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9일
원자력은 왜 비싼 에너지인가?
- 독일 원자력의 경제성에 대해 -
2012. 4. 9.
정연미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 베를린자유대 박사, 에너지경제 전공)
독일에서 원자력의 경제성에 대한 논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현실경제에서 원자력이 경제적으로 이미 죽은 기술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의 경제성 문제는 지난 수 십년 동안 끊임 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책입안자, 시민사회도 비용 계산과 경제성 평가에 익숙해져 있고, 우리 사회가 수의 논리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가격이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반영할 수 없는 곳에서 원자력의 경제성에 대한 논쟁은 의미를 잃을 것이다. Stern경은 화석연료 연소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금세기의 기후변화가 경제 역사에서 가장 큰 시장실패라고 하였다. 가장 높은 기술수준에 도달한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어디에도 안전한 원전은 없으며, 원자력의 경제성은 시장실패를 벗어나는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정부는 2011년 5월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2022년 독일의 모든 핵발전소는 가동을 멈출 것이다. 독일의 총 17개 원전 중 8개가 폐쇄에 들어갔고, 현재 9개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독일정부가 원전 모라토리움을 선언한지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독일의 탈핵 에너지전환은 경제적이고, 기후친화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수급경제로의 구조조정을 견인하고, 다른 에너지들이 원자력을 비용효과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탈핵 에너지전환은 경제에 위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자력으로 인해 왜곡된 에너지경제와 에너지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탈핵선언 이후 독일 에너지경제는?
독일 원전 모라토리움 선언 이후 8개의 원전이 가동 중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한 해 동안 독일은 6TWh의 전력을 수출해 전력수출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유럽 한파 때 독일전력네트워크는 안정적이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전력난방 사용 증가로 인해 아침시간에 첨두부하가 발생해 독일이 오히려 프랑스에 전력을 수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원전 모라토리움 선언 직후 독일 전력가격이 15%까지 상승하였지만, 이 수치는 2008년 전력가격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며, 2011년 여름 전력가격은 다시 떨어졌고, 2011년 연말에 후쿠시마사고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력가격은 현재 약 23-24 Ct/kWh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정부의 원전 모라토리움 선언 이후 독일의 거대전력회사중 하나인 RWE는 전력가격이 5%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에너지와 전력수요가 감소하면서 전력가격 상승을 막는 효과를 가져왔고, 첨두부하때 주로 생산되는 태양광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가 원자력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독일전력산업계와 원전찬성론자들이 우려했던 원전폐쇄로 인한 전력가격 상승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독일정부의 원전 모라토리움 선언 이후 화석발전소 건설이 증가함에 따라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EUA 탄소배출권 가격이 한때 1.5-2 Euro, 약 15% 상승하였으나, 이후 탄소배출권 가격은 하락하였다. 장기적으로 원전폐쇄가 탄소배출권가격에 미치는 가격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원자력은 가장 비싼 에너지이다
원자력에너지가 전력을 싸게 공급한다는 주장은 원자력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 보조금을 모두 고려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자력에너지의 전력시장 진입은 원자력의 경제성을 따져볼 여타의 전력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독일에서도 1950-2010년 기간 동안 4.3 Ct/kWh의 직접, 간접 보조금이 원전에 지원되었다.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초창기인 1950-1969년 기간에는 무려 101.6 Ct/kWh에 이르는 막대한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보조금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에 대한 보증이 없고, 시장경쟁이 도입된 자유화된 전력시장에서 신규 원전의 비용은 상승하고 있으며, 원자력은 더 이상 기업들에게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다. 현재 RWE는 원전 전력생산으로 인해 향후 20년간 100 Euro/MWh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급증하는 원전 비용으로 인해 RWE와 E.ON은 영국 원전건설을 포기하였다. 작년 9월 18일 독일 지멘스도 원자력 발전 관련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인터뷰에서 피터 푀셔 지멘스 최고경영자는 "지멘스는 더 이상 원전 건설 관리와 자금 조달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지멘스에 원전사업의 역사는 끝났다"고 말했다. 국가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원자력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은 기업들에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계산되지 않은 비용들, 원자력은 더욱 비싸질 것이다
