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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인협회
2017년 2/4분기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 발표
수상 작품
○ 동시 부문: 「아, 하는 사이」 (권영상 작, 『어린이와 문학』 5월호)
○ 동화 부문: 「달려가기는 처음」 (우성희 작, 『열린아동문학』 봄호)
심사 위원
○ 예심 위원: 김관식, 정혜진, 문인화, 정진
○ 본심 위원: 천선옥, 홍종의
○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 시상식: 2018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2017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심사는 『아동문예』 3・4월호, 『아동문예』 5・6월호, 『아동문학평론』 봄
호, 『어린이와 문학』 3월호, 『어린이와 문학』 4월호, 『어린이와 문학』 5월호, 『어린이와 문학』 6월호, 『어린이책이야기』 봄호, 『열린아동문학』 봄호, 『월간문학』 4월호, 『월간문학』 6월호, 『창비어린이』 봄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2017년 2/4분기 동시 심사 대상 작품이 41편이었고, 동화는 14편이었다. 예심을 통해 동시 6편, 동화
6편이 본심에 올라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동화에서만 중복 추천이 있었다. 가능하면 여러 사람에게 수상의 기쁨이 돌아가도록 하려고 전년도 수상자를 제외한 회원 중에서 선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심사는 전적으로 전 분기 수상자에게 맡겨진 의무이자 권리이므로 우수 작품상 운영진은 항상 심사 위원의 심사를 전적으로 존중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바쁘신 중에도 심사 마감일 전에 결과를 보내주신 예심, 본심 심사 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정중히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우수 작품상 선정이 공정하게 우수 작품을 뽑아 기쁨을 주
는 상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
심사평- 동시 부문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 주는 따듯한 소통
본심에 올라온 작품 편편이 어느 한 작품도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하게 살폈다. 모두 좋은 작품
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아, 하는 사이」를 본심 당선작으로 올린다. 이 작품은 어린이의 체험이
작품 전체에 그대로 관통하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행복한 꿈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카메라 셔터
를 누르듯 한 장면만 포착하여 풍요로움을 획득한다. 그 장면이 매우 선명하게 다가온다.
1연과 4연의 반복은 리듬감을 주고 있으며, 시적 재미와 통일성을 이룬다. 또한 김밥 안에 들어
가는 재료를 질서 있게 나열해서 시에 일정한 속도감을 부여하고, 어린이의 동심이 살아 움직이게
한다. 특히 자기고백적 화법인 종결어미 ‘~지’의 반복으로 ‘엄마의 손길’에는 넉넉함과 따듯함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강조한다. ‘김 한 장’ 위에 ‘밥 한술’ 그 안에 들어가는 싱싱한 재료를 다듬고 채
썰어 정성껏 만든 엄마표 김밥! 그 김밥에 들어간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참기름 조금’은 후각적
이미지와 행과 행 사이에 숨어 있는 미각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면서 시적 화자인 ‘나’의 ‘코끝’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나’는 ‘아, 하는 그 사이’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김밥을 맛있게 냠냠 꿀꺽! 엄마의 사랑을 먹고, ‘아, 하는 그 사이’ 엄마의 참사랑을 깨닫는
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를 통해 언제나 기운을 되찾게 되고 안정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참 맛있
는 동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동시 나도 행복했다.
- 심사 위원 천선옥
심사평 - 동화 부문
건강한 아이가 존재하는 건강한 작품
1/4분기 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선배·동료들이 수고롭게 예심으로 가려준 6편 동
화의 본심을 보게 되었다. 분기 내 지상에 발표된 동화들이 수십 편일 텐데 그 중 6편이라면 모두
수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 한 편을 선정해야 하는 규정상 본의 아니게 가늠 아닌 가늠을 하게
되어 대단히 송구하다. 동화란 1차적으로 아이들을 독자로 한다. 때문에 동화라는 서사 속에 아이
의 존재 유무가 관건이며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가 우선시 된다. 거기에
부합되는 작품이 우성희의 「달려가기는 처음」이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일단 아이가 살아 있다. 살아
서 펄펄 뛰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 그리고 작품의 소재로는 다소 식상한 모티브임에
도 갈등하고 고민하고 더불어 스스로 깨달으며 성장하는 건강한 아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심을 통과한 몇 작품의 매력적인 판타지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일단은 「달려가기는 처음」의
주인공인 박재상이라는 아이를 믿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동화를 쓰는 궁극적인 의미가 건강한 동
심의 도출로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 심사 위원 홍종의
2017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시
아, 하는 사이
권 영 상
김밥 하나 들고
아, 입에 넣을 때 나는 보았지.
