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행동의 세가지 방식은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만일 당신이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의 어느 상태에도 있지 않다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에고의식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의식에서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의 행동이 나온다.
받아들임.
즐겁게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최소한 그것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임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받아들임은 지금 이 상황, 이 순간이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요구하므로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 행동한다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동안 당신의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길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중단하는 것이 좋다.
즐거움.
당신이 하는 일을 실제로 즐겁게 할 때,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은 살아 있음의
느낌으로 바뀐다.
즐거움을 통해 당신은 우주의 창조적인 힘과 연결된다.
결핍감은 자신이 모든 창조의 배후에 있는 힘으로부터 단절되고 분리된 조각이라는
에고의 망상으로부터 일어난다.
과거나 미래 대신 현재의 순간을 삶의 중심점으로 삼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능력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삶의 질도 높아진다.
즐거움은 '순수한 있음, 현존'의 역동적인
측면이다.
우주의 창조적 힘이 자신을 의식할 때,
그것은 기쁨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외부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 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내면의 의식 차원이다.
이것은 당신이 행하고 있는 일 속에서
'순수한 있음'의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다.
삶의 주된 목적은
의식의 빛을 이 세상속으로 가지고 오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의식변화를 위한
기회로 삼는 사람이 많아지면,
새로운 지구가 탄생한다.
'순수한 있음' 의 기쁨은 의식이 깨어 있는 기쁨이다.
그때 깨어있는 의식은 에고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당신 삶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무엇인가를 달성하거나 무엇인가 되려는 바람없이 단순히 자신들이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때 그들이 하는 일에는 즐거움에 강렬함이 더해져서 일반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창조성이 따라온다.
열정.
깨어남이라는 내면적인 목적에 변함없이 충실한 사람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 창조적 표현의 또 다른 방식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자신의 외부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위대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그때부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열정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깊은 즐거움을 느낌과 동시에 목표와 비전의 요소가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열정과 에고는 공존할 수 없다.
열정은 자신이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만, 동시에 자신의 살아 있음, 기쁨,
힘의 원천인 현재의 순간과 깊이 하나 되어 있다.
열정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은 삶(생명)과 하나이며, 열정에 의해 움직이는 행동이 아무리 역동적이어도 당신은 그 행동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하고, 그것이 목표와 비전과 결합하면 열정이 생겨난다.
미래의 목표가 있다해도 관심의 촛점은 늘 현재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다.
-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서 부분 발췌함.
성 아구스티누스의 명언
"Love and do what you want."
사랑하라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현존의 삶을 실천하는 최고의 명언이란다.
사랑하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금 여기에 깨어 살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