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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멈추고 쓰기로 했다
조은정, 복지관 사회사업가
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책 앞에 서면 가슴이 설렌다. 내 선택을 기다리는 무수한 책 앞에서 나는 오만한 자세를 갖는다. 헌책에서 나는 겸손하고 오래된 종이 냄새, 새책이 주는 세련미와 우월한 자태, 양장본이 주는 위용,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낯선 영역 책이 풍기는 전문가의 위엄과 오만함에 시선을 뺏긴다. 책들의 향연 속을 거닐며 거들먹거리고 품평하다 보면 내가 무어라도 된 것 마냥 들뜬다. 마치 내가 절대 왕좌에 앉은 듯하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다치바나 다카시 외, 열대림, 2007)에서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능인 새로운 발견 본능으로 인해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해보고 ‘생애 독서 시간’을 환산하니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재독하긴 힘들고 새로운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넘치는 호기심을 채우고자 책을 읽는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갤럽 프레스, 2021, 청림출판)은 34가지 테마에서 다섯 가지 강점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책이다. 오래 전 이 책을 통해 발견된 나의 강점 중에 하나는 ‘탐구’였다. 어느 영역이든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는데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발견을 찾아 헤매는 나는 책 속을 떠도는 탐구가다. 책이 책을 소개하고 정보가 다른 정보로 이어진다. 무언가 궁금해지면 책 속에 정답이 있다고 믿어 그 속을 헤매게 된다. 이 과정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읽을 수밖에 없다. 책을 읽지 않고 잠든 날은 깊은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몇 장이라도 읽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서관에 가면 매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책이 넘치니 신이 난다. 그러니 짬을 내어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하다가 재료가 익기를 기다리는 10분, 직장에서 업무시작 전 10분, 동료가 퇴근하는 어수선한 시간 10분… 이 때 읽는 몇 장은 다음에 내가 책을 잡게 하는 마중물이 된다. 마치 드라마 다음 회를 기다리듯이 아쉽고 궁금하다. 드라마 예고편은 찰나처럼 지나간다. 이 ‘10분’이 내게 그러하다. 내가 책읽기를 즐기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동반자의 책 읽기 영향이다. 멀리 출퇴근하는 그는 하루에 4시간가량을 길 위에서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읽으면 하루에 1권 또는 이틀에 1권의 책을 읽는다. 묘하게 경쟁심이 피어올라 읽기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또, 대화거리가 풍성해졌다. 같은 책을 읽고 나서 소주 한잔과 독후평을 늘어놓다보면 그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는지 새삼스럽다. 아이들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를 지치게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을 나누다 보면 신선한 소재의 대화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 책 이야기를 건네 놓으면 신이 난다. 오랜 세월 같이 살아 왔으니 뭉뚱그려 이야기해도 척척 알아듣는 우리 사이. 한편으로는 잘 안다 여겼는데 이런 속내를 품고 있었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시간이다 이렇게 자주 책을 들고 다니니 매일 1권 이상 읽는 어느 사회복지사처럼 다독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자주 도서관과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고, 포털사이트의 책 소개를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독서량은 그리 많지 않다. 온라인 쇼핑몰에 자주 들락거리지만 실제 옷은 사지 않는 습관처럼 말이다. 온라인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무섭게도 마음에 들 수밖에 없는 여러 책을 내어놓고 고르라 하니 당해낼 수가 없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신간도서를 신청하면 서점을 통해 발행일보다도 앞서 책을 공짜로 내어주니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든다. 보통 1주에 한두 권을 읽으니 1년에 100권을 넘기기 힘든 독서량이지만 책이 정말 좋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도 나는 책부터 찾는다. 우리 지역에 대해 분석하고 난 다음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다보면 기사, 논문, 선행실천사례, 관련 인문사회서적으로 흘러간다.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얻을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되고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손에 익은 일이라 여겨 관성대로 해왔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나의 이야기, 앞으로 청년이 될 우리 아이의 이야기, 함께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 오늘도 인사하며 지나치는 이웃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난다. 