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표현이 거칠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읽어주시기를...
2010. 7. 8(목) 새벽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준결승 두 번째 경기, 에스파냐가 독일을 1-0으로 물리치고 꿈의 결승전을 남겨놓게 되었다. 결승전에서 누가 이기든 첫 번째 월드컵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월드컵이 된 셈이다.
아르헨티나를 4-0으로 무너뜨리는 놀라운 실력을 자랑했던 독일은 전반전 종료 직전에 클로제의 가로채기에 이은 찔러주기를 외질이 반 박자 빠른 마무리 시도로 결정지었어야 했는데 조금 욕심을 부렸다. 이 결정적인 순간, 오른쪽 측면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의 커버 플레이가 빛났던 것이다. 얼핏보면 페널티킥을 선언할 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지만 카사이(헝가리) 주심은 비교적 가까이에서 냉정하게 판정했다.
아울러, 외질 이상으로 공격면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던 토마스 뮐러가 경고 누적으로 관중석에 앉아 있어야만 한 것이 너무도 뼈아팠을 것이다. 덕분에 에스파냐의 왼쪽 측면 수비를 맡은 캅데빌라는 비교적 한가하게 이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토마스 뮐러 대신 나온 트로초프스키가 안 먹히니 요아킴 뢰브 감독은 62분에 크루스를 들여보냈지만 역시 재미를 보지 못했다.
0-1로 뒤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80분을 넘어서면서 중원에서 외질이 비교적 여유 있게 소유하면서 동점골의 가능성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약간 무모한 띄워주기로 일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분명히 동료 미드필더들에게 공간이 열려 있었지만 마음이 급하다보니 시야가 에스파냐 벌칙 구역 안으로만 향했던 것이다. 경기가 안 풀릴수록 가까이에 있는 미드필더들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나가야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 보였다.
반면에 에스파냐는 흔히 말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들(사비 알론소, 세르지오 부스케츠)의 알토란 같은 활약에 힘입어 경기를 내내 자신들이 뜻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2선에서의 과감한 중거리슛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 것만 봐도 이들에게 델 보스케 감독이 어떤 주문을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8분, 사비 알론소가 내준 공을 세르지오 부스케츠가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노이어가 지키고 있는 독일 골문을 크게 위협한 것이 그 상징적 장면이라 하겠다.
곧바로 이어진 에스파냐의 파상 공세에서 SBS-TV 배성재 캐스터의 어록 하나가 더 만들어졌다. 58분에서 59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가운데 미드필더 사비 알론소가 발바닥으로 긁어준 공을 이니에스타가 왼쪽 끝줄까지 치고 들어가 기막힌 왼발 찔러주기를 골문 바로 앞으로 보냈는데 이를 향해 반대편에서 발을 내뻗으며 미끄러진 다비드 비야를 보면서...
"아! 비야, 10cm만 더 길었더라면..."
에스파냐의 포메이션 변화 양상, 중원 지배의 비밀... 국제축구연맹은 누리집(FIFA.com)을 통해 경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서비스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5분 단위로 포메이션이 변화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에스파냐 선수들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움직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에스파냐 델 보스케 감독이 추구하는 '중원 지배의 축구'가 어떤 것인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킥 오프 포메이션 / 양팀 모두 4-2-3-1을 들고 나왔다]
[↑ 1~15분 포메이션 / 붉은색이 에스파냐 선수들] 이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에스파냐 축구가 어떤 스타일을 구사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세르히오 라모스(15번)라는 놀라운 기계(로봇)가 있다. 한국 대표팀의 차두리를 능가하는 왕성한 활동 반경을 자랑하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다. 아니, 오른쪽 미드필더나 오른쪽 날개공격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가 있기에 킥 오프 당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출발한 이니에스타가 마음껏 중원을 누빌 수 있었던 것이다.
[라모스의 히트 맵을 보면 그가 어떤 성향의 플레이어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흰 옷의 독일 선수들에 비해 에스파냐 미드필더들이 가운데 쪽으로 더 몰려서 중원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이 경기의 승자는 뻔한 것 아닌가? 코너킥 세트 피스로 결승골이 나온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 경기에서 미드필더들의 공 주고받기를 통해 골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질책할 수도 있겠지만 에스파냐 축구는 이렇게 강팀이 된 것이다.
[16~30분의 포메이션 변화] 14번 사비 알론소와 16번 세르지오 부스케츠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들 때문에 독일의 가운데 미드필더 둘(7번 슈바인슈타이거, 6번 케디라)은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31~45분의 포메이션]
[46~60분 포메이션] 후반전 초반, 이니에스타(6번)와 페드로(18번)의 자리가 전반전 초반과는 완전히 바뀌어 있음을 잘 알 수가 있다. '사비 알론소(14번)-세르지오 부스케츠(16번)-샤비 에르난데스(8번)'가 만드는 삼각형 구도가 에스파냐가 쥔 중원 주도권을 잘 말해주고 있다.
[61~75분 포메이션]
FC 바르셀로나를 근간으로 이루어진 에스파냐 대표팀이 중거리슛을 여러 차례 시도할 때 독일 선수들이 엉덩이를 잔뜩 뒤로 빼면서 몰려 있었는가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운 준결승전이었다. 뮐러 한 명 빠졌을 뿐인데... 아르헨티나를 4-0으로 돌려보낸 팀이 맞는가 의심스러운 장면들이었다.
[76~90분 포메이션]
마지막 그림만 봐도 경기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독일 선수들이 중원을 포기하고 성공률 낮은 크로스에 욕심을 부린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외질을 캅데빌라(붉은색 11번)가, 바꿔 들어온 크루스를 사비 알론소(붉은색 14번)가 완전히 가려버린 이 그림이 경기의 내용과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조직력으로 똘똘 뭉친 에스파냐 선수들, 그들은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새로운 역사를 쓸 준비를 마쳤다.
※ 2010 남아공월드컵 준결승 두 번째 경기 결과, 8일 새벽 더반 스타디움
★ 에스파냐 1-0 독일 [득점 : 푸욜(73분,도움-샤비)]
◎ 에스파냐 선수들
FW : 다비드 비야(81분↔페르난도 토레스)
MF : 페드로(86분↔다비드 실바), 알론소(90+3분↔마르체나), 샤비, 세르지오 부스케츠, 이니에스타
DF : 캅데빌라, 푸욜, 피케, 라모스
GK : 이케르 카시야스
◎ 독일 선수들
FW : 클로제
MF : 포돌스키, 슈바인슈타이거, 외질, 케디라(81분↔고메스), 트로초프스키(62분↔크루스)
DF : 보아텡(52분↔얀센), 메르테자커, 프리드리히, 람
GK : 노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