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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 賀 新 年 |
Adieu 96
이제 <쀼Ŷ>
영원히… 달력도 이제는 달랑 한 장뿐이다.
아~1996년, 이제 지나가 버리면 역시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 이 한해,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상에 잠기는 이 순간, 아마 젊은 후배 악우(後輩 岳友)들은 필자의 감회어린 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한해를 어떻게 보냈던가?
산악인의 한사람으로서 참회(懺悔)와 자성(自省)의 마음으로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본다.
우선 “자연=산”은 그야말로 때묻지 않은 순수(純粹)한 곳이며, 순리적(順理的)인 곳이다.
문제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등산인을 자처하는 우리는 그 동안 과연 얼마만큼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적응되어져 있는지? 현실은 그 반대라고 말할 수 밖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는 “공기,” “물,” “땅,” 등의 극심한 환경오염으로서, 이러한 향상에 역행하는 부분이 이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로서, 이는 급기야는 점차적으로 생태계와 우리 인류의 말살, 종국적으로는 지구에 파멸로 이어지게 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것으로서, 이는 우선적으로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본보기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가능한 것이나,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보도는 오히려 “이들의 파렴치한 작태의 보도”뿐이니 더욱 우리를 우울케 할 따름이다. 이 때묻지 않고 순수(純粹)하고, 순리적(順理的)인 곳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구석구석 파헤쳐져 상처투성이로 성한데가 없으며, 종국적으로는 “자연=산”자체를 논하기조차 어렵게 될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해야되는 지경에 이르러, 우리 모두를 우울케 하고있는데, 이 해를 보내면서 하나뿐인 이 지구, 우리의 귀중한 금수강산,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주모자격인 사회지도층의 각성을 다시 촉구하는 바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자연보호란 우리 인간들이 간섭치 말고 그대로 자유로이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자연보호이다.
요즈음 “세계화”니 “국가경쟁력 향상”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나와 우리 모두는 산악인의 한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나, 우리 산악계는 과연 얼마나 향상되었다고 보아야할는지?
산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는 일상적으로 습관화되어 몸에 밴 사회생활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모습이 그대로 산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오히려 심리적 해방감에 젖어 무의식중에 거리낌없이 습관화된 행동을 하게되는 것임으로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자신의 인격을 쉽사리 모두 드러내는 장(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점차적으로 도처에서 도덕성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닐는지…
우선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꼽히는 것이라면 신문이나 TV에 보도된 GNP $10,000시대라고 할 수 있듯이 전보다 잘 살게된 것은 사실이나 “거품”이 아니길 바랄 뿐이며,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 역시 말 그대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인지는 몰라도 그리 모르겠고, 이보다는 날로 실종되어가고 있는 인성(人性)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만 자란 탓으로 변화된인성을 별로 느끼질 못하였으나 외국곳곳을 여행하면서 외국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전의 우리가 아님이 두드러지게 느껴지게 된다.
특히 요즈음 언론매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조선족문제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전에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엄청나게 저질적으로 악의(惡意)에 찬 부분이 많아서 필자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지금 필자앞에는 부산일보 12/12자의 “음주운전 불감증사회”란 사설기사(社說記事)와, 12/13자 “96 사건사고”의 “쑤시면 터져나온 독직(瀆職)”이란 기사가 놓여 있다. 모두가 바람직하지 못한 “이 시대의 치욕적인 기사”여서 96년을 보내는 착잡한 마음 그지없다.
요즘 보면 세계화라는 명분아래 외국의 것들을 무조건 수용하고 외제라면 덮어놓고 좋아하여 백화점마다 외제물품의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다고 하며, 또한 일부 젊은이들의 겉모습을 보면 어느 나라사람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화란 우리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영어 몇 마디 한다고 저절로 세계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되 조상들처럼 우리 입맛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계화이다. 즉, 세계화란 정체불명의 혼합문화가 아니다. 올바른 세계화는 “내 정체성을 가지고 선별해서 나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인 것”이다. 고로 우리는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고질적으로 변해버린 젊은 층의 언어습관이다.
