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을 진하게 갈고 그 먹물을 붓으로 찍어 한지 위에다 한글 하나씩을 되풀이해서 쓴다. 50번, 70번, 100
번... 맘에 드는 놈이 나올 때까지 그 글자를 계속해서 쓴다. 그 중에 쓸만한 놈 몇개를 골라 포토샾으로
옮긴다. 거기서 글자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다시 딱 하나를 엄선하여 저장소에 넣는다. 그렇게
몇 시간만에 글자 하나를 완성하고 나서야 다시 그 다음 글자쓰기로 넘어간다. 그런 글자 2천5백개를 만
들어야 한다. 한글의 자모음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글자의 숫자가 그 쯤 되기 때문이다. 폰트 이
야기다. 컴퓨터에서 쓰는 서체. 한글 글자체. 그것을 시도하고 있다. 40여년 해오던 일을 접은 뒤 어쩌다
가 시작한 그 일에 지금 자승자박하며 지낸다. 1년6개월째 그 일에 매달렸으나 아직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촉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이러
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나 아닐까.
컴퓨터의 서체는 수십종에 이른다. 각각 나름대로 개성있는 쓰임새와 멋을 표방하고 개발해낸 것들이
다. 그러나 그 많은 서체의 대부분이, 지금 이 글의 서체도 그렇듯이, 그래픽으로 만든 기계적인 글자이
거나 10대 20대의 취향에 맞춘 보편적이랄 수 없는 글씨체들이다. 반갑게도 몇몇 손글씨체와 붓글씨체
가 있긴 하지만 다소 권위적이거나 작위적인 느낌이어서 만족도가 좀 그렇다. 공문서에도 쓰고 시나 연
애편지에도 쓸 수 있는, 폼나고 정감있고 살아있는 듯한 글씨는 없는가? 그런 글씨를 만들 수는 없는까?
나는 지금 그런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질문의 대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내 글씨는 어떠하길래 감히 그 일을 시도했는가? 범람하는 폰트들을 제치고 소비자들에게 만족
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어서 나선 것인가? 아니, 그런 거는 아니다. 그저 어쩌다가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루어가는 보람과 재미도 있고 어쩌면 내 후반기 삶의 Main Stream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번 해보는 것 뿐이다. 물론 폰트의 홍수속에 휩쓸려 소리없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만이다.
최종작업을 마친 완성된 글자들. 이런 글자 2,500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깨닫고 느껴지는 점들이 재미있다. 글자라는 작고 간단하고 사소한 도형속에
분재와 같은 오묘한 인문학적 요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유치원 유아원 어린이들에게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라 하면 입을 씰룩거리면서 사랑하는 엄마를 쓱쓱
그린다. 그런데 그 얼굴의 윤곽이 물론 엄마를 닮기도 하겠지만 어린이 자신의 얼굴에 더욱 가깝다. 어
린이는 엄마의 얼굴은 수없이 보면서 살지만 자신의 얼굴은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가 그리
는 엄마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다. 한국의 불교유적지마다 인도사람 석가모니의 불상이 있다. 그 많은
석가모니불의 얼굴이 인도사람 석가모니의 얼굴일까? 아니다. 한국사람 얼굴이다. 그 불상을 바위에 새
긴 석공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결국 자기 자신의 표현이라 했다. 자신이 쓰는 글씨도 자기
자신을 그리는 그림이나 마찬가지다. 얼굴이 갸름한 사람의 글씨는 갸름하다. 둥그런 사람은 글씨도 둥
글다. 성질 급한 사람의 글씨는 콕콕 찍어서 쓴 흔적이 보이고 덤벙대는 사람은 글씨도 덤벙댄다. 꼼꼼
한 사람은 획과 획이 정확히 만나 빈틈이 없다.
