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禮文家 8家 - 晉州 姜氏·安東 權氏·驪興 閔氏·恩津 宋氏(霽月堂派)·恩津 宋氏(同春堂派)·坡平 尹氏·慶州 李氏·東萊 鄭氏 - 를 選定. ★표는 게시자가 表示.
성신여대 대학원 석사논문에서 김순종은 <拜禮에 관한 事例 硏究 : 충청지방 禮文家를 중심으로>라는 테제를 통해 진주강씨를 충청지역 예문가 8가에 選定하였다. 김순종은 절(拜禮)에 관한 연구에서 冠婚喪祭의 儀禮 節次에 拜禮가 하나의 순서로 記錄되어 있는 것을 보면 拜禮는 禮를 行함에 있어서 必須的인 것이라고 하였다.
김순종은 학위 논문에서 朝鮮中·後期 文集에 나타난 拜禮를 考察하면서. 朝鮮中期의 禮學者인 金長生의 『家禮輯覽』에는 절의 動作을 叉手·祗揖·展拜·揖禮·拜禮의 5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내용을 그림과 함께 提示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하는 김순종의 석사학위 논문 要略.
또한 朝鮮後期에 편찬된 儀禮書인 申應純의『省齋集』·李縡의 『增補四禮覽』·丁若鏞의 『與猶堂全書』·『廣禮覽』·朴文鎬의 『四禮集儀』(韓國精神文化硏究院 譯註)에서 婚禮·喪禮·祭禮에 나타난 拜禮를 살펴보았다. 歲時風俗書로 柳得恭의 『京都雜志』·김만순의 『冽陽歲時記』·洪錫謀의 『東國歲時記』에서는 正初의 歲拜에 대해 言及하였다.
事例調査는 禮學의 고장인 충청지방을 택하여 대전광역시를 중심으로 하여 공주·논산에 살고 있는 禮文家를 선정하였다. 事例調査 對象者의 選定基準은 朝鮮 後期 懷德에 居하였던 士族들의 실태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懷德鄕案』·『靑衿錄』에 入錄된 姓氏들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 결과 ★禮文家 8家 - 晉州 姜氏·安東 權氏·驪興 閔氏·恩津 宋氏(霽月堂派)·恩津 宋氏(同春堂派)·坡平 尹氏·慶州 李氏·東萊 鄭氏★ - 를 選定하여 각각의 家에서 行해져 내려오는 拜禮에 대해 조사하였다.
事例調査 結果 남자절의 명칭은 '절'·'큰절'·'평절'·'單拜'·'再拜'로 부르고 있어서 『家禮輯覽』에 나타난 절의 6가지 종류
(稽首·頓首·空首·叩頭·凶禮·肅拜)의 名稱을 부르는 家는 한 家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자의 큰절 動作은 절의 시작과 끝에 揖을 하는가·하지 않는가를 제외하고는 『家禮輯覽』에 나타난 稽首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체를 숙이는 정도는 이마가 공수한 손등에 닿는가·닿지 않는
가로 구별되었다. 그러나 坡平 尹氏家만이 상체를 숙임에 있어서 팔을 굽히지 않으므로 상체는 숙이지 못하고 머리만 숙인다. 이는 朝鮮後期 禮訟으로 인한 老論·少論간의 堂色을 달리하기 위해서 나타난 절의 모습이 아닌가 思料된다.
婚禮節次중 交拜禮에서는 8家 모두 신랑 큰절 2번, 신부 큰절 4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절하는 순서에 따른 휫수와 절하는 순서는 禮書에 따라 신부가 큰절 2번하면 신랑이 큰절 1번하고, 또다시 신부가 큰절 2번하면 신랑이 큰절 1번 하는 家가 4家이었다.
答拜의 경우 『家禮輯覽』의 空首를 현재 答拜의 原形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 무릎을 꿇지 않고 正坐하고 양손 또는 한 손을 앞으로 놓고 상체는 조금 숙일 뿐이었다.
★正初歲拜는 남녀 모두 평절 1번을 한다고 하였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앉아 계실 경우 2번 절한다는 家가 대부분(7家) 이었다. 가족간의 歲拜는 8家 모두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의 큰절은 『家禮輯覽』의 肅拜에 나타난 대로 절하는 모습은 7家 모두 같았다. 그러나 앉는 자세는 肅拜의 궤좌와는 다르게 正坐가 대부분 이었다.
