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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집 제2권 / 정 교리(鄭校理)에 대한 제문
아 애통하옵니다 / 嗚呼哀哉
공의 탄생하심은 / 惟公之生
자질이 후하고 재목이 훌륭하셨습니다 / 質厚材良
옛날 교훈을 배워 / 學于古訓
일취월장하였는데 / 日月就將
그 아름다운 정화(精華)를 거두어 / 歛其英華
이것을 문장에 나타내셨습니다 / 發之文章
널찍하여 칼을 여유 있게 놀리듯 하여 / 恢恢遊刃
남은 재주를 시험하였으나 / 餘巧之嘗
재주를 가지고도 베풀지 않고 / 有而不施
구름과 물이 있는 시골에서 은둔하였습니다 / 雲水爲鄕
향풀인 두형(杜蘅)을 걸어 놓고 / 搴蘅綴杜
말년에 이곳을 배회하면서 / 歲暮彷徨
정신을 높고 너른 데에 두고 / 棲神遐曠
이 강강함을 보전하였으니 / 葆玆康强
누가 이분의 수가 / 孰云斯人
길지 못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 而壽不長
아 애통합니다 / 嗚呼哀哉
옛날 제가 어릴 때에 / 昔我幼歲
고루하고 몽매해서 / 固陋而蒙
학문의 방법을 알지 못하여 / 學未知方
무식하고 무지(無知)하였는데 / 倀倀倥倥
가군께서 명령을 내려 / 家君有命
공에게 귀의하게 하셨습니다 / 歸依于公
공은 저를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 公不我鄙
강론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으며 / 講論不窮
크고 작은 일을 나열하고 / 羅列大小
같고 다른 이치를 분석하였습니다 / 剖析異同
여러 가지 분분한 것들을 / 叢雜紛紜
중도로써 요약해 주셨습니다 / 約之以中
나를 가르친 은혜와 / 敎我之恩
나를 키워 주신 공로가 / 生我之功
지금은 끝났으니 / 今其已矣
저 하늘을 우러러볼 뿐입니다 / 瞻仰昊穹
아 애통합니다 / 嗚呼哀哉
공의 평생을 / 公之平生
저에게 말씀해 주셨으며 / 爲我言之
미처 말씀해 주지 않은 것도 / 其所未及
제가 사람들에게서 들어 알고 있습니다 / 我亦聞知
공이 출생하시던 해는 / 公生之歲
바로 을묘년이었습니다 / 乙干卯支
차츰 장성하자 / 迄其少長
시서를 외고 익혔습니다 / 習書誦詩
마음을 잠심하여 정밀히 연구해서 / 潛心精究
진수를 얻고 껍데기는 버렸습니다 / 得髓去皮
부모의 기대는 / 父母所期
세상에 입신양명하는 것이었으니 / 立揚于時
뜻을 굽혀 과거 공부를 하여 / 屈意程度
유사에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 試于有司
장시관(掌試官) 한 사람이 눈으로 결단함에 / 一夫目決
입격 여부가 추이되어 / 失得推移
여러 번 지방에서 시험을 보고서야 / 屢擧于鄕
비로소 성공하였습니다 / 乃始有成
지난 기묘년에 / 歲在己卯
녹명장을 읊으면서 / 載歌鹿鳴
높이 사마시에 발탁되니 / 高擢司馬
여러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 衆人所驚
대위가 곧 열리게 되었는데 / 大圍方開
내우를 당하시니 / 內憂俄丁
만 리 먼 길로 달려가서 / 奔歸萬里
애통하며 온갖 신고 다하였습니다 / 痛毒煢煢
거적자리에서 자고 흙덩이를 베면서 예를 어기지 않고 / 苫塊靡愆
삼년간 거상을 하였습니다 / 三載餘生
이미 상례를 마치자 / 旣克終禮
옛 학업 더욱 정밀히 힘쓰니 / 舊業彌精
행실이 돈독한 군자라고 이름났고 / 名稱篤行
훌륭한 명예가 널리 드날렸습니다 / 望孚蜚英
석갈하고 조정에 오름은 / 釋褐登朝
을유년 봄이었습니다 / 乙酉之春
벼슬은 이익을 위하지 아니하여 / 仕不爲利
출처가 때에 맞았습니다 / 與時屈伸
산수가 좋은 고을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 婆娑林丘
애오라지 어버이를 받들려고 했었는데 / 聊以奉親
끝내 고과(考課)에 중고를 맞아 / 竟致中考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 在家食貧
은대의 낭관으로 있을 적에는 / 銀臺屬郞
강직하고 온화하였는데 / 侃侃誾誾