나는 글씨를 제법 썼다. 소년시절부터 글씨라면 주변에서 손꼽혔다. 학창시절에는 빈번히 담임선생님
의 교무일을 도와드렸고 대학에서는 교무처와 학생처에 발탁되어 글씨로 용돈을 꽤 벌었다. 군대에선
글씨가 알려져 저 멀리 부산에서 서울의 모부대로 아예 전출되기도 했다. 당시의 최고사령관들은 한자
세대였기 때문에 한글타자로 일관되는 보고서가 빨리 독해되지 않은 탓에 한글과 한자 둘 다 잘 쓰는 상
황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장인어른께는 출장지 통영의 여관방에서 장문의 전상서를 써 올리
어 한달만에 외동딸의 배필됨을 허락받았다. 젊은 녀석이 어르신의 구미에 맞도록 한자를 섞어가며 종
서(세로로 쓰는 글)로 전상서를 써 올렸으니 당연히 가산점수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때까지 내가 쓴
글씨는 펜글씨 연필글씨 볼펜글씨 필경글씨와 같은 작고 가느다란 글씨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서히 통증이 오면서 손목이 통제권을 벗어나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처럼 획이 그어지지 않았고 글씨가 차츰 궤도를 이탈했다. 엄청나게 많은 글씨를
써 왔으니까 손목에 무리가 올 만도 했다. 때맞춰서 시력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약해졌다. 그때부터 손목
을 쓰지 않아도 되는 큰 글씨를 쓰기로 했다. 붓을 들고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조금씩은 써
오던 터였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붓으로 글씨를 쓴다 해서 누구나 서예작품 수준의 글씨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붓으로 그저 자기
글씨를 쓰면 된다. 글자가 의사소통의 기호라는 이치를 알면 붓글씨라 해서 반드시 예술수준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명망있는 어느 서예가는 옛날 민중들의 글씨를 상정하여 서예의 법칙과는 별도
의 쉽고 친근한 ‘민체’라는 붓글씨체를 만들어 널리 보급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이천에 자기를 만드는
도공친구가 있었다. 그는 공들여 만든 작품을 고르고 골라 서울에서 개인전시회를 마친 뒤 전시작품중
멋진 수반 하나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작품이 너무나 멋지고 소중해서 나는 햇빛 잘 드는 공간에 모
셔두고 이따금씩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얼마후 도공 몇 명과 함께 그 친구를 내집에 초대했는데 친구
는 정색하며 나를 꾸짖었다. ‘내가 너를 잘 못 보고 이 그릇을 주었구나. 그릇은 그릇으로 쓰여야 하고
이 그릇도 그릇으로 쓰라고 준 것인데 모셔두기만 하면 그게 그릇이냐?’ 그때부터 그 그릇은 우리집 오
늘신문 담는 그릇으로 지금까지 30여년째 쓰이고 있다. 예술 이전에 실용이 있다는 것을 친구에게 배웠
다. 붓글씨란 필기도구인 붓과 기호문자인 글자가 만나는 것인데 그것이 반드시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켈리그라피라해서 전형적인 서예의 틀에서 벗어난 개성있고 실용적인 글씨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용기있게 붓을 들고 내가 내 글씨를 써가는 근거다.
아무튼, 100여명의 작가와 PD들을 조련해가며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절 나는 우수작품이나 기준 이
상의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매월 상장과 두둑한 상금을 수여했다. 그 상장을 붓으로 썼
다. 한지위에 제작진의 이름과 작품의 내용 그리고 수상이유를 제법 길게 쓴 뒤 둘둘 감아두었다가 사오
십명 직원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 서있는 곳에서 서서히 두루마리를 풀어가며 상장을 읽고 상금을 수여
하면 수상작가와 PD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조금 과장하면, 황홀경에 빠진다. 주위에선 박수가 터
지고 환호와 함께 부러움 섞인 감탄사가 쏟아진다. 이삼십대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수상자들은 그 상장을 책상 뒷벽에 현수막처럼 붙여놓는다. Office Automation시대요 냉정한 Digital시대
에 시계를 거꾸로돌리는 진풍경이었어도 젊은 방송인들은 정감이 배어있는 그 상황을 소화할 줄 알았
다. 그 시상제가 거듭 되면서 붓으로 쓴 상장들은 여기저기 표구작품처럼 걸려 있었고 회사를 떠나는 작
가와 PD는 상장을 떼내어 졸업장처럼 소중히 지니고 나갔다. 10여년동안 그것은 회사문화의 일부를 이
루었다.
작년에, 이제는 방송계의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그때의 몇몇 PD들과 회합이 있었다. 그중 IT작업에 일
가견이 있는 윤PD가 내게 말했다.
“감독님, 이제 그 일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더 미루시면 의욕도 없어지고 힘도 빠지셔서 점점 어렵게 될
겁니다.”
