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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해제 10장
1 솔로몬<안식의 사람>의 箴(바늘 잠)言(말씀 언)이라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 비움을 목적으로 하라고 주신 말씀을 받고 채움을 생각할 때에 고민하는 상한 심령을 가지게 되며, 당신의 미련함은 당신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낳은 자도, 성령도 모두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미련한 아들이 되지 말아야 하며 당신이 말씀을 전할 때에도 미련한 자를 낳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받지 못하는 자에게 억지로 설득을 하여 말씀을 받게 하려는 것이 곧 미련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당신이 알고 있던 전도라는 개념은 하나님을 향하여 패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은 찾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 되어 가는 것은 말씀이 하시는 것이지 당신의 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不(아닐 부, 불)義(옳을 의)의 財(재물 재)物(만물 물)은 無(없을 무)益(더할 익)하여도 義(옳을 의)理(다스릴 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 재물이란 하나님께 받은 지혜의 말씀입니다. 불의의 재물이란 지혜의 말씀을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로 쓰려고 얻은 것을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이 말씀을 거룩함에 나아가려는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을 겸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면 이 말씀은 당신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비움을 위한, 거룩함에 나아가게 하는 지혜의 말씀을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 의리 곧 공의의 이치,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이 사는 방법입니다. 당신이 이런 말씀을 전하고 누군가 받게 될 때 당신이 죽은 그를 살리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가 하나님의 잃어버렸던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의 양은 마땅히 당신이 입으로 내는 말씀을 보고 당신이 목자임을 알고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렸다는 것은 찾기 어렵다는 의미라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3 여호와께서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靈(신령 령, 영)魂(정신, 넋 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所(자리, 바 소)欲(하고자 할 욕)은 물리치시느니라
*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마음에 새겨짐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거룩함에 나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 필요한 말씀들을 그 영혼에 주시고 바른길을 깨닫게 하시나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주어진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말씀의 깨달음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의 법률 전체를 아무리 잘 외우고 있다 해도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지혜입니다. 세상을 향한 소욕을 가지고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 비움을 추구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는 도리어 그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者(사람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者는 富(부유할 부)하게 되느니라
* 지혜를 구하고 그 받은 것을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 자에게는 지혜를 더해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성령은 투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내실에 있는 아내’로도 표현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야 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겠다고 하여 성령을 내주하시게 했는데 세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되면 당연히 내 안에 있는 아내는 투기하는 것이고 끝내는 아무런 지혜의 말씀도 그 마음에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낳을 수 없고 아무도 낳지 못하는 지혜는 쓸모가 없으니 지혜에 더욱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고팔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값은 없되 사고파는 것이 말씀입니다. 파는 자는 판 말씀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고, 산 자는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닙니다. 그래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사고파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지 않으나 사고파는 것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릅니다.
떡을 구하는 자에게 떡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대신 한 것이 되어 하나님께 꾸어 드린 것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그 베푼 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씀이 뒤에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이전 공의 관장자들은 돈을 생각하고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라고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을 인간의 윤리적 선으로 탈바꿈시켜 세상에 속한 것을 비움에 목적을 둔 말씀을 오히려 채움을 목적으로 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로 가는 길은 죽음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공의 관장자들이 폐함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도 그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여름에 거두는 者(사람 자)는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로운 아들이나 秋(가을 추)收(거둘 수) 때에 자는 者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 여름에 거둔다는 것은 열매인 당신을 익게 하기 위한 해가 내리쬐는 기간, 지금입니다. 말씀과 상관없는 자들에게 여름은 괴로움이 됩니다. 이처럼 강한 말씀이 내리쬐기 때문입니다. 그 강한 말씀을 당신은 이미 받은 사람입니다.