이는 어버이의 영화를 위한 것이요 / 庶爲親榮
자신을 돌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 不顧其身
어찌 혹독한 화가 이르러 / 何圖酷罰
갑자기 부친상을 당할 줄 생각했겠습니까 / 遽泣大椿
재차 멀리 달려가서 / 再自遠奔
정신을 잃었는데 / 摧失精神
두 번의 기년(朞年)이 지나도록 / 曁更兩期
상례에 조금도 어김이 없었습니다 / 禮無違者
관직을 제수받고 한 번 일어나니 / 除官一起
지조가 더욱 고상하였습니다 / 貞操愈雅
국가를 위하고 공익을 위하느라 / 國耳公耳
조심하여 한가롭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 小心匪假
미원과 백부에 봉직하면서는 / 薇垣栢府
말할 것이 있으면 남기지 않았으며 / 有言無捨
경연에서 논사할 때에는 / 經幄論思
밤이나 낮이나 어찌 강론을 폐하였겠습니까 / 敢廢夙夜
청아한 문장과 명민한 지식은 / 淸文敏識
향기로운 난초를 지닌 듯 사향을 품은 듯하였습니다 / 襲蘭懷麝
성상의 사랑이 특별히 깊었으니 / 上眷特紆
어찌 인척에 의해서였겠습니까 / 詎倚姻婭
뜻을 세우고 조정에서 드날리며 / 植志揚庭
도를 품고 청운의 길을 달렸는데 / 懷道縱靶
마침 이때에 / 適當斯時
국가가 매우 위태로워 불안하였습니다 / 臲不安
큰 간신이 권세를 독단하고는 / 巨猾據權
위엄과 복을 은밀히 농간하였습니다 / 威福暗干
의에 가탁하여 일을 만들고 / 託義造事
아랫사람들을 어거하면서 간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 御下售姦
공은 그와 인척이 되어 / 公爲姻戚
처지는 가까웠으나 정은 멀었는데 / 地密情寒
물러나 피하기 어려우므로 / 退避難容
억지로 조정에 있었습니다 / 僶勉朝端
그러다가 하루아침 그의 죄를 논하게 되었는데 / 一朝議罪
성은은 그래도 너그러웠습니다 / 聖恩尙寬
혹은 멀리 유배되고 혹은 귀양을 가니 / 或殛或竄
국법이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 典刑不刊
공은 여기에 연루되어 / 惟公連累
다만 관직이 체직되고 / 只褫其官
길이 전리로 돌아가서 / 永歸田里
선영을 수호하였습니다 / 獲守墳塋
죄가 의심스러운 것은 가벼운 쪽으로 처벌해야 하니 / 罪疑從輕
하늘의 거울이 밝았습니다 / 天鍳之明
공은 응당 수용되어서 / 謂應收用
나라를 훌륭히 다스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 以就國成
어찌하여 그렇지 못하고 / 如何不然
억제와 막힘이 서로 이어져 / 抑塞交幷
끝내 곤궁하게 죽고 말았으니 / 竟俾窮死
누가 이것을 천도라 하겠습니까 / 孰云天行
당시에 큰 간신은 / 當時巨猾
해독을 너무도 많이 끼쳤으니 / 煽毒何弘
그의 음모와 비밀스러운 자취를 / 陰謀秘迹
귀신도 정탐하기 어려웠습니다 / 鬼神莫偵
사람들이 그에 대한 원망을 품으니 / 人懷憤冤
국가의 벌이 마침내 그에게 미쳤습니다 / 王誅乃攖
사람들의 마음은 그래도 부족하게 여겨 / 物情尙慊
노여움이 죄 없는 공에게 미쳤습니다 / 怒移無辜
이는 비유하면 호랑이를 미워하여 / 譬如讐虎
도리어 추우를 쫓는 것과 같았습니다 / 反逐騶虞
공은 명문거족에다 / 以公名閥
겸하여 큰 유학자의 적(籍)에 올랐으니 / 兼籍鴻儒
떼 지어 다니는 백관들이 / 群隨百僚
어찌 자리에 가득하지 않았겠습니까 / 豈不滿隅
그런데도 공은 오품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 偃蹇五品
십 년을 이미 보냈으니 / 一紀已徂
이것을 가지고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亦足以明
공이 시속과 영합하고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음을 / 不附以趨
하물며 당시에는 / 矧在當時
사람들이 다 권신의 눈치를 보아 / 衆皆睢盱
승진되고 침체되며 영화롭고 욕됨이 / 升沉榮辱
삽시간에 뒤따랐습니다 / 造次與俱
아첨하는 무리들은 / 諂諛之徒
다투어 좋은 벼슬을 취했는데 / 競取膴仕
죄가 쌓임에 이르러서는 / 逮于罪積
큰 벌로 논죄하였습니다 / 論以大理