그 안에 밥 한술,
홍당무 몇 줄, 물오이 몇 줄, 무 몇 줄.
참깨 몇 알,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참기름 조금,
그리고 김 한 장
김밥 하나 들고
아, 하는 그사이 나는 보았지.
이 많은 것들을 푹 감싼
엄마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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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 수상 소감
김밥 집 아주머니의 손
어쩌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할 때면 가끔 학교 근처 김밥 집에 들렀지요.
‘김밥 한 줄 천 원’
탁자 2개와 의자가 놓여 있는 좁은 김밥 집.
나는 그 집 주인아주머니께서 탁자에 놓아 주시는 김밥 한 줄과 어묵 국물로 요기를 했지요. 비교적
이른 아침이라 김밥 집은 조용했고, 주인아주머니는 찾아올 손님을 위해 김밥 채로 야무지게 김밥을 마
셨지요. 그러다가도 썰던 김밥 두엇을 들고 와 제 그릇에 더 놓아주시며 이렇게 말했지요.
“한 줄에 한두 개 더 먹으면 딱 맞을 것 같다던 우리 아들 말이 자꾸 생각나서…….”
김밥 한 줄에 천 원 받으면서 두엇 더 얹어 주시며 누군가의 공복을 감싸 주시던 그 주인아주머니의
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집들은 모두 김밥 한 줄에 천오백 원 받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소박한 시를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영상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동시집 『구방아, 목욕가자』, 『아, 너였구나』, 『나만 몰랐네』 등 10여
권을 출간했으며 한국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2017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화
달려가기는 처음
우성희
교문에 들어서는데 햇빛에 반짝이는 단발머리가 보였다. 지윤이였다. 내 눈엔 지윤이가 5
학년 여자애들 중에서 가장 예뻐 보인다.
콩닥콩닥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그 소리가 들릴까 봐 운
동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반인데도 지윤이에게 말 한 번 걸어 보지 못하고 한 학기가 거의 다 지났다. 그건 순
전히 그림도구 살 돈을 주지 않는 아빠 때문이다. 당당히 그림도구를 들고 지윤이가 있는 방
과 후 미술반에 들어가 말을 걸 생각이었다. 그래야 멋져 보일 것 같으니까.
목수였던 아빠는 한때 대목장이 되어 문화재 복원하는 일을 꿈꿀 정도로 기술이 좋았다.
하지만 전기톱이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빼앗아 버린 날, 아빠 꿈은 조각나
버렸다. 내가 두 살 때, 엄마가 동생을 낳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 일 다음으로 큰 비극이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방수천으로 지붕을 덮은 허름한 가게에서 나무로
탁자를 만들고, 책꽂이도 만들어 판다. 수입 가구 전용 대형 마트까지 생긴 세상에서 그걸로
돈 벌기는 힘들 게 뻔하다.
아빠는 뒷산에서 죽은 나무를 주워 와 십자가도 만든다. 이건 파는 게 아니다. 물건을 주
문한 고객에게만 주는 것도 아니다. 가게 앞에 ‘원하시는 분은 맘껏 가져가세요.’라고 써 놓
고 누구에게나 주고 있다.
이건 이 박재상의 고민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다는 뜻이다. 나는 아빠가 십자가를 깎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런 거 깎을 시간 있으면 내 그림도구 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미성년자인 날 책임지는 아빠라면.
화가 난다. 몸속에서 뭔가 올라와 토할 것 같다. 내 세상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도 아빠는 여전히 껌 값도 안 되는 물건을 깎고 있었다.
“재상아,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간식 줄게.”
‘에잇! 정말 짜증나!’
