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된 종교적 체험과 거짓된 체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정한 체험은 부도덕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생활방식을 낳지 않는다. 인도의 구루인 바그완 슈리 라즈니쉬는 자유 방임적인 성관계가 영적인 각성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선하고 고귀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둘째, 체험은 장기적으로 본인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참된 종교적 체험이라면, 처음에는 고민하게 하더라도 결국에는 불안정이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더 온전한 상태로 그를 이끌어주어야 한다.
셋째, 체험은 남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하는 체험이 사랑과 자기희생의 정신을 창조하는가, 아니면 자기몰입과 냉담한 태도를 조장하는가?
넷째, 만일 ‘종교적’ 체험이 자기 모순적이거나 자가당착적이라면(불교도가 비자아를 경험하는 것과 같이), 종교적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다섯째, 기독교 신앙이 참이라면 기독교의 종교적 체험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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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참된 삼위 하나님만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며, 이런 체험은 신자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의 인격적 실존을 확신하는 데는 다른 증거가 필요 없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변화되는 경험이 올바른 신앙의 기본이다. 칼빈은 이것을 신(神) 관념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거기에 오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논리적으로는 잘못 믿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올바른 조건이나 환경이 조성되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고, 나를 잊지 않았다고, 내게 그분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믿을 수 있게 해줄 것.
둘째, 나의 (이성적, 감정적, 영적) 기능들이 본래의 설계대로 작동할 것.
셋째, 이런 믿음이 진리를 지향하고 있을 것.
우리 인간과 다른 지성의 소유자들이 존재한다거나 지구가 5분 이상의 나이를 갖고 있다는 신념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는 없어도, 이런 신념은 반증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다.
-폴 코판, ‘기독교에 관한 뜨거운 감자’(새물결플러스)에서
첫댓글 타종교인들의 종교적 체험이나 신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막론하고 그것의 진실성 여부를 어떻게 판별하는가에 관한 성경적인 기준점들을 짤막하고도 핵심적으로 잘 담아낸 글입니다. 설 명절에 제사를 올리는 가운데 비신자들 또한 모종의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체험마저도 어떠한 성경적 기준에서 걸러져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줍니다. 주일이 낀 설 명절 연휴에 모두들 영적인 강건함을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