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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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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한북정맥 6구간 : 수원산.죽엽산 구간 - 스승을 닮은 산들을 만나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152 16.01.05 07: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북정맥 6구간 : 화현고개에서 비득재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해오름달 이틀 흙날

누구랑 : 나홀로

어딜 화현고개 ~  수원산 ~ 국사봉 ~ 큰넓고개 ~ 죽엽산 ~ 비득재

                 정맥 23.5km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861 에 있습니다 *********

 

 

계속되는 송년회의 모임에 정말 한해가 저물고 있구나를 느끼는 사이에 감이 있으면 옴이 있는 법

원숭이의 해 병신년(丙申年)이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어느새 다가와 하루를 지내고

새해맞이 신명에 함박웃는달이라고도 불리는 해오름달 1월에 들어서고 하루를 지내면서

언제나 그렇듯 작심삼일로 끝나는 다짐을 해보지만 올 해만은 믿어볼까?

깊어가는 겨울산행에 위험구간이 많은 운악산 구간은 잠시 남겨놓고 다음구간으로 들어가 본다

 

한북정맥 6구간 등로 : 참고용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북정맥을 시작하고 강원도를 넘어 경기도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계속 이어오며 남겨진 궁예의 흔적들

경기 5악중 하나인 운악산에서 역시 같은 5악중 하나인 지금은 북?땅 송악산에 왕국을 건설한 왕건을 보면서

부인 강씨의 한많은 삶까지 보듬고 마지막으로 거친 숨소리를 들리게 했던 운악산을 지나

명덕삼거리 직전 425봉에서 한북정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평군과의 이별과 동시에 포천의 속살로 들어가게 된다

수원산과 국사봉, 그리고 죽엽산 큰 3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한북정맥 6구간 속살로 들어가 본다

 

동서울터미널 31번 창구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4,500원을 지불하고 내촌(포천)에서 내리면 내촌삼거리에 도착하고

 

3,000번 버스에서 내리면 그 자리에 있는 내1리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면

 

7-2번 버스를 타고 - 08:00쯤 내1리 정류장에 도착한다

 

1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부대앞

 

앞에 있는 지하차도를 건너

 

지하도를 건너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좌측집에 있는 견공두마리와 새끼 한마리까지... 새해 첫 산행을 세마리가 동행을 해준다. 기특도 하지...

 

천간(天干)의 병(丙)은 씨앗이 줄기를 뻗는 모습이고, 불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병신년(丙申年)은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부르고 있다

예부터 붉은색은 악귀를 쫓고 건강과 부귀영화등을 의미하는 색깔로 생각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건강과 성공 그리고 수호의 힘을 가지고 있는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아마 가장 대표적인 지혜를 상징하는 원숭이 일 것이다

 

겨울산행때문에 숙제로 남겨 놓은 다음에 가야할 운악산 구간을 화현고개 도로 넘어로 담아보고

화현花峴고개 봉수지하차도  47번 구도

포천 화현리  고개에 꽃이 많이 핀다고 해서 화현이라고 했는데, 양지 바른 곳이라고 해서 양지말이라고도 불렀다.

가평 봉수리  봉수리는 운악산 능선에 조선시대의 봉수대 자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수리 [Bongsu-ri, 熢燧里] (두산백과)

 

부대가 나오면 우측으로 계속 철책을 따라 이어간다

 

그런데 한국에도 원숭이가 살았을까?

지금이야 한류韓流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에 남겨진 중국발 한류漢流의 열풍은

지방 곳곳에 중국풍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고 또 원숭이가 나오는 그림들도 다 그런 영향은 아닌지...

 

부대 철책과 헤어지고 명덕봉으로 가는데도 계속 견공이 길을 안내하고

 

강원 이남에서 쓰는 방언중에 우리가 날아다니는 '나비'로 잘못알고 있는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부른다

‘잔나비 띠’나 ‘잔나비 밥 짓듯 한다’ 등과 같은 관용적 표현은 지금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송강 정철이 원숭이를 소재로 한 '장진주사'에 '잰납이 파람 불제야'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동작이 재빠르다는 '재다'와 원숭이를 뜻하는 '납'이라는 옛말이 합쳐져 잔나비라 불렸는데

사람을 닮은 원숭이를 간사하고 기피의 대상으로 여기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우리 조상들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좌측으로 어어지는 한북정맥 갈림길 이정표봉에서 명덕봉으로 갈려면 계속 직진