나는 대꾸도 않고 가방을 아무 데나 휙 던져 놓고 집을 나왔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뒷산을 향해 걸었다. 숨이 차고 목이 말랐다. 약수터로 가서 벌컥
벌컥 물을 마셨다. 턱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훔쳐 내고, 평평한 바위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제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늘 사이로 나무들이 보였다. 약수터 옆 나무들은 쭉 뻗어 있고, 잎들도 무성했다. 참 잘나
보였다. 반대편에도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비루먹은 말 같기도 하고, 꼭대기에 잎이 없었더
라면 죽은 걸로 보였을 성싶은 나무. 정말 볼품없어 보였다. 꼭 내 모습처럼.
“쳇!”
나는 나무를 눈에 담기도 싫어 고개를 돌린 채 일어났다.
터덜터덜 산길을 걸어 내려와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어딜 갔다 이제, 에취.”
아빠는 재채기하느라 말을 다하지 못했다. 아빠 옆에 십자가가 열 개쯤 모아져 있었다. 몸
이 아픈데도 그걸 깎느라 감기까지 걸린 것 같았다.
‘뭘 저딴 걸 깎느라…….’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빠 대신 십자가를 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갈 만한 데 갔으니까 걱정 마. 아빠나 감기 걸리지 않게 잘해.”
“녀석, 아빠 걱정을 하고, 다 컸네.”
“걱정? 내가? 걱정은 무슨?”
아빠는 주방에서 컵라면을 가져오며 말했다.
“오늘은 별식 먹자.”
“웬일이야? 컵라면을 다 먹자 하고?”
“그러게? 탁자 주문한 분이 주고 가더라고.”
“오늘은 편의점 분위기 좀 내 볼까?”
“쳇.”
퉁퉁거리면서도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뚜껑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
다음 날 미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강당에 모인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특별한 걸 하기로 했죠? 짝꿍이 전지 위에 누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따라
선을 그려 주세요. 그다음엔 누워 있던 사람이 그 안에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으세
요. 선을 고쳐도 돼요.”
선생님 말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은 쑥스러운지 킥킥거리며 그림을 그렸다.
짝꿍은 30초도 안 돼서 뚝딱 그려냈다. 달랑 동그라미 하나였다. 미래고 뭐고 수업 끝나자
마자 햄버거 먹고 싶은 마음뿐이라나. 역시 먹보 짝꿍다웠다.
나는 나를 본뜬 형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 안에 엉클어진 실뭉치를 그렸다. 지금 너
무 힘들어서인지 20년 뒤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 언제 왔는지 우리 반 까불이 동철이가 말했다.
“하하하, 박재상, 이게 뭐냐? 뭔 똥 덩어리를 그렸냐?”
‘어유, 저걸 그냥!’
내 주먹이 올라가려 할 때였다. 주먹 너머로 단발머리 지윤이가 보였다. 오늘 따라 지윤이
머리가 더 찰랑거렸다.
‘어이구, 지윤이 땜에 내가 참는다.’
지윤이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지윤이는 뭘 그렸을까?’
궁금한 마음에 힐끔 보니 지윤이는 햇살 아래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지윤이
만큼 눈부신 그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니 아빠가 없었다. 아빠가 집을 비우는 날은 거의 없는데 이상한 일
이었다.
‘내가 그림도구 사 달라고 졸라서 돈 벌러 나갔나?’
잠시 지윤이와 미술반에 나란히 앉아 그림 그리게 될 걸 생각하니 설레었다. 그러다 아빠
가 감기 걸린 게 생각나 더 심해진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나는 빈집에 있기 싫어서 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 놓고 뒷산에 올랐다. 단숨에 올랐더니 목
이 말랐다. 꿀꺽꿀꺽 약수터 물을 들이켰다.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끼며 근처 바위에 벌
렁 드러누웠다. 그랬더니 어제 보았던 비쩍 마른 나무가 또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꾸만 신경쓰여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떴다. 아주머니들이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고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더니 컵을 헹구려는지 나무에 휙 뿌렸다. 다시
뜨거운 물을 따라서 차 티백을 넣어 마시고는 번갈아 그 나무 기둥을 잡고 몸을 늘였다. 그러
더니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쿵쿵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껍질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거였구나!’