돌이키라는 말씀이 곧 해이며, 당신이 이전 공의의 폐함을 외치는 그 장소가 곧 여름입니다. 당신이 외치지 않으면 여름은 없으며 타인을 첫 열매로 익게 하여 거두는 때를 당신은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외침을 듣고 돌이킨 자는 그 해를 받아 자기를 익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그를 익게 하는 것은 말씀을 분별하여 알곡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자기를 온전히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며, 당신은 그의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에 추수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또한 가을에 밭을 간다는 말씀이 뒤에 언급되는데 그것은 자기를 익게 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드린 사람이 자기의 마음 밭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그릇에 있는 흠을 깨끗하게 지운다, 거룩함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6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머리에는 福(제사에 쓰는 고기와 술, 복 복)이 臨(임할 림, 임)하거늘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입은 毒(독 독)을 머금었느니라
* 거룩함을 향하게 하시는 말씀을 입으로 내면서 마음에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전하는 그에게는 독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타인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것입니다.
7 義(옳을 의)人(사람 인)을 記(기록할 기)念(생각 념)할 때에는 稱(일컬을 칭)讚(기릴 찬)하거니와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그 여자가 의인입니다. 그 여자를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비하여 부패를 방지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성령의 법의 존속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그 충성된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곧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가르치고 또 나도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불러 주신 나의 이름은 영원히 썩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기념은 버림과 비움을 행할 때 하는 것이지 나를 채울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채울 때 칭찬하는 것은 피차간에 썩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 13, 마가복음 14:9]
내가 眞(참 진)實(열매 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天(하늘 천)下(아래 하)에 어디서든지 이 福(제사에 쓰는 고기와 술, 복 복)音(소리 음)이 傳(전할 전)播(뿌릴 파)되는 곳에는 이 女(계집 녀, 여)子(아들 자)의 行(갈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記(기록할 기)念(생각 념)하리라 하시니라
“진실로”라고 하셨습니다. 또 “온 천하 어디서든지”라고 하셨으며,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상징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이 처음 듣는 말이고 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거나 또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이전에 들은 말은 당연하게 복음이 아닙니다.
8 마음이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로운 者(사람 자)는 命(목숨 명)令(우두머리 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者는 敗(깨뜨릴 패)亡(망할 망)하리라
*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위의 말씀과 같은 명령을 주면 그 명령을 받고도 준행하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마음도 갖지 마십시오. 당신은 언제든지 사단에게 걸려 넘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약한 사람입니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교과서적인 말씀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말씀은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입으로 말을 전하는 자는 먼저 된 자이고, 먼저 된 자는 마치 어깨에 견장을 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권위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기에 세상에서 사람이 걸어준 견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말씀 안에서의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대단하지도 않은 완장을 차고도 완장을 차지 않고 있을 때의 마음을 잊어버립니다. 큰 예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반장, 규율부, 생활지도 따위의 완장만을 차고도 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 모든 사람이 겪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전하는 피전도자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두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당신에게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보다 사랑하는 자입니다. 당신이 말씀을 가르치는 그 자리에는 언제나 듣는 자의 편에서 당신의 입을 주시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말씀을 전하시면 절대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 앞에 자신을 높여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멋진 옷을 입고 사람들 위에 서서 가르치는 것이 ‘가증한 물건이 서지 못할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9 바른길로 行(갈 행)하는 者(사람 자)는 걸음이 平(평평할 평)安(편안할 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行하는 者는 드러나리라
* 명령대로 준행하는 자는 사람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 얼굴을 내고 족적을 달았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것이며 그것은 굽은 길로 갔다는 증표입니다. 족적을 달려거든 나는 미물이고 지렁이 같으며 죄인 중에 괴수라고 다십시오.
