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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 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과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 31)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 12, 13)하였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을 사람의 제1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 건학이념
미국 고등학교 필립스 아카데미와 필립스 엑서터는 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 명사 인명사전에 올라 있고 백만장자 비율도 가장 높다. 설립 이래 200년 이상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이 학교의 건학 이념은 똑같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이다. 설립자인 새뮤얼 필립스와 존 필립스가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이 건학 이념을 정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와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에서 영감을 받아 나 자신이 아닌 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를 위한 교육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얼마나 주위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봄기운이 가득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누어주자.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요셉의 이러한 행동은 매우 신중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시종들이 이러한 자리에 참여할 경우 과거 요셉의 형들이 총리인 요셉에게 행한 악행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Calvin).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형들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한 것이었다(Bush).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주석가 '랑게'(Lange)는 '요셉의 거처가 가까이 있어서 그 소리가 궁중 안에서까지 들렸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보다는 '카일'과 '머피'가 해석한 대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셉의 시종이 그 소리를 듣고 바로의 궁중에 보고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해석이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니이까?' 이러한 표현은 이전에 그가 말했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참조, 창세 43, 27)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그 이유는 '전에 말한 표현은 예의상 나온 질문이었고, 지금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아들의 입장에서 나온 질문'이기 때문이다(Alford)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하나님이시라.' 이것은 요셉의 철저한 섭리적 신앙에 대한 표현인데, 신학자 '휴즈'(Hughes)는 이 말을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노예로 보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구세주로 보내셨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이러한 요셉의 신앙 고백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참조, 창 15, 13-14)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바로의 아비.' 이 말은 '생명의 제 2 주관자'(Murphy), 즉 '가장 신임하는 조언자요 친구'(Keil)라는 뜻으로 '바로의 고문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외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외경 에스더 13, 6에는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의 '제 2 아버지'라고 불렸으며, '마카비 상'11, 32에는 '라스데내스'가 '데메드리 왕의 아버지'로 불렸다. '고센 땅.' '70인역'에서는 이 지역을 '아라비아의 게센'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곳은 창세기 47장 11절에 나오는 '라암셋'과 동일한 지역이다. 이곳은 매우 비옥한 지역이어서(참조, 창세 47, 6) 목양지로 아주 적합한 '초장'이었고(참조, 창세 46, 34), '비돔'과 '라암셋'의 두 성읍을 포함한 지역이었다(참조, 출애 1, 11).
솟구치는 눈물과 형제를 향한 애끊는 정을 억제하며 요셉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 형제들 앞에 자신을 밝히는 일을 미루어 왔는가 하는 의구심은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본문의 내용에 충실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요셉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 앞에서 일제히 머리 숙여 절하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셉은 과거 자기가 아버지 슬하에서 소년 시절에 꾸었던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의 곡식 단을 향하여 일제히 머리 숙여 절하는 '꿈'의 실현을 보았습니다.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 판자라 <!T,r]k'm]Arv,a}아쉐르-메카르템> <rv,a}아쉐르>는 '…한 자를, …한, …한 바…'라는 관계대명사(who, whom, that)이며, <!T,r]k'm]메카르템>은 '팔다, 물건을 매매하다'(참조, 창세 31, 15 출애 21, 7), '인도하다'(참조, 신명 28, 68)라는 동사 <rk;m'마카르>에서 파생된 칼형(Kal:기본형) 과거 2인칭 남성 복수로서 '너희들은 팔아 버렸다, 또는 매매했다'라는 뜻이다. 그런고로 본문의 해석은 '너희들 남자가 매매했던 자'라는 뜻이다. 즉 야곱의 사랑을 시기, 질투하여 그의 형제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린 요셉을 강조하는 말이다.
ⓑ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hy:j]mil]레미흐야> <l]레>는 '…에게, …에서, …위하여'(to, at, for)라는 전치사로서 보통 여격으로 사용되며, 보통 자음 앞에서는 단순쉐와(Simple shewa) <-]에>로 취해진다. <hy:j]mi미흐야>는 '살다, 회복하다, 소생하다, 부활하다, 강하게 되다, 생명이 주어지다'라는 동사 <hy:j;하야>에서 파생된 단수 남성 명사로서 '생명의 보존, 삶의 수단, 음식, 표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문자적으로 '생명의 보존을 위하여'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인간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생명을 버리시지 않으셨다는 의미이다.
