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5
동물농장 해제(解題)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작가다. 지금도 필독서로 읽히는 『동물농장』과 『1984』가 그의 작품이다. 동유럽이 붕괴할 때까지 이 소설들이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것은 소련 공산체제에 대한 비판과 통제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골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어머니를 따라 런던에서 자랐다. 폐결핵으로 47세의 짧은 생을 접었지만, 그의 이력은 간단치 않다. 식민국이었던 미얀마에서의 경찰 근무는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빈민가의 빵가루를 입속에 털어 넣던 오웰은 아내를 만난 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다. 부상과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다시 펜을 잡는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그것은 그의 삶의 궤적에서 알 수 있듯이 당연한 이념의 지평이었다. 식민국과 빈민, 열악한 노동현장을 목도한 그의 영혼은 사회주의로부터 굴절되어 무정부주의의 길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숨차게 배회했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의 외투에 매료됐듯 그도 생시몽이나 푸리에의 품에서 온기를 느꼈으나 러시아 혁명에 대한 환멸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웰이 동물농장을 쓰게 된 동기는 스탈린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 스탈린의 소련은 반사회주의적 독재일 뿐이었다. 농장과 공장에 있어야 할 낫과 망치는 스탈린의 침대 밑에 있었으며 잔혹한 공포정치와 우상화의 도구로 전락했다. 오웰은 1947년 『동물농장』 우크라이나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10년간 사회주의 운동을 되살리려면 소련의 스탈린 시대를 붕괴시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굳혔다. 스페인에서 돌아왔을 때 소련의 신화를 까발리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해하고 번역하기 쉬운 이야기여야 했다.”
『동물농장』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스탈린 시대에 이르는 과정을 다뤘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사건들은 실제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이다. 동물들의 단순한 이야기 속에 깊은 통찰과 냉소를 우화적 알레고리로 담아낸 오웰의 재주는 그가 얼마나 예리한 사람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존스(러시아 황제인 리콜라이 2세) 농장에 늙은 수퇘지 메이저(마르크스 ‧ 레닌)가 동물들을 모아 놓고 거품을 문다. 몸뚱이가 겨우 숨 쉴 만큼 먹이를 받아먹으며 일하다가 고깃덩어리까지 인간들(부르주아)에게 줘야 하는 처지가 억울하지 않으냐는 선동이다. 메이저는 노래를 들려주기도 한다. “…우리 코에서 코뚜레가 벗겨지고, 우리 등에서 멍에가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무자비한 채찍은 더는 소리 내지 못하리라. 상상할 수 없는 재산, 밀과 보리, 귀리, 건초, 토끼풀, 콩, 사탕무가 모두 우리 것이 되리니 … 잉글랜드의 들판은 밝게 빛나고, 강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감미로운 미풍이 불어오리니 우리가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 수고하리라. 비록 그날이 오기 전에 죽더라도 소와 말, 오리와 칠면조도 모두가 자유를 위해 힘써야 하리. …세계 방방곡곡의 동물들아 금빛 찬란한 미래를 알리는 내 말을 잘 듣고 널리 전하라.” 공산당선언과 같은 맥락의 혁명론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스탈린)이라는 돼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나폴레옹은 음흉하고 잔인한 데다 야비한 돼지다. 복서라고 하는 말은 쉽게 세뇌당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상징한다. 복서는 나폴레옹의 충복으로 죽도록 일하다가 채석장에서 쓰러졌을 때 나폴레옹에 의해 병원 대신 도축장에 팔리고 만다. 소설에서 양 떼는 멍청한 동물로 묘사된다. 일하지 않는 돼지들에 대한 반발이 나올 때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다고 외친다. 스탈린에 맹종하는 인민들이 양 떼다. 암소의 젖은 공정하게 처리할 것처럼 말하고 나폴레옹이 가져간다. 독재 권력의 평등은 부패와 동의어다. 인간이 사라져 행복하지 않으냐고 다른 동물들이 물을 때 벤자민으로 불리는 까칠한 당나귀의 대답이 압권이다. “당나귀는 명이 길어. 너희 중 누구도 당나귀가 죽은 걸 보지 못했을걸.” 선문답 같지만, 죽을 때까지 짐을 날라야 하는 당나귀처럼 삶은 원래 고단한 것이라서, 스탈린 체제라고 좋아질 리 없다는 뜻이다. 소설에서 벤자민은 혁명에 침묵한 지식인 그룹이다.
뛰어난 언변으로 동물들을 휘어잡는 스노볼이란 돼지는 스탈린에 의해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암살당한 트로츠키다.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고 우민화하는 일은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그가 한 수 위였다. 스노볼과 몰리라는 흰말과의 대화 속에서는 비굴하고 기회주의적인 귀족계급의 구걸이 드러난다. “혁명이 되면 내 갈기 털에 리본을 다는 건 여전히 허용되겠죠?” 암탉을 위한 ‘달걀생산위원회’ 쥐와 토끼들을 대상으로 한 ‘야생동물재교육위원회’ 암소들 때문에 만드는 ‘청결한 꼬리연맹’과 같은 조직은 언제나 사회개조를 앞세우는 공산혁명세력에 대한 조롱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는 대중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일러준다. 독재 권력은 어떻게 탄생하고 강화되며 어떻게 인간을 기만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는지 동물들이 설명한다. 오웰은 러시아 공산혁명에서 있었던 집단들의 행동과 인간의 심리를, 동물들을 내세워 면도날로 해부했다.
어떤 정치인이 『동물농장』을 빗대 여성을 암컷이라고 했다. 사람을 동물 취급했던 스탈린도 두 손 들어 올릴 막장이다. 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 직함도 달았고 대통령비서실에서는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시퍼런 칼을 쥐고 흔든 사람이다. 같이 있던 국회의원이란 자들은 박수로 화답하며 시시덕거렸다. 참 동물농장답다.
오웰은 나이 50이 되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얼굴이 된다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이다. 거짓 인턴 발급 사건으로 집행유예 기간인 사람이면 자숙해야 한다. 하지만 시정잡배만도 못한 문제 인물의 저속한 언행은 처음이 아니다. 본디 품성이 그렇다면 스노볼을 데려와 인간화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한다. 어쩌다 그런 부류들이 제도권에 들어와 나리님 행세하게 되었는지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들이 『동물농장』을 제대로 독해했는지부터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