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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박영근시인이 노동자 시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는 말을 한다. 조직되지 않은 대중적 노동자들이 체제 순응적인 모습도 보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시인보다 계급적 성격을 부여한 '노동시인' 이라 불리워 지는 것은 당연시 했다.
아래의 2003년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는 부분적으로 맞지않은 정보가 있으나 박영근시인 스스로 노동현장이 그의 시의 근원이라 한 것은 그와 노동시의 관계를 알수 있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스스로 발언한 이런 기사가 남아 있어 세계일보 기자에게 고맙다. 좋은 사진도 남아있다.
2006년 4월 - 그가 원래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한달전- 걷기도 힘든 몸으로 저녁밥 반공기를 비운 후 그가 노동시 얘기를 먼저 꺼냈고 눈빛이 형형해져 갔었다. 그 때 오히려 나는 그에게 '이제 당신은 노동시 안써도 되니 존재에 대해 써보길'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붙잡았었던 詩 그리고 노동시- 박영근시인을 이야기 할 때 뺄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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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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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학과 예술의 힘을 믿는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진실 하나만 쥐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곧은 정신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좋은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