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몇 명의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싶다고 필립보에게 청합니다.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그들의 청을 전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요한 12,23)
그 '때'는 예수님이 땅에서 들어 올려질 '때', 곧 십자가에 높이 달릴 '때'입니다.
바로 그 '때' 그들은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종종 '알다'라는 동사와 연결됩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목적은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새로운 계약, 마음에 새겨진 법을 통해 모두가 하느님을 알게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제 그리스인들은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무엇을 알게 될까요? 바로 보지 않으면 올바로 알 수 없기에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단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만을 보겠지만, 지혜로운 이들은 그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임을 압니다.
세상은 한 인간이 매달린 십자가만을 보겠지만,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이들은 그를 통해 드러날 하느님의 영광을 압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이들이 자기 목숨마저 미워하며(=부정하며) 박해와 순교의 길을 걷는 비참한 모습만을 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자기부정의 모습을 넘어서 오는 영원한 생명을 압니다.
물론 바로 보고 올바로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 자신에게조차 쉽지 않았기에 그분은 고뇌하고 번민하십니다.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요한 12,27) 이 대목을 루카복음 22장은 겟세마니 장면에서 기도로 전하고, 오늘의 독서인 히브 5,7은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고 기억합니다.
이 기도가 과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있었는지에 대해 요한복음과 루카복음 그리고 히브리서의 내용은 서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과 지혜 역시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견디셔야 했음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는 고백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그의 선택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이미 드러났고, 또다시 드러날 것임을 증언합니다.
이미 영광스럽게 했다는 것은(복음이 전하는) 예수 사건을 가리키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임은 그의 재림을 암시합니다.
재림의 시간은 하느님 영광의 때이고, 동시에 세상 심판의 때입니다. 이제 심판하던 자들이 심판받게 될 것이고, '사람의 아들'을 매달았던 세상 권력의 어두움을 하느님의 영광이 물리칠 것입니다. 그렇게 헛된 권력이 내쳐지고, 모든 이들이 십자가 아래로 모이는 '때', 그'때'가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종말론적 현재입니다.
첫댓글 아멘~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주님 사랑 충만히 받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