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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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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한북정맥 4구간 : 청계산 구간 - 세모를 재촉하는 눈발속에 한해를 정리한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71 15.12.29 13: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북정맥 4구간 : 도성고개에서 구노채고개까지 (용화사 탈출)

  

언제 : 을미년(15년) 매듭달 스물엿새 흙날

누구랑 : 나홀로

어딜 : 구담사(접속) ~ 도성고개 ~ 강씨봉 ~ 청계산 ~ 신노채고개 ~ 구노채고개 ~ 용화사(접속)  

                 정맥 15km + 접속 6.5km  합 약 21.5km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852 에 있습니다 *********

 

 

계절중 가장 긴긴밤을 지세워야 하는 동짓날, 그래서 호랑이도 긴밤을 주체못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

동지팥죽을 먹고 진짜 한살이 더 먹고나면 이제 낮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지고... 그래서 새로 시작된다고 하여 작은설로도 불린다

악귀를 ?아내고 건강을 가져온다고 하는 팥죽을 사기 위해 광명사거리 큰시장에 길게 늘어선 우리 이웃들의 삶의 얘기가 있고

성탄의 기쁨까지 함께 하는 올 한 해 마지막으로 가는 12월 하순에 떠나는 한북정맥길

과연 궁예의 못다이룬 꿈이야기는 어디까지 나에게 들려줄지 궁예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 본다 

 

한북정맥 4구간 도성고개에서 구노채고개까지 등로(접속 ; 연곡리 구담사, 탈출 : 용화사) - 참고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경기도 땅으로 완전히 들어온 한북정맥길은 가평군과 포천군의 경계를 따라 조금씩 서남진하게 된다

요동치는 후삼국의 정치적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서 있으면서도 가장 힘들게 살아야 했던 궁예의 처 강씨의 사연이 남아 있고

국망봉에 올라 철원땅을 지금도 바라보고 있을 궁예의 못다이룬 꿈을 이제는 뒤로 한채 걷다보면

다시 운악산에서 만나게 될 궁예의 흔적들이 마지막 여운을 이 산객에게 남겨주게 된다

경기도에서 높고 높은 산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에 이어 5악중의 으뜸인 운악산을 앞에 두고 하산하게 된다

 

오늘은 처음으로 일동까지만 가게 되여 동서울에서 10분 먼저 출발하게 된다 - 6,600원 지불  06:40분 출발

 

일동 터미널에서 택시로 구담사까지 - 9,300원이 나오는데 만원을 지불하고 출발

 

계속 직진

 

바로 불당계곡 표지석

불땅계곡 표지석 

무당골과 같은 의미로 닭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달골을 당골로 해석하여 불당이라는 전혀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포천 문화원)
닭이 있는 골자기라는 의미인 닭골을 발음대로 읽으면 달이 되는데 이 달을 달다는 의미인 당(糖)과, 사당(祠堂), 불당(佛堂) 등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철원 관인면 자료)

 

건물안으로 해서 수레길 따라

 

본격적인 산행 시작

 

물망계곡 이정표 앞에서 계곡을 건너 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게 된다

 

8부능선 이정표를 지나 구담사로 내려가는 또 다른 능선과 만나

 

접속부터 쉽지 않은 된비알로 벌써 지치는데... 한북정맥 구간과 접속하는 도성고개에 오르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도성고개(道城峙) (630m)    제비울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북면 적목리에 성을 축조하여 난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도성재’라고 하는 곳에 성곽의 흔적이 있다.

공민왕이 산 정상에 올라가 송경(松京)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이것은 가평군에 있는 장군대좌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도성고개와 인접한 곳이 북면(北面)의 북은 군사들의 신호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며

북면에 있는 적목리는 말을 기르는 소년인 목동(牧童)을 백둔리는 군사들의 주둔지를 상징하는 것이 되며

도성고개는 바로 이러한 지명과 연관이 되는 것으로 군사들의 방어시설물인 성(城)을 상징하는 것이다.  - 포천문화원

 

첫 이정표가 나오며 가평방향으로 잣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백호부대가 있는 듯... 백호봉 표지목이 의자에 붙어 있다

 

채석장 갈림길인데 전혀 조망이 안돼 어디가 어딘지...강씨봉 0.3km 지점


강씨봉 휴양림으로 내려 갈 수가 있는 강씨봉에 올랐지만...