“맛있는 것 같애요.” “좋은 것 같애요.”라는 투의 자기 주체성을 도외시한 언어이다. 혹시라도 이것이 간첩의 무서운 계략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해 볼 때, 뒤에서 간첩들은 계략대로 되어감을 흐뭇하게 생각하면서 미소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로서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왜 자기주관하에서 자신을 주장 할 수 없단 말인가? 소신이 없고, 주체성 없는 사고력으로는 세계화란 꿈도 꾸지말아야 한다. 더욱 우리 나라의 장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 아무래도 불안하기만 하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듯이 소신있게 올바로 주장할 수 있는 자기주관이 뚜렷한 정신력,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국력”인 것이다.
거품경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보릿고개” 때를 잊고 졸부근성을 부리는 사이에 우리 외채는 이미 $1,000억을 넘어섰는데, 이에 대한 이자(利子)만도 엄청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을 맞으면서 이 시점에서 염려가 되는 것은 Mexico나 Argentine의 전철(前轍)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매우 심각한 우려이다.
실력은 키우지 않고, 외부도움과 경제여건변화에 의존해온 타성으로 “한국병”은 은연중 커지기만 했다.
오로지 근면일변도(勤勉一邊倒)로 최선을 다한 일반 저소득층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시민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밝게 하려는 합법적 합리적 “대안 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리하여 자기직업을 천직(天職)으로 삼고 온갖 역경을 헤치며 일평생을 대쪽같이 외길인생을 고집해온 인간에게 갈채와 찬사를 보내던 Ideologie가 다시 되살아나게 해야 할 것이다.
“콩심은데 콩난다”라고 했던가? 국민소득 $10,000의 겉치레에 흥분하지 않는 성숙한 의식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나라가 될 때는 과연 언제가 될는지…
“참회와 자성이 없는 국민에겐 내일이 없다.”
“그 나라 국민의 질(質)이 그 나라 상품의 질을 결정짓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 모두의 수준이 높아져야 나라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 등산계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나라의 번창(繁昌)은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법이다.” 국민 각자가 뼈를 깎는 정진(精進)을 통해서 스스로의 “질”을 높일 때 세계화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며, “질의 향상”이란 결국 마음(정신)의 향상이다. 우리 모두의 정신을 갈고 닦아서 수준을 높이지 않고서는 “세계화”나 “국가경쟁력 향상”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한해동안의 각종 수치(數値)는 국민 모두가 “질”의 향상을 도모하기보다는 그 반대인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5년간 외식비 증가율(外食費 增加率)이 이웃나라 일본의 20배에 달한다는 한국소비자학회의 보고는 충격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일본 도시가구의 외식비 증가율이 연평균 0.9%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려 21%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용차의 보급확대로 교통비가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0년간 0.3%에서 7,5%로
무려 25배나 늘었다는 보도이기도 하다.
이런 숫자들은 절제(節制)가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경제구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모두가 깊이 자성(自省)해 볼 문제다. 경쟁력향상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며, 근검절약 하는 굳은 마음, 수준 높은 정신이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국민의 질적 향상은 고통을 극복하는 국민적 노력에 비례(比例)하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란 물리적 가치라기 보다, 더 주관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시간의 허비는 가장 비싼 낭비가 될 것”이며, 또한 가장 책망받아야할 낭비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아까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가치에 대한 의식이 점점 더 민감해지고, 애착이 생겨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미래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막상 하는 행동들을 보면 실제로 꼭 해야할 일은 등한시하고 쓰잘데없는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으니 더욱 바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보다는 체면이나 남을 의식해서 사용하는 시간(눈 도장 등,)이 더 많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96, 이해도 어김없이 저물어간다. 여기서 문득 인생유전(人生流轉)의 안타까움을 되씹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보고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국가경쟁력향상은 국민 모두의 마음의 향상이며, “질”의 향상이다. 사회에 창조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다양성이다.『하루가 늦으면 10년이 늦어진다』라는 전에는 듣지도 못했던 놀라운 문구(文句)까지 등장하는 요즈음이다. 건전한 사회발전은 자연스럽게 바로 우리 등산계에로 이어지는 것이다.
새해에는 다함께 더욱 분발을 바라며…
1996,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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