깊고 얕은 죄상을 거론해 보고 / 深淺原情
벌의 경중을 가지고 보건대 / 輕重示軌
누가 능히 부정(不正)함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 誰能詭免
당시에 공론들이 지적하는 바였습니다 / 時議所指
공이 작은 견책을 받은 것은 / 公獲微譴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 蓋曰有以
공은 당세에 재주가 높아서 / 才高一世
괴이하게 여기고 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 怪怒頗起
공이 화에 걸리자 / 陷玆釁孽
모두들 배제하며 / 推擠皆是
저 간신을 들어 욕을 하니 / 擧彼爲詬
잘못을 밝게 씻기가 어려웠습니다 / 昭洗難倚
훼방과 칭찬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는 / 毁譽是非
죽은 뒤에 마땅히 정해질 것이니 / 身後宜定
당시에는 애매하게 가려졌으나 / 一時之晻
만세에는 밝게 빛날 것입니다 / 萬世之瑩
공은 응당 이것을 아시려니와 / 公應自知
저는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 我辭難罄
해와 달의 운행은 / 日月之行
아침도 되고 저녁도 되건만 / 有朝有暝
사람은 세상에서 / 人之於世
길고 짧은 수명을 똑같이 하기 어렵습니다 / 脩短難幷
지난 일 아득한 꿈과 같으니 / 悠悠一夢
술에 취했다 깬 듯하옵니다 / 如醉而醒
슬프게도 공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 어려우니 / 慨公難起
이 뜻을 누구에게 질정하겠습니까 / 此意誰訂
기억하건대 공의 눈썹과 이마 / 憶公眉宇
아직도 빛나는 듯합니다 / 尙若炯炯
아 애통합니다 / 嗚呼哀哉
공이 파면되어 돌아가실 때에 / 公之罷歸
남쪽 길로 나갔습니다 / 道出于南
옛 동산이 아득하고 아득한데 / 故園渺渺
뽕나무와 가래나무 편나무와 남나무가 무성하였습니다 / 桑梓楩楠
길을 가다가 때로는 멈추면서 / 載行載止
가는 말을 쉬어 갔습니다 / 稅我征驂
담장과 집이 대강 완비되니 / 垣廬粗完
그윽한 일을 즐길 만하였습니다 / 幽事可探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으니 / 樂而忘憂
자신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 匪余有慙
용산과 삽연에서는 / 龍山揷淵
구름이 뿜어 나오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니 / 噴雲吐嵐
고상함과 속됨이 서로 어우러져 / 雅俗相將
웃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 或笑或談
공은 사십이 되도록 / 公年四十
아들을 두지 못하니 / 未有子男
기구의 세업을 / 箕裘世業
누구에게 맡겨 주겠습니까 / 付之誰何
늦게 아들을 낳아 기르니 / 晩而得育
마치 난초 싹이 쑥쑥 자라는 듯하였습니다 / 蘭茁其芽
만금을 낳았다는 것은 / 萬金之産
옛사람들이 읊은 것이니 / 古人所哦
화와 복 승과 제를 / 禍福乘除
어찌 서글퍼할 것이 있겠습니까 / 安用戚嗟
높은 관직과 많은 녹을 받는 것이 / 高官厚祿
어찌 이보다 더 낫겠습니까 / 孰與此多
말을 배워서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하였고 / 學語囀鳥
창에다가는 까마귀를 그렸습니다 / 塗窓棲鴉
점점 품에서 벗어나자 / 漸免于懷
재주가 나타나니 / 可言其才
부모들은 돌아보고 귀여워하며 / 爺孃顧復
기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 喜莫能裁
저는 항상 출입하면서 / 我常出入
손을 잡고 이끌면서 흉허물이 없었습니다 / 提携無猜
무럭무럭 장성하자 / 嶷嶷而成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 心源孔開
공은 나이가 많으시므로 / 以公年高
좋은 중매를 맞고자 하였는데 / 擬延嘉媒
갑자기 흉변을 만나니 / 奄遭凶變
오죽이나 애통하셨겠습니까 / 可堪痛摧
아 애통합니다 / 嗚呼哀哉