ⓒ 흉년 <b[;r; !ynIv;솨님 라아브> <!ynIv;솨님>은 '반복하다, 두 번째로 다시 하다, 변하다, 바꾸다, 머무르지 아니하다, 늙다'라는 동사 <hn:v;솨나>에서 유래한 남성 명사에 <!y-i임>이라는 복수 어미를 결합시킨 형태로서 '반복해서 변하는 것들, 즉 일 년의 소출'이라는 뜻이다. <b[;r;라아브>는 '배고프다, 부족을 경험하다'라는 동사 <b[er;라에브>에서 유래한 단수 남성 명사로서 '기근', '배고픈 사람'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문장의 해석은 '기근의 해'라는 뜻이다. 즉 가나안 땅이 기근이 듦으로 말미암아 야곱과 요셉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항상 좋은 방법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은혜를 베푸신다. 이 흉년이 그 좋은 예이다.
ⓓ 바로의 궁에 <h[or]p' tyBe뻬트 파르오> <tyBe뻬트>는 '집, 거주하는 장소, 쉴 수 있는 곳', '천막', '궁전, 관저, 대궐'이라는 불규칙 명사 <tyIb'바이트>에서 온 남성 명사로서 <tyIb'바이트>의 구성형 즉 '…의 궁전, 또는 …의 집'이라는 뜻이다. <h[or]p'파르오>는 '큰 집(great house)'이라는 뜻의 이집트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 애굽 왕조의 열왕들의 명칭이다. 따라서 해석은 '파르오의 집, 또는 파르오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정체를 밝힌 요셉 (45, 1-15)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요셉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1) 요셉은 시종들을 모두 물러나게 명령했다(1절). 이는 친구들 사이에 나누는 사적인 대화는 가장 자유로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없는 은혜로운 방법으로 자기의 백성들에게 그 자신과 그의 인자하심을 드러내신다.
(2) 그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눈물을 흘렸다(2절). 이 눈물은 다정하면서도 깊은 애정을 나타내는 눈물이었다.
(3) 그는 아주 갑작스럽게 자기의 정체를 그들에게 밝혔다. 나는 요셉이라. 그들은 요셉을 그의 애굽 이름인 사브낫 바네아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히브리 이름인 요셉은 그가 애굽에 머무는 동안 사용되지 않아 잊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를 요셉으로 부르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바울을 확신시키려 하셨을 때 '나는 예수라'라고 말하셨으며 제자들을 위로하시고자 하셨을 때에도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그 자신을 드러낼 때 그들이 진정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도록 용기를 주신다.
(4) 그는 그들이 범한 악행을 통해 하나님이 오히려 선을 이루셨다고 말함으로써 그에 대해 느끼는 그들의 죄책감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5절).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슬퍼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자기의 죄를 진실로 회개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이루시는 것을 볼 때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제 요셉은 그들에게 기근이 5년이나 더 계속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6절).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가 친척들을 봉양할 수 있다는 점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5,7절).
1)하나님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2)하나님의 섭리는 먼 미래까지도 내다보며 역사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가 한 사람 곧 요셉을 앞서 보내셨음이라'(시편 105, 17).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전도 3, 1).
3)하나님께서는 종종 반대되는 것들을 통하여 역사 하신다. 그러한 예로서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4)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자는 그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행한 일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5) 그는 남은 기근의 해 동안 그의 아버지와 모든 가족을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1)그의 형제들은 속히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야곱에게 그의 아들 요셉이 '애굽 전국의 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9절). 만일 야곱을 다시 젊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이 소식이야말로 그를 젊게 만들 것이다.
2)그는 매우 진실하게 그의 아버지와 그 가족으로 하여금 그가 있는 애굽으로 내려오도록 했다.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9절). 그는 야곱으로 하여금 고센 땅에 머물도록 하면서 그에게 양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니(11절). 요셉처럼 우리 주 예수님도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영광과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백성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 함께 머물기를 원하신다(요한 17, 24).
(6) 그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 서로 입을 맞추고 껴안았다. 그는 자기의 친 동생인 베냐민의 목을 먼저 껴안았다. 베냐민은 요셉이 그의 형들과 헤어졌을 때 한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는 베냐민을 껴안고 나서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 형들을 모두 껴안았다(15절). 요셉의 형들은 그제야 요셉과 함께 말을 나누었다.