 

그런데 문제는 한글로 쓰고 부를 때 어감이 문제이다

예년과 달리 한글과 한자를 병행해서 쓰던 대신 아예 한자로만  丙申年으로 쓰거나

'원숭이의 해'로 풀어서 쓰고 있다고 한다

또한 '병들지 말고 신나게 사는 1년이 되자' '가라 을미년, 오라 병신년' 등 

나름대로 지혜롭게 풍자해서 한 해를 넘기고 또 한해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해(936년)이기도 하니

작금의 어려운 나라살림이 제2의 건국과 같은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명덕봉 조망

 

삼각점이 있는 명덕봉

 

아치산이라는 시글널이 붙어 있다

 

지도상 명덕산에서 마루금을 찾다가 시작을 허비하고... 결국 다시 삼거리로 원위치

 

삼거리에서 이제는 우측으로 내림길을 계속 하면 우체통같은 것도 지나고

 

바로 다시 철책이 보이는 곳에서 우틀

 

철책과 숲길을 몇번 반복하면 전망이 트이고 초소가 있는 350봉에서 바라본 운악산 줄기중 아기봉인 듯

 

여기서 군부대와 헤어져 1시방향 숲길로 진행한다

 

폐건물도 지나고

 

다시 군부대를 만나 우측 철책길을 따르는데 무척 미끄럽다

 

이정표 하나를 지나면 명덕삼거리

 

명덕삼거리  가평군과의 이별 그리고 포천군내로 정맥은 계속 이어진다.   천마지맥 분기 

포천 명덕리는 명덕사가 위치해 있었으므로 명덕골 또는 명덕이라고 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명덕리 [Myeongdeok-ri, 明德里] (두산백과)

 

좌측 서울 퇴계원 방향으로 가면 서파사거리가 나온다

십이탄(十二灘)  가평 율길리

조종(가평) 상면은 삼세 대제학(三世大提學)의 배출지이며, 영창대군의 태를 묻고, 월사의 묘를 이곳 태봉리에 쓰게 된 것도

모두가 율길리의 십이탄(十二灘)지역(율길초등학교 아래 계곡)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옛말에 개울을 열 두 번이나 건너가는 지역에는 반드시 명당이 있다는 통설도 그렇지마는 상면 태봉2리(원흥)에서 율길리로 오르는 계곡이 십이탄 계곡이었기 때문이다.

조정현의 관아가 이 곳 율길리에 있었다고 하며, 내촌면도 조종현 관할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이 곳 율길리까지는 마차길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우·마차로 물건을 운반한 다음, 그 동쪽으로는 등짐으로 저서 날랐다고 한다.

조선조 시절 조종안 사람들이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율길리를 돌아 서파(포천군)로 넘어가야만 했다.

주민들만이 아니라 조종으로 연락하는 관리들 또는 이 곳 군현으로 부임해 오는 현감이나 군수들을 마중 나가 반기었던 곳이 바로 이 곳 율길리였으니

자연히 안내를 맡은 관리들이 몇 일씩이나 머물러 있기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마을(자작골=저자거리에서 변형됨)에는 장이 서고 저자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자료 : 가평문화원

 

길을 건너 네거리를 만들어 주는 마을로 넘어가는 길 좌측 전봇대뒤가 천마지맥이고 우측으로 한북정맥은 계속 이어진다

 

천마지맥(天馬支脈)- 조종천과 양수리 북한강 서쪽,남양주 왕숙천 동쪽 분수령-도상거리 약40여 km

* 수원산 직전의 서파에서 남쪽으로 개주산-주금산-철마산-천마산-고래산-적갑산-예봉산을 거쳐 팔당댐 부근의 한강으로 맥을 다하는 49.4km의 산줄기

주금산814 -철마산710 -천마산810 -백봉587 -고래산529 -갑산547 -적갑산(561 -예봉산683... 

 

 

 

이제 천마지맥에 가평과의 이별을 남기고 이제 포천땅 으로 들어가는 한북정맥길로 오르면서 되돌아 본 명덕삼거리

 

수원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수원산 갈림길 - 더오르면 이정표가 있는데 별의미가 없는 것 같아 우회길 선택

수원산(水源山 710m )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와 가산면 우금리, 내촌면 신팔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

수원산에서 발원하는 왕숙천은 구리시 토평동과 남양주시 경계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길이 40km가 넘는 하천이다.

