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시절
경북 경산시에서 선비무술원을 운영할 때 사진입니다
종목은
합기도 태권도 유도
당시에 태권도 협회에서 명칭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선비무술원장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태권도 쪽에선 대구경북에 요주위 체육관이였다
그 이유가 태권도는 당시에 체육관 거리제한이 있었다
이런 구질구질한 규정은 선비무술원장에게 통하지 않지
지금은 태권도 체육관 거리제한이 철폐되었다
원래 나는 태권도 출신이다
중 2학년에 태권도에 입문했으니까
본 무술원은 주 운동은 합기도이며 여기에 태권도 유도 기술을 가미했다
전국합기도대회 대구시장배 대회를 개최했으며 직책은 대회 사무장
사실상 본대회 본부장은 박ㅇㅇ 협회 본부장이지만 사실상 본 대회 내가 주도한 일이다
이때가 체육관 1년차에서 행했다
그러자 대구경북 합기도 계에서 난리가 났지어
운동계에 이름도 성도 없는 놈이 합기도계를 주도하니 주먹쟁이 관장들이 가만 있으리 없지
그래도 대회를 치룬 것은 내가 학력이 영대 법대 출신이니 이 학력을 믿고 따라 주더라
대회 이후 본부장님이 너무 욕심이 많았고, 대회 운영에 바람직하지도 않아, 대회 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후 전국 합기도 대회는 없었다. 이 때가 1990년도이다.
대회 장소는 대구실내 체육관에서 거행했다
당시에 본부장과 마찰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전국대회를 개최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했더라면 합기도가 태권도 같이 성장했을 것인데
현 대한태권도협회장 양진방 영대 상대 출신, 양진방 회장과 나와 나이가 비슷한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같은 대학동문이지만 한번도 만난 기억이 없다. 상대생과 법대생은 교류가 거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합기도를 했다면 영대 법대 출신으로 합기도 세계에 이름이 있을 것이고,, 합기도 술기를 정립했을 것이고, 합기도 계파 통합도 했을 것이며, 당시에 대구시장배 전국합기도 대회였지만, 당시에 대통령배 전국합기도 대회를 꿈꾸고 있었다. 전국합기도 대회를 개최하려면 정리해야 할 규칙들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경기 규칙이랑 등등 너무 많다. 가장 힘드는 것은 합기도 계파의 수장들을 어떻게 설득을 시키느냐가 관건인데 이 분들도 대의명분 앞에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때가 1990년도이다.
합기도 체육관 1년차가 대구시장배 전국대회를 개최했으니 가만 앉아 있을리 없었겠지
합기도 본 고장은 대구다.
정인목선생님, 최용술 도주님은
한국합기도에 전설적인 인물이시다.
장인목선생님은 본 체육관에 방문하시었다.
최용술 도주님께서는 내가 체육관 하기 수년전에 돌아가시어 만난적이 없다.
한국 합기도계 99%가 최용술 도주님 계열이다. 그러니 한국합기도 전파에 대한 공로가 지대하다.
최용술 도주님의 제자에 제자들이 현재 한국합기도 관장님들이다.
최용술 도주님 계열이 분파하여 많은 합기도 단체가 탄생하고,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장인목 계 체육관은1990년 당시에 대구에 1개 체육관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지금은 그 명맥을 잇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 합기도계에 장인목선생님을 모르시면 진정한 합기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
장인목선생님은 침술 접골 합기술에 최고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장인목선생님은 합기술의 기술세계 뿐만 아니라 침술과 접골 등 의술의 세계까지 진입하신 분이시다
선생님의 침술은 서울 최고 유명한 침술사 수준 이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장인목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도인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후진 양성에 소홀하셨다. 소홀히 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 합기술과 침술 접골기술등 의술을 전수받을 후진을 못찾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계속 체육관을 했더라면 전수 받을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너무 크다
10년만 더 체육관을 했더라면 한국 합기도계에 주요 인물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의 합기술과 의술보다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심취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한국합기도 각 계파를 통합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이만 쓰겠습니다
세월이 30여년이나 흐른 현재 본 글을 쓴다.
합기도인들이 본 글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
전 선비무술원장
Kimsunbee 쓰다
010 3516 2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