제가 공의 문하에 나간 지가 / 我趍門下
지금 십 년이 되었습니다 / 十年于玆
외람되이 알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며 / 辱知辱愛
시종 간격이 없었습니다 / 終始無疵
나에게 원대함을 기대하시어 / 期我遠大
마치 목마른 듯 굶주린 듯하셨습니다 / 情若渴飢
나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 我未有知
공은 바로 나의 스승이 되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 惟公我師
저는 공의 서재에서 기거하며 / 寓棲齋庵
아침과 저녁 한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 朝暮不離
나의 완악하고 노둔한 자질을 / 顧我頑鈍
항상 부지런히 깨우쳐 주시고 / 常勤提撕
시를 읊으며 문답을 하여 / 呻吟答問
끊임없이 서로 상고하였습니다 / 亹亹相稽
한자의 유문은 / 韓子遺文
전모와 다름이 없습니다 / 典謨與齊
저는 그 가운데에 들어가니 / 入于其中
황홀하여 방향을 몰랐으나 / 怳然以迷
공은 일일이 해석하여 / 公能解剝
그 단서를 열어 주었습니다 / 豁其端倪
그리하여 저는 문장에 대하여 / 我於爲文
비로소 그 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 始識根柢
다음은 서전을 배웠는데 / 次受書傳
오솔길에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듯이 마음이 막혔습니다 / 茅塞徑蹊
글을 따라 뜻을 설명하시니 / 隨文說義
도공이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 듯하였습니다 / 若鈞植泥
저는 게을러 옛 버릇 그대로 지키면서 / 怠惰守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 學而不思
일찍이 유념하여 / 曾不留意
의심스러움을 질정하지 못하였고 / 以質所疑
또 학업을 끝내지 못하였으니 / 且未卒業
후회막급이옵니다 / 悔焉可追
한 서실로 돌아와 누우니 / 一室歸臥
매양 좋은 가르침을 생각하였으나 / 每懷良規
성질이 우활하고 엉성하여 / 惟是迂踈
시대에 맞지 못하였습니다 / 不諧於時
여러 번 진출하였다가 퇴각하곤 하니 / 屢前屢却
공의 아껴 주심을 헛되이 저버렸습니다 / 孤負吹噓
그러다가 한번 성공을 하자 / 一旣有成
공은 기뻐하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 喜而稱譽
나는 빈천에 군색하여 / 我窘貧賤
동쪽과 서쪽으로 정처가 없었습니다 / 東西靡居
문하에 나아가 배알함은 / 趍拜門下
일 년에 한두 번이었는데 / 歲一再且
웃고 말하며 기뻐하여 / 笑語怡怡
남김없이 소회를 말하였습니다 / 傾倒無餘
지난해 중하에도 / 去歲仲夏
또한 일찍이 배알하니 / 亦曾投謁
창안백발에 / 蒼顔白髮
나를 대하면서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 對我咄咄
공은 이미 늙었다고 여겼으니 / 謂公已老
저의 마음속 잡목을 베어 주실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 誰斸株橜
이달 하순에 / 是月下浣
저는 아침에 출발하여 / 我興晨發
저 현의 관사로 갔는데 / 適彼縣館
길에 먼지가 어지러이 날렸습니다 / 路揚坌坲
아스라한 야외에 / 野外蒼茫
한 언덕이 우뚝 솟아 나왔는데 / 有丘突兀
그곳에는 잔치 자리를 베풀고는 / 肆筵列席
장막을 높이 펼쳐 놓고 있었습니다 / 幄幕高揭
저는 누가 잔치를 베푼지 알지 못하고 / 不知誰設
감히 당돌히 들어갔습니다 / 敢自搪揬
그 자리에서 마침 공을 만나니 / 邂逅我公
소맷자락이 높이 올라가고 눈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 袂聳眉軒
만고의 깊은 뜻을 / 萬古幽意
한 번 웃으면서 서로 정답게 나누었습니다 / 一笑相溫
나는 술에 취하여 / 我困杯勺
눈이 어둡고 어두웠으므로 / 醉眼昏昏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나오니 / 不辭而出