“되겠나 내 글씨로?”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가능성이 크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크게 성공하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이
사회에「오송체」라는 독특하고 정감있는 글씨체 하나 남기시는 것도 의미있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감
독님이 써 주신 상장, 상여금봉투와 속지, 미국에서 보내셨던 편지, 우리들은 아직도 다 간직하고 있습
니다. ”
그렇게 해서 폰트일은 시작되었다. 성공에 확신이 있어서도 아니요 금전적인 이득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다. 독특하고 정감있는 글씨체 하나 남겨 보자는 의욕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 나를 자승자박하고 있
는 이유다.
사람의 인격이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글씨 역시 마찬가지다. 글씨와 먼거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무관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 많은 분들의 글씨를 본따고 습득해왔다.
내 아버님은 명필이셨다. 한글과 한자를 단순화해서 요즘말로 슬림화된 글씨를 쓰셨는데 종이위를 굴러
다니듯 글씨가 모나지 않고 부드러웠다. 성악을 공부하셨고 언론인생활을 하셨던 자유인 아버님의 분위
기가 글씨에서 느껴진다. 형제중엔 누님의 글씨가 좋다. 누님의 글씨는 대범하고 거리낌이 없으며 예쁘
다. 그분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 두분의 글씨가 내 속에 스며든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고등학교에서 기하를 가르쳐주신 이기용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글씨는 획과 획, 글자와 글자,
낱말과 낱말이 끊임없는 친화력으로 연결되는, 피아노 연주곡같은 리드미컬한 달필이었다. 큰 글씨는
크게 작은 글씨는 작게 쓰는 것도 선생님께 배웠다.
대학교 신입생이 된 내 눈을 사로잡은 글씨는 고려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셨던 김민환선배의 것이었다.
뛰어난 리더쉽으로 존경받는 선배였던 그분의 글씨는 정통서예의 바탕위에 강약을 더한 것이었다. 어느
획은 굵고 힘차며 어느 획은 가늘고 여리었는데 그것이 한 글자 한 낱말속에서 멋지게 어우러지며 자기
스타일을 이루고 있었다.
「백자부⌟를 쓰신 시조시인 김상옥선생님은 나에게 화룡점정이셨다. 그분의 거실과 안방 건넌방의 공간
은 모두 백자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백자를 들어 설명하시기를 “세상의 그릇중에서 우리 백
자는 조형상으로 주어진 공간을 가장 크게 활용한 그릇입니다.”고 말씀하셨다. 촬영을 마치던 날 선생님
은 직접 먹을 갈아 한지에 프로그램 제호<人間萬歲>를 써 주시며 “요즘 서예는 운필에만 충실하고 조형
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글씨도 그림이라 할 수 있어요. 당연히 조형미를 생각해합니다. ” 정말 그 분
이 써 주신 붓글씨는 그래픽적인 조형감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나의 마지막 私淑이셨다.
김상옥선생님께서 써주신 옛 TBC-TV의 <인간만세>제호
내 속에는 그 분들이 들어 있다. 그 분들에게서 보고 배워 내 속에서 다시 태어난 글씨로 폰트를 만드
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쓱쓱 쓰면 될 것을 어찌 1년6개월동안 목표의 4분의 1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게 이렇다.
어느 자리에 어느 옷을 입고 나갈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어느 글에 어느 글씨가 어울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글씨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 그 글씨에는
알게 모르게 정과 사랑이 듬뿍 배이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사사롭고 정서적인 글에는 자유롭고 부드러
운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마음 가는대로 붓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직장의 상사에게 올리는 결재서류
나 정부의 공식문서와 같은 객관적인 글에는 감정을 제거하고 사실설명에 집중하는 기계적인 글씨가 적
합할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나는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사사롭고 정서적인 글에는 자유롭고 부드러운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공문서에도 쓸 수 있는 부드럽고 정감있는 글씨를 생각한다
폰트로 양극단의 그 두가지 글을 다 같이 만족시킬 글씨는 어떤 것인가? 그런 글씨를 선별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어울림이다. 글자가 어울려 낱말이 되고 낱말이 어울려 문장이 되며 문장이 어울려 글
이 된다. 그 낱자인 어느 한 글씨가 아무리 폼나고 멋지더라도 앞뒷자와 어울리지 않으면 폰트로서의 의
미가 없다. 비단에 삼베올이 끼거나 삿갓쓰고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쓰고 또 쓰고, 한달 전에
쓴 것을 오늘 다시 쓰고,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고...를 반복하며 일년반을 보냈다.