10 눈짓하는 者(사람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者는 敗(깨뜨릴 패)亡(망할 망)하느니라
*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에 속한 것에 곁눈질하는 자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거룩함에 나아가게 하는 지혜를 받고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해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섰다가도 망할 것입니다. 세우심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또 더 나은 안식도, 더 못한 안식도 없습니다. 마음이 온전히 세상으로부터 쉼을 얻는 그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에 ‘보다 높이, 보다 많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헛됨을 헛됨으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높음과 채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11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입은 生(날 생)命(목숨 명)의 샘이라도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입은 毒(독 독)을 머금었느니라
* 성령의 법을 전한다고 다 선한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어떠함에 따라 생명의 샘이 자기에게는 독극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법은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향한 두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입으로 선을 내며 마음으로 악을 향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살을 베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그런 것이 아니라 정해 놓으신 섭리대로 반드시 그런 결과를 냅니다.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 하나님이 구원을 원하시는 사람은 모든 사람입니다. 당신의 입장에서 말씀을 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며 미움을 양산하라고 당신에게 일을 시키신 것도 아닙니다. 선은 선을 내고 악이 악을 내는 것입니다. 선을 받은 당신이 미움을 갖는 것은 선을 받고 악을 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지 못하는 타인은 나를 핍박하고 고난을 주는 도구로써 존재하는 자가 됩니다. 똑같이 세상에 왔다가 당신은 구원의 길을 가고 그들은 당신이 구원의 길을 가는 데 조력만 하다가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알 때 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타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할 때 완벽할 수 없는 당신도 하나님께 당신의 부족함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3 明(밝을 명)哲(밝을 철)한 者(사람 자)의 입술에는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가 있어도 智慧 없는 者의 등을 爲(할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 하나님을 아는 명철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천 번을 본다 해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풀잎을 천 번을 들여다보고 현미경으로 보아도 결코 그 풀잎을 창조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제 당신은 길을 가면서 수도 없이 채찍을 맞는 마음의 아픔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며 또한 당신의 마음에 흠이 있기 때문에 맞는 것입니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말씀이 당신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채찍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깨닫는 말씀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4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로운 者(사람 자)는 知(알 지)識(알 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者의 입은 滅(멸망할 멸)亡(망할 망)에 가까우니라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이 내게만 알게 하시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룩한 영역 안에서의 깨달음입니다. 그 지식은 남과 내가 공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알게 하시는 지혜와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다릅니다. 그래서 지혜와 지식이 다르게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것의 다름은 그릇 모양의 다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타인에게 발설하는 것은 높아지려는 마음 탓입니다. 그것을 발설하는 순간 거룩한 것은 부정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에 당신이 높게 여겨지는 것으로 상을 다 받은 것이 됩니다. 그것이 땅에 쌓는 것입니다. 그릇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깨닫기 위한 수단입니다. 지혜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마음에서 세상을 비워내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혜는 비움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 가르침을 따르면서 왜 비워내야 하는가를 깨닫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깨닫는 것입니다.
15 富(부유할 부)者(사람 자)의 財(재물 재)物(만물 물)은 그의 堅(굳을 견)固(굳을 고)한 城(고개, 재 성)이요 가난한 者(사람 자)의 窮(다할 궁)乏(모자랄 핍)은 그의 敗(깨뜨릴 패)亡(망할 망)이니라
* 지혜의 많음은 책에 집중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손을 부지런히 놀리지 않는 자에게 지혜는 더해지지 않습니다. 지혜는 성령과의 영적인 호흡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날숨’이며, 깨달음을 받는 것이 ‘들숨’이고 그것이 곧 ‘영의 호흡’입니다. 그런데 날숨, 즉 지혜를 구하는 기도는 지혜를 얻기 위해 전함을 행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보신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므로 전함이 없는 지혜의 깨달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책을 보고 아는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비움이나 믿음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지혜는 체득하는 것이지 이론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16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受(받을 수)苦(쓸 고)는 生(날 생)命(목숨 명)에 이르고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所(자리, 바 소)得(얻을 득) 은 罪(허물 죄)에 이르느니라
* 그렇게 수고를 통하여 체득한 지혜로 생명에 이르는 것이고 머리로만 이론을 탐구하여 깨닫는 것으로는 죄만 양산하게 됩니다. 전함 없이 지혜를 탐하는 것부터가 욕심이 들어 있는 것이므로 죄입니다. 의인의 수고는 자기가 없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수고로 인한 열매는 자기를 거룩함에 나아가게 하는 결과를 얻게 되어 영생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거룩함에 나아가게 하는 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영광을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은 선으로 악을 버는 것이 됩니다. 타인이 당신을 향하여 상대적인 사고를 하고, 당신을 높다고 여기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사이에 끼어든 것이 되어서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 이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업적입니다. 그 업적을 당신이 폐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 소득이 반드시 죄가 되는 것입니다.
