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밝혀 만리를 본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명견만리. 이 책의 제목으로
더 없이 훌륭하지 않았나 생각하며 이 책을 덮었다. 보통 이런 류의 책들(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은 저자만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써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은 섣부르게 만리를 후의 세상을 짐작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윤리 기술 중국
교육이라는 네 가지 큰 주제들로 각 장을 시작해 현재 사회를 진단하는 건 다른 책들과 비슷했다. 대신
이 책은 만리 후의 세상을 바꿔 나갈 이 시대의 흐름, 즉 트렌드를 사례별로 소개하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지금 너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보편화된 이 현상에 대해서 이런 흐름이 발생하고 있는데 너는 그 다음 세대가
어떻게 흘러갈 것 같니? 라고 말이다.
윤리파트를 살펴보면 가성비를 외치던 사회에서 일어난 '착한 소비' 현상을 소개한다. 아무 대가 없이 내 이웃을 위해 커피 값을 내는
서스펜디드 카페, 색깔 별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시계 이 외에도 나의 소비가 누군가를
향한 기부가 될 수 있는 활동에 열광하는 트렌드를 지칭하는 단어 '착한 소비'. 경제적인 동물인 인간들 사이에서 이런 사회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라는
질문에 이 책은 이제는 단순한 소비 활동을 넘어 소비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그 답으로 제시했다. 누군가를 동정하는 마음 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 기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발달이 SNS의 발달을 그리고 이 SNS의 발달이 사람들의 행동목적을 바꿔놓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SNS에 나의 상태를 업데이트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찾아가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한다. 그래서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휴양지가 각광받고 예쁘게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음식점이 인기를 끈다. 착한 소비를 일으킨 그 장본인 또한 기부라는 해시태그를 자신의 SNS에
업데이트 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하나의 트렌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 되었다고 모두가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뾰족한 수도 없는 지금, 명견만리가 네 번째 파트로 ‘교육’을
골랐다. 나는 이 책의 처음에 소개한 ‘서울대 생이 A+을 받는 법’이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느낀 점은? ‘와 정말 열심히 한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지. 나도 저런 방식으로 공부를 해볼까?’ 딱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 영상은
서울대 생들 조차도 excellent sheep으로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보여준다. 라고 소개를 하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수용력 사고력만 기를 뿐 비판적 사고도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내용을 접하는 순간 나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온순한 양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는 영상 하나 조차도 수용적으로 그저 받아드리고 여기서 소개한 공부방법을 외우고 익히려 했던 것이다.
얼마 전 고스 디자인 정석준 대표님이 와서 강연을 들었다. 그래, 자기다움을 만들라는 말도 좋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우는 학습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라는 말도 너무
좋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런
사고 방식은 어떤 행동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질문이었다. 창의적이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해서 세상이 혹은 외부가 정한 규칙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공식을
외웠고 어떤 문제들에 대해 푸는 방식과 유형을 외우고 익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공식으로 정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모든 질문들에는 정답과 오답이 있을 것 같고 조금이라도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들은 모두 오답처리로 내 인생에 빨간 빗금이 칠해질 것 같아서 작은 결정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선진국 (프랑스, 핀란드)가 교육 정책을 바꾸고 있다. 지식을 주입하던 교육에서 학생들의 말을
듣는 교육으로. 최대한 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려고 하던 교육에서 하나라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으로. 교육은 지식으로 모든 것이 정의 될 수 없다. 교육은 시민들의 사고이고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려면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교육이 좋아 보여서 따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맞는 교육을 우리다움을 깨닫게 하는 교육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