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한자로 보는 문화] 億丈(억 억 / 길이 장)
고구려사를 노략질하려는 판국이니 億丈이 무너져
요즈음 참으로 億丈이 무너질 일이 자꾸만 생겨난다. 독도와 관련된 일본의 억지 주장과 동해의 호칭 문제 만으로도 億丈이 무너질 일인데,이제는 고구려사와 관련된 중국의 역사노략질까지 벌어지는 판국이니 참으로 億丈이 무너질 일이 아닐 수 없다.
향후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이 중국의 최대 현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감안할 때,이른바 東北工程(동북공정)의 움직임은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기는커녕,고구려를 자국의 소수민족에 의한 변방 정권으로 둔갑시켜도 조용한 외교 운운하고 있었으니 이야말로 億丈이 무너질 일이다.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은 '熱河日記(열하일기)'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아픔의 하나로 崩城之痛(붕성지통)을 든 바 있다. 崩城之痛이란 성을 무너지게 할 정도의 비통함이란 뜻으로,이는 중국 齊(제)나라의 杞梁(기량)이란 사람의 아내와 관련이 있다.
齊의 莊公(장공)이 거城(거성)을 공격해서 杞梁을 五乘(오승)의 빈객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杞梁이 이에 응하지 않고 귀가해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이에 그 어미가 말하기를,'너에게 밥을 먹이면 살아서는 의리없는 것이 되고 죽어서는 이름이 없을 것이니 비록 五乘이 아니라 해도 누가 너를 비웃지 않겠느냐? 살아서 의리가 있고 죽어서 이름이 있으면 五乘의 빈객들이 모두 네 밑에 있을 것이다'라 하였다. 杞梁은 城에서 싸우다 마침내 죽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杞梁의 아내가 성 아래에서 비통하게 통곡을 하자 城이 이 때문에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충신과 賢母(현모) 烈婦(열부)의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것이 곧 億丈이 무너지는 아픔이다. 億丈(억장)이란 億丈之城(억장지성)의 준말로, 억 길이나 되는 높은 성을 가리킨다. 이처럼 높은 성이 무너질 정도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億丈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이다. 황제가 죽는 것을 일러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아픔이라는 뜻으로 崩御(붕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億丈이 '무너진다'고 하는 것이다.
億은 兆(조)와 더불어 엄청나게 큰 숫자 단위이다. 그래서 億兆(억조)니 億劫(억겁)이니 하는 말처럼,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億은 億度(억탁) 億測(억측)의 경우처럼,'헤아리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億은 '가슴'이란 뜻의 臆과 통용되기 때문인데,그 때문에 億度과 億測은 臆度,臆測으로 쓰기도 한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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