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선택
출근을 위해 일상대로 길을 나선다. 골목길을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다. 차량이 평상시보다 많이 붐비고 있다. 그렇다. 오늘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집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 입시와 관련이 있는 것이면 사소할지라도 모두 챙겼었다.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고, 오늘이 수능시험을 치는 날인 줄도 모르다니 참으로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년처럼 출근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니 공연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길이 많이 막히고 있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까? 잠시 직장까지 갈 수 있는 몇 갈래의 길을 생각해 본다. ○○광장 쪽에는 ㅇㅇ고등학교가 있고, ○○사거리 쪽에는 ㅇㅇ여자고등학교가 있으니, 길은 좁지만 고등학교가 없는 ○○사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섰다. 그러나 이곳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차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출근 시각이 임박해 오니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평상시에 다니던 곳으로 갔으면 길이 덜 막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 말고 다른 길도 많은데, 바보같이 하필이면 이렇게 차량이 많이 쏟아진 길로 들어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후회스럽다.
오늘만은 아니다. 사실 길을 걷다가 어느 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꼭 어떤 목표를 두고 가는 길이 아닐 때 더욱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가야 할 방향과 가고 싶지 않은 방향을 사이에 두고 많이 망설인다. 이럴 때는 대체로 즉흥적인 판단에 따라 길을 선택한다.
지난달 어느 화창한 휴일, 단풍 구경 가자는 집사람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어 팔공산 나들이를 했었다. 다행히 선택한 길이 막히지 않고 잘 트여 즐겁게 갈 수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가득 담고 기분 좋게,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길이 참으로 많이 막히고 있었다. 어떤 길을 선택하여 집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부부의 의견이 달랐다.
엿장수 마음대로란 말처럼 운전대를 잡은 나는 멋대로 길을 선택해 왔다. 길이 많이 막혔다. 움직이는 시간보다 멈춰 선 시간이 길어지기를 반복하자, 옆에 앉은 아내가 자기가 가자고 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며 원망을 하기 시작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원성이 점점 더 높아지더니, 드디어 나들이 온 사람들이 많아 길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길을 잘못 선택하여 늦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내 생각에는 아내가 선택한 길로 가더라도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사람이 단풍 구경에 나섰다는 오늘, 어찌 내가 선택한 이 길만이 밀리고 있겠는가? 몇 번인가의 내 설명에도 아내는 아니란다. 사탕을 먹고 쓰다는 사람을 이길 수 없어 그날 단풍 구경은 귀갓길 때문에 끝이 좋지 못했다.
오늘도 내가 가지 않은 길에는 차량이 많지 않아 차가 훨씬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그 길로 갈 수 없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안전하게 기분 상하지 않게 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라디오 채널도 이리저리 돌려보고 소리의 크기도 조정 해 본다.
라디오에서 수능시험 치는 학생들에게 길을 배려해 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차창 밖을 본다. 차마다 젊은 청년을 한 사람씩 태우고 있다. 나보다 저들이 더 바쁘지 않겠나 생각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오늘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좋은 결과를 얻어,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모두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언제나 내가 가지 않은 길 위에 더 많은 꽃과 나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위에 더 많은 꽃씨를 심고 가꾸어 아름답고 고운 꽃을 피워 행복한 나비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가장 빨리 직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갈 작정이다. 젊은 시절 내가 교직을 선택했을 때 능력 있고, 똑똑한 동료들이 잘 못 들어온 길이라고 다른 길을 찾아갔었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90년대 말 우리나라에 ‘아이엠에프(IMF)’라는 경제위기가 왔었다. 그 후 계속 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해, 같은 길을 걷다 떠난 사람들이 그들의 직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
무엇을, 왜, 부러워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동료들이 더 가까운 길이라고, 더 빨리 가는 길이라고 쉽게 바꿀 때, 나는 그냥 앞만 보고 걸어왔었다. 오늘 내가 택한 이 길이 많이 막혀 짜증 나게 할지라도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고 인내해야겠다. 차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 (2004. 11 )
첫댓글 직업을 바꾼 다는게 정말 어려운 결정인데 변함없이 한 우물만 판 노력의 결정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