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9월 인천여자공업고등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나의 인생 2막 준비는 시작되었다.
식품 가공, 식품위생, 식품 미생물 등 식품 가공공장에서 활용되는 내용에 관한 것만 지도하던 그 시절의 식품가공과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빵을 만드는 주인공이 나오면서 기계를 다루고 실험실에서 실험기구를 다루는 제조과정에 대한 기계적인 요소를 주로 하던 식품가공과의 공부가 점차 제과제빵, 조리, 칵테일, 호텔종사자 등 요식업 쪽으로 그 영역을 넓히며 변화해가고 있었고 교사들은 식품공학을 전공한 교사들만 있어서 사회적인 수요의 필요성에 의해 기능적인 부분의 인재가 필요했고 그런 학생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교사들은 그 기능을 습득하여야 했다. 그래서 직접 학원에 다니며 배워서 자격을 취득하거나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실습 과정에 포함될 부분을 학생들에게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인천 연수구는 신도시로 아파트 단지가 대대적으로 들어섰고 단지마다 제과점이 생겨났는데…. 그때 한 제과점 사장이 학생들 기능사 시험 감독으로 왔다가 인사를 나누고 알게 되어 학생 지도를 부탁하면서 나도 함께 배우기로 하여 그분의 기숙을 지도받기로 했다. 서울 소공동에 소재하는 롯데 호텔의 제 과장으로 근무하신 훌륭한 제 과장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여러 명의 학생과 기능을 익혔다. 당시 우리나라 제과 제빵업에 종사하는 내노라하는 기술자는 정말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돈을 벌러 도시로 상경하여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술을 익혀서 실력은 감히 누구 못지않게 훌륭했지만, 강의 실력은 형편이 없어서 이해를 못 하고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쌍욕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너무 마음이 좋은 형님 같은 분이셨다. 이런 분 밑에서 3개월간 사사를 하고 자격증도 땄다. 이 시기에 IMF가 터지고, 국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모든 사람의 삶이 황폐해지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모습의 술집이 유행하는데 그것이 춤추는 칵테일바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웨스턴 -비 시절이 왔다. 이때부터 나는 학생들의 제과제빵 실습과목을 거의 전담했고 수업 시간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퇴직 후에 1층에는 제과점을 2층에는 과일주 및 칵테일바 만들어 노후를 보낼 거라고….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 꿈을 갖고 늘 기억하며 생활하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말, 점차 실감이 나게 나타나기 시작을 한 것이 2000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