 

강씨봉(姜氏峰 830.2m)  삼각점, 

후고구려의 왕 궁예의 부인인 강씨가 이 곳에 귀양보내지어 터를 잡아 살았다는데서 유래를 찾고 있으며

강씨봉 동쪽에 있는 논남마을에 강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도 있다

경기도 포천 일동면 화대리와 가평군 북면 적목리의 경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이지 않는 조망을 안내판으로 대신...

 

 

3번의 이정표를 지나고 오뚜기령 직전봉 - 한나무봉인 듯...지도상 무리울골로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나물골 갈림길    일동면 화대리  다목동(한나무골)
마곡과 인접한 곳으로 말(馬)을 기르는 목동(牧童)을 상징하는 지명인데 나무가 많다는 의미인 多木洞(한나무골)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무리울골   일동면

다락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루울(舞樓鬱)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다락'은 높은곳에 있는 방(房)으로 새의 둥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평 강씨봉 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포천 일동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는 오뚜기 부대가 있어 붙여진 오뚜기령 - 우측으로

 

통신시설을 지나 오뚜기령 표지석 뒤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오뚜기령 조금 지나면 바로 좌측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도에만 남아 있는 강씨봉 마을터... 그나마 눈팅도 못하고... 한북명지지맥이 갈라지는 귀목봉 갈림봉에 올라서고

明智山 1267M

명지산은 맹주산(盟主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산의 형세가 마치 주위 산들의 우두머리와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맹주산이라는 이름이 점차 변하여 지금의 명지산으로 불리는 것으로 짐작된다

맑은 지혜. 산 이름이 고상한 명지(明智)산의 이름이 친근감이 있고, 서울에 있는 명지대학과 어떤 관계?

 

명지지맥(明智支脈)- 가평천 서쪽,조종천 동쪽분수령 -도상거리 약57.6km (7개)...

* 한북정맥/청계산 -명지산1253 -우정봉906 -대금산706 -불기산601 -주발봉489 -호명산632 -청평대교 앞 삼거리...

가평의 조종천으로 맥을 다하는 41.6km의 산줄기이다.

 

 

귀목봉으로 가는 길 이정표

귀목봉890봉  명지지맥 분기봉 

귀목은 귀목고개의 생김생김이 마치 사람의 귀같이 오목하게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귀목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귀목을 구이목(九耳木)이라고도 쓰는데, 귀가 아홉 개나 달린 백여우가 고개중턱에 자주 나타나

길가는 나그네들의 보따리를 잡아당긴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강씨봉마을터를 보지못한 아쉬움을 내리는 눈속에 묻어두고 계속 길을 이어간다 - 귀목봉 갈림길에서 청계산 방향

 

망자는 말이 없는데 산자인 승자는 붓을 맘대로 휘둘러 패자의 역사까지 남겼다

궁예를 자아도취에 빠져 패륜을 일삼고 광폭하여 폭군을 일삼았다고...

후대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남을 낮춰야 내가 높아지지... 역사는 생물임을 잊었는가

지금 현정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또 승자의 붓에의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새벽 4시30분에 아침을 먹은 관계로 일찍 식후경을 마치고

 

그렇게 믿었던 부하에게 쫓기어 몇 살아남지 않은 부하들을 데리고 이 곳으로 말머리를 돌리며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랴...

야음을 틈타 쫓기는 신세, 비통함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남몰래 흘렀던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달빛만이 알고 있을 뿐

왜 부하를 믿었을까 통곡으로 울음산(명성산)에 맘껏 표호하고 돌아섰지만 피인지 땀인지 모를 슬픔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부인 강씨가 지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 것인데

 

망구대 분기점

 

궁예의 바램과 달리 강씨는 국망봉에 올라 눈물로 적셨던 그리움이 넘치고 넘쳐 병을 얻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니...

날로 심해지는 폭정을 부인 강씨가 간언하였으나 듣지는 않고 오히려 강씨봉 아래로 부인을 귀양을 보냈다고 하지만

궁예의 속샘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시켰던 것이다. 지금도 오지로 남아 있는 이곳  강씨봉 마을터에

승자의 역사에 남겨진 기록보다 왕건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부인만은 지켜내고자 했던 궁예의 숨은 뜻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위험구간 안내판을 지나

 

한 때 경기는 물론 강원 충청 일대를 귀속시켜 한반도의 3분의 2를 세력권안에 둘정도로 세상을 호령하며 미륵정토을 꿈꿨지만

민초들의 바램인 미래의 미륵세상을 이루지 못한 원통함에 죽을 때도 누워죽지 못하고 그대로 꼿꼿이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궁예는 폭정을 일삼았기에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거기에 무덤과 사당도 없다고 승자가 쓴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궁예가 죽은 후에도 포천의 여러 지명과 설화 속에서 궁예는 포악한 폭군이 아니라 미륵세상의 희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포천과 가평의 경계에 있는 청계산 정상

 

기록으로 남기면 뭐하랴 백성이 두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들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역사책에 나와 있지 않는 궁예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한탄강에 남긴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데...