해야 되는 일이 생겨난다. 이렇게 책은 일을 이뤄갈 때 핵심참모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일을 하다보면 힘들고 비루해지는 순간이 있다. 초라하다 못해 찌그러지고 찌질해지는 때. 참담한 그 순간을 맨 정신으로 버텨내기가 어려워 술을 먹어 머리를 통째로 찐득한 알콜에 적셔보기도 했지만, 몸이 상하니 그 방법도 더 이상 쓸모 있지가 않았다. 새롭게 머리를 담글 곳,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다 책 읽기에 안착하고 있다. 찌질한 이유가 다양한 것처럼 그 때마다 다른 책이 다가 왔다. 그 때에 다가온 책은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용기를 고취시켜 돌진시키기도 하고 괜찮다고 위로해주기도 하였다. 책은 술 친구, 카페 친구, 산 친구가 되어 주었다. 책이 전하는 위로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지난 오랜 시간 책 읽기는 안타깝게도 무엇을 탐구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마치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자만하는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시작도 하기 전에 조심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읽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인풋형(IN PUT) 인간’으로 남게 만들었다. 읽어도 읽어도 부족하기만 하니 언제 만족할 수 있는 총량이 채워질 수 있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수만 권의 책을 보관하는 고양이빌딩(장서)을 지를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언론인이자 유명작가이다. 많은 책을 써낸 다치바나는 글을 쓰기 전에 많은 책을 읽는다. 그는 자신을 먼저 채우려 했고 이를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 PUT)’이라 하였다. ‘IN PUT’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 PUT)’에서 I와 O를 떼내어 이 비율을 의미하는 뜻으로 ‘IO비’라고 칭하였다. 다카시는 좋은 글을 쓰려면 'IO비‘가 알맞아야 된다 하였는데, 좋은 비율은 책 100권 읽고 1권 쓰는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글이라고 하였다. 표절이 아닌 제대로 된 글, 내 안에서 나오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00권 보다는 넉넉히 읽었으니 이제는 좀 써도 괜찮은지 스스로 묻게 된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 꼬마 여주인공(김태리)이 펜싱대회에서 큰상을 받자 아버지는 수상을 축하하며 당부한다. “실력은 비탈로 느는 게 아니고 계단처럼 느는 거야.” 이 대사처럼 지금 나의 읽기가 제대로 된 쓰기를 위한 과정으로 아주 넓고 단단한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만들고 있을까? 소설 「시선으로부터」(정세랑, 문학동네, 2020)에 나오는 ‘난정’이란 인물은 아픈 아이를 보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지를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자신을 다른 세계로 옮겨 놓기 위해 책을 읽은 난정은 아픈 아이가 낳길 바라는 소원을 돌탑 대신 책으로 탑을 쌓았다. 이런 난정을 보고 시어머니 심시선은 글쓰기를 권유한다. “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그러나 난정은 ‘쓰는 것’을 비난한다.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는 쓰기. 이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이 부분을 읽고 속이 시원했다. 나라도 쓰지 말아야지 허섭스레기 보다 못한 쓰레기를 세상에 내놓지 말아야지. 그렇게 자조하면서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눈길이 자꾸만 쓰기에 머문다. 심시선의 말처럼 ‘애벌레처럼 읽어가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것’인지… 쓸 엄두를 못낸 채로 쓰기 근처에 서성이던 어느 날, 소설 「일몰의 저편」(기리노 나쓰오, 북스피어, 2021)을 남편과 함께 읽고 나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일본 정부기관으로 보이는 듯한 문예윤리위원회라는 조직이 여러 작가를 요양소 같은 곳에 감금한다. 이 작가들은 사회에 비판적이거나 문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글을 썼기에 정화를 시켜야 된다는 이유로 갱생과정에 들어간다. 세상이 감동할 아름다운 글만 쓰라는 요구를 받은 작가들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 죽어가는 내용이 담긴 추리소설이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표현의 자유를 누가 허용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잔혹하면서도 웃기고 슬픈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무심코 한마디 던졌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데도 왜 글쓰기를 주저해? 결국 남의 시선이, 남의 평가가 두려워서 못 쓰는 거잖아.” 깊숙이 찔린 느낌이다. 남의 글을 읽고 샘내고 부러워하고 흠하면서 떠들기 바빴지 정작, 내 글을 쓴 자신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서다. 