이별하는 저의 마음 매우 애처로웠습니다 / 銷我別魂
가을이 빨리 지나가고 / 秋行焂盡
겨울철이 저물어 가는데 / 冬候聿暮
저는 나주(羅州)의 사촌에 있으면서 / 我在沙村
세상일에 얽혀 있어 / 縻于世故
형편상 찾아가 뵈옵기 어려웠으니 / 勢乖趍造
부질없이 우러러 사모하기만 하였을 뿐입니다 / 空勞仰慕
신정에 돌아가 뵙게 되면 / 新正歸覲
장구를 모시려고 했었는데 / 擬陪杖屨
부음이 갑자기 이르니 / 訃音忽至
이 원통함을 어디에다 하소하리까 / 玆冤曷訴
제가 용산으로 달려가니 / 我走龍山
교목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 喬木依然
문이 굳게 닫혀 있으니 / 有闃其戶
음용을 전할 길이 없습니다 / 音容莫傳
물러 나와 빈소와 장례를 의논하니 / 退議殯厝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 淚落濺濺
해가 저물어 돌아오면서 / 日暮而歸
마침 옛날의 언덕 지나오니 / 偶經丘前
찬 나무에서는 바람이 울부짖고 / 寒樹號風
묵은 풀에는 내가 끼어 있었습니다 / 宿草鎻烟
서글프고 처량한 감회가 / 悲涼之懷
슬퍼하는 마음과 서로 얽혔습니다 / 與哀交纏
안타까워 묵묵히 탄식하면서 / 憫嘿嘆息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러냐고 하늘에 하소연하였습니다 / 何辜于天
공의 순수한 덕은 / 惟公純德
세상에서 더할 수 없으니 / 世莫能加
천리는 마땅히 공을 보호해서 / 理宜保佑
국가를 호위하여야 할 터인데 / 以衛國家
중도에 차질이 생겨 / 半途而躓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 奄忽登霞
하늘의 보시가 / 天之施報
어찌 이렇게 편벽된단 말입니까 / 一何偏耶
중춘 초하루에 / 仲春初吉
저는 순창을 향하면서 / 我向淳昌
여러 노인들을 일일이 방문하고 / 歷訪彦老
장례를 상의하오니 / 葬事商量
좋은 길지를 얻어 / 卜地得吉
용산의 남쪽에 정했습니다 / 龍山之陽
내 따라가 묘지를 보오니 / 我隨相視
지리에 조금도 화가 없을 듯하였습니다 / 理應無殃
여러 봉우리는 빙 둘러 있고 / 群峯環列
강물은 넘실넘실 흘렀습니다 / 江水泱泱
그 위치는 높고 / 厥位高亢
그 땅은 단단하고 건조하니 / 厥土燥剛
참으로 의관을 받들어 / 可奉衣冠
이곳에 모실 만하였습니다 / 斯地于藏
저는 장례 때에 와서 호장(護葬)을 하리라고 / 我欲來護
마음속에 새겼으나 / 銘在心腸
마침 딴 일에 끌려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 適牽他事
저의 한이 어찌 다하겠습니까 / 我憾何長
삼가 만사를 지은 것이 / 謹製挽歌
오장에 이르렀는데 / 至于五章
공의 의리를 밝히고 / 明公之義
저의 뜻을 다 나타냈습니다 / 致我之志
곡절을 반복해서 말하니 / 反覆曲折
이것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 足以垂示
남에게 의탁하여 멀리 부쳤으나 / 託人遠寄
장례 때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 未委能至
세월이 흘러가서 / 日月云邁
거의 다섯 달이 되었는데 / 朔五而四
궤연에 가서 절하지 못하오니 / 阻拜几筵
한을 품고 탄식하올 뿐입니다 / 茹恨興喟
추위가 가까워지니 / 秋圍近止
추성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 試于秋城
과거에 급급하여 / 屑屑就擧
고단함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 叵耐零丁
마침 지나는 길이 묘 밑을 경유하오니 / 路出墓下
공을 그리워하며 마음이 애통하옵니다 / 憶公心痛
채소와 과일을 진설하옵고 / 蔬果維旅
맑은 술을 술동이에서 퍼내어 / 淸酌潑瓮
공경히 향불을 사르면서 / 敬炷一瓣
애오라지 저의 정성을 바치옵니다 / 聊表我忱
공의 영령께서는 / 惟公精爽
밝게 강림해 주소서 / 尙祈昭臨
아 애통하옵니다 / 嗚呼哀哉
삼가 흠향하시기 바라옵니다 / 伏惟尙饗
[주-D001] 널찍하여……하여 :