원자력의 외부비용 추정치는 0.1 Ct/kWh 270 Ct/kWh에 이르고 있다. 무려 2,700배 차이가 있기 때문에, "Best Guess"를 발견할 수 없다. 독일 원전의 대형사고시 약 3조에서 5조 Euro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비용 중 일부만이 에너지세, 탄소세, 탄소배출권거래제도를 통해 내부화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기 전에도 원전의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2009년 캠브리지 에너지연구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 10년 동안 원전 건설비용은 매년 15% 상승하였다. Financial Times도 원자력기술이 영국 산업역사에서 가장 비싼 실수였음을 보도하였다. 원자력업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의 경제성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핀란드의 Olkiluoto와 프랑스의 Flammanville 핵발전소는 공사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인해 훨씬 더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핀란드의 Olkiluoto 유럽형 가압경수로(ERP)는 계획했던 것보다 건설에 2년이 더 소요되고 있고, 최초 계획한 건설비용 30억 Euro가 54억 Euro로 증가하였다. EDF가 Flammanville에 건설중인 ERP 원자로는 6-9 Ct/kWh 비용이 들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풍력발전전력보다 비싼 비용이다.
2009년 MIT 연구는 kWh당 전력생산비용이 원자력 8.4 US Ct, 가스 6.5 US Ct, 석탄 6.2 US Ct인 것으로 계산하였다. 원자력업계에서 기후변화 대안으로서 원자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는 이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자력이 가장 비싼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원자력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원자력의 높은 비용을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 전력수급에서 원자력에너지의 영향력은 향후 10년 동안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독일연방방사선방호청이 바젤의 컨설팅 회사인 프로그노스(Prognos)에 분석을 의뢰한 보고서 "핵에너지의 부흥기"에 따르면, 세계 전체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에너지원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14.8%에서 2020년 9.1%, 2030년 7.1%까지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었다. 원자력 르네상스는 지금까지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탈핵해야 경제가 산다
독일의 여러 연구기관들의 원자력 경제성에 대한 분석결과를 종합해 볼 때, 탈핵 없이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경제에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이고, 가능한 빨리 탈핵하는 것이 경제에 더 적은 비용을 초래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17개 독일 원전의 수명을 60년까지 연장한다면, 2,000억 Euro의 추가 이윤이 원전업체들에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수명 연장시 전력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독일연방산업협회는 원전 수명 연장시 가계용 전력가격이 2010년 23.4 Ct/kWh에서 2020년 26.7 Ct/kWh로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2010년 전력가격 대비 14% 상승에 해당한다. 녹색당에 따르면, 원전 수명 연장시 2020년 전력가격은 27.6 Ct/kWh로 상승해 2010년 대비 18%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은 매년 3,500 kWh를 소비하는 3인 가족 가계에 매달 2.63 Euro의 전기비용의 상승을 의미한다. 1998년 독일 전력시장이 자유화되었지만, 4개의 거대기업들이 80% 이상의 전력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독과점구조하에서 원전업체들은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노후화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전력가격 조정을 통해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기업의 최대이윤 추구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원자력의 경제성은 시장실패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치적으로 추진된 시장이 없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오래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점차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전력부하가 낮은 기간에 원자력을 더 많이 가동하는 것은 훨씬 더 비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력생산방식들이 동일한 조건하에 있다면, 원자력이 가장 비싼 전력생산방식이 될 것이다.
원전의 수명이 연장될수록 사고가능성이 증가하고, 사회적, 환경적 비용들이 더 증가하겠지만, 원자력에너지의 사회적 비용이 전력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한, 기업은 이윤 추구를 계속해 폭리를 취할 것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현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과 미래세대가 지불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가계와 기업들이 원전사고에 대해 보험을 들지 않은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할 때, 원자력의 비경제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전력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더라도 ‘시장경제’라는 조건에서 새로운 원전의 건설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