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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장12~26절
제목 : 기도에 힘쓰니라
성령을 기다리며 제자들은 집중적인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선교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진영을 갖춰갑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의 기도와 맛디아를 선출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함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12~14절)
1) 제자들은 감람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12절).
“[12]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 이었습니다.
미쉬나(Mishnaah)에 의하면 안식일의 여행거리는 최대한 2천규빗으로 제한 되었습니다. 이 거리는 약 1.1Km정도 에 해당됩니다.
2)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들이 머물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13절).
“[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이 다락방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 다락방은 위층에 있는 넓은 방인데,
유대인들이 손님을 위해 예비해 두는 방이었습니다.
3)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열한 사도들(13절)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아우들, 그 외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14절)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 열한 사도들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2) 여자들은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낼 때까지 계속 따라 다니던 여인들을 가리킵니다.
(3) 예수님의 아우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마 13:55;막 6:3)인데
그들은 한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요 7:2-1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예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야고보는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서(12:17;15:13 이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방문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고전 15:7)
야고보의 저자로 믿어집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명단이 다시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이미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눅6:14~16, 마10:2~4,막3:16~19 ),
또다시 13절에서 일일이 그 명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복음서의 제자들 명단은 사도로 불러 세우신 자들의 명단이라면,
13절에 기록한 명단은 3년간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도들의 명단입니다 .
복음서의 명단은 “입학생 명단”이라면,
사도행전의 명단은 “졸업생 명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사도행전 1장에 가룟 유다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것 이 그 중요한 차이입니다 .
뿐만 아니라 그 이름들의 순서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
세 복음서에 나타난 명단의 순서를 보면 ,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베드로가 제일 먼저 나온다는 것과 세베대의 아들들의 경우 야고보의 다음에 요한이 나온다는 것은 다 일치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에서는 베드로 다음에 요한이 나오고 그 다음에 야고보가 나옵니다 .
이처럼 야고보가 요한 뒤로 밀린 것은 초대교회에서 그가 차지한 비중이
요한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 왕에 의해 일찍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행12:1~2). 물론 순교도 귀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사도행전은 사도들에 의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 일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베드로와 요한을 앞세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아우들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주의 동생 야고보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의 숫자는 120명 쯤 되었는데,
이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14절)고 합니다.
이들의 기도는 곧 있을 오순절 성령강림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에 전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행1:4~5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이 수차례에 걸쳐서 약속하셨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6: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약속하신 것을 주신 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기보다 먼저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리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가 성령을 받은 것은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4)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14b절).
“[14b]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의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행한 기도의 형태를 보면
첫째,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단체기도”, 즉 “기도회 ”형태의 모임이었습니다 .
서양 사람들은 기도를 하더라도 개인 기도를 주로 하며,
단체 기도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교회(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기도회”를 가졌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며,
초대교회의 기도 형태를 이어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허락해 주신 귀한 “기도회”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온 세계로 수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의 다락방 기도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한 “합심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8:19~20절에서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하셨는데,
이처럼 마음을 모아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겨 응답해 주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기의 순수성이 요구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서로간의 허물과 죄를 피차 용서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의 욕심과 이기적인 생각을 다 버려야 합니다.
셋째, 이들의 기도는 “전심 기도 ”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프로스카르테레오”는 “어떤 일에 전념하다, 몰두하다, 헌신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오직 기도에 전심 전력하였으며 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
기도할 때 마음이 나뉘면 기도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는 세상에 속한 마음을 다 버리고 ,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기도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의 다락방 기도는 온 세계교회의 기도 생활에 귀한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베드로가 유다의 후임자 선출을 건의하다(15~20절).
1) 유다에 대한 예언이 성취됨(15~16절)
이어서 가룟 유다 자리 대신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원된 사도 자리를 보충하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완수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아마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과 인도로 이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20명쯤 되는 무리들이 모여 있을 때 그 대표격인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였습니다(15절)
그의 연설의 요지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졌으며(16~20절),
따라서 그 대신 한 사람을 택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의 직무를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21~22절)
(1) “모인 무리의 수가 약 일백이십 명이나 되었습니다”(15a절)
“[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고전 15:6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120명 외에도 더 많은 제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여기서 특별히 120이라는 숫자는, 자체 내에 공회(council)를 갖춘 한 공 동체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최소 인원 수를 120으로 규정한 유대법의 규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측됩니다(I.H.Marshall).
