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02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인도에서는 하루 40만명 이상의 신규확진자가 발생하고, 하루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중·남미 3개국에서도 하루 신규 코로나 감염자는 10만명에 이른다. 이들 국가는 병원시설과 의료용 산소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백신이지만 백신접종은 누구에게나 허용된 것은 아니다. 부유한 국가들이 백신을 선점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은 자국민들이 코로나19 공포에서 완전 벗어날 때까지 더 많은 백신을 확보하려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백신 민족주의'(Vaccine Nationalism)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자국민의 생명을 최우선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존재의미이다.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다른 나라를 먼저 돕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충분한 백신 확보는 정부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이스라엘 국민의 62.4%가, 영국 국민의 50.4%, 미국 국민의 43%가 백신접종을 마쳤다.
이들은 이제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이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코로나19가 발병한 직후, 정보기관이 나서서 자국 내 코로나19의 감염자를 예측, 필요한 장비와 시설을 보강하면서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예방책과 백신 개발현황을 꾸준히 모니터해왔다.
국가정보기관하면 흔히들 미 중앙정보국(CIA)와 러시아의 국가보안위원회(KGB, 현 FSB)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곳이 바로 영국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이다. 첩보 영화의 대명사인 제임스 본드의 007시리즈는 바로 영국 MI6의 첩보원 활동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분주해졌다면서 주된 활동 4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정책결정권자에게 바이러스의 확산과 충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둘째는 각국이 숨기고 있는 코로나 19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를 수집하는 것, 셋째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뉴스 확산에 맞서 정보전쟁을 벌이는 것, 마지막은 공중보건과 관련하여 해킹, 도청, 위치추적 등의 디지털 감시를 통해 감염자들의 움직임을 모니터하는 것이다.
여기에 백신 개발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코로나 관련 의료용품 정보 파악도 정보기관의 몫이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마스크는 물론 의료용 장갑 등 개인보호장구, 코로나 진단시약, 인공호흡기 확보 등에 적극 가담해왔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모든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있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제품들이다. 지난해 10월에 중국의 코로나백신인 시노백을 구입, 효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등의 백신을 필요 분량의 120%나 확보하면서 여분의 백신을 체코와 온두라스 등에 기부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매우 양호한 상황이다. 국민 생활의 통제를 바탕으로 한 K-방역의 성과이다. 하지만 방역만으로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는다.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 형성이 시급하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백신 확보 및 접종은 겨우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다. 지난주에는 확보된 백신 부족으로 일부 지역에서 1차 접종이 중단되기도 했다. 정부는 오는 11월쯤에는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밝혔으나 국민들은 왜 다른 나라보다 6개월 늦게 집단면역이 이뤄져야 하는지 불만이다.
국가정보원이 코로나19와 관련,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흡한 현재의 백신수급상황에서 보자면 화이자와 모더나 등 글로벌 백신회사의 개발현황을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하여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제공했는지 의문이다. 세계 각국이 '게임 체인저'로 백신을 언급하며 백신 확보경쟁에 나설 때, 우리 정부는 왜 머뭇거렸는지도 미스터리다. 정보기관이 정책결정권자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돕지 못했다면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에 게을렀거나 무능한 것이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