祭祀 때 큰절이 평상시 큰절과 다른 家는 3家이었다. 차이점은 動作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니고 상체를 숙일 때 좀 더 많이 숙인다는 것이다. 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至極한 禮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祭祀 때 여자는 큰절 4번 하는 댁이 7家로 나타난 것은 우리 조상들이 祭禮에 관해서는 禮書에 充實했음을 보여준 한 例가 아닌가 思料된다.
평절에서는 앉는 자세 (側坐 : 무릎을 접어서 양발을 오른쪽으로 놓고 앉는 자세)와 머리만 숙임에서는 대부분이 같았으나, 손 모습은 7家 모두 달랐다. ★절할 때 손끝이 상대방을 향하지 않는 것은 7家 모두 같았다.★
答拜는 7家 모두 앉아서 상체를 숙이는 것은 같았고 家에 따라 한손 또는 양손을 앞으로, 옆으로 내밀어 남자의 答拜와 같은 脈絡이었다.
見舅姑禮에서 6家는 신부가 시부모님께 幣帛을 드린 후 큰절 4번을 했다. 그러나 慶州 李氏 家만이 신부가 시부모님께 幣帛을 드리기 前後에 큰절 2번씩을 하여서 모두 8번 절했다.
相見禮에서 신부의 시댁 식구에 대한 拜禮는 7家 모두 같았다. 즉 신부는 시아버지의 형제분들께 큰절 1번하면 절 받으시는 분은 앉아서 答拜하셨다. 신부는 신랑과 같은 行列로 나이가 많은 사람, 신랑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평절 1번을 했고 상대방은 맞절로 答拜했다.
『家禮輯覽』과 事例調査 결과에서 나타난 남자의 큰절은 절의 시작과 끝에 揖을 하는가·하지 않는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家禮輯覽』이 刊行된 年度(1685)와 現在 事例調査를 한 時點과는 300여년의 차이가 存在하나, 절하는 모습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은 남자절의 경우 傳統的인 절의 型式에 많이 따르며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의 큰절은 『家禮輯覽』의 肅拜와 2가지 차이점이 보인다. 첫째, 앉는 자세이다. 『家禮輯覽』에서는 궤좌이고 사례조사에서 나타난 앉는 자세는 正坐가 대부분(正坐 6家, 側坐 1家)이었다. 둘째,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숙일 때『家禮輯覽』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난 후 상체를 숙였으나, 사례조사에서는 머리를 숙이는 동작이 따로 없고 처음 상태 그대로 상체를 숙였다.
남자의 큰절은 동작을 單純化하기 위해서 절 시작과 끝의 揖동작을 줄여 보았다. 여자의 큰절은 앉고 일어남에 있어서 容易性과 절 할 때 모습의 安定感을 고려하여 앉는 자세를 側坐로 하였다. 여자의 평절은 평상시에 자주 하는 절이라는 것을 勘案하여 實用性에 焦點을 맞추어서 앉는 자세는 궤좌로 하고, 절 할 때 머리는 숙이지 않으면서 상체를 숙이고, 상체를 숙였을 때 팔은 굽히지 않는 동작을 提案해 보았다.
拜禮는 後世에게 반드시 남겨야 할 우리의 傳統生活文化이다. 拜禮는 예로부터 지켜온 可視化된 禮 崇尙文化의 産物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生活文化의 自矜心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절할 때 손끝이 상대방을 향하지 않는 것은 7家 모두 같았다.★
(절할 때의 핵심) - 양손의 손가락을 겹치면서 피라미드(삼각형) 모양을 형성한다.
첫댓글 ㅎ
(절할 때의 핵심) - 양손의 손가락을 겹치면서 피라미드(삼각형) 모양을 형성한다에서
양손중 어느 손가락을 위로 할까요?
왼손쪽 손가락 아니면 오른손쪽 손가락?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길사(세배, 제사 등)는 왼 손(음)이 오른손(양) 등 위로, 흉사(喪禮 등)는 오른쪽 손이 왼손 위로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의 습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