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수지에서(18)
2005년 12월
여름에 정원에서 놀던 사람 겨울이면 베란다에서 꼼지락 거리며 논다. 가을에 사온 분재 두어개가 갖고노는 작난감이다. 화분에 마사토 붓고, 핀셋으로 흙을 털어내어 기묘하게 생긴 뿌리 노출시키고, 쓸모없는 가지는 전정하여 나무 모양 잡아가는 일처럼 즐거운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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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크기 소나무 소품이지만 수령 10년 넘었고, 뿌리 노출도 일품이고, 용처럼 구불구불한 가지의 곡(曲)도 볼만하다. 몇 년 지나 철사를 풀면 명품될 것이다. 그때 이 물건을 백자화분에 올리고, 뿌리 부분에 푸른 이끼 덮어줄 생각이다. 나무와 이끼 위에 분무기로 물 뿌리면, 간혹 아침 햇볕 받은 물방울에 무지개가 선다. 분재하는 사람은 그런 것 즐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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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京都) 서방사(西芳寺)에는 아름다운 이끼 정원이 있다. 나무도 심지 않고 이끼만 즐기는 특이한 취미는 이끼의 멋을 알아야 이해된다.
2006년 1월
내가 연애시절 아내에게 선물한 책이 있다. '부생육기(浮生六記)'란 책이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그 책 속 '운'이란 여인을 중국 역사상 가장 정신적 멋을 잘 간직한 여인이라고 찬탄한 바 있다. 여주인공 '운'은 청나라 건륭제 시절 평범한 관리인 남편 심복을 만나 시서화를 즐기고 화초를 가꾸다 간 사람이다. 둘은 차를 넣은 비단주머니를 밤새 연꽃 봉우리 속에 넣어두었다가, 새벽에 연잎에 고인 이슬로 연꽃향 가득한 차를 마시고, 이동 칸막이에 아름다운 넝쿨꽃을 올리고 그걸 창 앞에, 서재 앞에, 안방 앞에 옮겨가며 햇볕도 가리고 녹음과 꽃도 즐겼다. 수반에 놓인 돌에 찹쌀풀을 뿜어 풀씨가 자라도록 하여 풀꽃을 관상하면서 사랑하기도 했다.
이 책을 선물하여 나는 처녀 때 아내에게 점수 좀 땄었다. 그러나 결혼 후 생활이 고달프자 아내는 '당신은 '부생육기'에 나오는 심복같은 사람이에요. 꽃이나 좋아하다가 아내 고생 시키는...' 그런 후회 가득한 말 자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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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아내에게 선물한 또 한 권 책이 있다. 미국의 '타샤'란 할머니 모습을 그린 '타샤의 정원'이란 책이다. '타샤'는 버몬트주 30만 평 드넓은 땅을 사들여, 거기다 돌담을 쌓고 자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디기달리스 꽃 등 파스텔화처럼 아름다운 화초를 심고, 양과 개를 키우며 개똥지바퀴 노래 들으며 살았다. 밤이면 촛불 밑에서 감자 스프를 끓이며, 카모마일차 마시며, 인형극 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아마 카나다에 '빨간 머리 앤'을 쓴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처럼 미국에선 꽃을 사랑한 '타샤' 할머니가 유명한 모양이다. 백악관에 '타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고 한다.
아내는 '타샤'의 그림이 백악관 걸려있어서 그런지 이번에 불평 않는다. 우리 부부는 가끔 '타샤의 정원'이란 책에 나온 꽃 구하러 종로나 양재동 꽃시장 찾아다니곤 한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처녀 총각 때 꽃에 관한 책을 교환하면서 시작되여, 지금도 꽃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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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나무 분재는 해송이 제격이지요
타샤의정원을 읽으며 타샤처럼 살고 싶었는데
나의정원은 "꿈꾸는 정원"으로
끝날것 같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슬프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