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차 문화

<STYLE>P{margin-top:2px;margin-bottom:2px;}</STYLE>   1. 신라의 茶文化 (1) 신라인의 차 지식과 茶具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실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에 관한 기록이 단편적이고, 그나마 아주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은 양의 단편적인 기록이나마 그것으로써 한국의 차 마시는 관습, 차의 종류 및 茶具를 어느정도 밝혀낼 수 있으며,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의 차이도 도출해낼 수 있다. 신라의 景德王이 즉위 23년(764) 삼짇날에 歸正門에 납시었다가 櫻筒을 멘 忠談禪師를 만났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자, 삼짇날(3월 3일)과 중구날(9월 9일)마다 경주 남산 미륵세존께 차를 달여 공양하는데, 마침 오늘 삼짇날이어서 공양하고 오는 중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나에게도 차 한 잔 달여 주겠느냐고 청하였더니, 충담선사가 앵통에서 다구를 꺼내어 차를 달여 올렸는데, 차의 맛이 기이하고 찻잔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몇 가지 사실이 요약된다. 764년 이전에 신라사회에서 부처에게 獻茶한 사실이 확인된다. 또 차를 달이는 여러가지 다구를 앵통에 담은 점으로 보아 소형의 다구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으며, 주로 실내에서 사용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다구의 구비는 이미 그 이전부터 갖추어져 있었던 것 같다. 경덕왕이 즉위 19년(760)에 해 둘이 나타나는 변고가 일어나자 月明師에게 의뢰한바, 월명사가 도솔가를 불러 진정시켰으므로 품차일습을 주어 사례한 일이 있다. ‘品茶一襲’은 좋은 차와 다구 한 벌을 말한다. (품차일습의 字句 해석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즉 좋은 차 한 봉이라는 해석과, 차를 품평하는 기구라는 해석이다. 이보다는 좋은 차와 차를 달이는 다구 한 벌이라고 해석 해야 옳을 것이다.) 아뭏든 경덕왕과 충담, 월명사와의 일화로써 신라시대에 다구가 골고루 갖추어져 사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경덕왕과 충담의 일화는 찻잔이 甌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데, 구는 어떤 모양의 찻잔일까. 요즘 해석으로는 작은 盆․ 바리 모양이다. 그렇다면 球을 반 자른 모양일 것이다. 한편, 안압지 복원 공사중에 찻잔이 발견되어 신라시대 잔의 형태를 어림할 수 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잔은 와질토기로서, 잔 겉면에 ‘貞言茶’라는 명문이 있다. 이 명문으로 보아 와질토기잔은 찻잔임이 분명한데, 이와같은 생김새의 잔을 盃 혹은 杯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엔 이런 모양의 잔을 甌라고 표기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잔의 발견은, 안압지가 왕세자의 궁궐 내에 있던 못이었으므로, 신라의 상류층 사람들이 토기잔을 다구로 사용했음을 입증해 준다. 국내 학자 일부와 대부분의 일본 학자들이 지금까지 토기의 실용을 부정해 왔는데, 이로써 실용 사실이 명백해졌다. ‘貞言茶’라는 명문이 뚜렷한 이 찻잔은 아마 700- 800년대 신라 상류층의 찻잔이자 당시 상하 계층의 보편적인 찻잔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면 신라인들은 토기잔만을 찻잔으로 사용했을까. 기록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왕족을 비롯한 귀족과 고승, 화랑 등은 금․ 은․ 금동․ 유리 및 옥잔을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왕족과 귀족의 능이라고 축측되는 대형 고분에서 이러한 잔이 적잖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잔의 형태는 대부분 공의 반쪽 모양으로서 굳이 분류하자면 甌이며,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잔과는 다르다. 이외에 잔의 재질이 다른 것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南行月日記』가 바로 그것이다.『南行月日記』는 원효가 살던 방을 답사한 기행문이다. “일행 예닐곱과 원효 방에 이르렀다. 높이가 수십층이나 되는 나무사다리가 있어서 발을 후들후들 떨며 찬찬히 올라갔는데, 뜨락의 계단과 문이 수풀 끝에 솟아나 있었다. 곁에 한 암자가 있는데, 항간에 전하기를 蛇包聖人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따라와 모시었는데, 차를 달여 원효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물이 바위 틈에서 갑자기 솟아 나왔다.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이 물로 차를 달였다고 한다. 원효방은 겨우 여덟 자쯤으로 한 노승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헤어진 누비 옷에 모습이 고고하였다. 방의 중앙을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초상이 있고, 외실에는 甁 하나와 신 한 켤레, 찻잔과 경궤만이 있을 뿐, 취구도 없고 시자도 없었다.” 이규보의 이 기행문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원효가 사용했으리라고 믿어지는 잔에 대하여 재질이 甆임을 밝히고 있다. 