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의식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오늘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다음은 그에 대한 대답의 취지로 쓴 글이다. 좀 유치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거기 담긴 뜻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철수는 일곱 살이 되어 재동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철수가 이 학교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이 학교가 자기 동네에 있었다고 하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를 조사해서 이 학교가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확신을 가진 다음 이 학교를
택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들어가서 그 때까지 알지 못하던 노래도 배우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놀이도 하고.... 신이 났다. 자기 학교가 자랑스러웠다.
철수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재동 학교 최고!"를 합창했다.
그 옆 동네에 있던 교동 학교는 보나마나 '똥통 학교'였다. 그 옆 교동학교가 무슨 학교인지, 어떻게 가르치는 학교인지도 알아 볼 필요
없고, 알아 볼 의사도 없었다. 혹시 길을 가다가 철수 또래의 교동 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우리 학교 최고, 너희 학교 똥통!" 하며
놀리기도 하고, "너희 학교는 변소가 교실보다 많다는데 도대체 몇 개냐?" 하고 따져가며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공부시간에도
'우리 학교 최고, 남의 학교 똥통'이라는 진리를 어떻게 더욱 공고히 하고 더욱 널리 알릴까 궁리하고 토론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이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지나고 상급반 학생이 되었을 때, 철수는 서서히 자기의 단순하던 '처음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 최고, 다른 학교 똥통'이라는 그 단순하고 명백하던 공식이 여러 면에서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말은 자기가 가진 모교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표현한 '사랑의 말'(love language)이지 무슨
영원불변하는 객관적, 통계적 진리에 대한 공식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셈이다.
그래서 철수는 자기의 생각을 자기 학교 친구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그들과 의논했다. '이젠, '우리학교 최고, 다른 학교 똥통'이라는
생각을 그만 하자. 공연히 그런 걸 따지고 증명하려는 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이제부터는 그 대신, 어떻게 하면 학과목 공부를
충실히 하고, 노래 운동 등 특기를 잘 살리고, 착하게 서로 돕는 어린이로 자라날 수 있을까 하는, 본격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자.
쓸데없이 우리 학교만 잘 났다고 우쭐거리면서 남의 학교 욕이나 하고 돌아다녀서 남의 비웃음을 사거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러다 남에게 비웃음을 사면, 그것이 마치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핍박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될 수 있으면 옆에 있는 다른 학교들하고 협력해서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데 힘쓰자." 등등의 제안을 했다.
몇몇 학생은 자기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고 하면서 철수의 생각을 좋게 여겼다. 선생님 중에서도 물론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 여기는 분이 있었다. 더러는 이제 선생님과 학생 대표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한 번 정식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여 훌륭한
학생 됨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 함께 더욱 깊이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해 힘쓰도록 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런데 일부 학생 사이에서 야단이 났다. 대부분 재동 학교에 금방 들어온 저학년 학생이었고, 또 고학년이 되었어도 아직까지
초등학교 저학년의 멘탈리티나 그 때에 설정된 고정관념, 특히 남이 나빠야 상대적으로 자기가 올라간다는 단순논리 등에서 헤어나지
못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외쳤다. "이제 와서 다른 학교가 똥통학교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지금껏 지켜온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냐? '순수'를 저버리고, 똥통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지금껏 스스로 믿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던 것이 결국 우리학교만 최고라는 진리의 기별이었는데, 이것을 버리면 우리의 존립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아니냐?
우리만 유일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기별을 전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가? 다른 학교들이
똥통 학교가 아니라는 생각을 퍼뜨리는 철수 같은 학생이나 지도자는 뭔가 잘못된 사람이 아닌가?" 등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K선생님 같이 스스로 교육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선생님도 이런 소란에 동참하여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런 학생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철수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순수냐 아니냐, 진리를 수호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이 두려우냐 아니냐, 진리를 떠나
세상과 타협하느냐 아니냐, 따위의 문제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라나느냐 자라나기를
거부하느냐, 새로운 빛에 스스로를 열어 놓느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를 계속하느냐,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진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잘 끼어진 것이라고 계속 고집하느냐, 철모를 때의 일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러기를 중단하느냐 하는 등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수는 현명한 아이였다. 당장 재동 학교가 세상에서 최고 학교라는 것을 문자대로 믿지 못하면 학교고 공부고 다 때려치우고
밖에 나가 깡패나 되겠다고 하는 친구에게는 그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계속 '재동학교 최고'를 영원한 복음으로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해준다. 그러나 이미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트인 친구에게는 이제 그런 부담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살기를 권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특수성만 강조하고 거기에만 온통 신경을 쓰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곧 '나만 나만'을 주장하는
상당히 전투적이고 오만스런 학생으로 자라나게 하는 대신, 초등학교 교육의 기본이 무엇인지 다시 심각히 검토하여 우선 건전한
초등학생으로서의 아름다운 인격으로 꽃피게 하는 데 힘쓰자고 권해본다.
이제 철수와 그의 친구들의 주된 관심은 초등학교 교육이 줄 수 있는 그 본래적 진수에 전념하는 일이 되었다. 초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에 진학하면서는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지적, 사회적, 인격적 발전을 극대화하고, 그 결과 사회와 인류를 위해
크게 공헌하는 훌륭한 학생이 되는 것으로 그들의 관심은 더욱 자라났다.
우리가 어느 종교를 갖게 되는 것도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만약 스페인에서 났으면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것이고 독일에서 났으면 개신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이란에서 났으면 이슬람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인도에서 났으면 힌두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가 거기 태어나서 그 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 종교가 무조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무조건 백인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남부 지방 KKK 단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차별주의적 태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