글자 그대로 왕숙천의 발원지가 되므로 산 이름도 '수원산(水源山)'이다.

왕숙천이 남양주시 진접읍에 들어서면 팔야리(八夜里)가 나오는데, 이곳은 본래 '여덟밤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수원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대앞이 보이는 이정표를 지나고

 

헬기장이 있는 705봉을 보면서 임도를 계속 따른다

 

 

임도와 이별지점(약수터 정상 0.9km)

 

헬기장과 삼각점 705봉시그널이 있고, 약수터와 헤어지고 부대앞까지 가기 위해 잠시 내렸던 내촌 방향으로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

 

좌측으로 잣나무숲이 계속 이어지는 헬기장을 지나고

 

골프장이 있는 지붕산과 서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조망

지붕산 서원봉

수원산의 연봉인 서원봉(書院峰) 아래에 옥금사(玉琴寺) 옛터가 있는데 그 아래 거대한 반석이 있어

시인,묵객이 찾아와 절경을 즐겼다고 한다. 그중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도 이곳에서 시와 더불어 즐겼다고 한다

 

다시 헬기장

 

시설이 나오면서

 

계속 이정표 역활을 해왔던 골프장을 우측으로 보내고 정맥길은 계속 직진

 

희미하지만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철탑시리즈가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첫번째 철탑이 좌측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두번째 철탑이 있는 바위봉을 우회해서 뒤로 올라가면 된다 - 638봉 암봉으로 내촌사람들은 여기를 국사봉으로 부른다고 한다

 

바위에 올라 바라본 되돌아 본 수원산 방향

 

천마지맥 방향

 

가야할 국사봉은 보이는데 우측으로 보여야 하는 죽엽산은 육안으로도 보일듯 말듯

 

유일한 친구인 철탑들이 계속 마중나오고 헤어지면서 도착한 국사봉.  삼각점이 있다

국사봉(國師峰 불정산 645.8m)  포천시 가산면과 내촌면 경계

현재의 국사봉은 예전에는 불정산(佛頂山)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포천읍지에 전하는데 산 서쪽 아흔아홉골 안에 ‘불정이’라는 지명이 현 지형도에도 나와 있다.

불정산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불정산의 한자명이나 봉우리명이 국사봉으로 불리는 것을 볼 때 불교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불정산 [佛頂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제 또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내림길 채석장 보이면서 줄기하나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채석장을 보면서 계속 직진

 

채석장 봉에서 바라본 채석장 현장과 죽엽산이 좌측으로 희미하게 고개를 내민다

 

무덤을 지나면 육사생도 참전 기념비가 나온다

 

큰넓고개 도로가 나오면 우틀

큰넓고개 큰넉고개  넙고개/廣峴  경기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

진목리에 광현이라는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크고 넓은 고개를 뜻하는 듯

조금 진행하면

 

길을 건너면 큰넋고개 정류장이 나오고

 

정류장 뒤로 연두색 철책문 사이로 진입한다

 

공장 담벽으로 진행하다 좌측으로 꺽으면

 

담벽 좌측 가장 낮은쪽으로 건너면

 

대각선 방향으로 주유소와 건물사이로 진입한다

 

주유소가 있는 큰 도로가 나오면 무단횡단

 

건너와서 본 주유소와 건물 사잇길로 걸어와서 도로를 건너 왔다

 

묘지에 올라 되돌아 본 걸어온 방향 조망 - 육사생도 참전비방향과 그 뒤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철탑시리즈 정맥조망

 

한참을 올라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 - 직진하기 쉽다

 

묘지에 있는 이정표를 지나 바라본 국사봉

 

다시 묘지가 나오면서 내촌면 진목리 방향 조망

 

진목리와 오성과 한음중 오성 이항복()의 사당이 있는 마을인 금현리 갈림길이 있는 작은 넓고개

 

 

금현리 방향

 

이정표 하나를 지나 좌측으로 바라본 국사봉 - 좌측으로 보이는 채석장봉의 좌우가 사라지고 있다

 

철탑도 보이고

 

이제 죽엽산이 보인다

 

출입금지 구역 안내판

 

하나 추가 됐다. 멧돼지 퇴치작업기간이라 조심해야 할 듯

 

어찌됐든 수목원에서 관리하다 보니 잣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

 

되돌아 본 철탑이 있었던 566봉

 

소삼각점봉

 

608.1봉

 

죽엽산 정상

죽엽산(616m)   주엽산(注葉山 고지도)    포천시 소홀읍 내촌면과 가산면

예로부터 임목이 울창하고 광릉임업시험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400여년 동안 엄격한 보호 아래 관리된 임상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명산이다.

