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의 먹구름이 흔적 없이 사라진 자리에 파란 하늘이 상쾌하다
달리는 버스창문으로 푸르게 우거진 나무숲으로 덮인 산이
그 무게를 달리하면 길게 이어져있다
푸른 융단 같은 산 아래 자락엔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과
농부의 땀으로 일궜을 추수를 앞둔 논과 밭이 자랑스럽게 자리하고
그 아래론 반짝이는 실크처럼 얇은 개울이 끝없이 흐르고
한쪽에선 어린 아이들 서너 명이 자연의 모습으로 물놀이를 하는 풍경을 보면서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난 지금 후발대로 허브나라와 메밀꽃축제가 한창인 장평으로 향하고 있다
장평 터미널은 옛날 동사무소처럼 작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있다
작은 매표소와 TV드라마에 정신을 쏙 빼고 있는 매점 아주머니가 있다
듬성듬성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그곳은
내가 서울을 벗어났다는 걸 확연히 알려주는 시작이다
자생식물원을 갔다 온 선발대와 만나 허브나라를 향한다
어찌나 좋았다고 자랑을 하는지...자생식물원을 가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
< 하나의 동화...허브나라>
옛날옛날에 왕자와 공주가 살았습니다...로 시작되는 동화 속엔
아름다운 왕자공주만큼 아름다운 성과 마을이 있다
공주가 노니는 숲은 금방이라도 마법의 손길이 나올 것만 같았다
허브나라는 하나의 동화이다
주인 딸이 손수 만들었다는 아기자기한 표지판부터
흡사 스위스 산자락에 와있는 것 같은 이국적인 산장들
간간이 배치되어있는 귀여운 소품들과
여러 종류의 허브들이 부담을 주지 않게 잘 정리정돈 되어있다
저녁달빛에 비춰지는 허브와 향기를 맡는 것도
그리고 어스름한 새벽녘 안개에 싸여 허브향기를 맡는 것도
내가 일상의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와있다는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주인의 수고로움을 느끼게 하는 곳
허브나라의 매력은 자연스러움과 새로움인 인 것 같다
< 마음을 열게한느 봉평 메밀꽃>
드문드문 돌다리와 흙과 소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넌다
옆에 건너기 쉬운 현대식 다리가 있지만 사람들은 굳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이미 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사람들은 축제에 빠져보겠다는 마음을 다짐한다
그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눈앞에 하얀 메밀밭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눈앞에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쳐져있고 그 밑으로 깔린 하얀 메밀꽃
그 자연스러운 색채의 조화에 일단 마음을 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얀 꽃밭에 숨어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파란 하늘 아래 ‘소금을 흩뿌려놓은 듯한 메밀꽃’은 한 폭의 그림이다
주최 측의 서비스일까..올드팝이 하얀메밀꽃의 흔들림과 함께 귀속을 파고 든다
왠지 이곳엔 소리 소문 없이 많은 사랑이 탄생했을듯하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메밀꽃을 보고 있노라면
커지는 눈만큼 쥐도 새도 모르게 마음이 열린다
< 하나의 화두... >
최인호의 ‘길없는 길’이란 책에서 “부처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노스님은 “부처는 부처이니라...” “부터는 네 마음속에 있다” 는 알듯말듯한 선문답을 한다
이런 종교적인 거창한 화두가 아니더라도
가끔 내 자신에서 툭 던져지는 질문들
“삶이 무엇인지...”
“나이 든다는 게 무엇인지...”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꽉 박혀와 가슴 저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함에서 그 어느 것과도 바꾸기 싫은 소중함과 편안함을 느낄 때
그때가 아마도 나이를 먹을 때인 것 같다...
인생을 조금은 알게 될 때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