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인주(金仁珠) - 파란중첩의 생애 - 1. 나의 신앙 배경 1 나는 1917년 6월 1일 평안남도 평원군 순안면 관북리 26번지에서 태어났다. 모태적부터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매일 아침 가정예배와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였다.
2 순안읍교회 유년주일학교 시절에는 토요일이면 다음날 주일에 교회에 데리고 갈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미리 예비했다가 아침에 그들 집을 찾아가서 교회에 데리고 가곤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고, 헌금이나 전도를 잘하는 사람에게 계절에 따라 시상식이 있었는데 나는 이때 언제나 특등을 하여 상품을 많이 타오곤 하였다.
3 소학교는 평원군 순안면 순안사립숭의학교(順安私立崇義學校)를 다녔다. 담임선생이 애국심이 강하고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이어서 학생들에게 신앙적으로 지도하면서 애국심도 길러 주셨다.
4 3·1절만 되면 그날은 공부하지 않고 종일 3·1 운동 때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 주시며 우셨고 그때마다 우리도 덩달아 울곤 했다. 그리고 공부하기 전에는 늘 예배당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서야 공부를 시작하였다. 5 나의 아버지는 장로교 장로였기 때문에 지방 순회 전도를 다니셨다. 여름이나 겨울에도 쉬지 않고 집사님 한 분과 슬라이드를 가지고 전도를 다니셨는데 나도 따라다니곤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왕중왕’(王中王), ‘모세의 사적’ 등의 영화이다. 6 중학교 시절에는 평양으로 이사 와서 숭의여중(5년제)을 다녔다. 그때는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 다녔는데 목사님은 채필근(蔡弼近) 씨였다. 나는 여학생인데도 유명한 부흥사와 목사님들을 찾아다니며 부흥회에 참석해서 설교를 들었다.
7 이런 가운데 나의 의식은 깨이기 시작했고 자아를 정립해 나갔다. 교파를 초월해서 감리교, 성결교, 안식교까지 가보았다. 특히 안식교의 예언자 ‘화잇’ 부인의 말씀집을 많이 보았다. 8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교파 난립에 의문이 싹텄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예수님도 한 분이시며, 성경도 하나인데 교파는 왜 이렇게 많은지 이상하기만 하였다.
9 어느 날 스님이 우리 집 문전에 와서 목탁을 두드리니 어머님이 “우리 예수 믿어요” 하고 퉁명스럽게 얘기하자 스님은 두말 않고 돌아서버렸다. 나는 스님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어머님 몰래 돈을 드린 적이 있다. 10 숭의여중을 졸업하고 장대현교회의 같은 교인인 김형복(金亨福, 김원필 씨 모친) 형님의 중매로 원필 씨 숙부인 김광선(金光善) 씨와 결혼했다.
11 큰 집에서는 원필씨를 낳으신 후 이름을 잘 짓고 싶어 평양 칠성문 밖의 역학자(易學者)들을 찾아가 김원필(金元弼)이라고 지어 오셨다. 그리고선 “이 이름은 귀히 된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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