그런데 어울림을 생각하면서 글씨를 쓸 수록 그 글씨는 점점 개성이 마모되면서 기계적인 글씨를 닮
아가는 거였다. 문맥에 따른 융통성이나 끼리끼리의 친화력은 용납되지 않고 그저 무난한 글씨가 되어
야만 어울림을 지니게 됨을 보았다. 쓰면 쓸수록 글씨가 표준화 되어가는 것이다. 그 반복을 반복하면서
새삼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이웃과 어울린다는 것은 우선 내 것(개성, 특징, 독특함, 고집, 모남...)을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 어울린다는 것은 어느 만큼 깎이고 닳아감을 의미한다는 것. 잘 어울린다는 것은
잘 처신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
처음 글씨를 배워 여태까지 60년을 이어온 이 ‘쓰는 버릇’을 어찌하랴. 남들은 정치를 논하고 세계평
화를 이야기하는 나이에 고작 울산조선소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처럼 미세하고 사소한 글씨나 만지작
거리며 이제 겨우 세상사는 이치를 깨닫고 있으니....
첫댓글 소재 주제 구성 3위일체!자랑스럽네 자네가!그 미시적접근에서 큰울림을 토해내는 큰그릇,이동석!오송쳬나옴 바로 쓸게.좋은소식 생큐^^
아랍글자는 그 자체가 그림이요 예술입니다. 오송체가 글자의 뜻을전할뿐만 아니라 쓰는 사람의 감정과 내면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예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완성되는날, 한글의 새로운 글자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ㅎㅎㅎ. 노력해보겠습니다마는 기대만큼이야 되겠습니까....
전에 막걸리 마시며 잠간 얘기를 나눠, 대충 짐작은 했지만, 한글이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을 줄이야... 타고난 솜씨와 이루고자하는 열정이 충분하니 세세손손 이어가는 자랑스런 글자가 되리라 믿읍니다~~.
경추! 하하하.
올 연말 연하장은 멋진 오송체로 받아서 두고두고 간직하고싶으이 !!!
^^ 정말?
吾松 화이팅!
땡큐 白山!
뒤늦게나마 글을 읽게되어 미안하고 이번 변산에서 강의해준 내용도 우리 국민이 깨달아야 할 깊은 뜻임을 감지했고 언젠가는 빛을 볼날이 꼭 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송체의 집념을갖고 노력하는 동석의 삶의 자세가 친구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소이다.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변산에서의 강의 내용도 사이트에 올리면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리고 친구들에게 준 CD. 차안에서 잘 감상했읍니다. 동석의 따뜻한 정성과 우정 감사합니다.
잘 간직하며 기념하겠읍니다.
ㅎ ㅎ ㅎ. 상원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활력과 용기를 주지. 변산에서의 강의내용을 차분히 정리하여
늦지않게 까페에 올리겠습니다.
하,인사늦어 미안하네, 감칠맛이나는 글 오래도록 보여주길 바라네, CD 선물 아내와 함께 들으며
자네얘길 자랑스럽게 했다네....가능하면 음악 한곡씩이라도 올려주길.MP3로 다운받을수있게...
항상 건강한 삶이되시길 바라네...김동훈
동훈이.친근하고 따뜻한 얼굴 지금도 기억하네. 추위에 잘 지내시는가? 변산여행이 벌써 한달이나 됐군.음악을 잘 듣고 있다니 고맙고 다행이야. 글쎄, 글에다 음악을 곁들일 생각을 못했군. 방법을 알아내어 그렇게 해보겠네. 요즘 성철스님 3천배 촬영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수월하지 않군. 열심히 하겠네.^^
오송체 완성되는 날 까지 건강하고 힘차게 정진하시길 !!!!!
노력중. TV출연 축하하네 ^-^
오송 글방이 우리카페에 있는걸 오늘에야 보고,또 옛날 CD의 글씨가 오송체인걸 지금에서 알았으니 이럴수가!
늦게나마 귀한 글과 글씨를 알아보게 된 인연을 감사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