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 작은아들이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세 살 위인 제 형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작은아들은 결혼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도 못 내는데, 남편이 더 서두릅니다. 남편은 아이들이 20살 넘어서부터 입버릇처럼 “누구라도 좋은 사람만 생기면 결혼하라”고 수시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이런저런 일로 집안 형편도 안 좋고, 큰아이부터 결혼시키고 나서 작은아이 보내면 좋으련만 남편의 주장이 워낙 완강합니다. 제가 미적거리니 시어미 질투심이냐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본인이 스물여섯 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후회될 일도 있었을 법한데 말입니다.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과 뚱한 큰아들 사이에서 유난히 작은아들과 정을 많이 나누며 살았는데, 그리고 작은아들은 아직 해야 할 공부도 남았는데, 곁에 두고 이때까지 못 해준 밥 좀 더 먹이다가 장가를 보냈으면 했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허전한 마음에 뒷산에 올라 혼자서 몇 시간씩 헤매다가 내려옵니다. 어제는 향로봉 쪽으로, 오늘은 족두리봉 쪽으로…. 묵묵하게 병풍을 치고 있는 북한산과 새로 조성된 뉴타운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그래, 잘 가라, 내가 그리워하나봐라.”]
....그렇게 작은 아들을 3년 전 가을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33살 난 큰 아들을 얼마 전 화창한 봄날에 보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정치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
큰 아이는 항상 걱정이 많고, 작은 아이는 고민이 많은 듯 하였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 학교 5학년 때 쯤 이었는 것 같습니다. 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저에게 말하더군요.
"아빠 선거 떨어지면 뭘 먹고 살지?" 전 그 때마다 하는 말이 "엄마가 김밥 장사라도 하여 너희들 학교는 다 시킬터니 걱정 말아라" 이것이 저의 단골 레퍼터리 였습니다.
항상 집안걱정을 많이 하는 큰 아이는 저에게 "엄마 돈 얼마 있어요?"라고도 자주 물어보곤 하였지요.
반면 큰 아이 보다 더 일찍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진 작은 아이는 정서적으로 예민하기도 하고 타고난 품성이 주위를 많이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이런 두아들에게 안동 서울을 정신없이 오가는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분. 엄마는 극성스럽고 잔소리 많은 사람. 아마 이정도 였겠지요.
둘 모두 대학에 진학 한 후 이런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 갔는지...엄마, 아빠는 당신들이 대단하여 우리가 아무리 잘 해도 눈에 차지 않는다".
또 자기네끼리 킥킥거리며 "엄마가 아빠 때문에 바쁘지 않았으면 우리를 마마보이 많들었을거야"
그래요.
밥 잘 못 해준 엄마 원망하는 것보다 바뻐서 잔소리 덜 들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두아들을 보며 조금은 안심을 하기도 하였지요.
안동서 재선 선거(권정달 의원님과 한판 승부)를 치루느라 정신없이 돌아 다니다가 서울을 오니 큰 아이 담임 선생님께서 호출을 하더군요. 컴퓨터 앞에 저를 데리고 가더니 "모기", "하회탈"...등 수도 없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것이 큰 아이라고. 그 중엔 담임선생님에 대한 비방의 글도 있고요. 아, 이를 어쩌나? 참 많이 난감했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서는 명세기 지방의 국회의원이지만 학교에 관심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학부모의 무관심이 섭섭 하셨을 것이고, 은연중 담임선생님에 대한 우리 아이의 반감은 극에 달 한 듯 하였습니다.
또 작은 아이는 아무도 없는 집이 싫었던지 학교가 파한 후엔 피웅 피웅 PC방으로.
그러나 다행이 아이들 나름대로 자존심은 있었는듯 자기 자리는 지키더군요.
어미인 저로서는 대학 들어 갈 때까진 항상 종종거리면서 지켜보았지요.
둘 모두 밖에 나가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자비로 가는 것에 대해선 엄두를 못 내는 두아이.
큰 아이는 이제 카이스트에서 석 박사를 끝내고, 올 9월에 포닥으로 나가야하나 내년 4월 아버지 선거를 치루고 내년 9월에 미국 쪽으로 나가겠다고 하네요.
작은 아이는 미국 쪽 장학금이 여의치 않는지 홍콩대학으로 올 9월에 나갑니다.
이렇게 내 품안의 두 아이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곤 돌아 오겠지요.
이제 저의 할 일이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자식들이 간혹 집밥이 먹고 싶을 때 해주는 정도이겠지요.
그래요. 건강하게 운동 열심히 하고, 책 좀 읽고, 주위 사람 좀 돌아보며 그렇게 살아가면 되겠지요.
전 남의 결혼식에 가서도 자주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허긴 30여년 전 저희들 결혼식날 식장에 들어 서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러 화장이 얼룩진 상태로 결혼한 사람입니다.
아들 가진 사람이 울면 딸 가진 부모들이 웃겠지요?
작은 아인 결혼 식 때 포옹하려는 데 "엄마 울지마" 하더군요.
그 소리에 참았던 눈물을 흘렸지요. 그리고 아린 마음이 오래 갔습니다.
큰 아인 덤덤히 "건강하세요" 하더군요.
대전서 학교 하느라 떨어 산 지가 5년이 넘어서인지 덤덤하더군요.
지금도 큰 아이가 결혼을 했는지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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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두에게 감사하네요
두아이 모두자랑스럽고 대견하네요 . 수고많으셨읍니다^^
그리운 사람들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어머니의 위대함...잔정 많으신 사모님, 두 아드님 너무 잘 키우셔서 우리사회의 일꾼으로 만드신 공로를 치하드립니다.
가까운 미래에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귀환하였을때 어쩜 부모세대는 작아지고 그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식성공 세상살이의 표본입니다.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아침부터 잔잔하게 울컥합니다...
장가가는 아들의 한마디가 어머니 마음을 움직이셨군요.
짧은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사무쳐서
울컥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런 두아들...
든든합니다.
자랑스런 두아들 잘키우셨습니다..
품안의 자식이라 이젠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 꿈의날개 활짝펴고 이나라의 주역으로 정진하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