甆는 넓은 의미로 질그릇, 즉 토기․ 도기․ 자기 전체를 가르키나 일반적으로 자기만을 지칭한다. 더우기 그 자신의 茶甆를 사용한 일이 있다. 이규보는 남원의 운봉에 살고 있던 老珪禪師가 早芽茶를 얻어서 그에게 보이면서 儒茶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청항였을 때, 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 중에 이러한 귀절이 있다. 선사는 어디에서 이 좋은 차 구했는가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른다오 피어나는 풍로에 스스로 달여 꽃무늬 찻잔에 따르니 색과 맛 뛰어나오 입에 닿자 달콤하고 부드러워 어린아이 젖내새 같다오. 이로써 이규보는 자신이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과 동일 재질의 잔을 원효방에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재질이었다면 달리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원효의 생존시기에 도자기잔이 사용되었느냐가 의문의 대상이 된다. 종래에는 신라에서 도자기가 제조되지 않았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야 도자기가 제조되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미 신라시대에 도자기가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원효는 당시 명승으로서 추앙되었고 요석공주와 깊은 인연을 맺었으므로, 청자 찻잔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신라에서 제작된 도자기 찻잔이 아니었더라도 중국에서 전래된 도자기 찻잔을 사용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이상의 고찰로써 신라인들이 다양한 재질로 여러 형태의 잔을 만들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잔의 형태가 다양한 까닭은 신라인이 음용한 차의 종류가 다양하였기 때문이다. 잔의 형태로써 신라인이 음용한 차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정언차’ 명문이 있는 찻잔은 크기로 보아 抹茶나 團茶용이었을 것이다. 葉茶용 찻잔이라고 보기엔 너무 크다. 한편, 이 무렵 중국 당나라에서도 단차와 단차를 분말로 만든 말차의 음용이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신라에서도 단차와 말차를 음용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정언차’ 명문 찻잔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서 사용한 찻잔은 주로 盌이었다. 盌은 碗과 같은 글자인데, 흔히 주발을 가리킨다. 주발은 요즈음의 관습으로는 정언차 명문의 와질토기 잔 보다는 오목하고 깊은 모양이며 신라 대형 고분에서 출토된 금․ 은잔이 이러한 형태이다. 중국에서 주로 말차를 음용한바, 陸羽(727-803)는 『茶經』에서 찻잔을 盌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정언차 명문 잔과 다른 형태인 것이다. 굳이 형태를 비교하자면 정언차 명문 잔은 盃나 杯이며, 盌은 甌와 유사하다. 그러니까 신라인들은 공을 반쪽 낸 것과 같은 바리(甌)와 정언차 명문 잔과 같은 대접형 잔을 혼용한 것이다. 한편, 신라인들이 음용한 차의 종류를 시사하는 기록이 있다. 眞鑑國師慧昭(774-850)가 누군가로부터 漢茗을 선물받았을 때, 이를 분말로 만들지 않고 돌솥에 섶 삶듯이 삶았다고 한다. 이 일화로써 추리하면 당시에 말차의 음용이 많았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섶 삶듯이 삶은 차는 엽차를 가리킨 게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신라인들은 단차 및 말차와 아울러 잎차를 음용한 것이다. 신라인의 잎차 음용은 출토된 잔으로 보아서도 입증된다.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실로 많은 양의 잔이 출토되고 있다. 진감국사의 일화는 이 밖에 또 다른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은 한면, 즉 중국차를 분말로 만들지 않고 곧바로 삶은 사실은, 중국산 차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된다. 즉 토산차 음용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더우기 그의 신분이 국사였으므로, 상류사회에서 중구가와 아울러 신라차의 음용이 병행되었다고 믿어진다. 또, 돌솥이 다구로 사용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돌솥의 사용은 신라인들의 차에 대한 지식이 높은 수준이었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 진감국사가 금속제 솥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돌솥을 사용한 사실은, 돌솥이 금속제 솥보다 좋은 다구였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인은 하늘과 땅의 수기가 엉겨 모여 이루어진 것이 돌이며, 돌그릇에도 빼어난 기운이 서려 있는데, 돌그릇에 완전히 물을 끊여 마시면 노인이 젊은이와 같은 기력을 되찾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찻물은 돌그릇 즉 돌솥에 끊였다. 진감국사가 돌솥을 다구로 사용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진감국사는 고도의 차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2) 신라의 茶甁 신라인이 사용한 다구는 이 밖에 甁이 있었다. 