17 訓(가르칠 훈)戒(경계할 계)를 지키는 者(사람 자)는 生(날 생)命(목숨 명)길로 行(갈 행)하여도 懲(징계할 징)戒(경계할 계)를 버리는 者는 그릇 가느니라
* 같은 말씀이 누구에게는 훈계가 되며 누구에게는 징계가 됩니다. 자기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동일한 말씀이 다른 결과를 냅니다. 그래서 마음의 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선택을 받은 자가 받는 것이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며, 모든 징계나 훈계는 지금 당신이 이 말씀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통하여 당신에게 들려집니다. 모든 훈계나 징계를 들어야 하는 상황은 모르고 행하는 데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먼저 된 자의 지적을 통하여 훈계와 징계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사람을 보기 때문에 훈계나 징계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18 미워함을 감추는 者(사람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者요 讒(중상, 참소할 참)訴(하소연할 소)하는 者는 미련한 者니라
*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구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속으로는 미워하면서도 겉으로 아닌 척 하는 것은 도리어 악입니다. 사람은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위선이며 사람 앞에 상대적인 사고를 한 증거입니다. 그것도 자신을 사람 앞에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거기까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미워도 하고 저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미워함을 지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지혜의 말씀을 보고 타인의 그릇됨을 알았고 그로 인하여 분이 난다면 당신은 낳은 자에게로 가서 그 분을 말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르침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말씀으로 지우십시오. 그것이 바른길로 가는 것입니다.
분노란 자기가 자기 속에 살아 있을 때 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없는 사람은 분을 내지 않습니다. 분이 났다는 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을 지우라고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 다음 먼저 된 자에게 구하십시오.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망각하는 것과 말씀으로 지워내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모르고 참소까지 한다는 것은 당연히 미련한 것입니다.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免(면할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制(자르다, 마를 제)馭(말 부릴 어)하는 者(사람 자)는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가 있느니라
*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은 변명이든 설명이든 자기가 섞이는 것입니다. 말의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씀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의 생각을 말속에 섞는 것은 그것 자체가 허물입니다.
20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혀는 天(하늘 천)銀(은 은)과 같거니와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마음은 價(값 가)値(값 치)가 적으니라
* 받은 지혜를 의인의 마음으로 전하는 것은 가치가 크나, 천은(순도 100% 은)과 같이 순전한 말씀이라도 세상에 속한 생각을 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전하는 지혜는 그 가치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다는 것은 그 말을 듣고 깨닫는 자에게는 유익이 있으나 전한 자가 받을 것은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본 말씀에서의 악인은 의인이 되는 악인입니다. 지혜와 상관도 없는 사람은 의인이나 악인으로 분별할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이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죽은 자는 악인조차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을 마음으로 받아 의인으로 여겨진 자가 되는 것이 본서의 악인입니다. 그 점을 유념하고 말씀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 어디에는 선인, 어디에는 의인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의인이란 공의에 속한 사람을 말하며 백성이 된 모든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러나 선인이란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에 속한 것은 행하고 악에 속한 것은 행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악을 전혀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정한 육신을 입고 있는 것 자체가 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인은 가끔 선인이기도 하고 악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나치게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치게 악인도 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 살되 자신이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나친 의인은 위선을 행하는 것이며, 지나친 악인이 되는 것은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지키는 것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21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敎(가르침 교)育(기를 육)하나 미련한 者(사람 자)는 知(알 지)識(알 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 지혜는 지식을 얻는 수단입니다. 지혜를 전하고 그 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지 않고 이론적 지혜에만 몰두해 있는 자는 결국에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공평의 원리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머리 좋은 사람이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람이 얻는 것입니다.
22 여호와께서 福(제사에 쓰는 고기와 술, 복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富(부유할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兼(겸할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 지혜를 주시는 것은 마음에 근심이 쉬는 결과를 얻게 하는 것이나 사람이 지혜를 마음으로 받지 않고 머리로 받으면 근심은 여전히 떠나지 않습니다. 지혜를 얻고도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말씀의 부실이 아니라 마음의 부실 탓입니다.