『지명총람』 등 일제강점기 이후 지도부터 죽엽산()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산의 모양이 대나무 잎처럼 생기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의 고지도에는 주엽산()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1872년지방지도』에는 주엽산()으로, 『해동지도』에는 주업산()으로 쓰여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그 지맥 운악산록에 광릉임업시험장 중부지장이 있고 남양주군 지역에는 세조대왕의 묘 광릉이 있으며,

[네이버 지식백과] 죽엽산 [竹葉山, Jugyeop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직진하면 소흘읍 직동리에 있는 운악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림길을 재촉하여 임도로 내려온다 - 내려와서 되돌아 봤다

 

임도를 내려와 바로 직진하여 내려간다

 

출입금지 표지판도 지나고

 

 

철탑도 지나고 - 철탑사이로 고모산 조망

 

바로 또 하나

 

임도가 있는 묘지에서 임도를 따르다 되돌아 본 묘지 - 너무 어두워져 묘지 우측으로 갔어야 했는데... 직진하는 바람에

 

알바했슴에도 너무 어두워져 할 수 없이 내려오는데 길도 좋고 잘 가꾸어 놓았다. 마지막 지점

 

길이 이어지며

 

광릉 분재 예술공원이다

 

도로를 만나 비득재 방향인 고모리 방향으로 오르다

 

너무 어두워 담에 하지 못한 알바지점 확인하기로 하고 송우리 택시를 호출 9,000원 지불하고 의정부역까지 가는 버스정류장에 내려 준다.

원래 계획은 직동리로 3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의정부 가는 시간도 짧고 했는데... 어둠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처음 한북정맥을 시작하고 나서 첫구간부터 많은 눈이 환영을 해주는 바람에

올 겨울 눈과 서로 얘기하며 때론 즐기고 때론 눈때문에 고생도 하고... 

눈과의 애증관계로 계속 이어질것만 같았던 한북정맥길

그래서 초보산꾼의 눈얘기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하지만 예년에 비해 좀 일찍찾아온 탓일까 추위도 지쳤는지 내린 눈마저 간수하지 못하고

초봄을 생각하게 하는 흐르는 땀위로 차가운 바람이 함께 공존했던 한북정맥길

궁예의 국망봉도 운악산의 기상도 찾을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정맥길이었지만

지칠만하면 목표점이 되어주는 큰산이 나의 맘속에 들어와 어서 오라 손짓하고

무료할까봐 작은 봉우리들을 만들어 놓아 큰산에 오르기 위한 과정에 충실하라 말없는 가르침을 주고

잠시나마 무거운 눈이불을 털고 일어선 낙엽들이 발길따라 들려주던 숨겨진 얘기들

스승과도 같은 큰산에 오른 뿌듯함을 안고 내림길에서 만나는 위험들도

다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들인 것이다

오직 산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눈에 보이고 들려오는 것들을 모두 친구로 생각할 때만이

결코 쉽지 않은 먼길을 걷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산에서 만나게 될 멧돼지마저도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오늘 혼자 멧돼지 퇴치 작업중이라 출입금지지역을 지나면서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이름모를 소리와 함께 생각해본 단상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면 무조건 길을 나서야 한다

우리가 머뭇거리며 기다린다고 풍경이 내 앞에 오지 않는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풍경은 공평하게 내가 움직인 만큼만 선물을 준다

떠남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찾아 가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기다린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빨리 가라고 가는 것도 아닌 세월

그렇게 세월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붙잡아도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 세월은 나의 편이고 더불어 풍경을 눈앞에 안겨준다

그렇다. 모든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 부터 시작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새벽이면 어떠리 대낮이면 어떠고 또 초저녘이면 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야만 그렇게라도 떠날 수 있을 때만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기 ?문이다

나는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떠남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자연과 더불어 하루를 지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이 되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자 누워 눈을 감으면 스크린 처럼 지나가는 풍경들

돌아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거기에 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겹쳐진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는 것은 아닐까?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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