모두를 만족시킬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비난이 두렵다. 그러니 잘 쓰고 싶어진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욕망에 가깝다. 내 글쓰기 역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잘 쓰기 어렵고, 써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잘 쓸 수 없다. 이건 마치 태어나자마자 걷겠다는 아니 뛰어보겠다는 생각과 다름없다. 어느 날 「오늘도 출근합니다」(고진실, 구스꿰는 실, 2021) 저자 고진실 사회복지사에게 불쑥 물었다. 왜 책을 쓰는지 왜 기록하는지 참았던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진실 사회복지사는 일을 잘하기 위해 쓴다고 했다. 쓰는 동안 자신의 실천을 돌아보니 더욱 잘하게 되고, 쓰고 난 후 그 잘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니 초심이 유지된다고 하였다. 모르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음을 흔든다. 글을 써왔던 많은 사회복지사에게 글쓰기 중요성을 수차례 들어왔었다. 구슬 책방주인 김세진 선생님은 책을 포장하여 발송할 때마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이 우리 현장의 희망입니다. ’ 라고 쓰인 작은 글을 더하여 보내곤 한다. 책을 사는 이에게 읽지만 말고 그 책을 발판삼아 바른 실천을 하고, 기록을 남겨달라는 진심 어린 당부가 남긴 말이다. 여러 책을 탐닉하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간다. 생각이 들불처럼 번지다가 나를 잡아 삼키는 기분에 빠질 때가 있다. 이때가 위험하다. 생각이 잡념으로 변하다 못해 공기번데기처럼 부풀고 그것에서 본래의 것이 아닌 좋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자의식 과잉’이다. 책을 읽고 배워 앎에 이르고 깨달음으로 가야하는데 종착지가 틀어져 버릴 때가 있다. 결국 알고 깨닫는다는 것은 남의 것을 배우는데 그치지 않고 내 지식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데 남의 글과 생각을 읽어대기만 하니 도리어 내 생각이 없어져 자의식 과잉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최진석 철학과 교수는 플라톤아카데미 강연에서 배움을 경계하라 하였다. 배움은 타인의 표현을 배우는 것이지 자기의 표현이 아니라고 하였다.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표현에 장애를 불러온다고 하였다. 배울 때는 표현의 동력이 있어야 하고, 읽을 때는 쓰는 동력이 있어야 하며, 들을 때는 말하는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활동은 읽기와 쓰기 사이,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 듣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이뤄집니다. 그럴 때 인간의 눈빛은 야성을 되찾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계에 있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 경계성을 회복하려는 야성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는 내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어느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살아 있다'고 표현합니다. 「나는 누구인가」(강신주 외, 21세기북스, 2014) 다른 사람의 표현을 습득하는 것이 배움인데,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표현을 배우기만 할 것인가? 최진석 교수의 이 질문은 내 것 없이 다른 사람의 실천을 따라 하기만 하려는 내 태도를 비추는 말로 들려온다. 바르게 실천하려고 읽었으나 써내지 못했으니 살아있는 나의 실천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멈춰 서서 배운 것을 환기하고 기록하여 실천을 돌아보는 멈춤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내 말로 써내야 한다. ‘솔직하게 써보자. 부족한 실력이라도 용기 내서 갖은 재주만큼 써보자. 한 번에 어려우니 조금씩 매일 매일 써보자. 매일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생각 중에 한 가지라도 잡아 메모하자. 단 몇 줄이라도, 이마저 어렵다면 몇 마디 단어라도 흔적을 남기자.’ 이렇게 마음을 먹기가 참 오래 걸렸다. 내가 읽어낸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고 싶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켜 있는 생각퍼즐을 쏟아 놓고 이러 저리 맞춰 나만의 생각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하루에 한 가지씩 내가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사회복지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기록을 해나가기로 마음을 단단히 다진다. |
첫댓글 은정 선배님! 안녕하세요😊
글로 뵈니까 뭔가 더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멋지세요.
읽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였다면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실천을 돌아보는 멈춤 시간이 필요하며, 부족하더라도 나의 언어로 조금씩 써야겠다는 부분이 특히 와닿습니다.
쓰는 과정과 시간 통해 더욱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 누리시길 응원드립니다. ^^ 또 글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