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 교수
심장동맥의 최고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는 22~29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국제 혈관확장술 심포지엄'을 연다. 이 학회엔 미국 콜롬비아대의 마틴 리온, 그레그 스톤 교수와 네덜란드 심장센터의 패트릭 서레이 등 '똑똑한 의대생들'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쟁쟁한 대가들을 폼함해서 900명의 외국 의료진이 참석한다. 1996년 박 교수가 시작한 이학회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심장내과 학회 중 최대 규모로 발전했다. 박 교수는 1년에 4번 국제학회를 주관하고 한 달에 2.3번은 해외학회에 참가하느라고 '개인사'가 없는 '국제 의사'다.
약력 : 1954 강원 원주시 출생1979 연세대 의대 졸, 한양대 석사(1991), 고려대 박사(1994)1986 세브란스병원 전임의1989 승모판협착증 풍선성형술 국내 최초 성공
서울아산병원 조교수1991 심장동맥 그물망 시술 국내 최초 성공1992 미국 베일러의대 연구교수1997 좌관동맥주관부 그물망 시술 국내 최초 성공1999 중국 창하이병원 객원교수2000 대한순환기학회 학술이사2001 항암제 도포 그물망 시술 개발2002 심장혈관연구재단 이사장2004 대한순환기학회 이사, 중재시술연구회 회장
허혈성 심장질환 임상연구센터 소장대한의사협회 스미스클라인 학술상, 대한순환기학회 MSD학술상,우수논문상,
유럽심장학회 ‘올해의 의사상’, 미국심장혈관연구재단 ‘최우수 업적상’ 수상
환자 살리려 밤낮으로 방사선 쬐다가 자신의 백혈구 수치가 뚝 떨어지기도
박승정 교수는 하마터면 다른 길을 가느라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 뻔 했지만 뚝심과 열정으로 심장내과의 새 역사를 썼다. 주위에서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전형적 사례로 박 교수를 꼽는 사람이 많다. 박 교수는 연세대 의대 본과 시절 ‘뇌’란 주제에 매료돼 신경과학에 빠져 해부학교실 박수연 교수의 방에 살다시피 하며 이 분야에 파고들었다. 당시 신경과는 내과에 속해서 내과 전공의를 지망했다가 4년 차 때 또 다른 재미가 있는 심장내과로 진로를 바꿨다. 심장내과의 장점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올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전공의가 끝났을 때 다른 동기들은 교수직인 전임강사가 됐지만 박 교수에게 그런 자리는 없었다. ‘세브란스 전임의(Fellow) 1기’란 타이틀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납옷을 입고 방사선을 쬐며 밤낮 환자를 봤다. 쓰러지면 곧바로 눈이 감겼고 잠에서 깨어나도 고개를 들기가 힘든 하루하루였다. 방사선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뚝 떨어져 한 달 동안 ‘시술실 출입금지’ 명령을 받고 매일 환자를 살리고 싶어 시술실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박 교수는 전임의 3년 차 때인 1989년 마침내 ‘승모판(이첨판)협심증 풍선확장술’에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심장혈액이 섞이지 않고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흐르도록 만드는 승모판이 좁아져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환자에게 사타구니 동맥을 통해 풍선을 집어넣어 넓혀주는 시술이다.
이후 박 교수는 1989년에 선배 교수의 추천을 받고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민병철, 박건춘, 이정신 교수 등 선배 의사들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주위에서는 “박 교수의 피땀은 남들은 상상조차 못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오전6시 병원에 도착해서 밤 10시를 넘어서 퇴근하지만 집에서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다. 언제 환자 호출이 올 지 모르기 때문. 하룻밤 새 5번 병원에 불려간 적도 있다. 주말에 쉬는 것은 호사. 그래서 지금은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는 환자가 도착하면 1초라도 더 빨리 시술하기 위해 모든 의료진이 병원에서 5분 내에 도착하는 곳에 살도록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91년 협심증 환자의 사타구니에 금속망을 넣어 심장동맥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 들으며 새 시술법 도입, 최고 학술지에서 인정받아
1990년대 중반에는 ‘안팎곱사등이 처지’가 돼야만 했다. 그는 심장동맥 중 좌관동맥주간부가 좁아진 환자를 스텐트(혈관을 넓히는 작은 관) 시술로 넓혀 치료하기 시작했다.기존의 교과서에는 외과에서 우회 혈관을 만드는 수술로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한 영역이다. 1997년 미국 하버드대 스테판 오스텔리 교수로부터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병원 내에서도 한 흉부외과 교수가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이 시술은 생사람 잡는 것이니까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훼방을 놓았다. 그 의사는 당시 ‘스타의사’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박건춘 당시 부원장은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바람이 세면 누울 줄도 알아야 한다”며 잠시 시술을 멈출 것을 권했다. 박 교수는 6개월 동안 이 시술을 못했지만 하늘이 그를 도왔다. 미국심장학회지(JACC)에 이 시술에 대한 그의 논문이 실린 것. 박 부원장은 박 교수를 불러 “이제 맘껏 시술하라”며 독려했다. 오스텔리 교수는 “박 교수가 옳았다”며 특강 요청을 해왔다. 박 교수는 2008년 3월 이 시술이 기존의 외과수술 못지않게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발표했다. NEJM은 인용지수가 ‘네이처’나 ‘사이언스’보다 훨씬 더 높은 학술지다. 박 교수는 이에 앞서 2003년 협심증 환자를 치료하는 그물망에 항암제를 바르면 재발이 덜 생긴다는 연구결과를 이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이 학술지에 국내 의사 중 유일하게 논문을 발표했다. 더구나 기초과학 분야가 아니라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는 점, 그것도 두 번이나 게재했다는 점에서 일부 의사들은 질시의 시선까지 보내야만 했다. 박 교수의 활약은 상복으로도 이어져 2005년 5월 파리에서 열린 유럽심장중재학회에서 ‘올해의 의사상’을 받았고 2008년 10월 미국 심장혈관연구재단의 20돌 잔치에서 ‘최우수 업적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국제학술지 4개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박승정 교수는 심장내과, 흉부외과, 혈관외과, 마취과, 영상의학과의 의사와 간호사 등 200여 명의 식구로 이뤄진 심장병센터를 세계 최고의 심장병원으로 만드는 야심 찬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심장병 위험이 있는 환자가 병을 예방하는 데에서부터, 수술이나 내과적 시술을 받은 환자의 재활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그런 병원을 꿈꾸고 있다.
출처:(의사, 이성주)
2024-06-05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