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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병정신선양회,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범털과개털(미산고택,저상일월)
성명 |
조삼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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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기간 | 1878 ~ 1908. 6. 19 |
출생지 | 서울 |
운동계열 | 의병 |
훈격(연도) | 애국장 (2006) |
공적내용 |
조삼용은 대한제국의 해산 군인 출신으로 이명상의진(李明相義陣)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희생되었다. 이명상은 충북 단양 출신으로 을사늑약 이후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거의하였다. 그 후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에 투신하여 소모장(召募將)으로서 청풍(靑風)·단양(丹陽)·충주(忠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김상한이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과 규합한 뒤 독립된 의병진을 편성하여 군사 이진하(李晉夏)·중군장 김규철(金奎哲)·좌군장 민영팔(閔泳八)·우군장 이영승(李榮承)·서기 이치정(李致鼎) 등으로 진영을 정비하였다. 1909년 5월경 김상한과 더불어 부하 60여 명을 거느리고 청풍·담양·임실·나주·풍덕·중계·순천·보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겨울 영주 순흥(順興)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조삼용은 경성기병대(京城騎兵隊) 군조(軍曹)였으나 1907년 6월 해산 이후 이명상의진에 참가하였다. 1908년 6월 8일 이명상의진이 경북 북부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선발대로 박양현(朴養顯)과 함께 풍기군(豊基郡) 상리면(上里面현 예천군 상리면) 명봉사(鳴鳳寺)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던 중 풍기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동년 6월 19일 영주수비대(榮州守備隊)에서 취조를 받던 중 탈출하다가 체포되어 총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註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榮秘發 제115號 匪徒逮捕에 關한 件(1908. 6. 10)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榮秘發 제115-1號(1908.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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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단양의병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주시고 계시군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겨울에 '장충식 일기'한번 읽어 보시죠...회원 모두...
잘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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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았읍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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