곧 유대교적 견지에서도 제자들의 수는
새로운 한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숫자였습니다.
(2)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말합니다(15b절).
“[15b]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복음서에서도 베드로는 열두 제자들 중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마 16:17~19).
여기서도 그는 대표자의 자격으로 모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베자 사본(Codex Bezae)에는 베드로가 ‘그 제자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6절입니다.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한슨(Hanson)에 의하면 “형제”란 말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는 최초의 명칭이었다고 합니다(6:3;7:2;13:15,26,38;15:7,13;22:1;23:1,6;28:17).
한편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 지칭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게 처음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요20:17절).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전하고 제자들은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에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것은 “새 가족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린 모든 것을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만 주어 졌던 영광, 특권, 그리고 사랑 이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3) 성경에 응하였으니 마땅하다(16절)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6절 말씀은 성경의 영감에 있어서 ‘성령’은 배후의 역사자요
‘다윗의 입’은 도구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었다 하겠습니다(딤후 3:16).
한편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관련된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자신의 연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그에게 할당되어진 사역 혹은 봉사의 몫을 담당했었습니다.
이제 그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공백이 메워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20절).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유다가 예수 잡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계신 곳을 가르쳐 준 길 안내자 ,
앞잡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2) 유다의 죽음에 대해 부연 설명입니다(17~19절)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그는 원래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며,
후에 비참하게 죽어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흩러나왔다고 합니다.(마27:3~8).
한편 이 괄호 부분의 내용은 마 27:5~7과 차이가 있습니다 .
(1) 마태복음에는 대제사장이 밭을 산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유다가 밭을 샀다고 합니다 .
아마 실제로 밭을 산 사람은 대제사장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유다가 산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마태는 `아겔다마' 곧 `피밭'이 라는 말의 기원(起原)이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판 것 (마 27:4)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는 반면,
누가는 이 말이 유다의 피에서 유래한다고 밝힙니다 (Lenski).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서로 모순된다기보다는
두 의미 모두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습니다.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
마태는 유다가 홀로 목매어 죽었다고 말합니다 (마 27:5).
그러나 여기에서는 더 세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그가 나무에 목을 매고 달려 죽은 뒤에 노끈이 끊어져서,
몸이 땅에 떨어져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
흰놈의 골짜기 절벽의 나무에 목을 매었으나 그 줄이 끊어져서
바위에 부딪혀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 나왔다는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또 파피아스(Papias)의 글에 의하면
유다는 병에 걸려 몸이 엄청나게 부었으며 결국 수레에 치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일은 시편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여기서 베드로는 시69:25과 109:8을 인용합니다.
*시69: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시109: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앞의 것(시69:25)은 유다에 대한 심판과 저주에 관한 것이 며,
후자(시109:8)는 그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선출 –맛디아 선출(21~26절)
1) 유다의 후임자 요건 제시(21~22절)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자격요건은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던 제자, 제자 공동체 안에 있었던 사람,
부활의 목격자입니다.
베드로는 유다 대신에 한 사람을 선출하여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게 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사도의 자격은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2) 예수님의 증거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
(고전 9:1,2;15:8-10;갈 1:16,17).
여기서 베드로는 먼저 사도 후보자의 조건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자라고 국한시킨 것은
(1) 열 두 사도 중 한 명을 선택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또한
(2) 열 두 사도의 사역 범위가 주로 유대인들과 관련된 것 이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사도들과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심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사도들과 협력이 잘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두 명의 후보 제시(23절)
“[23]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베드로의 제안을 들은 제자들은 두 사람을 추천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바사바”라고 하는 “요셉”이었는데 별명은 “유스도”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위의 전제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둘 중 누가 선출되더라도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첨으로 선출할 경우에도 후보자들의 자격 기준을 정하고 엄격히 심사하여 내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첨이라고 하여 아무나 후보로 내세우는 것 은 무책임하며 인간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3)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구함(24~25절)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자들은 이 두 사람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이 두 사람 중에서 주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추첨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추첨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선출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첨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하나의 순서로 기도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올바른 인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추첨하기 전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다 정지작업 해 놓고서 하나님께 택해 달라고
기도하는 자세는 위선적이며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시44:21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모든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롬9:22,23)보여줍니다.
