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6
엄마 찾아 삼만리
아르헨티나에 하비에르 밀레이(Milei) 대통령이 취임했다. 얼마 전까지도 소수당 아웃사이더인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밀레이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르헨티나의 방종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인플레이션에 질린 사람들이 그를 선택했지만, 아르헨티나가 과거의 풍요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밀레이 대통령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감은 적이 없는 듯한 머리카락으로 가발이란 별명을 얻었다. 퍼주기 정부 지출을 잘라내겠다고 벌목공처럼 전동톱을 휘두른 선거유세에서는 과격한 자유주의자를 연상시킨다. 그가 극우 괴짜나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건 거침없는 언행과 파격적인 공약 때문이다.
정부를 악이라고 생각하는 밀레이는 자칭 무정부 자본주의(Anarcho-capitalism)자다.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자유시장에 의해 더 질 좋은 서비스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예방접종을 거부하거나 부유세 폐지와 같은 공약도 자유주의자의 일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빗어준다고 눙친다.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환경론자들의 사기극이라고 들이받는다.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장기판매를 양성화하겠다거나 자국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공산주의자도 모자라 악마라고까지 비난했다.
밀레이의 핵심 공약은 중앙은행 폐지와 통화주권 포기 그리고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하겠다는 극약처방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무분별한 복지 때문이다. GDP의 40%에 달하는 정부 재정지출을 15% 이내로 줄이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밀레이가 우연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아니다. 1970년 버스 기사 아들로 태어난 밀레이는 경제학 교수로서 저술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TV토론에서는 상대 패널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미혼인 그가 키우는 마스티프 개 이름이다. 네 마리 개에게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나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와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그의 개들이 이름대로 산다면 야경국가의 경찰보다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떤 조사에서도 만국 공통의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꼽힌다. 어머니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중 으뜸은 《엄마 찾아 삼만리》가 아닐까 싶다. 많은 이가 기억하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아미치스가 쓴 《아펜니노에서 안데스까지》라는 동화를 일본의 다카하타 이사오가 각색했다. 이탈리아 제노바를 떠난 소년 마르코가 역경 끝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만나는 여정이 눈물겹다.
마르코의 어머니 안나 롯시가 아르헨티나의 부잣집에 가정부로 들어간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유럽의 주부가 남미로 돈을 벌기 위해 갔다는 설정이 황당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의 위상을 보면 구꿈맞은 줄거리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한반도 면적의 12배가 넘는 국토와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진 나라로 유럽인들이 미국을 제치고 이민을 꿈꿨던 선진국이었다. 우리가 조랑말을 자동차로 알던 1913년에 지하철을 개통한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410억 불에 달하는 해외 부채는 갚을 재간이 없어 보인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달러 대비 90% 하락했고 인플레이션은 140%가 넘는다. 돈을 은행에 넣는 순간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꼴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서민복지를 핑계로 부유세를 강화하자 달러가 증발했다. 부호들이 해외 외국은행에 맡겨놓거나 금고에 숨겨둔 외화가 500조 원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달러 부족으로 원자재 수입이 어려운 공장들은 차례로 문을 닫고 있으며 무역과 해외직접투자는 보호무역주의와 재정 불안으로 남미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13,700달러에 머물고 있다. 세계 65위 수준이다. 40%의 인구가 빈곤층이며 민간부문의 근로소득자는 4천6백만 인구에 겨우 600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거나 연금생활자다. 절대다수의 국민을 세금을 거둬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다. 이것만으로도 아르헨티나가 왜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예사로 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페로니즘을 계승해 온 아르헨티나 정부의 재정 정책은 선택지가 없었다. 세수가 없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는 돈을 찍어 메꿨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발행하고 그 돈을 정부에 저리로 융자해주는 방식이었다. 중앙은행의 무제한적인 발권은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공공부채를 차곡차곡 포개놓는 결과로 귀착됐다.
밀레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구원투수가 될지 의문이다. 그의 공약대로 중앙은행을 폐지하려면 페소를 교환해 줄 달러가 있어야 하는 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밀레이의 가장 버거운 상대는 국민이다. 그동안 정부 재정에 기대 온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복지의 관성을 스스로 잘라낼 용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국가연금 인상 법안을 부결한 스위스 사람들은 알프스산맥에 오르는 말을 기르지만, 안데스산맥을 척추로 삼은 아르헨티나 초원의 말들은 인내심이 없다.
남의 나라 구경거리가 아니다. 시장경제에서는 정부가 나설수록 경제가 왜곡되고 정부 주머니가 클수록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한국은 코로나 대응으로만 300조 원에 달하는 적자 국채를 발행했다. 십 년 전 490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1,129조 원에 이르고 올해 재정적자는 80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를 헤매지 않으려면 정부재정지출제한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