역사의 내용을 내 입맛데로 바꿔놓으면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 당분간은 통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했던 짓은 감춰지지 않는다

지금 국정화 논란... 역사는 이렇게 말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하는 아쉬움...

한탄강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다고 꿈꾸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청계산

청계산(淸溪 849.1m)  삼각점

청계산 자락 서쪽지역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인 淸溪山은 대동여지도에는 靑溪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靑鷄와 淸溪의 중간단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소의 마굿간에 있는 닭장을 말하는 것으로 청계의 의미는 푸른 닭 즉 靑鷄를 말하는 것인데 靑鷄라는 말이 맑은 시내라는 뜻으로 잘못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동시내에서 볼 때 이곳의 위치가 동쪽이며 동쪽은 청룡(靑龍)을 말하는 것으로 실재의 색인 청색닭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계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대원사(大願寺) 절 뒤의 뾰죽한 바위봉우리가 닭의 벼슬에 해당된다.  포천읍지 정리

 

청계저수지 1.7km  갈림길

 

우리가 살다보면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세월을 흘러 보낼 뿐이다

 

아직은 칼바람에 계속되는 눈발속에 이쁘지는 않지만 눈꽃은 계속되고

 

백지 같은 순백의 설원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고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기에

때론 아예 다시 그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돌탑이 있는 770봉

 

이후 내리막길로 로프에 의지해 된비알을 친다

 

남겨진 위에 또 다시 눈이 내리면

아예 덮어 버리고

미련 없이 되돌아보지 말고 흔적만 남기고

길을 떠나자

 

길매재(질마재) - 청계저수지 갈림길. 생태보전지역표시, 길마봉 0.4km

질마재
청계산 실우봉(失牛峰) 옆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의 모양이 소의 등에 짐을 싣기위한 도구인 길마를 닮았다고 하여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길마재가 표준발음이며 고개 넘어는 가평군 상면 상판리라는 마을이 위치한다.

 

조금 지나니 암릉구간이라 또 위험한단다. 770봉에서 어렵게 내려 왔는데...

 

새해의 시작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 세모의 시간들도

겨울에 내리는 흰 눈에 의해 덮여지고

새로 쓰여 진다

 

길매봉까지 쭉 ~~

 

너무 벅차 지우기 힘든

과거의 기억들, 아픔, 슬픔, 회한들을 덮고

새로 희망을 쓸 기회

 

헉?

 

그래서 우리는

 이 겨울이 주는 눈이 다 녹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

 

다행이 우회... 날씨만 좋으면 위로 올라 바윗길을 걸으면서 가평과 포천이 펼치는 산군들을 볼 수 있으련만


 

우회길도 만만치 않다. 능선에 올라서니 길매봉이 보인다

 

인생의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지우거나 다시 쓸 기회가 사라지나니...

 

길매봉(길마봉) 표지석이 있는 정상 

 

또 다른 길마재 표시봉 : 노채고개 2.0km - 하늘이 서서히 열리지만 이제는 녹기시작하는 눈길과 등산화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철탑이 좌측으로 보이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철탑이 나오면서 이제야 하늘길이 제대로 열리면서 가야할 원통산 방향 조망 - 마지막 철탑전에 직진해야 한다. 원통산은 가운데

 

등산화에 붙어 끈덕지게 떨어지지 않는 눈(雪)텡이와의 전쟁... 자꾸 기울어져 걸을 수가 없다. ㅉㅉ     신노채고개

노채(爐埰) 고개(387번 도로),   (은행나무 가든, 낚시)간판 있는 곳에서 우측 배수로를

이 마을에는 관급 자료로 이조 자기를 구워내던 가마터가 있고, 이 요(窯)는 왕실에 납품하는  관급요(官給窯)였기에

가마 노(爐)자와 영지 채(埰)의 합성으로 마을 이름이 불리워졌다고 하나 가마터가 발굴 되고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 고개 맞은편에 금반옥배형(金盤玉盃形), 즉 술상과 술잔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주를 집어먹는 놋쇠젓가락 즉 놋저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가평 문화원