근심한다는 것은 전하는 대상에 자기의 마음이 섞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나를 부인한 바탕 위에서 하는 것이지 내가 속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없으면 근심도 없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받은 것은 다른 아무것도 아닌 ‘고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지혜의 많음을 자랑하던 부자를 뜻합니다. 성경 안에는 물질적 부를 뜻하는 의미로 메시지를 전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고 영인데 어떻게 육에 관한 메시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사람이 육신에 속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술에 취하여 괴이한 것이 그 눈에 보이므로 육에 속한 것으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세상에 속한 것의 주인인 사단에게 미혹되어 소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23 미련한 者(사람 자)는 行(갈 행)惡(악할 악)으로 樂(즐길 낙)을 삼는 것 같이 明(밝을 명)哲(밝을 철)한 者는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로 樂(즐길 낙)을 삼느니라
* 자기가 왜 세상에 있고 또 이 세상이 자기에게 어떤 장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처럼 세상을 관람하는 자의 위치에 서기 위하여 자기 마음의 흠을 지워내려 할 것이며, 그 지워낼 수 있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24 惡(악할 악)人(사람 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臨(임할 림, 임)하거니와 義(옳을 의)人(사람 인)은 그 願(원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 하나님을 향한 자와 세상을 향한 자의 차이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관중석으로 가서 하나님과 함께 인생들의 경기장인 세상을 보기를 원하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그 관중석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장애물을 잘 넘고 남보다 빨리 뛰어도 그것은 경기장 안에서 경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은 늘 사단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본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것은 죽기까지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그런 위험한 지경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또한, 이미 알고 계시듯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고 지워내는 것은 안 가지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 쉬운 길로 가는 것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으나 사람이 미련하여 그 길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살은 미련한 짓입니다. 하나님이 일꾼으로 쓰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것이므로 그것 역시 반역이 됩니다.
그래서 선택을 받은 자가 버리고, 돌이키고, 지우는 것은 허무주의에 의한 것도 아니며 자포자기도 아닙니다. 육적인 목적을 가진 삶에서 영적인 목적을 가진 삶으로의 전환이며 인생의 허무에서 안식으로의 전환인 것입니다.
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惡(악할 악)人(사람 인)은 없어져도 義(옳을 의)人(사람 인)은 永(길 영)遠(멀 원)한 基(터 기)礎(주춧돌 초)같으니라
* 회리바람이란 돌고 도는 바람, 즉 앗수르의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불게 되는 그 바람에 버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그 바람은 이미 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 안에서 당신이 그릇된 길로 간다면 당신이 스스로 그 바람을 불러오는 것이 됩니다.
26 게으른 者(사람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醋(식초, 초 초) 같고 눈에 煙(연기 연)氣(기운 기) 같으니라
* 이에 초는 해롭고 눈에 연기가 닿으면 따갑습니다. 부리는 사람이 이 같은 자를 그냥 놓아둘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게으르다 함은 이미 명령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지혜를 받았다 해서 곧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으르면 선택을 받았더라도 내쳐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자에게 게으른 자란 망설이는 자입니다. 말씀을 전했더니 받기는 했는데 행위로 옮기는 것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를 보거든 바로 등을 돌려야 합니다. 전하는 자에게 있어서 초와 연기 같이 느낀다는 것은 그에게 마음을 섞고 있다는 말이고, 마음을 섞고 있다는 말은 우체부의 역할로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으로 설득하여 전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실제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을 섞는 전함은 모두 헛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바르지 못한 저울질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27 여호와를 敬(공경할 경)畏(두려워할 외)하면 長(길 장)壽(목숨 수)하느니라 그러나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年(해 년, 연)歲(해 세)는 짧아지느니라
* 장수: 이것은 영영한 장수를 말함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수한이 길어짐을 뜻합니다. 악인의 수한을 줄이시는 것과 관련하여 쓰인 장수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내일’을 보장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일을 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선택을 받고도 돌아서는 자는 주어진 연세가 짧아지기도 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지혜를 경험한 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입니다. 공평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세상에 나가 거룩한 길을 훼손하고 다니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타인들이 공평히 얻어야 하는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한을 줄이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보았던 악을 행하고도 멀쩡했던 때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성령의 법이 선 때와 덮여 있던 때의 차이입니다.
