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무엇으로부터 왔는가, <곡성>
의심은 억측을 낳고, 의심은 집착을 낳는다. 의심이 집착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 의심은 폭력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살인이 되기도 한다.
의심하는 마음 이면에는 나약함이 존재한다. 나약함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을 불러오고 엉뚱한 믿음을 갖게 한다.
영화 <곡성>은 위의 두 가지 코드로 진행된다. 전자의 대상이 일본인이라면 후자는 무당 일광이다. 둘은 서로 다르면서도 그 바탕에 의심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존재이다. 처음 의심의 대상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에 대한 의심이 구체화되고 덩달아 집착으로 바뀌면서 의심의 주채는 의심에 대상에 대해서 점점 폭력화됨과 동시에 내면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쌓이게 된다.
일본인은 인간이면서도 악마다. 악은 언제나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이 악행을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다. 악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미끼를 던진다. 영화의 시작에서 일본인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악이 인간에게 미끼를 던지는 것을 상징한다. 낚시가 악이 인간에게 던지는 미끼라는 사실은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 즈음에 무당 일광이 말해준다.
악이 낚시를 던진다고 모든 인간이 다 그 미끼를 무는 것은 아니다. 악이 던진 미끼를 무는 사람은 대개 무엇엔가 편중됨으로써 그것에 대해서는 이성적 판단이 떨어지는 사람, 나약한 사람, 그래서 의심이 하게 되는 사람, 그 의심이 집착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종구 같은 사람이다.
그는 딸에게 편중되어 있고, 나약하며 의심이 많다. 그가 나약하다는 사실은 영화의 전반부에 자주 등장한다. 범죄현장에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와 파출소에서 전기가 정전되었을 때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그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나약한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나약함으로 인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하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한다. 나약한 종구가 강한 척하기도 하고 폭력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딸 효진이 때문이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효진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집착이 악을 키우고 악을 가정으로 들이고 가정의 파멸을 초래한 것이다.
일본인은 끊임없이 미끼를 던지지만 그 미끼를 아무도 물지 않으면 그는 그냥 일본인이다. 그런 그가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에는 의심이 있다. "당신이 나를 악마인 것이라고 하면 나는 악마가 아닌가?" 라는 그의 말은 이를 잘 증명해줌과 동시에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영화 <곡성>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영화이다. 기독교와 관련된 것은 성경 한두 구절밖에 나오지 않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사고는 기독교적이다. 선(무명은 악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려는 선의 상징이다)과 악, 백과 흑, 불신과 의심, 인간의 나약한 심성과 의심으로 존재하고 커지는 악과 악마, 기독교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양의 공포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성이다.
그런데 영화 보는 내내 기독교적 냄새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한국적이고 민간신앙적인 모습이 자주 보인다. 게다가 감독은 영화 곳곳에 관객을 향한 미끼를 던져놓고 있어 그 미끼를 문 관객들이 영화 보는 내내 헷갈리게 한다. 참 대단한 감옥이고 참 잘 만든 영화이다.
첫댓글 곡성을 보고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해천쌤의 글을 읽고 나니 명쾌해 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