정사를 다스림에 업무가 많아도 잘 처리함을 뜻한다.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소 잡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문혜군을 감탄하게 하였다. 포정이 소 잡는 도(道)를 말하면서 “두께가 없는 칼을 두께가 있는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 있어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以無厚入有間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하였다. 《莊子 養生主》
[주-D002] 녹명장(鹿鳴章)을 읊으면서 :
녹명장은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으로, 옛날 과거에 급제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이 시를 노래하였다. 여기서는 과거에 급제한 것을 말한다.
[주-D003] 대위(大圍) :
대과(大科)와 같은 말로 문과 시험을 말한다. 옛날 과장(科場)에는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기 위하여 가시나무 울타리를 둘러쳤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D004] 내우(內憂) :
내간(內艱)과 같은 말로, 모친상을 말한다.
[주-D005] 큰 간신 :
당시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세력을 믿고 권력을 남용한 윤원형(尹元衡)을 말한다.
[주-D006] 죄가……하니 :
법관인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죄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벌하고, 공이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중한 쪽으로 상을 주었다.〔罪疑惟輕 功疑惟重〕” 하였다. 《書經 大禹謨》
[주-D007] 추우(騶虞) :
모양이 백호(白虎)와 비슷한데 검정 무늬가 있으며 꼬리가 몸보다 긴 짐승으로, 생물을 잡아먹지 않고 생풀을 먹지 않는다 하여 기린과 함께 인수(仁獸)로 알려져 있다.
[주-D008] 기구(箕裘)의 세업 :
기구는 선대(先代)의 훌륭한 가업(家業)을 계승하는 것이며, 세업은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가업을 말한다. 《예기(禮記)》〈학기(學記)〉에 “훌륭한 야공(冶工)의 아들은 그 아버지의 하는 일을 보고 배워 반드시 갖옷〔裘〕을 만들 줄 알고, 활을 만드는 궁인(弓人)의 아들은 그 아버지의 하는 일을 보고 배워 반드시 키〔箕〕를 만들 줄 안다.” 하였는데, 후세에는 곧바로 선대의 가업을 계승한다는 말로 쓰인다.
[주-D009] 승(乘)과 제(除) :
모두 산수(算數)의 용어로 승은 곱셈이며 제는 뺄셈인데, 인간의 일에 있어 승은 잘 되는 일을 가리키고, 제는 잘못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10] 한자(韓子)의……없습니다 :
한자는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를 말하며 유문(遺文)은 그가 남긴 문집을 말한다. 전모(典謨)는 《서경》의 〈요전(堯典)〉, 〈순전(舜典)〉과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등의 편을 가리키는데, 뜻이 깊어 전아(典雅)한 글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주-D011] 추위(秋圍) :
가을에 치르는 향시(鄕試)이다.
[주-D012] 추성(秋城) :
전라남도 담양(潭陽)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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