28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所(자리, 바 소)望(바랄 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所望은 끊어지느니라
* 의인의 소망은 영생에 있으므로 매사에 소망이 이룰 때마다 한 걸음씩 더 영생을 향하여 가므로 안식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세상에 있으므로 소망을 이루어도 허망하여 다음의 소망을 이룰 때까지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그 길의 끝인 인생의 마감 때가 불현듯 오면 그 소망도 끝이 납니다.
29 여호와의 道(이치, 길 도)가 正(바를 정)直(곧을 직)한 者(사람 자)에게는 山(뫼 산)城(고개, 재 성)이요 行(갈 행)惡(악할 악)하는 者에게는 滅(멸망할 멸)亡(망할 망)이니라
*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께 향한 자에게는 그만큼 든든한 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것을 놓지 않고 굳게 잡아 구원에 이르지만, 세상에 속한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는 도저히 기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 말씀을 받고도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씀 전할 지혜자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뿌려야 하는지와 뿌리고 나서 나오는 반응을 보고 모든 이들이 받지 않음을 겪고 나서 실망하여 힘을 잃을까 염려되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도는 사람에게 거울입니다. 비춰봐서 자신이 바라던 말씀이 보이면 더 보기를 원하고, 들여다보고 세상에 속해 있는 자신이 보이면 택하신 자는 더러움을 벗고 나아오고, 택함 받지 못한 자는 보기 싫어 세상으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는 행악자에게 멸망인 것입니다.
30 義(옳을 의)人(사람 인)은 永(길 영)永(길 영)히 移(옮길 이)動(움직일 동)되지 아니하여도 惡(악할 악)人(사람 인)은 땅에 居(있을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 말씀을 보고 오는 자들의 마음은 각양각색이나 그중에 누가 말씀을 보고 온 자이며 누가 몰래 들어온 자인지는 나타내는 반응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보시다시피 마음이 세상에 속한 것을 소망하는 자는 견디기 어려운 말씀들뿐입니다. 모든 목적이 세상에 속한 것을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데 있으니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는 자는 가식으로도 이 땅에 머물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 도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31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입은 智(슬기 지)慧(슬기로울 혜)를 내어도 悖(어그러질 패)逆(거스를 역)한 혀는 베임을 當(대할 당)할 것이니라
* 패역한 혀란 말씀을 바른 것으로 받고 그릇된 것으로 변개하여 내는 것입니다. 말씀은 흑백이어서 얼마 안 되어 자기의 말이 검은 것이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데, 그것을 다시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닌 것으로 말을 하려면 또다시 변개를 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말씀입니다만 성령의 법이 없을 때에는 거짓을 발하고도 그것을 감출 수가 있었으나 성령의 법이 서 있는 때에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반드시 베임을 당하게 됩니다.
32 義(옳을 의)人(사람 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입은 悖(어그러질 패)逆(거스를 역)을 말하느니라
* 선과 악 중의 악에 속한 마음을 가지고 내는 것은 설령 그것이 지혜일지라도 결론은 반드시 패역으로 끝이 납니다. 악인이 선한 말을 하는 것은 종국에 악을 행하기 위함이므로 증거함이 선에 머물러 있으면 악을 행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악으로 향해 가는 것입니다. 위선이나 가식이 마음의 법 아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 기쁘다든지, 낙이라든지, 즐거움이라는 말은 모두 비움을 통한 쉼, 안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식을 얻게 되므로 기쁘고 즐거우신 것이며, 사람은 쉼을 얻으면서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움을 전하고 받은 자가 비움을 행하며 마음을 쉬게 될 때 전하는 자도 또한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