나는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아주머니들에게 소리쳤다.
“아줌마들! 나무한테 그러면 어떡해요!”
“어머머, 얘,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
“몸 이런 거 안 보이세요? 이 나무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얘, 이게 니 나무라도 되니? 참, 살다 살다 별일 다 보겠네.”
그러면서도 아주머니들은 주섬주섬 짐을 꾸려 다른 곳으로 갔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나 자신한테 놀랐다.
아주머니들이 떠난 다음 천천히 그 나무에게로 다가가 보았다. 물이 묻은 자리가 눈물자
국처럼 얼룩져 있었다.
‘쳇! 너도 내 신세만큼이나 한심하다!’
그때였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 보니 미술반 아이들과 미술 선생님이었다. 미술반을 기웃
거렸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재빨리 지윤이를 찾았다. 그림 도구를 들
고 지윤이가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들어 주려고 한 걸음 떼다가 지윤이와 아직 말한 적이 없는 게 생각나 멈췄다.
그러고는 굵은 나무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댔다.
지윤이는 내가 드러누웠던 바위에 앉아 그림 그릴 준비를 했다. 나는 나무 기둥 뒤에 숨어
지윤이가 스케치북에 연필로 한 선 한 선 그려 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어? 저건?’
뜻밖에도 내가 꼴도 보기 싫어하는 나무였다.
‘하필 저걸 그리다니!’
꼭 초라한 내 모습을 지윤이에게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터벅터벅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웠다.
아빠는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배고프지? 얼른 씻고 먹어.”
“웬 삼겹살? 식탁 값 받았어?”
“아직. 십자가 가져간 분이 고마웠다며 갖다 주시더라고. 앞으로도 쭉 만들어 달라네. 선물
해 줄 사람 많다고.”
“난 또. 십자가가 뭐라고. 참 별나네.”
“죽었다가 누군가에게 소망을 주는 존재로 다시 살아난다는 건 멋진 일이지.”
“쳇, 그럼 돈으로 줄 것이지. 삼겹살이 뭐야!”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는데도 아빠는 삼겹살을 호호 불어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아침에 교문에서 지윤이를 만났다. 눈이 마주치려 할 때 얼른 지윤이의 머리카락으로 눈을
돌렸으니까 만났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지윤이는 내가 눈을 피한 사이 스케치북을 든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다.
“지윤아, 너, 어제 왜 그 나무를 그렸어? 멋진 나무도 많은데?”
“아, 그 나무? 그 나무가 내 마음에 들어왔거든. 잘 자란 나무들 틈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고.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나무에겐 특별한 게 있었어.”
“뭐? 특별? 그렇게 볼품없는 나무가?”
“응. 미술 선생님이 그랬잖아. 화가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거기까지 들었을 때 까불이 동철이가 나타나 말을 거는 바람에 더 들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지윤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뒷산에 올라 그 나무를 찾았다. 자세히 보니 도토리나무였다. 나
무는 여전히 생기 없이 말랐고, 껍질은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나무 기둥은 여기저기 울퉁불
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옹이였다. 흙 위로 드러난 뿌리마저 혹투성인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정말 보기 흉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지윤이가 그린 나무이니까 꾹 참고 끝까지 찬
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도토리나무 뿌리 끝에 뭔가 보였다. 그건 쓰러져 있는 아까시나무의 뿌리였다. 꼭 도
토리나무가 지난 해 태풍 때 쓰러진 아까시나무를 뿌리로 붙잡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지윤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특별한 게 있었어.’
순간 도토리나무가 달라 보였다.
‘나무의 옹이는 나무의 상처라고 들었는데. 옹이가 많은 걸 보면 엄청 힘들었을 텐데 아주
머니들까지 그랬으니…….’
나는 옹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야말로 이 옹이투성이인 비루먹은 나무였다. 아빠 가슴엔 아픈
시간을 보낼 때마다 생긴 옹이가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키우고, 십자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망까지 주고 있던 거였다.
‘아! 이게 지윤이가 말했던 특별한 거구나!’