앞서 인용한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 의하면 원효방에 茶甆와 아울러 甁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효방에 놓인 甁의 용도가 물병이었는지, 아니면 차를 달이는 기구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포성인이 애쓴 끝에 돌틈에서 솟구치는 물을 길어 왔다고 하므로 물병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또한, 寶川과 孝明 두 왕자도 물병을 사용했음 직하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두 왕자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부처에게 배례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于洞水의 물을 길어다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한다. 두 왕자가 우통수의 물을 긷기 위해서는 사포성인이 그러하였듯이 물병이나 물그릇이 필요하였을 것이며, 또 표주박 따위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원효방에 있었던 벼이 물저장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고려인들은 차를 달이는 기구를 병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이다. 종이 장막이 침침하고 밤 기운은 맑은데 만 권 도서에 한 등불이 밝구나 돌 벼루를 호호 부니 찬 구름이 일어나듯 구리병엔 와르르 소나기가 오는 소리 祿 받는 작은 벼슬도 가난하니 소중하다 뜬 이름과 털끝 利야 술취하니 그까짓 것 밤새도록 철 기러기가 남으로 가는 소리 나는 왜 집 못 돌아가 死生도 모르는가 이는 金克己의 「夜坐」라는 시인데, 이 시 중의 구리병은 찻물 끊이는 도구이다. 또 이규보가 남녘의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은 철병 역시 물병이 아니라 찻물 끊이는 도구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병이 찻물 끊이는 도구였던 것은 아니다. 李穡(1328-1396)의 「茶後小詠」이란 시에 나타난 병은 바로 물병이었다. 작은 병에 샘물 길어 깨어진 솥에 노아차를 달이네 귀는 참으로 맑아지고 코는 자하를 관통하네 그러니까 원효방의 병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병이 다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3) 四仙의 茶具와 茶俗 신라시대에 이른바 四仙의 다구가 있었다. 고려의 李穀(1298-1351)이 1349년에 동해안 지방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인 『東遊記』를 보면 경포대와 한송정에 사선의 다구가 있었다고 한다. “3월 12일에 경포대에 올랐다. 경포대에는 전에 집이 없었는데 요즈음 누군가가 그 위에 정자를 지었으며, 옛날 신선의 석조가 있는데 차를 달이는 도구이다. …한송정 또한 사선이 노닐던 곳인데, 마을 사람들은 구경꾼이 많음을 귀찮게 여겨 집을 헐어 버렸고 소나무도 불에 태워 버렸으며 다만 석조, 석지와 석정이며 그 곁에 남아 있을 뿐인데 역시 신선들의 다구이다.” 사선은 永郞, 述郞, 南郞, 安詳 등 네 國仙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孝昭王(692-702) 전후라고 한다. 그러면, 이들 네 화랑이 사용했다는 석지와 석조는 어떤 모양이며 무엇에 사용하는 다구였을까. 李齊賢이 1337년에 쓴 『妙蓮寺石池竈記』를 보면, 개성부근 묘련사에 있었던 석지조에 대한 의문에 해답을 준다. “順庵法師가 …한송정을 구경하였는데 그 위에 석지조가 있었다. 그 고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옛 사람들이 차를 달여 마시던 곳인데,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법사가 혼자 생각하기를, 어렸을 적에 묘련사에서 두 바윗덩이가 풀 속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양을 상상해 보고 이것이 아닌가 여겨 돌아오자마자 찾아보니 과연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사방을 말 처럼 모나게 다듬고 가운데를 확처럼 둥글게 팠으니 이는 샘물을 담으려고 그런 것이며, 밑에 주둥이처럼 구멍을 냈으니 이는 열고 찌거기를 씻어낸 다음 다시 막아 맑은 물을 담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두 군데가 오목한데 둥근 데는 불을 때는 곳이고 타원형인 데는 그릇을 씻는 곳이며, 또한 조금 크게 구멍을 내어 둥근 데와 통하였으니, 이는 바람이 들어오게 한 것인데, 합하여 이름하기를 ‘석지조’라 하였다. 인부 열 명을 동원하여 처마 아래에 굴려다 놓고는 손님들을 청하여 그 자리에 앉힌 다음 백설처럼 시원한 샘물을 끌어다가 芽茶를 달였다.“ 이 글로써 한송정의 석지와 석조가 묘련사의 석지, 석조와 거의 동일한 형태이고 같은 기능을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석조는 차를 달이는 차 부엌으로서 십여명이 운반할 정도로 대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형의 석조는 화랑과 낭도가 차를 함께 마셨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화랑은 귀족이고 낭도는 평민인데, 이것으로 보아 신라사회에서는 귀족뿐 아니라 평민도 차를 음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라에서 차가 의식용이거나 왕․ 고승․ 불교신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서민에게까지 대중화한 생활음료였음을 인식시켜 준다. 