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於無等山 (무등산에서)
湖 南 名 山 立 鐵 脚 (호남명산입철각) 호남의 명산 위에 쇠다리(안테나)를 세워
千 里 沃 原 飛 電 波 (천리옥원비전파) 천리 기름진 들에다 전파를 날려 보낸다
列 邑 諸 州 漸 漸 新 (열읍제주점점신) 여러 고을들 (방송으로) 점점 새로워지니
吾 等 力 務 知 不 輕 (오등역무지불경) 우리들 힘써서 하는 일이 가볍지 않다네
<자 평>
이 시는 내가 한시에 관심을 갖고 처음으로 만들어 본 시이다.
지난 1971년도에 광주(光州) 무등산에서 근무하던 무렵에 지었던 시이다.
당시에, 한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지만 선인(先人)들의 시를 감상하다가 만들어
보았는데, 한시의 평측(平仄)이나 운자(韻字)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시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150수를 넘기게 되었다.
그 시작이 바로 이 시였기에, 나로서는 이 시를 대하면 감회가 깊다.
비록, 한시의 근체시(近體詩)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도 글자를
맞춰 보려고 안간 힘을 쓰던 일이 생각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시의 주제와 내용은 1970년 8월 하순에, 전임지(前任地)이자 나의 초임지(初任地)
전북 익산군 소재(所在) 미륵산TV 중계소에서 전보 발령을 받고, 광주TV중계소에
부임하여 다시 무등산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다.
그러다가, 이듬 해인 1971년 3월 중순에 송신 출력 10kw와 채널 7로써 본격적으로,
KBS의 TV전파 송신중계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 해 4월에는,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간의 치열한 대통령 선거도 있었다.
내가 무등산에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하면서, 내 존재 의미와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며 이를 한시 형태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비록, 누가 알아주는 이 없는 외진 곳에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절이
었지만, 나 자신과 내 동료들을 격려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이 시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반세기도 더 지난 오래 전의 일이 되었으나, 이 시(詩)를 대하면 나의
사회초년병으로서의 젊은 시절이, 아련한 추억 속에 떠 오르며 잔잔한 감회에 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