지윤이가 본 것을 나도 보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환해졌다. 나는 지윤이와 이 나무 이야
기를 하고 싶어졌다. 꼭 그림도구를 들고 미술반에 들어가 말을 걸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
런 이야기라면 언제 어디서든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신발 안에 공기라도 넣은 것처럼 가벼웠다.
집 안에는 삼겹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들, 다행히 딱 맞춰 왔네. 네가 올 때쯤 된 것 같아 오자마자 먹을 수 있게 굽고 있었지.
얼른 먹어.”
“대체 삼겹살을 얼마나 줬길래 또 구워?”
“그러니까 이 아빠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만들었길래, 하하하.”
아빠는 삼겹살을 입에 물고 장난스레 말했다.
문득 지윤이라면 아빠가 만든 십자가를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그 감동적인 십자가 나 하나 가져도 돼?”
나는 괜히 쑥스러워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누구 부탁인데. 한 개가 뭐야, 다 가져도 되지.”
아직 한 개면 되었다. 지윤이에게 줄 단 한 개.
“그리고 아빠, 그림도구는 이제 안 사 줘도 돼.”
나는 아빠한테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했다.
“그래? 아빠, 봐주는 거야? 네가 크니까 돈 들어갈 데가 많아져서 다른 일거리도 알아보던
참이거든. 진짜 다 컸네, 우리 아들.”
아빠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가 효자 중의 효잔 거지.”
나는 삼겹살과 상추가 섞여 있는 초록빛 파편을 튀기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 날 아침, 교문에 들어서는데 운동장 한쪽에 이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미술
반 아이들 그림이었다.
‘그럼 지윤이도?’
나는 재빨리 지윤이 작품을 찾아냈다. 지윤이가 뒷산에서 그리던 나무였다. 그 나무의 옹
이들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림 속 나무에게 말했다.
‘황금빛 옹이! 그게 딱이다!’
나는 당장 지윤이와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교실을 향
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누군가에게 달려가기는 처음이었다.
♣ 동화 수상 소감
오랜 약속 ... 수상의 기쁨!
스물네 살 지윤이란 아가씨가 있습니다. 바로 저의 제자입니다.
초등학교 땐 독서 수업을 늦게 끝내 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신발을 감추고, 저에게 눈을 흘기는 등
거친 행동을 했습니다. 그랬던 아이가 철이 들더니 자기 이름을 넣은 동화를 꼭 써 달라고 했습니다.
약속 했는데 지윤이 이름이 어울리는 작품이 마땅치 않아 자꾸만 늦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윤이
는 자라서 대학에 갔습니다.
어느 날, 미술관에서 나무 옹이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지윤이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달려가기는 처음」 입니다.
모자람이 느껴져 고쳤지만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세상 빛을 보게 하리라 마음먹은
뒤, 들여다보고 수정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때 지윤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저를 만나는 거라면서요. 지윤이 이
름을 넣어 작품을 썼는데 작품이 나오면 보내 주겠다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달려가기는 처음」이 드디어 『열린아동문학』 봄호를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온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우수 작품상이라니요!
김원석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꿈인가 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읽어 주시고, 어여삐 보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힘이 마
구 솟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제 손잡고 걸어가 주시는 하나님께도 감사의 하트를 드립니다.
우성희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2015년 중편동화 「달려라, 허벅지」로 푸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수상동화
집 『마귀할멈과 그냥할멈 & 해적고양이』가 출간되었다. 2016년 창작동화집 『하마가 사라졌다』, 2017
년 장편동화 『하트쿠키』가 출간되었다.
dias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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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시와 동화 모두 감동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추필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방정환 문학상 수상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권영상선생님 동시와 우성희작가님 동화 ~수상 축하드립니다.
정선혜 선생님, 감사합니다!^^*
축하 드립니다! 동화 제목 오타입니다. '달려가가기는 처음'
김춘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타 알려 주신 것도 감사해요.ㅎㅎ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오마나, 성희성희!! 권영상 선생님도 축하드립니다^^
ㅋㅋ
영영 샘, 감사해요!^^*
수상을 하신 두 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홍종의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상하신 선생님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임은경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