몰린 베냐민을 위해 유다의 간곡한 호소와 자기 희생의 비장한 각오의 탄원은 요셉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자신의 신분을 형제들 앞에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이 자신의 보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을 애굽에 판 것은 형들의 잘못이 아니라 흉년을 면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섭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어 당신의 계획을 이루셨으며 자신들의 이산도 그 같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환이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1. 정체를 드러낸 요셉
1) 감정을 억제하지 못함
유다의 간곡한 호소와 자기를 희생시키려는 그의 탄원은 더 이상 요셉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유다를 통해 그의 형제들이 회개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에 대한 사랑이 순수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제 그는 드디어 형제들에게 자신이 바로 요셉임을 밝혔습니다.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분명히 반성하는 증거를 찾았고 또 인간적인 우애가 더 이상 그를 자제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a. 베냐민을 인하여 울음을 터뜨림(창세 43, 30-31)
b. 형제 상봉의 기쁨(창세 33, 10)
▣ 하나님의 영광
많은 크리스천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찬양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특히 찬양 사역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아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역자가 찬양 집회를 인도하고 난 후 눈물을 흘리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찬양 집회를 인도했지만 집회 후 남는 것은 허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오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내 속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깊은 밤의 어둠처럼 가려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사역자의 고백처럼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허무뿐입니다. 자신의 자랑과 영광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집중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한 7, 18)
2) 놀라는 형제들
방성 대곡한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형제들에게 밝혔을 때 형들은 놀라 말조차 못했습니다. 그들은 돈 몇 푼에 미디안인에게 팔려 갔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범죄 심리학에 의하면 범죄인들의 공통적인 현상은 극도의 불안감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a. 자신을 밝히는 요셉(창세 45, 3)
b. 이스보셋의 놀람(사하 4, 1)
▣ 크니이두스의 망대
고대의 숙련된 건축가였던 크니이두스는 애굽의 바로를 위해 한 망대를 지으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건축을 해 나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벽의 한 돌 위에 큼지막한 글씨로 새겨 놓았다. 역청으로 그것을 가리운 다음 겉에는 금으로 애굽의 바로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이 바로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행해진 것처럼 가장해 놓았던 것이다. 그는 오랜 풍상의 세월을 거치면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서 자신의 이름과 공로가 미래 세대에 길이 길이 남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의 영광만을 구하는 척하지만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모든 동기를 아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 6, 7).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아에 대해서 정직할 필요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왜냐하면 곧 우리는 책들이 펼쳐진 가운데 보좌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3) 형들을 안심시킴
요셉은 침착하게 형제들이 겁에 질린 것을 감안하여 책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의 우애를 나타내고 싶어 자기에게 가까이 오라고 말합니다. 이는 공손한 태도이며 또한 불안한 상태에 처한 형제들의 걱정과 근심을 덜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린 것은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밝히면서 그들의 허물을 감추고자 했습니다. 이는 철저한 신앙인이요 일국의 총리로서 경륜을 쌓아온 요셉이었기에 가능한 조치였습니다.
a.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창세 45, 7-8)
b. 관용적임(창세 50, 19)
▣ 어리석음
옛날 임금이 타는 당나귀가 한 마리가 있었다. 임금이 당나귀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순찰하면 온 국민들이 나와서 왕에게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낸다. 임금을 등에 태운 나귀는 왕을 태운 역할에 걸맞게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해서 멋지게 보인다. 국민들은 왕과 함께 그 나귀를 향해서도 갈채와 찬사를 보낸다. 이러한 갈채와 환호에 고무된 나귀는 어느 날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쳤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갈채와 환호를 혼자서 다 받기 위해서였다. 나귀는 왕이 없으면 그 모든 환호와 갈채를 자신이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귀가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치는 순간, 나귀에게는 참수형이 내려졌다.
인간은 하나님의 존귀 아래 거하면서 영광을 누린다.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하나님이 사라진 세계에는 존귀와 영광이 없다.
2. 야곱을 초청함
1) 야곱을 모셔 오라고 함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재촉하여 속히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가서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오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는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을 아버지를 걱정하며 지체 말고 속히 모셔 오라고 하면서 그에게 깊은 신뢰감을 심어 주기 위해 자기의 권력을 운운했습니다. 요셉이 이와 같이 서두른 것은 야곱의 가족들이 가나안에서 고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그들의 애굽 이주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a.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고센 땅에 있기를 청함(창세 45, 10)
b. 고센 땅에서 봉양할 것을 청함(창세 45, 11)
2) 고센 땅
아버지 야곱을 비롯하여 친족을 애굽으로 이주하도록 독촉한 요셉은 삶의 터전으로 고센 땅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곳은 나일 강의 페르시아 지류의 동쪽에 있는 지대로서 그 영역이 아라비아 평야까지 이르는 좋은 목초지이며 비옥한 땅입니다. 요셉은 친족들을 이곳에 이주시켜 그들의 직업인 목축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양식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a. 라암세스라고도 불림(창세 47, 6)
b. 이스라엘의 목축을 위해 구별하여 준 땅(창세 46, 34)
3) 기뻐하는 바로 왕
▣ 영광의 상처들
메흐디 디바즈라는 이란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고문을 받고 약 1평방미터 크기의 독방에 감금되어 결국에는 1993년 12월에 사형 언도를 받았다. 모슬렘으로 자라난 그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배교에 대한 벌은 사형이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나의 구원자 되신 분을 따르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그를 염려하던 전 세계 사람들의 탄원 덕분에 그는 잠시 옥에서 풀려났지만 결국 1994년 7월에 피살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판결을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지를 재어 보시는 하나님의 시험'으로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 그 정도에 상관없이 - 몸에 입은 상처건 감정에 입은 상처건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입은 상처건 이 모든 것이 영광의 상처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면 항상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라고 질문합니다. 우리의 성향은 모든 역경을 방해물로 생각하면서 이 모든 어려움이 끝나고 소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늘 소망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반드시 역경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 지금도 통치하십니까? / 리처드 뷰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 8, 18)
요셉이 아버지를 부르러 보내기 전에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왔다는 소문은 이미 왕궁에 전해졌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모든 가속을 이끌고 오라고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전에 왕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합당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사실을 왕에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요청하였습니다. 바로는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을 매우 기뻐하였고 그의 요청에 기쁨으로 승낙하였습니다.
