이 사이에 금속 조각들이나 뼈 조각들,
또는 유리 조각들을 끼워 넣고,
나무 손잡이에 묶은 이 채찍의 길이는 보통 60~70 cm정도입니다.
한 군인이 그 채찍으로 예수라는 사형수를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등에서는 살점들이 떨어져 나가고,
핏줄들이 터졌으며,
어떤 곳에서는 뼈가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형수의 얼굴, 어깨, 등, 허리, 옆구리에서
참으로 많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39 회의 채찍질만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39'는 유대인들에게 자비의 수(number)인데,
매질의 횟수를 세다가 잘못 계산할 실수까지도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 형벌에는 그런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 무자비한 군인들이 돌아가면서 그 사형수를 때렸습니다.
채찍질을 다한 후 그의 몸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지혈이 필요한데, 누군가 곁에 있던 자색 옷으로 그를 덮었습니다.
아마 피를 많이 흘리는 그 사형수를 보기가
너무 흉측했고, 민망했던 모양입니다.
그 옷은 헤롯왕이 보냈던 것 이라고 하더군요.
왕의 옷을 입은 사형수.
이 때 곁에 있던 백부장이 하는 말이
그 사형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주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 군인이 가시로 머리에 쓸 관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거칠게 눌러 씌웠습니다.
그의 머리에서도 피가 흘러 얼굴을 적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날 내가 본 것은 온통 모두 피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수없이 죽여 본 검투사인 나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병사 하나가 왕에게는 왕홀(권위의 상징)이 있어야 한다며,
갈대를 왕홀 삼아 예수의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또 다른 병사는 그 갈대를 다시 빼앗아
예수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을 치며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머리에서는 또다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 군인들은,
이곳의 지겹고 고단한 생활에 대한 분노를
예수라는 사형수에게 다 풀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오락거리를 하나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형수를 십자가 형장으로 끌고 갈 시간이 되자,
다른 군인이 자색 옷을 거칠게 벗겨버렸습니다.
이 때 응고되었던 몸의 모든 상처에서
다시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형수의 입에서는 작고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는 채찍질을 비롯한 모든 과정에서
오직 작고 나지막한 신음소리만을 내었을 뿐입니다.
검투사 출신인 나로서는 그러한 사실이 참으로 신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용맹한 남자들과 싸워보았지만,
이렇게 지독한 과정을 잘 참아내는 남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개는 비명을 크게 지르며 자비를 구하거나,
저주나 욕설을 퍼붓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사형집행 과정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