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5.31. 계엄사(戒嚴司)는 ‘광주사태의 경위(經緯) 및 진상(眞相)과 사후처리(事後處理) 방침’ 발표에서, 사태(事態)의 발단은 계엄군과 전남대생돌의 충돌에서 일어났으나 사태(事態)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 넣은데는,북괴(北傀)의 간첩과 이에 협력하는 불순 위해분자들의 책동 외에도 학생 소요를 배후조종해 온 金大中이 전남대와 조선대의 추종 학생, 주로 복학생들을 조종,선동하여 온 것이 소요 사태의 발단(發端)이 되었고, 사태 악화(事態 惡化) 과정에서 광주 시내 골수 추종분자들이 이를 격화시킨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판명되고 있다며, 김대중(金大中)을 면담하고 그로부터 이른바 민주화 시위를 일으키도록 조종받은 복학생 정동년(鄭東年)과 조선대생 김인원이 5.18.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한 사실과 金大中 측근으로 10.26. 이후 金大中과 6회 접촉한 홍남순(洪南淳) 변호사가 조선대 교내시위를 조종하고, 5.23 - 5.26. 사이에 전남도청을 출입하면서 폭도들에게 100만원을 주며 조종,격려한 사실을 「광주사태 주요 배후(背後) 주동분자(主動分子)와 활동사례(活動事例)로 적시하였음.
-152-
O 계엄사(戒嚴司)는 7. 3. 발표한 ‘광주사태 관련자 처리방침(處理方針)에서 이미 연행자 1,146명올 훈방하였고, 곧 사안(事案)이 경미(輕微)한 679명을 추가 훈방할 예정이며, 김대중(金大中)으로부터 데모자금 500만원을 받아 사태의 발단이 된 학생시위를 일으킨 정동년(鄭東年)과 역시 김대중(金大中)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현지 사태를 일으키도록 하고, 사태 주동자들에게 100만원을 주어 투쟁을 계속하도록 선동한 홍남순(洪南淳) 등 사태 주동 및 배후조종자 53명을 포함,죄질(罪質)이 무거운 375명은 계속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