a. 형들을 만난 요셉의 기쁨을 함께함(창세 45, 16)
b. 기쁨을 더하는 바로(창세 45, 19-20)
3. 형들을 보내는 요셉
1) 가나안으로 돌아감
요셉이 바로와 그의 나라에 많은 이익을 가져왔기 때문에 바로는 항상 요셉에게 감사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많은 선물과 수레를 아비 집에 보내고 그의 친족들이 고센 땅에 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명대로 형들에게 수레를 주고 많은 선물을 싣고 가나안에 가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a. 비옥한 토양 가나안(출애 3, 8)
b. 이스라엘이 정복함(여호 23, 15-16)
2) 찾아온 기쁜 소식
애굽을 떠난 요셉의 형제들은 긴 여정을 마치고 고향 땅을 밟자마자 제일 먼저 아버지를 찾아가서 요셉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셉이 살아 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을 알린 것입니다. 야곱은 이 믿을 수 없는 요셉의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서 자식들의 모든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a. 요셉이 보내온 것(창세 45, 27)
b. 하나님께 감사함(디전 6, 6)
▣ 하나님께 영광을
안익태,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교회에서 태극기를 걸고「올드랭 사인」을 부르는 교포들을 보면서 애국가를 만들 결심을 했다. 안익태는 부다페스트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5년 드디어 애국가를 완성했다. 훗날 애국가가 불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애국가는 내 작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영광
영국 국회는 개회 전에 반드시 시편 127편을 낭독한 후 시작된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 127, 1).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에만이 비로소 잘될 수 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을 사람의 제1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본장에는 전장에 바로 연결되는 내용으로서 요셉이 드디어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 야곱의 가족들을 모두 초청하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과 환난도 때가 되면 반드시 물러가고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형들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은 요셉이었지만 그들을 조금도 원망치 않고 다 용서했다. 이러한 요셉의 위대한 용서야말로 이스라엘을 살리고 자신 또한 모든 형제보다 갑절의 축복을 얻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지금 당장 손해인 것 같으나 결국엔 자신이 속한 가정이나 사회 공동체를 살리고 자신도 축복받는 비결이다. 또한 이런 요셉의 모습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면서도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계획 아래서 준비되고 실행되어지지만 실제로 인간의 계획 뒤에서 움직여 나가는 것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또한 요셉의 형제들의 악한 계획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통로일 뿐이라는 사실은 세상의 악을 하나님께서 조성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악한 계획과 행위 자체가 결코 구속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지 못하며 결국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표로 나아가게 됨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임을 말하고자 한다.
▣ 영광의 흔적
19세기경 스코틀랜드의 대학에서는 명예학위 수여자를 야유하는 습관이 있었다. 학생들은 발코니에 걸터앉아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려는 사람이 원래 광부였다는구먼! "하곤 했다.
언젠가 리빙스턴이 학위를 받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의 태도에 관심을 나타내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리빙스턴의 모습을 본 학생들은 모두 기립하여 그 자리에서 서 있을 뿐이었다.
밀림에서 사자에게 어깨를 찢겨 한 손을 축 늘어뜨린 아주 험한 피부를 한 노선교사가 명예학위의 수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봉사의 결과로 상처, 영광을 얻기 위한 손실, 그리스도로 인한 욕됨 등 더 이상 영예로 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옛날 어떤 시인은 영웅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멘'이라는 검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검에는 싸울 때 입은 상처 외에 아무런 명예의 장식이 없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 16)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고전 10, 31)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빌립 4, 20)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베전 4, 11)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데전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