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
틴토레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은 요한복음서에만 등장한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17)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에서
다른 화가들의 세족례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사도들은 이상화된 고전적인 건축물의 드넓은 실내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마치 연극무대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도들은 더러는 앉아 있고, 몇몇은 기대어 누워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으며,
어떤 사도는 발을 씻기 위해 신발과 옷을 벗고 있고,
어떤 사도는 동료의 바지를 벗겨주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아마도 사람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하기 위한 의도로 그려졌겠으나
누가 보아도 사실적이고 극적이다.
그들은 세족례를 이미 했거나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자를 쓴 유다는 사도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기둥 받침에 기대어 서서
허리에 전대를 차고 손을 턱에 괴고 시선을 예수님에게서 돌린 채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은전 서른 닢이냐?
아니면 예수님이야?
그것이 문제로다.
오른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색 겉옷을 벗어놓고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 속옷을 입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순결과 믿음을 상징하는 흰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바닥에 꿇어앉아 막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려 한다.
젊은 요한은 시종처럼 예수님 옆에 서서
팔에 수건을 두르고 주전자로 베드로의 발에 물을 부으려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놀라서 팔을 벌리며 예수님께 묻는다.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른손가락으로 베드로의 발을 가리키고
왼손을 벌리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베드로는 이미 한 발을 나무로 만든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고,
베드로가 발을 담고 있는 나무 대야는 교회를 상징하고 구원의 배의 역할을 한다.
세족례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종의 모습으로 본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겸손과 봉사의 모범을 최후의 만찬 바로 직전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은 벗을 위해 자기의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제자들에게 나눠준 첫 번째 성찬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쪽 뒤에 있는 건물 안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림의 중심에는 수수한 분위기의 개가 그려져 있다.
개는 겸손과 헌신을 상징하며
이 두 개념은 세족례의 의미와 밀접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베드로가 오른쪽 귀퉁이로 몰린 이유는 이 그림이 걸린 위치 때문이다.
원래 이 작품은 산 마르쿠올라(San Marcuola) 교회 오른쪽 벽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바로 예수님께서 세족례를 하는 장면과 대면하게 연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선으로 변형된 원근법을 적용했다.
원근법에 따라 이 작품을 보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을 보고,
두 번째로 식탁과 식탁에 앉아 있는 사도들을 마주하며,
마지막으로 운하와 함께 있는 대각선으로 그려진 아치의 건물을 보게 된다.
이 그림은 베네치아의 산 마르쿠올라 교회에서
영국의 국왕 찰스 1세에 의해 인수되었다가,
그가 죽은 후에 루이스 데 하로(Luis de Haro)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에게 헌납하여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에 있는 경당에 걸려 있었다가
1936년에 프라도 미술관에 기증된
권력의 흐름에 따라 그림도 움직인 암울한 역사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