 

이 곳 노채 골짜기 안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많다. 샘치골(泉湧谷 : 샘이 솟아오르는 골), 꽃 놀이터 등이 있고,

아기소(小沼 : 작은 소 : 애기소)는 바위의 절경과 맑은 물로 많은 행락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가운데에 올라가는 길

 

원통산 갈림길 능선에 올라서고 좌측으로

 

원통산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는 정상

원통산(圓通山)(567m) 표지석과 벤치가 있슴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 화현리와 가평의 하면 하판리 경계  

유동리와 화현면의 동쪽에 위치한 표고 567m의 산으로 이산의 서쪽 기슭에는 높이 8m, 폭 4m 3단계의 층암폭포를 이루고 있는 원통폭포가 있다.

폭포소리도 우렁차지만 기송노수(巨松老樹)로 우거진 숲의 경치도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케 한다.

이러한 폭포가 영평8경( 오늘날 일동면, 이동면 등 포천시 북부지역의 옛 이름으로) 빠진 것이 원통해서 원통산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원통()’이란 본래 ‘관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으로,

원통산에 소재한 원통사에서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을 중심 법당으로 하고 있다    포천 문화원

 

용화사 탈출로가 있는 안부에 도착하니 오후 3시20분... 계속 기우뚱하며 걷다보니 발가락에 물집까지...    운악산을 넘을 수 있을까?

 

아무리 빨라도 7시00은 넘을 것 같고... 혹시나 해서 해드랜턴은 준비했지만... 요즘 자주 하는 말, 욕심이 화를 부른다 그것도 겨울철에...

 

구노채고개에서 용화사로 탈출을 시작하여 접속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다 - 용화사가 보이고

 

용화사 입구

 

 

삼거리가 나오면 우측으로 가야 빨리 차를 탈 수 있다 - 좌측은 도성사 가는 길 : 납골당,가족탑 보유사찰이라 되어 있다

 

 

도성사 반대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영선골 화현5 리 경로당이 좌측으로 보인다

 

되돌아 본 걸어온 길

 

47번 국도가 나오면 우측으로

 

화현5리 정류장이 보인다

 

 

일동으로 가는 버스가 금방이다 - 차시간은 사진산행기에서

 

일동터미널에서 종료

 

 

우리가 대간길이나 정맥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봉우리들을 만나게 된다

무명의 봉을 몇 개 넘고서야 겨우 이름표를 가지고 있는 산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산이나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은 만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깊고 깊은 계곡과 많은 산줄기를 품고 있기에 유명한 산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초보산꾼이 걷고 있는 한북정맥길에도 수많은 봉우리들을 넘고서야 진산을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은 맘만 먹으면 반갑게 손이라도 잡을 수 있지

산속에 들면 앞에 봉우리가 보인다고 덥석 손을 잡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아무리 반가워도 덥썩 안을 수가 없기에 만나기 위한 과정에서 만나는 오름길

오름길에 놓여 있는 과정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오늘 처럼  잘보이지도 않은 산길을 걷다보면 더욱 그렇다

바람잘날 없는 우리 인생살이 얘기이기도 하다

인간세계에서 세상에 꽁짜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산길에서 만났던 오름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 필연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그래도 산봉우리는 보이든 잘보이지 않던 걷다보면 만나게 되지만

인간사는 세상은 어디 그렇던가

실체가 보이지 않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또 달려가고

남이 가니 나도 덩달아 가다 괜히 코만깨지고...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걷다보면 만나게 될 산준령들이 펼치는 산무를 그리며 떠났던 한북정맥길

 

거기에 궁예의 역사적 흔적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러하고

또 끝나지 않은 민초들의 미래의 부처에 대한 희망가까지 함께 했던 길

하지만 나의 희망과는 달리 눈속에 파묻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추워 빙판길도 아닌길에서 만났던 작은 시련에도

때론 가는 길을 멈출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며 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올 한해 마무리를 운악산에서 궁예의 마지막 흔적과 함께 할려 했지만

자꾸 운악산으로 향했던 내 발걸음을 내 스스로 잡아

다시 밝아 올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어

내년에는 더욱 알찬 산행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 본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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