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보다 높은 존재 멜기세덱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의 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
천사들로 인하여 제정된 율법시대
말라기선지가가 살던 시대를 포함 구약시대까지,
예수님의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기까지,
십의 일조를 주님께 드리는 것은 법이었습니다.
주님의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이 오시기전까지는 구약시대입니다.
모세의 율법들이 있고,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건재하던 시기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제사장직을 맡은 그 시대에 맡은
레위지파들의 분깃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시대, 교회시대에는 십의 일조가 법이지 않습니다.
차 후 천년왕국에서는,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지지않는,
그림자 없는 제사들을 다시 드릴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
교회안의 형제 바나바처럼 초대 뜨거웠던 성도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사도들에게 내어 놓아 주님께 드렸습니다.
한 몸 교회안에 그들에겐 부족함도 없었고, 누구도 넘치는 자들도 없었습니다.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2000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십일조와 헌금에 관한 논쟁과 쟁변들이 많습니다.
“...먼저 자신들을 주께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었느니라”
주님께 드리는 가슴으로 어떻게 얼만큼을 드리더라도, 그 순수한 마음이면 된 것입니다.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시며,
100억 부자의 10억 헌금보다, 한기총의 일년 예산보다
실로 가난한 과부의 생활비 전부 2000원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보고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작정헌금 건축헌금이라는 이상한 단어들이 있어도,
주님만을 사랑하며, 누구에게 내어 주든, 어떻게 쓸지언정
아버지께서 그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십니다.
십의 일조이던 십의 오조든 십의 구조이던,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영약해지고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인들입니다.
때가 마지막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돈을 더욱 사랑합니다.
"주님께 많이 드리기 싫어" 아직도 잡고 있으며,
성도들이 모이는 회당들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십의 일조 십일조의 법아닌 법이 아닙니까?.
사제들이 있는 천주교당이나,목사님들이 있는 예배당들에서
입을 맞추며 동일한 교리아닌 교리중의 하나 아닌지요.
모든 것을 팔아 주님을 사며,
가진 전부를 팔아 귀한 진주를 사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비웃거늘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너희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찼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