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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들을 옮기다보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이 들고 계시는 멋진 비유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디가 니까야(長部)〉의 빠야시 경(D23)에서 꾸마라 깟사빠 존자는 14가지 정도의 통쾌한 비유로 삿된 견해의 위험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계신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똥 꾸러미를 이고 가는 사람의 비유이다.
승가는 복밭일 때 존중 받아
옛날에 어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옆 마을로 갔다고 한다. 그는 그 마을에 마른 똥이 아주 많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마른 똥이 아주 많이 흩어져 있구나. 이것은 내 돼지들의 밥이다. 그러니 나는 이 마른 똥을 가지고 가야겠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윗옷을 벗어서 마른 똥을 많이 퍼 담아 꾸러미로 만들어 머리에 이고 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 먹구름이 몰려 큰 비가 내렸다. 그는 똥물이 흘러 똥물에 뒤범벅이 되었지만 똥 꾸러미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고 갔다. 사람들이 이런 그를 보고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은 미친 것 아니요? 어떻게 똥물에 뒤범벅이 되어 똥더미를 이고 간단 말이오?’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여보시오, 그대들이 미쳤고 그대들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소. 이것은 내 돼지들에게 줄 밥이란 말이요!’
출가는 세속에서 가졌던 삿되고 잘못된 견해라는 똥 꾸러미를 내려놓고 부처님의 견해, 계ㆍ정ㆍ혜로 정리되고 사성제와 팔정도로 대표되는 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머리에 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출가자가 버려야할 것으로 감각적 욕망이 주는 쾌락과 이득과 존경과 명성의 즐거움 등을 드셨으며, 이러한 즐거움을 ‘똥과 같은 즐거움’이라 하셨다. 그리고 출가자는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나기따 경(A5:30) 등)
그런데 출가해서 똥 꾸러미를 내려놓기는커녕 절집에 널려있는 권력의 똥, 돈의 똥, 명성의 똥 등을 발견하고는 속인 때 이루지 못했던 포한을 풀기라도 하듯, 냉큼 이를 머리에 인다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어렵사리 종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승가에도 유능한 행정승과 유능한 정치승 등이 필요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승단의 여러 자리들이 우리가 초개처럼 버리고 떠난 저 감각적 욕망과 이득과 존경과 명성 등을 다시 머리에 이는 곳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승가는 복밭(福田, punna-khetta)일 때 존중받는다. 그러므로 승가는 승가에 공양하여 행복의 씨를 뿌리는 불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의 열매를 익게 해주는 그런 기름진 밭이어야 한다. 승가가 복밭이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머리에 이고 해탈열반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재치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밭에는 똥을 많이 뿌려야 유기농 밭이 되어서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에 어울리는 복밭이 된다. 유기농 복밭이 되기 위해서 저들은 저 냄새나는 똥 짐을 짐짓 머리에 이는 것이다. 게다가 돼지들 즉 남들을 위해 똥 짐을 지는 자가 진정한 보살 아닌가! 그대는 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옳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대야 말로 개똥을 머리에 이고 가는 자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면 … 왜 사냐면 … 웃지요 ….
[불교신문 2276호/ 11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