4) 맛디아가 사도로 선출됨(26절)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기도한 후에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가 당첨되었습니다(26절).
제비를 뽑는 것은 고대사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이것은 중요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받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16:33)고 하였습니다.
또한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리라”(잠18:18)고도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격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의 결정을 의뢰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제비 뽑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고대문헌 중 “일리아드 ”제3권에 보면, 제비들을 헬멧 안에 집어던진 후 그것들을 흔들어서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추첨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맛디아를 사도로 결정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이탈로 말미암은 결원은 보충되었으며
“열두사도”가 회복되었습니다.
추첨제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후보자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나 심사 없이 무턱대고 추첨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며 미신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잘못 사용될 때는 미신처럼 타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 교계에서 처럼 선거열이 지나치며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시점에서는 추첨 제도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추첨 방식만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며 옳지 않습니다.
행14:23절에 보면 사도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세웠다고 합니다.
“택하다”는 말은 “손을 들어 투표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투표에 의한 선출 방법도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는 훌륭한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나 단체에서 직분자들을 선출할 때 “추첨”과 “투표”의 두 가지 방식을 다 사용할 수 있으며, 형편에 따라 합당한 방식을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
열두 사도의 회복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 까요?
여기에는 아무래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마19:28, 계21:12).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제 시작될 “새 이스라엘”도
열두 사도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했습니다.(마16:18, 엡2:20)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열두 사도”각 복음을 전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행2:14)
*행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출발하는 “새 이스라엘 ”의 시작에
“열두 사도”의 역할은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3년간의 철저한 교육과 훈련, 승천 직전의 반복 학습, 전심으로 드린 기도 와 열두 사도 단체의 회복등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다 갖추었을 때
약속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준비가 성령을 오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인간의 아무런 준비 없이 성령이 오신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시되,
우리 인간 편에서의 준비를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잘 갖추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쓰임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 120명이 단체로 모여
합심하여 전심으로 오직 기도하였고, 가룟 유다 자리 대신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에 전념 하였습니다 .
우리도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오직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열한 제자가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도 참여 했습니다.
그들이 오직 예수님의 명령 아래 모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 경험과 공동체적 경험입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새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교회의 설립과 하나님 나라 운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절차를 따라 후보를 추천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로 일꾼을 뽑았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주어진 사명에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외지교회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공동체, 성경으로 자신을 해석하는 공동체, 사명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약속한 것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12~14절).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까지 열흘 남짓의 시간동안, 열한 사도와 주의 가족을 포함하여 백이십여 명이 기도에 동참합니다.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과부(눅18:1)처럼 끈기 있게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넋 놓고, 손 놓고 있는 것은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게으른 종(마25:26)일 뿐 증인(證人)은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최선의 선택이고, 최고의 행동입니다.
2)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 사이에 제자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해석하고, 행동합니다(15~23절).
시편69:25을 통해 가롯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기이하고도 낯선 방식으로 성경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 임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69: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또 시편 109:8에서는 열두 사도 중 공석이 된 자리를 채워야 할 근거를 발견합니다.
*시109: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끈기 있는 기도와 깊이 있는 말씀 묵상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해 나갑니다.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다시 묵상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3) 사도의 자격은 세 가지입니다(21,22절)
(1) 먼저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던 제자여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한 적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주님과 걷는 법을 압니다.
(2) 그리고 제자 공동체 안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나 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3) 마지막은 부활의 목격자입니다.
부활은 전망 없이 갈 수 없는 길이고, 부활의 능력으로 사역을 시작하고 완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 기준으로 일꾼을 세웁니까?
4) 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발생한 빈자리를 채웁니다(23~26절)
구약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하나님 나라의 열두 사도로 대체됩니다.
성경의 근거를 들고, 당대의 선출 문화인 제비뽑기로 뽑고, 기도하고 세웠습니다.
유명한 요셉이 아니라 무명에 가까운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이후로 사도행전의 기록에 그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과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