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다...2
金蘭은 이세영목사로 부터 기독교 신앙을 전수받아 교회로 출
석한것 같다 만날때마다 교회 출석 하라고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라디오나 텔레비젼이 보편화되지 않던시절 농어촌
에는 그야말로 문화 공간이라고 하면 교회밖에 없던 때였다(성탄
절 부활절 감사절) 교회 절기행사가 있었던 관계로 초등학생들이
가면 선물도 많이주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기에 친목회
나 요즘 무도회같이 남여학생들이 만나서 게임도 하고 밤새기하
며 친목도 하니 어린시절 교회 한번쯤은 다 가보았으리라 金蘭도
이렇게 해서 초등학교때 교회로 입문해 천성적으로 순하고 착하
여 교회밖에 모르며 신앙생활을 하니 너무나 좋고 주의은혜를 받
아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믿음이되고 열심이 대단하여 정규예배는
물론 새벽기도까지 빠트리지 않고 나가는 믿음의 소녀가 되였다
사춘기
를 지나고 하이틴시절 즈음 내가 군대에 간것이다 그리고 군종
이되고 사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니 金蘭은 고기 물 만난양 더
열심히 나오고 그때 金蘭은 성숙한 처녀들에 비하면 한단계 아
래 동생뻘이였고 그언니들 그룹이 엄청많았었다 그러니 언니네
팀들이 나한테 교제하려고 추파를 던지고 했지 정말 金蘭은 나
와 좋게 지내며 사랑 할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때에 처녀들
20 여명이 되었으나 그들보다 金蘭은 더 열심이였고 교회에
잘 출석하므로 교회 출석하는 군인들은 한결같이 인물과 신앙
착함 진실함 여인상으로 金蘭이가 퀸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곤 했었다 교회봉사나 심방 내가 있는 곳에는 주일날 항상 같
이 있었다 그저 교회와 하나님 착한일 봉사 밖에 모르는 사람으
로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바로 윗 오빠도 믿음이 좋아서
항상같이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며 충성하므로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 마
리아 마르다 가정같은 좋은남매로 모두 좋다고 칭찬하였다 부모
님들도 법 없이도 사는 분들이라 가보니 바닷가에서 농사짓고
어업일도 하는 겸업을 하셨다 아버지는 젊었을때 안동에 사셨는
데 교회에 가보았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이 교회에가도
말리거나 거절하지 않고 새벽기도때는 오히려
깨워서 교회 가라고 장려하는 분위기 였다고 했다 교회에서 무
슨일을 시켜도못한다 아니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다른사람들과
는 많이 달랐다 억지로 마지못해 교회 나오는게 아니라 자원하
여 나왔고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면서 나오는 아름다운
믿음의소유자였다 제대해서 고향으로 간다하니 너무나 슬프고
눈물이 나올까봐 다른사람들 있는데 큰소리로 울어서 혹여
군종님 오
해라도 받을까봐 멀리서 보내 주었다고 하였다 제대해서 집에
서 편지를 받았는데 金蘭은 군종님이 제대한다는 말을 들었지
요 이렇게 가면 다시는 못 만나나 싶어 사막에 혼자 남은것 같
은 외로움에 막 울었다고 적고 있었다 그 또래들이 20 여명이
되었는데 한결같이 보고싶다고 아우성이고 자신들 있는곳에 목
사님으로 꼭 다시 오라며 신신당부를 하였다 하루가 멀다 않고
오는 이쁜 낭자들의 소원을 하나님이
들으셨고 응답 하셨는지 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교회 전원일
치의 허락으로 사동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으니 사동교회
장년부는 물론 청년부 중고등부가 만세를 불렸다 그때가 1977
.12월초 제대한지 약5개월만이였다 누구하나 즐거워하지 않는
이 없었으나 金蘭의 기쁨은 백배 천배 였으리라 주일예배를 드
리고도 늘 남아서 교회 나오지 않은 사람들께 심방갈때 항상
따라 다녔다 그 또
래 친구들이 다 그러하고 전도사님이라고 서로 손잡고 끌다시
피 가니 누구하나 이상하게 볼사람사람도 없었다 이상하게 볼
려면 전체를 다 이상하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집사
님 댁에서 방한칸을 얻어 장집사님 딸 내외가 내 밥을 해주고
있었다 그때 교회에서 나에게 주는 사례는 월2만원 정도였다
접대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이 오고 하면 상점에서 외상
으로 갖다가 대접
하면 청년들이 내빚을 청산해 주었다 집집마다 음식하면 갔
다주고 저녁마다 청년들 중고등부들이 비나듯 드나 들었다 어
찌보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행복한 시기였었다 이때도 金蘭은
는 새벽기도 한번 빠지지 않았다 이때 내 마음에 새겨지는 몇
사람이 있었는데 심사에 또 심사를 거친후에 한사람을 지명하
니 金蘭이 였다 당시에 후포에서 죽변까지 수십여명의 처녀들
이 있었는데 누구든 다 나에게 관심이 있고 오고 싶어 하였다.
내가 지명해 부르면 다 백기 투항할 정도였으니 실로 요즘 스
타들 아이돌 부럽지 않았다 한번은 침례교 목사님이 나를 소
개해 준다며 원남면 아가씨인데 양장점하며 가전제품 다해놓
고 신랑은 몸만 오라고 한데요 하며 돈도 몇백만원 모아 두었
다며 한번만 보시면 마음이 갈거예요 했으나 최종 金蘭으로
선택한 이상 다른사람 또 본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여겼다.
배필 확정되자 실망 하는이 한 둘이 아니었다 金蘭은 그 믿음
이 그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선택에서 후회해 본일이
없다 누구보다 아내는 내게 잘하였고 내게 있어 멋진 동반자
가 되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는 시련을 잘 이기고
하루가 다르게 원 위치 되어 이전처럼 활동하며 가정과 교회
에 멋진 어머니 역활을 잘 수행하고 있다 부산등대교회 와 온
교우들의 합심기도가 유종의 미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진종일 커플옷입고 껌딱지같이 붙어 다니니 생판 모르
는 이들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둘이 같이 다니는게 보기에
참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게 아니예요 했
더니 아니 드물고 거의 없단다 중년이되면 부부도 모두 따로
국밥이란다 성경대로 내몸이고 하나인데 우린 그들이 이상할
따름이다 아내는 그 누가 뭐래도 내게 있어서는 그 어떤 세
상 것들과 추호도 바꿀수 없는 보물중에 보물이요 가보중에
가보이며 날개 안단 천사이다 그리고 아내는 나의 삶의 전부
요 모든것이다 다시 없이 순하고 착하며 현숙한 아내를 나에
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엎드려 날마다 감사 드리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新寧第一敎會 金世鎭牧師 (빌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