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우리는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인 줄 알고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눈 앞에 있는 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서 그 가치를 깨닫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옆집 안씨댁에는 진구, 동구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 두 마리가 있다. 오늘도 진구와 동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앞발, 뒷발을 쭉 뻗은 채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안 씨 농장 마당에서 내리쬐는 햇빛에 일광욕하고 있는가 보다. 한가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웠다.
오늘도 밥을 주러 나온 안 씨 마나님이 진구와 동구를 보며 짜증을 낸다.
“야, 진구와 동구야! 너희들은 밥값을 좀 해야지! 허구한 날 이렇게 늘어져 게으름만 피우고 있으면 어쩌노?” 아랑곳하지 않던 진구와 동구는 밥통에 먹이가 쏟아지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잽싸게 일어나 밥통으로 달려간다. 안 씨댁 마나님은 그런 개들이 못마땅해 투정을 부리듯 입술을 씰룩거리며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더니 휑하니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안씨 마나님은 남편에게 심각하게 말을 건넨다. “여보! 저 진구와 동구를 먹이는 밥값이 만만치 않아요. 늘상 늘어져 잠만 자고 밥만 축내며 집안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 아무래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되겠어요.” 안 씨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 농장지기를 하라고 데려왔더니 농장은 지키지 않고 먹기만 하고 잠만 자니 영 쓸모가 없네. 내일이라도 당장 동물 보호소에 갖다줍시다.”
이른 아침 동물 보호소에 갈 채비하는 안 씨는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게 진구와 동구 목에 줄을 매었다. 흙 마당에 세워둔 미니 벤 문을 열고 진구와 동구를 차에 태웠다. 떠밀리듯이 차에 오른 진구와 동구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불안한 느낌으로 안절부절한다. 안 씨는 '부르릉' 차의 시동을 걸었다. 진구와 동구를 태운 차는 서서히 핑크빛 들꽃이 피어있는 앞마당을 빠져나가 뽀얗게 흙먼지를 날리며 멀리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를 향해 달리고 있다. 흙길을 달리는 덜컹거리는 차에 실린 진구와 동구는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농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차가 흔들리는 대로 기우뚱 함께 흔들리다 쓰러지지 않으려는 듯 네 발을 꼿꼿이 세우며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바람을 맞으며 씽씽 달리던 미니 밴이 동물 보호소 앞 주차장에 세워졌다. 안 씨는 시동을 끄고 차 열쇠를 빼어 주머니에 찔러 넣고 차 문을 열었다. 뒷문을 여니 두 마리의 개가 오랜만에 흔들거리는 차를 타서 차 멀미라도 한 듯이 어릿어릿한 모습으로 문으로 다가왔지만 잽싸게 차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자세를 취한다. 안 씨는 그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재빨리 묶어둔 끈을 잡아서 한 바퀴 손목에 돌린 다음 손안에 단단히 움켜쥐고 줄을 잡아당긴다.
동물 보호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내원이 인사를 한다. 안 씨는 진구와 동구를 쳐다보며 개를 키울 수 없어 맡기러 왔다고 설명을 한다. 안내원이 종이 서류를 내밀면서 사인을 하라고 하며 보관하기 위한 밥값으로 얼마를 지급하라고 한다. 어느 정도 데리고 있다가 맡아 줄 주인이 없다면 잠을 재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안 씨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진구와 동구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잘 있으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되돌아 문을 열고 나오는 안 씨의 마음에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이 밀려온다. 아무런 도움 없이 밥만 축내던 개들을 처리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차에 오른다.
안 씨 앞마당에는 이제 진구와 동구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텅 비인 농장에 하루, 이틀, 삼일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엉덩이가 하얀 토끼들이 어디서 들어왔는지 앞마당에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다람쥐가 주거니 받거니 쏜살같이 달아나면 다른 놈이 쫓아가며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이른 아침에 이곳저곳에 작은 동산을 쌓듯이 두더지들이 쌓아놓은 흙더미가 보인다. 하나 둘 숫자가 늘어만 가며 두더지가 텃밭을 온통 들쑤셔 놓는다. 까마귀들은 목이 마른 지 농장에 길게 늘어져 있는 물 호스를 부리로 쪼아 놓는다. 터진 물 호스 주변에는 흐르는 물이 흥건하게 메마른 땅을 적시고 있다. 전봇대에는 참새들이 떼를 지어 앉아서 재잘거리며 수다를 떤다. 농장 과일로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식사 시간을 기다리나 보다.
“여보! 토끼가 새로 심어놓은 나무 밑동을 갉아 먹어 나무가 시들시들해요. 어떡하지요?” 안 씨 마나님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안씨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게말야! 두더지의 극썽도 말이아니네. 아무래도 진구와 동구를 다시 데려와야 할까봐” “그래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걔들이 밥벌이하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자기 밥값 들은 하고 있었네요."
다음 날 안씨는 일찌감치 일어나 채비하고 동물 보호소로 갔다. 창살이 있는 개들을 보관하는 방들을 둘러보니 아직도 진구와 동구가 좁은 창살 안에 갇혀 힘없이 앉아 있다가 주인을 알아보듯이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면서 컹컹 컹컹! 반가운 듯 큰소리로 짖어댄다. 안내하는 보호소 직원이 진구와 동구를 밖으로 끌어내 주어서 안 씨는 개들을 데리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입양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 직원은 다시 서류를 내밀면서 개들을 입양하기 위해서는 예방접종을 해야한다고 설명한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두 마리 예방접종 값을 지급하라고 한다. 내 개를 다시 데리고 가는데도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고 불평을 하는 안씨에게 동물 보호소의 규칙이니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사무실 직원이 말한다. 하는 수 없이 안 씨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예방접종 값을 지급하고 관리인이 개들에게 주사를 맞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안 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았던 마나님은 부푼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앞마당에 서성인다.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오는 진구와 동구를 실은 미니 밴이 눈에 들어오자 기대가 되는 마음으로 가슴이 설레인다. 안 씨가 마당 한쪽에 차를 세우고 진구와 동구를 차에서 내리자 진구와 동구는 잽싸게 차에서 뛰어내리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행복한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컹컹 컹컹! 힘차게 짖어댄다. “걔들 밥값 아끼다가 괜한 돈만 쓰고 돌아왔구먼!” 안 씨는 너털웃음과 함께 진구와 동구의 목에 걸린 줄을 풀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안 씨 마나님도 반가운 마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는 진구와 동구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며칠 동안 좁은 창살 방에 갇혀 있던 진구와 동구는 자유의 행복을 음미하듯이 넓은 농장을 빙글빙글 돌며 서로 부딪히며 물 듯 말 듯 장난을 치다가 농장 저쪽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서로 신호라도 받은듯이 쏜살같이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첫댓글 7월 2일 수업에 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