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52/1_cafe_2007_12_17_19_10_47664ac4b945c)
추억의 사진 한 컷
“우리, 조계사 뒷담에서 술래잡기 할래?”
지금은 산중다원이 자리하고 있는 조계사 뒷담.
그때는 그 뒷담에 아주 좁은 계단이 있어서 아이들과 담벼락을 뛰어 올라 다니며
놀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조계사 뒷담은 어린 제게, 제 친구들, 제 형제들에게는 절 담장이 아니고
아주 좋은 술래잡기 놀이터, 우리만의 즐거운 공간이었습니다.
때로 밤늦도록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놀다가 어른들께 걱정을 듣곤 했지만
종로 한 복판에서는 가장 한적하고 안전하고 조용한 놀이터에 아이들이 몰려 놀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절의 의미를 몰랐던 어린 시절 저한테 조계사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내 학교처럼, 내 집처럼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는 소풍장소였고 편안하고 소중한 은신처였습니다.
제게 조계사가 예전의 조계사가 아니듯 동장군의 위세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손이 꽁꽁 어는 매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새벽마다 조계사에 기도 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뵈면서도
이불 속에 숨어 혼자는 절에 갈 생각을 않던 저는 국민학교 6학년 늦은 가을, 벌써 몇 달 째,
방과 후에 조계사 뒷문을 향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조계사로 가는 작은 골목길에
어수선하게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당시는 그 길이 아주 한가롭고 조용한 길이었고
제 집은 지금의 늘어선 음식점 중 하나였으니 일주문 쪽으로 가는 일보다 뒷문이 지금도 제겐 정겹습니다.
그 때 허름한 담을 끼고 조계사 뒷문으로 들어가 합장한 후 마당 가득한 낙엽을 밟으며 대웅전으로 향해
무겁고 삐그덕 거리던 문고리를 당겨 법당에 들면 제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날마다 방과 후에 조계사에 가지 않으면 하루가 마무리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대웅전에서 부처님 전에 나무로 만든 작은 계단을 올라가서 향 하나 올리고 다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대웅전 문밖,
백송 앞에 있던 수돗가로 가서 전에 누군가 올렸던 다기 물을 쏟고
수돗물이나마 정성스럽게 받아서 다시 부처님 앞에 올린 후 삼배를 하는 것이었는데
삼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이 눈앞에 선합니다.
같이 절에 가자고, 말하자면 어린 제가 포교활동을 해서 몇 몇 같은 반 친구들이 조계사를 다니게 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마당처럼 찾아가서 쉬던 석가세존진신사리탑, 회화나무,
잔칫날보다 더 기쁘고 즐거웠던 초파일에 식구들과 등을 걸면서 가슴에 가득한 환희심으로 함박웃음을 짓던 날들,
그때 일주문 입구의 한옥집에 걸렸던 십자가를 보면서 이 댁 주인도 절에 다니면 좋을 텐데 했던 생각,
더운 여름날에 어머니께서 “더운데 바람이나 쐬러 조계사 가자“시면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앞장을 섰던 일들이 다시 제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군요.
이 사진은 국민학교 6학년 늦가을 어느 일요일,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심심하다고 어머니를 졸라 조계사에 가서
사진이나 찍자고 하여 가족들하고 나섰던 날의 오후입니다.
평생 서울이라는 제 고향을 떠난 적이 없듯 제 마음은 늘 조계사에 있어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을 가서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찾곤 했는데 이는 마치 제 집에, 제가 살았던 고향에 찾아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강의가 좀 일찍 끝난 대학 1학년 어느 날, 지금은 조계사 대웅전 밖에서 신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대웅전 안에서 신발을 벗고 다다미로 된 법당으로 들어갔었습니다.
무슨 날이었는지 그날따라 대웅전이 신도들로 가득했습니다. 법당 기둥 옆에서 108배를 하고 나오며
신발을 찾아 신는데 스님의 법문 한 말씀,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갑자기 뭔가 눈앞에 번쩍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산도 변하고 사람의 몸도 다 변하는 것이구나.
지금 이 순간의 내 몸은 바로 5분 후의 내 몸이 아니겠구나.
변하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고 변하기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구나.’
그 이후 조계사에서 불교교리를 공부하고 자비화라는 법명을 받아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며 의료봉사로 부처님 법을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마하의료회의 일원으로 사찰봉사, 장애인 봉사, 무의촌 의료봉사만이 아니라
몽골,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부처님이 계시는 어느 곳이든 한국불교를 알리고 있고
앞으로도 불교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게 평생 부처님 법을 믿고 의지해온 제 발원입니다.
제가 평생 가슴에 새긴 자등명 법등명, 한 말씀으로 글을 마칩니다.
첫댓글 이 엉성한 글을 쓰느라 요즘 자주 글을 못 올렸습니다. 이제 스리랑카 다녀온 보고서를 쓰기 시작해야겠습니다. ^^;
변하는것만이 영원할 수 있다... 차타고 가다 신호대기중 멀찌기 현수막에 쓰여있던 요말을 보고 저도 번쩍..그 뒤에 요말이 기억나지 않아 현수막이 걸려있던 곳을 다시 찾아가서.. 짧은글인데도 노트에 적어놓았습니다~ ^^*
자비화님 !! 언제나 따뜻한 미소가 가득하신 자비화님 모습을 떠 올려 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어떤 사진이 더 잘 나왔는지 몰라 두 번 올립니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제 오빠입니다. 보고싶다. ㅎㅎ 앨범에 있는 걸 찍어서 사진이 좀 그렇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오호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