또한 이와같은 상황에서는 차의 수련 과정이 행해졌을 것이다. 사선의 다구가 경포대와 한송정에 있었던 사실은 신라인의 차 마시는 관습이 실내에 한정되지 않고, 야외에서도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 이는 일본의 茶風과 커다란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충담의 미륵세존에 대한 차공양, 효명과 보천 왕자의 문수보살에 대한 차공양, 원효에 대한 사포성인의 차공양 사례 등은 신라에서 차가 의례용이었으며 실내 중심이었음을 시사하나, 사선의 다구가 있었던 위치와 크기는 신라인들이 야외에서도 차 마시는 것이 생활화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신라의 이러한 다풍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계승된 한국의 다풍이다. (4) 茶禮와 盞盞臺 신라인들은 차를 생활음료화한 외에 일찍이 의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충담의 미륵세존에 대한 차 공양과 효명과 보천 두 왕자의 문수보살에 대한 차 공양은 이미 살펴보았지만 조상에 대하여 茶禮를 올리 사실이 있다. 가야의 시조인 首露王이 돌아가지 그의 아들 居登王이 매년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과 8월 5일, 8월 15일 등 일 년에 다섯 차례 豊潔한 祭奠을 거행하였다. 이 제전은 9대 仇衝王에 이르기까지 330년간 시행되다가 가야가 멸망함으로써 중단된다. 그러나 신라의 30대 文武王이 즉위하던 해인 661년 제전을 부활시킨다. 문무왕의 외조모가 가야왕의 후손이므로, 가야의 혈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수로왕의 17대 후손인 賡世級干이 거등왕이 지낸 바와 같이 연중 다섯 차례 술․ 감주와 餠(떡), 飯(밥), 茶, 菓(과자) 등 여러가지로써 茶禮를 시행토록 하였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사실은 가야에서 330년간 차례가 거행되었고, 신라에서는 661년부터 차례가 거행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차례의 품목이 오늘날의 민간 차례 품목과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가야와 신라의 차례 관습이 민간에 전파되었음을 말해 준다. 아마 이때에 사용된 잔은 盞盞臺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을 것이다. 이 잔잔대의 형태는 가야와 신라에서 거의 유사한 형태로 다수 제작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약간 변모하였을 뿐 거의 흡사하다. 이 잔잔대 형태는 신라 이전에도 제작되고 있었다. 연질토기잔 잔대와 홍토기잔 잔대가 바로 그것인데, 이와 같은 잔의 존재는 청동기시대의 한국인들이 차를 마셨거나, 차를 의례용으로 사용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민속학자 니오라쩨의 시베리아 여러 민족의 민간 신앙 조사보고에 의하면, 샤먼이 茶를 피우거나 마시게 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케 하고, 또 샤먼의 入巫式 때에는 차를 피우거나 마셨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이 샤머니즘을 신봉하였고, 고대의 도시국가 왕 및 신라 초기의 왕들이 샤먼이었으므로 청동기시대 혹은 그 이전에 차를 음용하거나 의례용으로 사용했으리라는 추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시베리아 여러 민족이 음용한 차가 차 나무의 차잎이 아니라 백화 나무의 잎이라고 한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음용한 차 역시 차 나무의 차잎으로 조제한 차가 아니라 백화나무의 잎으로 조제한 차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土産茶로 알려진 白山茶가 일찍이 음용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백산차가 아니라도 백산차가 일찍이 조제되어 음용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믿어진다. 이상 신라시대의 茶具 고찰을 통하여 신라인들이 말차, 단차 및 잎차를 음용하였으며, 의례용 외에 생활음료화하였으며, 또 차를 마시는 층은 왕, 고승, 화랑에 한정되지 않고 평민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였음이 규명되었다. 차 공양은 부처 외에 고승, 조상에까지 행해졌고 茶禮가 생활관습화하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또 여러가지 차에 대한 일화로 미루어, 興德王 3년(828)에 왕명에 의해 大廉이 중국 당나라에서 차종자를 가져와 지리산 계곡에 심은 것은 최초의 차나무 재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급증하는 차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개량종의 재배를 의미하는 것이거나 대량생산을 위한 조치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이 밖에 백제와 고구려인들도 차를 마셨을 터인데,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일본의 『東大寺誌』에 백제 승려 行基가 668년에 차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바, 이로써 백제에서 차나무의 재배와 차의 제조가 가능했을 것이고, 차를 마셨으리라고 추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